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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역사] 美 보조금 약속에 66조 투자하는데… 반도체 '국제사기' 당할 판2024.10.29 PM 01:37
트럼프 "반도체 보조금 대신 관세"
“그들(대만과 한국의 반도체 기업)은 우리가 자신들을 보호해 주길 원하면서, 제대로 돈을 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돈(보조금)을 내게 만들었다.”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5일 한 팟캐스트(온라인 음성 방송)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칩스법(반도체 지원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반도체에 높은 관세를 매겨, (한국·대만의)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에 제 발로 들어와 공장을 짓게 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중국에 대해 강경 입장인 만큼 ‘대중 제재’는 누가 당선되더라도 반도체 기업에 상수(常數)다. 하지만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은 글로벌 반도체 업계를 불확실성 속으로 내몰고 있다. 그것도 지난 30년 가까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변수다. 반도체는 글로벌 IT 산업 육성을 목적으로 1997년 발효된 WTO(세계무역기구)의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무관세로 수출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만약 트럼프가 보조금을 없애고 관세를 부과하게 된다면, 미국 정부가 글로벌 반도체 업계를 기만한 것”이라며 “전 세계 반도체 업계가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양인성
◇세계 반도체, 불확실성의 시대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첨단 반도체를 국가 전략 자산으로 간주해 이런 협정의 예외 대상으로 만들어 관세 부과를 추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고관세와 함께 바이든 정부가 약속한 보조금을 전면 폐지하거나 축소한다면, 이를 전제로 수백억 달러 투자를 추진 중인 반도체 기업들은 기존 계획을 전면 수정할 수밖에 없다. 높은 인건비와 원자재 가격 등으로 미국 공장 건설비는 한국과 비교해 30% 이상 더 든다. 첨단 반도체 1개 라인 건설비가 25조원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7조~8조원이 달린 문제다.
칩스법에 따라 미국에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반도체 기업은 인텔, TSMC, 삼성전자 등이다. 미국 기업인 인텔(약 1000억달러)을 제외하고, 삼성전자는 440억달러(약 61조원)를 투자하고 64억달러의 보조금, TSMC는 650억달러를 투자해 66억달러의 보조금을 받기로 돼 있다. SK하이닉스는 투자금 38억7000만달러, 보조금 4억5000만달러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서 공장 착공에 들어갔다. TSMC도 미국 애리조나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미 정부 보조금은 건설 진척에 따라 지급될 예정인데, 아직 들어온 것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가 당선 후 보조금을 백지화하면, 기업들도 투자를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투자를 감안해 한국 투자 규모를 결정하고, 생산 물량과 공정을 계획하게 된다”며 “미국 투자를 진행할 수 없다면, 다른 사업 계획들도 줄줄이 영향을 받게 된다”고 했다.
◇반도체 관세 부과 영향은
트럼프가 당선되더라도 ‘반도체 관세’ 추진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WTO의 정보기술협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무력화해야 하는 만큼, 그에 따른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무역협회 한아름 수석연구원은 “반도체를 FTA나 ITA의 예외로 둘 법적 근거가 약하다”고 말했다. 반도체 관세로 제품 가격이 상승할 경우, 애플·엔비디아 같은 미국 기업과 소비자의 부담이 커지는 것도 변수다.
트럼프가 겨냥하는 것이 한국 기업보다 대만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훔쳐 갔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주로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수출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보다 최첨단 반도체를 제조하는 TSMC를 염두에 둔다는 것이다. 카이스트 유회준 교수는 “TSMC의 첨단 반도체는 인공지능(AI) 산업의 핵심 부품으로 전략적 가치가 크다”며 “트럼프는 이런 TSMC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기를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기술협정(ITA)
ITA(Information Technology Agreement)는 첨단 산업 기술 육성을 위해 반도체·통신장비·컴퓨터 등 주요 ICT(정보통신기술) 제품에 무관세를 보장하는 국가 간 협정이다. 1997년 협정이 발효됐으며, 현재 대부분의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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