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념의 시간] 백만번 산 고양이2015.01.05 AM 04:02

게시물 주소 FONT글자 작게하기 글자 키우기




백만 년이나 죽지않은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백만 번이나 죽고 백만 번이나 살았던 것이죠.
정말 멋진 얼룩고양이였습니다.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를 귀여워했고,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가 죽었을 때 울었습니다.
고양이는 단 한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임금님의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임금님을 싫어했습니다.
임금님은 싸움솜씨가 뛰어나 늘 전쟁을 했습니다.
그래서 고양이를 멋진 바구니에 담아 전쟁터에 데리고 다녔습니다.
어느날 고양이는 날아온 화살에 맞아죽고 말았습니다.
임금님은 전쟁이 한창인데도 고양이를 껴안고 울었습니다.
임그님은 전쟁을 그만두고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성의 정원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뱃사공의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바다를 싫어했습니다.
뱃사공은 온세계의 바다와 온세계의 항구로 고양이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배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고양이는 헤엄칠 줄을 몰랐습니다.

뱃사공은 서둘러 그물로 건져 올렸지만 고양이는 바닷물에 푹 젖은 채 죽어 있었습니다.
뱃사공은 젖은 걸레 같은 고양이를 안고 소리내어 엉엉 울었습니다.
그리고, 먼 항구 마을의 공원 나무 밑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서커스단 마술사의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서커스 따위는 싫었습니다.
마술사는 날마다 고양이를 상자속에 집어 넣고 톱으로 쓱싹쓱싹 상자의 반을 잘랐습니다.
그러고도 까딱없는 고양이를 상자에서 꺼내어 박수 갈채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마술사는 실수로 고양이를 정말 반으로 쓱싹쓱싹 자르고 말았습니다.
마술사는 반으로 잘린 고양이를 두손에 들고 소리내어 엉엉 울었습니다.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습니다.
마술사는 서커스단의 천막 뒤쪽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도둑의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도둑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도둑은 고양이와 함께 어두컴컴한 동네를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 다녔습니다.
도둑은 개가 있는 집만 도둑질을 하러 들어갔습니다.

개가 고양이를 보고 짖는 동안에 도둑은 금고를 털었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개에게 물려죽고 말았습니다.
도둑은 훔친 다이아몬드와 고양이를 껴안고 소리내어 엉어 울면서 어두운 밤거리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좁다란 뜰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홀로 사는 할머니의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할머니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할머니는 매일 고양이를 껴안고 조그만 창문으로 바깥을 바라보았습니다.
고양이는 온종일 할머니의 무릎위에서 꼬박꼬박 졸았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고양이는 나이가 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쪼글쪼글한 할머니는 쪼글쪼글하게 죽은 고양이를 껴안고 하루 종일 울었습니다.
할머니는, 뜰의 나무 밑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어린 여자아이의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아이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여자아이는 고양이를 업기도 하고 꼭 껴안고 자기도 했습니다.
울 때는 고양이의 등에다 눈물을 닦았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여자 아이의 등에서 포대기 끈에 목이 졸려 죽고 말았습니다.
머리가 덜렁거리는 고양이를 안고 여자 아이는 온종일 울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를 뜰 나무 아래에다 묻었습니다.
고양이는 죽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누구의 고양이도 아니였습니다.
도둑고양이였던 것이죠.
고양이는 처음으로 자기만의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자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어쨌든 고양이는 멋진 얼룩 고양이였으므로, 멋진 얼룩무늬 도둑고양이가 되었습니다.






암코양이들은 모두들 그 고양이의 신부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커다란 생선을 선물하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먹음직스런 쥐를 갖다주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진귀한 개다래나무를 선물하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멋진 얼룩무늬를 핥아 주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말했습니다.
" 나는 백만번이나 죽어 봤다고 . 새삼스럽게 이런게 다 뭐야. "

고양이는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좋아했던 것이죠.






그런데 딱 한 마리, 고양이를 본척도 하지 않는 새하얗고 예쁜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 곁으로 다가가,

" 난 백만번이나 죽어봤다고! "
라고 말했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 그러니. "
라고만 대꾸 할 뿐이였습니다.

고양이는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안 그렇겠어요, 자기 자신을 가장 좋아했으니까요.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 너 아직 한번도 죽어 보지 못했지? "
하얀 고양이는
" 그래. "
라고만 대꾸할 뿐이였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하얀고양이 앞에서 빙글빙글빙글, 공중돌기를 세번하고서 말했습니다.
" 나, 서커스단에 있었던 적도 있다고. " 하얀 고양이는 "그래."
라고만 대꾸 할 뿐이였습니다.
" 난 백만 번이나......."
하고 말을 꺼냈다가 고양이는
"네 곁에 있어도 괜찮겠니? "
라고 하얀 고양이에게 물었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 으응."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 곁에 늘 붙어 있었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귀여운 아기 고양이를 많이 많이 낳았습니다.
고양이는 이제
" 난 백만 번이나......."
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와 아기 고양이들을 자기 자신보다 더 좋아할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아기 고양이들이 자라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 녀석들, 아주 훌륭한 도둑고양이가 되었군."
이라고 고양이는 만족스럽게 말했습니다.

"네에."
라고 하얀 고양이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야옹야옹 부드럽게 울었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조금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한층 부드럽게 울었습니다.
야옹야옹 울었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와 함께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하얀 고양이는 고양이 곁에서 조용히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고양이는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또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울었습니다.
아침이 또 밤이 되고 , 어느 날 낮에 고양이는 울음을 그쳤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 곁에서 조용히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그러고는-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습니다...
댓글 : 10 개
하얀 고양이 없이는 다시 태어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걸까요?
전에 어디선가 본 강연이 있는데 기억하기론
"무언갈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그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라고 했는데
아마도 그걸 알았기 때문 아닐까 합니다
카우보이 비밥에서 들은 이야기네요
네, 맞습니다
아.. 마지막 엄청 찡~ 하네요...
결국 사랑했던 고양이를 따라서 함께 묻혔구나...
그녀 없는 다음생은 삶이 삶같지 않을테니....
소중한 것에 대해 알았을 테니까요
일본 작가의 동화책으로 배웠는데 생각보다 의미 깊은 동화라 기억에 남네요
맞습니다. 동화책이에요
100만번의 죽음 보다 뜻깊은 한번의 죽음 인 걸까요?
설명은 못 하겠지만
이유는 충분히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친구글 비밀글 댓글 쓰기

user error : Error.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