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 | 역사] 첫 TV 토론 앞두고 부상하는 해리스의 ‘눌변’ 리스크2024.09.07 PM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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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민주당 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가 지난 9월 2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 선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photo 연합



누가 이길 것인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미국 대선이 초박빙 형세다. 이번 대선의 승패를 결정할 경합주는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등 6곳이다. CNN이 지난 8월 23일부터 29일까지 여론조사기관 SSRS와 함께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스코어는 2 대 1. 카멀라 해리스(60) 미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미시간과 위스콘신에서 5%포인트 이상 앞섰고,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79)는 애리조나에서 우세했다. 그러나 조지아, 네바다, 펜실베이니아는 동률이거나 거의 비슷했다.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해리스가 우세를 확실히 점하는 듯했지만, 중후반 레이스에 접어들며 승부를 예측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해당 조사에서 응답한 6개 경합주 유권자 가운데 “투표할 후보를 바꿀 수도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최대 15%에 달했다.


누가 질 것인가, 무엇 때문에? 트럼프가 진다면 그 원인은 너무나 많을 것이다. 트럼프의 결점과 리스크가 그만큼 분명하고, 중도 및 진보 유권자 상당수가 ‘트럼프는 안 된다’는 기치 아래 결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리스가 진다면? 확실한 이유를 꼽을 수 있다. 바로 해리스가 ‘말’에 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크게 한번 혼난 뒤 ‘언론기피증’? 


해리스가 대통령 후보로 전면에 등장한 것은 지난 7월 21일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의 후보 사퇴 발표와 함께 해리스를 지지하면서였다. 그런데 이후 해리스가 언론과 가진 공식 인터뷰는 지난 8월 30일 CNN이 처음이다. 그것도 부통령 후보 팀 월즈와 함께였다. 이 기간 동안 해리스는 유세 현장에서 종종 멋진 연설을 선보였지만, 기자들의 질문을 응대하는 ‘애드리브’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약 5주간 인터뷰는 물론 기자회견 한번 열지 않은 해리스는 “인터뷰를 기피한다”는 공화당의 조롱을 감내해야 했다.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대변인을 지닌 아리 플라이셔는 X를 통해 “월즈는 거기 왜 있는 거야?”라고 놀렸다. 기껏 한다는 인터뷰를 혼자 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 사이 트럼프가 TV는 물론 인터넷 방송까지 출연하며 ‘숨 쉬듯’ 활동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이유가 있다. 해리스는 과거 공개 석상에서 ‘크게 혼난’ 이후 언론 인터뷰를 줄였다. 부통령이 된 지 반 년도 안 된 2021년 6월 과테말라 순방 당시였다. 그는 과테말라 대통령과 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분명히 말하건대 미국 국경까지 오는 여행은 매우 위험합니다. 오지 마세요. 오지 마세요(Do not come).” 그는 미국으로 이민 오지 말라는 말을 두 번씩이나 강조한 뒤, “당신들이 국경에 도달하면 돌려보내질 것”이란 엄포도 함께 놓았다


바이든 행정부 초기, 해리스는 난민과 국경 문제를 도맡았다. 해결하기 어려운 민감한 문제를 대통령 대신 맡았다는 정치적 사정은 있었다. 하지만 ‘말’ 자체만 놓고 보면 트럼프와 별반 다를 것 없어 민주당 내에서도 뭇매를 맞았다. 민주당은 트럼프의 ‘멕시코 장벽’이나 불법 이민 추방 발언 등을 인종차별이라며 비난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압권은 기자회견 다음이었다. NBC 앵커 레스터 홀트가 그를 단독 인터뷰했는데, 완전히 신경질적인 대답을 해버린 것이다. 홀트는 앞선 “오지 말라”는 발언에 대해 이렇게 물었다. “국경을 넘는(성공하는) 사람들은 계속 있는데, 그 사람들이 당신 말을 믿겠습니까. 국경에 가 보실 계획이 있습니까?” 해리스는 이 질문을 자주 받았던 차였다. 


실은 이 질문은 공화당이 민주당의 온정적 태도를 비꼴 목적으로 쓰는 것이었다. 국경에 가본 적도 없으면서 한가한 소리를 하느냐는 비판을 담은 말이었다. 해리스는 눈에 띄게 동요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갈 겁니다. 국경에 가봤어요. 왜 이런 말씀이 자꾸 나오죠? ‘우리’는 국경에 가봤어요. 가봤습니다(We’ve been the border).” 해리스는 남부 국경을 직접 방문해본 적이 없었다. 홀트가 “그런 적이 없지 않느냐”고 묻자 해리스는 “나는 유럽에도 안 가봤다”고 해버린다. 안 가본 것을 가봤다고 우긴 데다, ‘우리’라는 모호한 표현을 써서 자신을 숨겼고, 민주당의 부통령이라는 정체성도 지키지 못했던 완전한 실패였다. 해리스는 이 다음부터 미디어 노출을 줄이기 시작했다.



