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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주제 : 계절3 [모리미 토미히코 ver.]2016.10.30 AM 10:01
방학이라 근로는 한가했다. 나는 도서관 카운터에 앉아 책을 읽어 내려갔다. 아침부터
책을 읽어 벌써 점심때 쯤. 슬슬 허리도 목도 뻐근함을 느낄 쯤, 옆 자리에 누군가 앉았다.
방학임에도 도서관에 나와 근무하는 불쌍한 영혼이 누구인지 보기 위해 오후타임 근로생을
향해 고개를 돌렸더니 그곳에는 눈의 여왕이 앉아 있었다.
“으악!”
눈의 여왕을 본 내 입에서는 도서관의 정적을 깨뜨릴 무지막지한 큰 비명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의 눈총이 겨우겨우 사라질 즈음에서야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폐를 끼치다니 남자의 자격이 부족하다!’ 하며 자책하고 있을 때 눈의 여왕이
날 쳐다보며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입 앞에 세우고 한마디 했다.
“쉿-”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져 가방을 들고 도서관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하하하하하. 청년은 아직 남자의 자격이 부족한가보오.” 신선은 내 얘기를 듣더니
역시나 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내가 자책감을 느꼈던 부분까지 다시 한 번 짚어주었다.
“나도 알아...” 이번에는 분개할 힘도 없었다.
* * *
방학 동안 나는 매일 오전타임 근로를 하러 도서관으로 향했다.
방학 동안엔 눈이 내리지 않았지만 전부터 쌓여 왔던 눈이 얼음으로 변해있어
언덕을 오르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매일 매일 추운 날씨. 작년 11월부터 올해 7월까지
벌써 9개월째. 도대체 이 겨울은 언제 끝나는 것일까. 가뜩이나 추위에 약한 나는
목도리를 여미며 불평하며 언덕을 올랐다.
그날은 신선이 도서관까지 마중을 나왔다.
“오늘은 어쩐지 청년과 치킨이 먹고 싶어서 찾아 왔소.” 신선은 오전근로가 끝나고
치킨이나 먹으러 가자고 하였다.
“치킨이 먹고 싶을 때나 찾아 오는 거냐?” 나는 신선을 째려보며 분개하고 싶었지만
실내임에도 너무 추워 무심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도대체 이 겨울은 언제 끝나는 거야...” 나는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그 순간
도서관 문이 열리며 눈의 여왕이 들어왔다. 교대시간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싸고 가방을 맸다. 신선은 눈의 여왕을 쳐다보다가 목소리를 낮춰 내게 말했다.
“나갑시다, 청년. 겨울이 언제 끝나는지 알려 주겠소.” 신선의 왼쪽 입가는 올라가 있었다.
언덕길을 내려오면서 나는 다시 한 번 목도리를 여몄다. 이제 곧 8월도 끝나는데
너무나 춥다. 설마 이 동네는 앞으로 계속 겨울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국에 연락을 해서 원인을 밝혀달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대학교 졸업만 하면 꼭 이 동네를 떠나리라.’ 나는 다짐했다.
“그건 그렇고, 겨울이 언제 끝난다는 거야?” 난 대답을 기다리며 신선을 쳐다보았다.
까페, 문구점, 음식점, 음식점, 방앗간, 술집, 음식점, 편의점, 까페, 음식점, 빵집.
신선은 언덕길을 내려오는 10분 동안이나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분개했다.
그래서 신선에게 뭐라고 소리치려던 그 순간, 신선은 나를 보더니
“오늘 잠자리에 누워서 눈을 감아 보시오. 그 이후는 내일 얘기해 주겠소.” 하더니
손을 흔들고 지하철 역 아래로 내려갔다.
그날 밤, 나는 평소처럼 전기장판을 켜고 이불을 덮고 누웠다. 이불 안에 있는 몸은 따뜻했지만
얼굴은 너무 추웠다. 나는 어서 이 겨울이 끝나길 바라면서 눈을 감았다.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입 앞에 세우며 ‘쉿-’ 하던 눈의 여왕의 얼굴이 떠올랐다.
* * *
까페란 곳은 나와 인연이 없는 곳이었다. 여자끼리 가거나 커플이 가는 곳이
까페라는 곳이 아닌가. 하지만 지금 나는 남자와 함께 까페에 앉아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남자와 함께 까페에 온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남자답지 못한 일인지
나는 주위의 시선을 느끼며 깨닫고 있었다. 신선은 음료를 들고 와 내 앞에 앉았다.
