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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AI 반도체 다음은 전력 반도체… 30조 시장 이끌 차세대 소재는?2024.05.12 PM 09:53
전자제품 전력 효율화 필수품, 전력반도체
실리콘 이어 질화갈륨, 실리콘카바이드 제품 상용화
차세대 다이아몬드·산화갈륨·질화알루미늄에 주목
전력 반도체에 대한 과학기술계와 산업계의 관심이 뜨겁다. 전력반도체는 전자제품의 전력 효율을 끌어올리는 기능을 하는 반도체 부품이다. 전기차의 보급과 더불어 인공지능(AI)을 위한 데이터센터가 늘면서 전력 효율 기술이 핵심 경쟁력이 됐다.
전력반도체는 급속도로 산업 규모가 성장한 AI 반도체의 뒤를 이어 산업계에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전력반도체 시장은 239억 달러(약 32조2230억원)에서 2030년 370억 달러(약 48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현대차, 삼성전자, DB하이텍 등이 전력반도체 사업에 나서겠다고 선언했으나, 전력반도체는 한국이 선진국을 쫓아가는 분야이다. 현재 상용화된 전력반도체 기술 대부분은 일본과 독일, 미국이 독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전력반도체 신소재 분야에서 다음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전력 반도체는 무엇일까.
삼성전자 DDR5 D램 모듈용 전력반도체. 전력반도체는 전자장치의 전력 효율을 높이는 데 필수적인 부품이다. 전기차, 태양광발전 수요가 커지면서 전력반도체 수요도 덩달아 급성장하고 있다./삼성전자
전력반도체는 전자제품의 전력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직류와 교류를 전환하거나 전력 변화, 분배 제어를 통해 전력 효율을 높이는 데 필수 부품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대규모 AI 모델을 운영하기 위한 대형 데이터센터와 탄소 배출 절감을 위한 전기차, 태양전지 보급이 증가하면서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태양광 패널에서는 수천킬로볼트(㎸)에 달하는 고전압의 전력이 만들어진다. 고전압의 전기를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려면 인버터로 전압을 낮춰야 한다. 인버터의 핵심 부품 중 하나가 바로 전력반도체다.
9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차세대 전력반도체 소재로 산화갈륨, 질화알루미늄(AlN), 다이아몬드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과거 전력반도체는 주로 실리콘(Si)을 사용했다. 최근에는 내구성과 전력 효율이 우수한 질화갈륨(GaN), 실리콘카바이드(SiC)를 사용한 제품도 상용화되고 있다.
질화갈륨과 실리콘카바이드 같은 화합물 기반 반도체는 실리콘 반도체보다 밴드갭이 넓어 ‘와이드 밴드갭 반도체’라고 부른다. 밴드갭은 반도체에서 전자가 모여있는 공간과 전자가 없는 공간 사이의 틈이다. 전자가 이 틈을 넘나든다. 와이드 밴드갭 반도체는 밴드갭이 넓어 전자의 이동성이 우수하고 전압 한계치를 의미하는 항복 전압이 높아 전력반도체에 적합하다.
와이드 밴드갭 반도체를 이을 다음 소재도 개발되고 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우수한 열 전도 특성과 큰 밴드갭을 갖고 있는 다이아몬드에 주목하고 있다. 김형우 한국전기연구원 차세대반도체연구센터장은 “기초 연구 수준이긴 하지만 다이아몬드를 이용한 전력반도체 소자를 연구하고 있다”며 “다이아몬드는 열 전도성이 우수해 발열로 인한 성능 저하가 거의 없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다이아몬드의 밴드갭은 실리콘에 비해 약 5배, 실리콘카바이드에 비해 2배쯤 크다. 밴드갭이 크면 높은 전압을 견딜 수 있어 전력반도체의 성능 향상에 유리하다. 현재 전력반도체 소자로 사용하는 질화갈륨은 고전압 영역에서 사용할 수 없는 것과 달리 다이아몬드 전력반도체는 태양광 발전, 우주 탐사처럼 고전압이 필요한 분야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력반도체 소자의 성능을 의미하는 전력 밀도는 현재 ㎜당 10와트(W) 정도지만, 다이아몬드 소자는 4배에 달하는 40W까지 구현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다이아몬드에 전류가 통하도록 일종의 불순물을 넣는 ‘도핑’이 어렵다. 다이아몬드를 직접 소자로 만들기 어려운 만큼 다른 소재로 소자를 만드는 기판으로 다이아몬드를 쓰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를 기판으로 사용하면 소자의 열전도 특성을 개선해 전력반도체의 성능을 높일 수 있다. 강동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RF·전력부품연구실장은 “반도체는 여러 공정을 거치는 데, 다이아몬드 결정을 가공하고 성장시키는 기술은 아직 성숙하지 않은 상태”라며 “대신 다이아몬드를 기판으로 사용해 열을 쉽게 빼는 방법이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한국세라믹기술원 공동 연구진이 개발한 산화갈륨 전력반도체. 해외 수입에 의존하던 전력반도체의 국산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한국전자통신연구원
산화갈륨, 질화알루미늄도 전력 반도체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산화갈륨은 저렴하면서도 실리콘카바이드에 비해 높은 전압을 견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기판 대형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용화를 위해서 최소 6인치 크기가 필요하지만 지금은 2인치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기판의 크기가 커질 수록 생산 효율이 높아져 상용화에 유리하다. 질화알루미늄은 전력 반도체 소재로서 특성은 우수하지만 아직 결정을 키워 소자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다이아몬드와 마찬가지로 전류가 흐르게 하는 도핑 기술 연구가 더 필요하다.
전력반도체가 전 세계에서 큰 주목을 받는 만큼 한국도 관련 산업을 육성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8일 세종에서 열린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치열해질 AI 경쟁에서 전력 소모를 줄이는 반도체 기술이 갖는 중요성이 커질 전망”이라며 “정부도 적극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력반도체 산업 규모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만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차세대 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본다. 김 센터장은 “아쉽게도 차세대 전력반도체 기술 대부분은 일본이 선점하고 있다”며 “한국은 상용화에 중점을 두고 있어 기초 단계의 소자는 아직 연구가 미흡하다”고 말했다. 전자통신연구원 강동민 실장은 “차세대 전력반도체 소재들은 고전압부터 중·저전압까지 각각 장점이 있어 산업적 가치가 크다”며 “전력반도체 소재는 물론 설계, 제작 분야에서도 국산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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