• [경제] 석유 한 방울 없이 돈벼락…앉아서 '5조5000억' 벌었다 [원자재 이슈탐구]2024.04.22 PM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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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없으면 '호구'?…자원 없어도 투자로 돈 번 시타델


거시경제 분석, 기상 전문가 등 과학자 동원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활용에 선두

 



원자재 중개업체 비톨의 키프로스 연료 저장 탱크 

© Andrew Caballero-Reynolds/Bloomberg 



자원 브로커는 최고급 양복을 입고 위스키와 시가를 즐기는 백인 남성이며, 적대국 정부 고위층과 협상하고 때로는 뇌물 등 부정한 수단도 서슴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있다. 이들은 지역별, 시기별 원자재 가격 차이를 이용해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 스위스의 자원 중개기업 트라피구라는 지난해 직원 1인당 평균 35억원을 줬을 정도다. BP와 엑손모빌 등 석유기업을 비롯해 광산업 기업들도 자신들의 정보와 자원을 무기로 이 같은 수익을 나눠 먹는다. 이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자원이 빈약하고 정보력도 취약한 아시아 국가 등을 상대로 막대한 돈을 벌고 있다.


최근 헤지펀드 시타델이 자원·중개 기업들의 수익을 나눠 가져가며 주목받고 있다. 뉴욕과 런던의 금융사들은 일찍이 자본을 무기로 자원·중개 기업과 공동 투자를 해왔으나 어디까지나 '쩐주' 역할에 그쳤고, 원자재 파생상품 등 거래도 부업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시타델은 주력 펀드가 전체 운용자산의 4분의 1가량을 원자재에 투자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비결은 공학과 수학을 기반으로 한 거시경제 예측과 첨단 기술의 활용이다.

 

석유 기업 못지않게 유가 잘 맞춰

 

22일 외신에 따르면 시타델은 런던 지사를 시티오브런던의 새 건물로 이전하기로 하고 임대 계약을 맺었다. 사무실 면적을 현재 약 1만4000㎡에서 2만3000㎡로 약 1.6배 늘리기 위해서다. 2022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로 본사를 옮긴 시타델은 뉴욕 파크애비뉴에도 62층 빌딩 신축을 추진 중이다. 런던과 뉴욕 기업들이 사무실 공간을 축소하는 트렌드와 반대다. 시타델이 사세를 확장하는 것은 최근 몇 년간 원자재 부문에서 '돈벼락'을 맞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시타델은 지난해 원자재 거래 부문에서 40억달러(약 5조5000억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했다. 2022년에도 시타델의 헤지펀드 부문은 업계 사상 최고인 160억 달러(약 22조원)의 투자 수익을 올렸다. 상위 20개 헤지펀드의 수수료를 제외한 수익 약 224억달러 가운데 시타델이 71% 이상을 차지했다. 수익 가운데 원자재 부문 수익이 80억달러로 절반을 차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유·정유 제품의 최근 몇 년 동안 공급 수준, 수요 패턴 및 물류 변수에 대한 가용 데이터를 분석해 투자에 나선 결과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수요 예측 정확도를 높인 것이 수익의 비결로 꼽힌다.



헤지펀드 시타델 창업자 케네스 그리핀 /사진 =로이터



고급 수트 입은 협상가 대신 공학자와 수학자


헤지펀드 시타델은 직접 석유 등 원자재를 생산하지 않고, 고객사와 계약 맺고 배송하는 등 중개업도 하지도 않는다. 일선 자원·중개기업보다 정보가 늦을 수밖에 없고 협상력도 약하다. 그런데도 거시 경제에 대한 뛰어난 분석으로 자원 기업 못지 않은 큰 성공을 거뒀다. 시타델은 애널리스트와 엔지니어를 포함해 300명 이상 규모의 원자재 트레이딩 팀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원유·정유 제품 팀을 늘리기 위해 석유 기업 셸의 유명 트레이더를 스카우트하기도 했다.


시타델은 2002년 분식회계로 공중분해 된 에너지 기업 엔론의 트레이더들을 영입하면서 에너지·원자재 투자를 본격화했다. 2017년 맥쿼리 출신의 상품 트레이더 세바스찬 배락을 영입해 투자 기법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배락은 20명 규모의 기상 전문가와 과학자 등으로 구성된 팀을 창설해 날씨를 바탕으로 석유·가스 수요를 예상해 베팅에 나섰다. 곡물과 설탕, 커피 등 농산물 작황을 예측하기도 했다. 풍력·태양광 발전소의 증가도 기상 분석 팀을 활용할 기회다. 전력 시장에서 수요가 가장 높은 바람이 없는 흐리고 추운 날을 예측해내면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배락 본부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급증하면서 말 그대로 정보에 입각한 투자자가 되고 있다"며 "저탄소 에너지 전환으로 인해 전력 시장의 복잡성이 커지기 때문에 이를 모델링하는 데 더 정교한 도구가 필요한데다, 이러한 에너지 전환은 새로운 일이라서 과거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데이터 기반 트레이딩 전략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사진=게티이미지



인공지능(AI)에 사활 건 원자재 업계


시타델이 데이터 트레이딩으로 성공을 거두자 에너지 중개기업들은 너도나도 AI에 대한 투자에 나서고 있다. 중개기업들은 전쟁 발발 후 위험을 무릅쓰고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며 시타델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지만, 시타델이 '손에 석유 한 방울 안 묻히고' 수익을 올리는 모습에 놀랐기 때문이다. 트라피구라는 자체 AI 모델을 만들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트라피구라의 가스, 전력 및 재생 에너지 부문장 리처드 홀툼은 FT에 "매일 수십억개의 개별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업로드하고 있다"고 전했다. 석유 중개사 머큐리아 관계자도 "AI를 활용하면 시타델과 같은 데이터 기반 트레이딩 시스템과의 격차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블룸버그통신의 추정에 따르면 비톨, 트라피구라, 머큐리아 군보르 등 4개 에너지 중개사가 2년 동안 500억달러(약 69조원)를 쓸어 담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8~2019년 이들의 합산 수익은 68억 달러에 불과했다. 에너지 중개기업들은 정유소, 가스 발전소, 바이오 연료 및 유통사업체 등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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