“잠자리에 누워서 눈을 감아 보았소?”
“자려면 당연히 눈을 감아야 하는 거 아니냐.” 나는 괜히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 무엇이 떠올랐소?” 나는 신선의 물음에 침묵으로 답했다.
“다 알고 있으니 말해 보시오.” 나는 신선의 말에 분개했다. “알긴 뭘 알어”
“4월 말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하오?” “4개월 전 아니냐. 무슨 말이었지?”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에선 사랑이 거울조각을 녹여 마음이 얼어붙은 사람을
다시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청년이 사랑으로 눈의 여왕의 심장에 박힌 거울조각을
녹여야 하는 것이 운명이라 했었소.”
나는 신선의 말이 끝나자마자 분개했다.
* * *
여름방학도 어느 덧 절반이 지나고 있었다. 나는 오전에는 도서관에서 근로를 하고
오후에는 추위를 피해 고시원이나 서점 등 실내를 찾아다니는 나날들을 반복했다.
하지만 나는 항상 멍한 상태로 있었는데 그 이유는 신선이 했던 말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역시 나는 세뇌에 걸리기 쉬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제대로 믿고 있지 않는 것 같아 다시 얘기를 해 두겠는데 나는 신선이오.”
남자 둘이서 까페에 온 것에 채 분개하기도 전에, 신선은 신선이라는 주제에
차를 시키지 않고, 단맛이 듬뿍 담긴 오레오쿠키쉐이크를 빨아먹으며 말했다.
“알았으니까 어제 했던 말을 이어서 좀 해보시지. 겨울이 언제 끝나는지 알려 준다며.”
“어라? 그거에 관해선 지금까지 계속 말하지 않았소? 눈의 여왕의 심장에 박힌 거울 조각이
녹아야 이 동네에 계속되는 겨울도 끝날 것이오.” 신선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오레오쿠키쉐이크를 쪽쪽 빨았다.
“아니 그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냐!” 결국 나는 분개했다.
신선은 테이블에 놓여있는 토스트 한 조각을 집었다.
슈가파우더가 솔솔 뿌려져있어 맛있게 보였다.
“계절이 바뀌지 않고 겨울만 지속되는 현상은 올해부터 시작되지 않았소?
눈의 여왕이 신입생으로 이 학교에 들어온 올해부터 말이오.”
“아니, 둘이 관련이 있단 증거가 없잖아.”
“딱히 증거를 보여줄 순 없소. 아니, 정 증거를 원한다면 눈의 여왕이 자퇴를 하고
학교를 떠나는 방법도 있소. 그러면 이 동네에도 다시 사계절이 돌아올 것이오.”
독자들이여,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겨울이 싫다. 남자로서 부끄럽지만 추위에 약한 탓이다.
겨울을 벗어날 수 있다면 뭐라도 좋다고 생각했었지만, 신선의 말을 듣자 망설여졌다.
“아니, 그, 그건... 눈의 여왕은 무, 무슨 죄가 있어서 자퇴를 해. 그럴 순 없지.
자퇴한다고 겨울이 물러간다는 보장도 없고.” 나는 안경을 올리며 대답했다.
갑자기 말도 더듬었다. “아니, 보장하오.” 신선은 단호히 말했다.
“얘기하지 않았소? 나는 신선이오. 눈의 여왕이 이 학교로 진학을 한다는 것,
겨울이 계속될 것이라는 것. 난 다 알고 있었소.
청년이 눈의 여왕의 거울조각을 녹여야 하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청년과 함께 한 것이오.”
신선은 왼쪽 입가를 올렸다.
* * *
아침에 눈이 반짝 떠졌다. 근로 갈 준비를 하고, 도서관으로 출발하기 위해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나는 방 쪽 창문을 쳐다보았다.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7월 31일, 7월의 마지막 날. 신선이 말한 것은 오늘 밤이었다.
교대시간이 되자 도서관 문이 열리고 눈의 여왕이 들어왔다.
나는 눈의 여왕을 쳐다보았다. 지금까지와 달리 나도 모르게, 라거나
눈의 여왕이 두르고 있는 냉랭한 분위기에 압도되었다거나 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저 결의를 굳게 다잡을 뿐이었다.
눈의 여왕이 옆자리에 앉는걸 보고, 나는 가방을 매고 나가면서
눈의 여왕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번만큼은 내 의지로 올린 손이었다. 눈의 여왕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남자답게 말했다.
“그대의 심장에 박힌 거울조각을 녹여주고 싶다네.”
이번에는 사고가 정지됐기 때문에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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