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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카미 신지와 원작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비화2020.04.09 PM 04:20
바이오하자드는 인포그램즈의 걸작인 어둠속에 나홀로를 벤치마킹한 작품으로 시스템적으로는 차별화가 떨어지고 인터페이스와 조작방식이 불편한 게임이었는데 개발 중간 나온 체험판이 배포되었을 때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신통찮았고, 미카미를 비롯한 개발팀은 사내에서 빈축에 시달려야 했다.(심지어 미카미의 뒤를 지원하기 위해 프로듀서직을 맡은 오카모토 요시키도 이 작품의 성공에 비관적이었다.) 그리고 1996년 3월 22일 조용히 바이오하자드가 시중에 나왔다.
발매가 된 직후, 이 게임을 즐긴 소수의 유저들은 점차 이 게임에 푹 빠지게 되었다. 당시 어둠속에 나홀로가 콘솔로 이식되지 않아 이런류의 게임은 바이오하자드가 최초였고 당시 기술력 부족으로 만들어진 불편한 조작감은 의외의 공포감 상승의 요소가 되어 뜻하지 않게도 호평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후 입소문이 퍼지면서 결국 바이오하자드는 100만장이라는 의외로 엄청난 양의 판매를 이루어내며 경이로운 히트를 해내어 캡콤의 빚을 전부 갚아내면서 캡콤의 부도를 막게 된다. 이후, 서바이벌 호러라는 장르를 개척한 미카미 신지는 캡콤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더욱 더 개발에 박차를 가하였고, 미카미 신지는 카미야 히데키에게 디렉터를 넘겨주고, 자신은 프로듀서를 담당하게 된다. 그리고 1998년. 바이오하자드2도 이 순간만을 기다렸던 유저들을 열광시키는데 충분했다. 이 작품은 5 이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최다 판매를 이룩한 작품으로 일본에서만 200만장 이상을 팔아버리며 더블 밀리언 셀러라는 대흥행과 더불어서 명실상부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캡콤의 흥행카드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 이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계속 다른 콘솔로 이식하게 되는데 "바이오하자드를 플레이스테이션만이 아니라 다른 콘솔을 갖고 있는 분들도 즐기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라는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그는 바이오하자드에서만 끝내지 않고 바이오하자드의 시스템을 사용하긴 하지만 좀비가 아니라 공룡이 등장하는 디노 크라이시스를 제작하여 시장에 내놓게 되고, 역시나 이 게임도 호평을 받았다. 게임성이 우수하여 사람들은 하나같이 최고를 연발하여 이 작품도 흥행을 하게 되어 오카모토의 후계자 자리를 이을 개발자로 우뚝 서게 되어 록맨의 개발자인 이나후네 케이지와 함께 총괄 프로듀서의 자리를 경쟁하는 라이벌로 발전하게 된다. (미카미 신지 이야기)
바이오하자드2의 열기가 채 가시기 전에 캡콤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이오하자드3를 내놓게 되었고, 이번에도 미카미 신지는 카즈히로 아오야마에게 디렉터를 맡기고 자신은 또다시 프로듀서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3는 유저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장르에서 너무 벗어났다..., '나의 바하는 그렇지 않아!'라는 이유에서...팬들의 불만은 곳곳에서 속출하였고 결국 3는 바하의 명성과 안맞는 실적을 올렸다.
당시 미카미 신지는 게임 개발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서 프로듀서 직으로서 후배 개발자들을 지원하게 된다.
이때 캡콤의 많은 히트작이 나왔는데 바이오하자드4를 개발하던 중에 디렉터인 카미야 히데키의 게임의 노선변경 요청에 힘을 실어주어 서바이벌 호러가 아닌 스타일리쉬 액션인 데빌 메이 크라이가 나오게 되었고, 당시 성공 가능성을 점치기 어려웠던 타쿠미 슈의 게임기획에 힘을 실어주어 역전재판의 제작을 총괄 지휘하여 시장에 나오게 하여 발매후 큰 호평을 얻게 된다.
여기에 라이벌인 이나후네 케이지가 바이오하자드의 시스템을 담은 검무액션게임을 만들고 싶다며 허락을 구했을 때도 이를 흔쾌히 승낙하여 나온 게 바로 PS2 최초로 100만장을 팔아치운 귀무자다.
- 돌아온leejh
- 2020/04/09 PM 04:36
바이오하자드 초창기엔 1인칭 시점으로 만들었다가 다 엎고
3인칭으로 만들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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