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깊이] 삶,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깊이란 - 8장2015.01.02 PM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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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알아보던 중 이런 친구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긴가민가한 녀석이 오랜만에 반갑다고 연락을 청해왔다.
뭐 먼저 반갑게 다가오는데 내칠수도 없어서
자주 연락하며 지내곤 했다.
한 번은 전화로 이런저런 하소연을 털어 놓는데
회사에 사람이 없어서 골치아프다는 내용이었다.
나라도 와서 일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순진하게 덥석 문 내가 멍청한 놈이었다.

친구따라 간 곳은 회사가 아니라 다단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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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다단계의 개념에 대해 전혀 몰랐던지라
뭐라고 설명을 해도 그냥 곧이 곧대로 믿었고
내가 무슨짓을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지도 못했다.
며칠이 지나 서서히 눈치챌 때 쯤에
이미 난 그 곳에 감금되어 있었다.
모든것을 뺏기고 그들이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난 또 다시 더러운 돈을 벌어들였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사람들에게 전화로 돈을 뜯어 낼 때까지
몸을 마구 혹사당하였고 중간중간
쓰러지는 사람도 여럿 보였다.

그렇게 이용만 당할대로 당하다가 그곳을 나올 쯤이면
이미 나 자신도 더러운 인간이 되어있다.
운 좋게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빠져나온 나는
서울에 있는 그 사람의 숙소로 돌아와
서로 눈물젖은 두부를 씹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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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도 이미 나의 행동을 의심하는 상황이었지만
차마 사실대로 말할수는 없었다.
우연히 동생이 서울에서 알바를 하고 있음을 알았고
우여곡절끝에 동생을 만나러 갔지만...

사실 이 녀석도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고
그저 여기저기 방황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알바를 하고 있지만 숙소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길거리 이곳 저곳에서 쪽잠을 자며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나나 이 녀석이나 돌아갈 곳 없는 처지였다.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돈을 빌릴 곳을 알아보았고
어렵게 마련한 돈으로 같이 지낼 방을 계약했다.
피가 섞이진 않았으나 이 녀석의 존재가
내겐 버팀목이 되었고, 이미 친동생 이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일자리도 금새 구했고 이제 다시 열심히 사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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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상사와의 마찰이 많아 일자리를 이곳 저곳 옮겨다녔다.
돈을 열심히 벌어도 빚갚기는 제자리걸음이었고
동생을 다시 학교에 보내는 것도 제약이 많았다.
어렵게 회복한 가족관계도
거듭되는 의심에 눈초리에
자꾸 어긋나가기 시작했고 결국 다시 악화됐다.

모든 건 내가 자초한 일이었고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나는 잘못된 것을 전부 바로잡고 싶었다.
흥신소나 다단계, 그간 잘못했던 일들에 대해 반성하고자
사람들을 찾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반응은 냉랭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에 되돌릴 수는 없지만
당장이라도 사죄를 구하는 일이 나로서는 최선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고
나는 그렇게 하루하루 지쳐만갔다.

마지막으로 용서를 빌기위해 찾은 한 사람은
대학교때도 내 말에 귀 기울이고
나를 마지막까지 걱정해주던 동기였다.
동기들 중에 친하거나 아끼던 녀석은 없었지만
유일하게 녀석만은 예외였다. 여자이긴 하지만 참 당차고
올바른 사고를 가진, 앞으로도 만날까 말까 하는 귀한 친구였다.

나의 진심어린 용서를 괜찮다며 이해하고
잘 이겨낼거라 믿는다는 말로 위로했고
앞으로도 그 친구에게 보답해야겠단 생각에
벅찬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리고 한달 뒤 나는 가장 아끼는 친구의
사망소식을 같은 학교 동기에게 전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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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어제,
오늘,
다가올 내일이 너무나 힘겨웠다.

더 이상 무언가를 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다니던 회사도 또 다시 그만두고
무기력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밀려드는 월세와 빚을 감당할 길이 없었고
삶에 대한 애착마저 오래전에 사라져 버렸다.