지난 9월 2일(현지시간) 해리스가 조 바이든 대통령(오른쪽)과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서 합동유세를 펼치고 있다. photo 연합



검사 출신, 범죄자 추궁은 잘하는데… 


트럼프 대 해리스의 대진표가 완성된 후 첫 TV토론이 오는 9월 10일(현지시간) 열린다. 해리스가 대통령 후보로서 첫 공개 인터뷰를 한 지 보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러스트벨트의 중심이자, 선거인단 19인이 걸려있는 경합주 펜실베이니아의 필라델피아에서 90분간 진행된다. 해리스에겐 눌변의 멍에를 벗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BBC는 “인터뷰에서 실수를 하면, 바이러스 같은 클립(짧은 동영상)으로 인터넷에 떠돈다”며 “이를 고려하면 (해리스에게는) 실수할 여유가 없다”고 평했다. 달변인 트럼프보다는 잃을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모교인 하워드대학교에서 토론 준비를 해오던 해리스는 미리 펜실베이니아로 이동했다. CBS는 지난 9월 4일 “해리스가 대선 토론을 준비하기 위해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로 이동한 뒤 그때까지 주(州)에 머무를 것”이라고 했다. 러닝메이트 월즈도 토론 주간 펜실베이니아 전역을 돌 예정이다. 


해리스가 검사 출신이라는 점은 토론에서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는 52세의 나이로 연방 상원의원이 되기 전 샌프란시스코 검사장, 캘리포니아 법무장관을 연달아 맡았다. 트럼프는 그의 입장에선 범죄자다. 트럼프가 지난 5월 ‘성추문 입막음’에 관한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돼 9월 18일 선고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해리스가 거대담론을 가지고 하는 토론의 달인은 아니어도, 범죄자를 추궁하는 데는 도가 텄을 인물이다. 이번 선거가 그야말로 ‘트럼프냐 아니냐’를 가르는 선거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그에게 유리한 대목이다. 


아니나 다를까, 해리스가 스스로를 상징하는 구호로 쓰는 말은 다음과 같다. “저는 도널드 트럼프 같은 인간을 잘 압니다(I know Donald Trump’s type).” 다만 해리스는 토론을 앞두고 네거티브보다 의제를 좁히는 데 집중하는 모양새다. 연일 경제 정책을 발표하며 자신의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인 ‘중산층 재건’을 강조하고 있다. 9월 4일 트럼프의 감세 정책을 저격하는 광고를 공개하는가 하면, 창업 비용에 대한 공제 한도를 대폭 늘리고 펀드 조성책 등 중소기업을 키우는 데 초점을 두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번에도 상대방 발언 때 ‘마이크 음소거’ 


하지만 첫 토론에서 해리스가 패배한다면 유권자들이 동요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만은 안 된다’는 심정 아래 숨은 해리스의 ‘리스크’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먼저 인기 없는 바이든 행정부의 2인자라는 점이 그렇다. 갤럽이 조사한 바이든 행정부의 지지율은 사퇴 시점 기준 36%로 재임 기간 중 최저치였다. 해리스가 존재감이 없었다는 평가도 많지만, 그는 어쨌든 현직 부통령이다. ‘존재감 없는 부통령’이란 이미지가 좋은 쪽으로 작용할 리는 없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선거 참모였던 제임스 카빌은 지난 9월 3일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해리스는 공히 신선한 후보라는 이미지를 확실히 해야 한다”며 바이든 대통령과 차별화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리스가 ‘집토끼’ 진보진영의 의사와는 반하는 중도확장 발언을 이어가는 것도 묘한 변수다. 해리스는 CNN 인터뷰에서 사실상 이스라엘 전폭 지지를 표명했다. “무기 지원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확언한 것이다. 자신이 망신을 샀던 ‘불법 이민’ 문제도 기존 입장을 견지했다. 경합주 펜실베이니아를 겨냥한 발언도 했다. 셰일가스 채굴 때 ‘프래킹(수압 파쇄법)’ 공법을 금지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2020년 대선 경선 후보일 때는 금지를 강조했지만 입장이 바뀐 것이다. 프래킹은 환경오염이 심한 공법이지만, 셰일가스는 펜실베이니아의 주력 산업이다.


개인사 측면에서는 ‘전 남친’도 공공연한 리스크다. 해리스는 젊은 시절 30살 연상의 정치인 윌리 브라운과 내연 관계였다. 브라운은 캘리포니아 정계의 거물이었고, 나중에는 흑인 최초로 샌프란시스코 시장까지 오른 인물이다. 해리스는 바로 그의 연줄을 발판 삼아 좋은 경력을 쌓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해리스의 선거 전략 가운데 하나라는 평이 나온다. 이와 관련, 양 진영이 토론 규칙을 두고 한 차례 맞붙은 것이 많은 걸 시사한다. 다름 아닌 ‘마이크 음소거’ 때문이었다. 트럼프는 발언 순서가 끝나면 마이크를 꺼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해리스는 토론 동안 마이크를 내내 켜 놓자는 편이다. 트럼프는 지난 두 차례의 대선 때 상대 순서에도 개의치 않고 발언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여 비판받은 바 있다. 마이크가 꺼져 있던 이번 6월 토론 때는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번 토론에서도 마이크를 끄기로 했는데,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선거 캠프 전략가 출신인 제임스 카빌은 뉴욕타임스에 “트럼프가 트럼프답게 행동하게 하는 것을 명확히 해내야 한다”는 언급을 했다. 트럼프가 자제력을 잃고 해리스의 말을 가로막아야 유리하다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고 급조된 후보’라는 프레임도 해리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아직도 미국 유권자들이 해리스의 정책을 잘 모른다. CBS가 지난 8월 14일부터 16일까지 유고브와 함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유권자의 36%는 “카멀라가 어떤 성향인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트럼프에 대해 똑같이 대답한 응답자는 14%에 불과했다. 해리스로서는 유권자들에게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어필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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