서울에 있는 여러 다리를 전전했다.
난 또 어디서 그런 쓰잘데기 없는 얘길 주워들은건지
기억나진 않지만 마포대교를 많이 찾는다고 했던
뭐 그런 이야길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삶의 미련을 남기지 않은 순간이었기에...
그 곳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3월의 새벽, 차디찬 새벽바람을 맞으며
난같 바깥으로 손에 힘만에 의지한 채 매달려 보았다.
과연, 명소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구나...
손을 놓는순간 저 시커먼 강물 속으로 사라질 터였다.
이제 전부 끝날것이다.
외로운 인생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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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굳게 앙다문 입술과 눈꺼풀은 심하게 떨렸고
난간을 비틀어 쥔 손아귀는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난 아직 미련이 남았던 걸까...

이대로 전부 끝낼수는 없었다
이렇게 끝나버리기엔 가슴에 맺힌 게 너무나 많았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생에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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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바리 싸들고 나왔다곤 표현했지만
얼마 되지도 않는 짐에다가 갈아입을 옷도 부족했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돈, 돈이 없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무전여행이었다.
목적지의 방향만 남해라는 것 말고는
정확한 행선지도, 길을 떠날 방법도 없었다.

어차피 죽을 몸이라면 진작에 죽었을테지,
그렇게 겁도 없이 머나면 여정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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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서쪽 해안길을 따라 남해 바다까지 이르는 길을
장장 2주에 걸쳐 하루도 빠짐없이 걸었다.
어떤날은 교회에 민박을 청하기도 했고
어떤날은 길바닥에서 자야했던 날도 있었다.
동틀 무렵엔 아침 햇볕을 이정표 삼았고
어두운 밤이면 밤하늘의 별빛을 벗 삼아 걸었다.
그렇게 시도때도 없이 멈추지 않고 걸었다.
죽기 위해 떠난 자살여행이거늘
넓고 광대한 자연속을 걸으니 마치
포레스트 검프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외롭고 고독한 마음속에 자그만
희망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기나긴 여정을 거쳐
마침내 어릴 적 고향이었던 삼천포에 도착했다.
어렴풋이나마 기억에 있는 집 근처의
작은 해수욕장을 찾아 거닐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새벽녘의 작은 바다,
파도는 잔잔하고 바람은 고요했다.
오랜시간동안 걷느라 걸레짝이 된 신발을 벗고
피투성이의 맨발을 바닷물에 담가 보았다.
바닷물에 소금기에 짜릿함이 밀려 올라왔다.
그리고 천천히 바닷물에 나의 몸을 뉘었다.
그렇게 한참을 차디찬 바닷물 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이대로 영원히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이곳에서마저 괴로움을 덜어내지 못한 자신에게
아쉬운 마음에 터져나왔던 작은 속내라고나 할까.

햇살이 모래사장을 전부 뒤덮을 때 쯤
나는 조용히 일어나 젖은 발로 걷기 시작했다.
해수욕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바로 이 근처에 나의 생모가 사는 집이 있었다.

넓은 마당과 담벽을 예쁘게 수놓은 꽃과 덩쿨 너머로
행복한 듯 웃는 그녀, 나의 생모의 모습이 보였지만
나는 초인종을 누르지 않았다.
차마 말을 건넬 자신이 없었다.

나는 멈췄던 걸음을 다시 걸었다.
강하고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힘 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전부 다 했다고 생각했었다.
죽기 전에 미련없이 전부 털어낸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 여행을 떠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겐 정말 아무런 미련이 없었을것이다.


그런데 자꾸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무엇이 그리도 눈시울을 자극하는 건지
소금기를 머금은 해풍도,
따가운 햇살도 비치지 않는 그런 날이었다.

도저히 알 도리가 없었다.
나는 왜 자꾸 눈물이 나는 지,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댓글 : 2 개
실화에요?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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