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장열람] 삼국지 인물 열전 '하후돈(夏侯惇)' 2015.08.15 PM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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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면 인자한 행보관

하후돈(夏侯惇 )

생몰년도 (? ~ 220)

중국 후한말에서 삼국시대의 인물이자 삼국지의 등장인물. 조조의 최심복이자 사촌. 자는 원양(元讓). 전한의 공신 하후영의 후예이며 시호는 충후(忠侯).

패국 초현(?, 지금의 안휘성 부근) 출신. 14세에, 스승에게 배우다 다른 이가 스승을 모욕하자 하후돈이 죽여서 세상에 알려졌다. 조조가 처음 병사를 일으키자 하후돈은 늘 비장으로 종군했다. 태조가 분무장군이 되자 하후돈을 사마(司馬)로 임명, 따로 백마에 주둔시키고 다시 절충교위로 바꿔 동군태수를 맡겼다

진류(陳留), 제음(濟陰) 태수를 맡았고 군직도 두루 거쳤으며, 만년에는 대장군에까지 올랐다. 조조의 최측근으로서 권력의 정점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으며, 항상 베풀기를 좋아해 수중에 남는 재물이 있으면 다른 이에게 나눠줬으며 당시 흔했던 부정축재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군중에서도 스승을 모시고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람이 좋아서 조조군 내에선 부하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다. 능력은 나무랄데 없었지만 깐깐하고 엄격했던 장료나 전공 욕심이 강해 부하들을 험하게 부리곤 했던 서황의 수하들은 내심 하후돈 밑에 가기를 원했다고 한다.

명실상부 조조군의 2인자로 부하들을 인자하게 다스리고 정복한 임지를 진수하며 효과적인 군정을 베풀었기에 조조의 신임은 모든 장수 중에서 으뜸이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조조가 위나라를 개국한 후 신하들에게 위왕으로서 관직을 수여할 때, 자기 밑이 아닌 친구처럼 대하려고 (혹은 다른 신료와 아예 서열 자체를 다르게 해주려고) 위가 아닌 후한 조정의 관직을 내리려 했던 것이다. 한과 위는 형식상 황제국과 제후국 관계였기에 동급이라도 당연히 한의 관직이 위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후돈 본인이 끝까지 고집을 부려 위의 관직을 하사해야 했다. 이래저래 인격자.

《삼국지연의》에서는 끝판왕, 여포를 안드로메다로 보낼정도의 맹장이다. 한쪽 눈을 잃은 상태에서 안량과 문추를 베어죽이고 5관6참 하는 장면 마지막에 관우와 승부를 겨뤄 비긴다. 이정도 겨루는 상대라면 장비와 함께덤벼도 못이긴 여포와 서황, 방덕 등이 있겠지만 자세한건 뒤에서 설명. 한쪽 눈으로 겨뤘다면 차라리 적토마를 하후돈에게 주는게 맞지 않았을까.

조조가 죽고 조비가 즉위하자 대장군에 임명되었지만,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후사는 하후충이 계승했다. 황제가 하후돈의 공적을 생각하여 자손들을 모두 열후로 삼고자 하후돈의 식읍 1천 호를 나눠서 하후돈의 일곱 아들과 두 손자에게 하사하고 모두 관내후로 삼았다.

하후돈이 조조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관계로 게임이나 만화 등의 여러 매체에서는 조조의 절친한 친구로 나오며, 주로 조조를 아명인 '아만'이나 자인 '맹덕'으로 격의 없이 부르는 것으로 묘사되는 편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군에서도 손꼽히는 용장의 이미지로 나타나서, 늘 조조가 싸울 때는 최선봉에 나서며 오관참장 편에서는 천하의 관우와 대등하게 맞짱을 뜨는 모습도 보여준다. 결국 장료가 정리. 그 밖에 조조가 동탁에게 벗어날 때 서영을 베어 죽이며, 원술의 부장 교유를 찔러 죽인다. 서주에서 여포군의 맹장 고순과도 겨루다가 40합 만에 우세를 점했다가, 고순의 부장 조성(曹性)이 기습적으로 쏜 화살에 맞아 한쪽 눈을 잃는데 이때...

'이 눈은 아버지의 정(精)과 어머니의 피로 이루어진 것인데 어찌 함부로 다룰 수 있겠느냐'

라는 말과 함께 화살 꽂힌 눈을 화살째 뽑아서 씹어 삼키고는 조성을 베어 죽인다.

그러나 이 모든것은 연의의 허구로 정사에선 눈에 띄는 군사적인 업적이 거의 없다. 조조가 서주를 공격할때 연주에 남아 복양을 지키다가 여포에게 대패하여 복양을 빼았겼다. 이 때, 여포의 계략에 넘어가 포로가 되었다가 부장이었던 한호의 기지로 간신히 풀려났다. 이때 순욱, 정욱의 활약이 없었다면 조조는 연주의 여포와 서주의 도겸에게 둘러싸여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다만 조조가 서주를 치려는 것 자체가 무리수였고 여포의 뒤에는 연주내에 두터운 지지기반을 가진 장막이 있었기 때문에 하후돈이 아니라 다른 장수였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여포를 토벌할때는 유비를 도우러 갔다가 고순에게 패배했다. 조조가 형주로 눈을 돌릴 무렵에는 이전과 우금을 부장으로 딸려주며 신야의 유비를 공격하게 했지만 매복이 의심된다는 이전의 충고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공격하다가 복병에 걸려 패했다.

정사 삼국지에서는 기전체의 특성상 본인 전기에서는 어지간하면 안 좋은 이야기는 안 써놓고, 공적과 미담은 어떻게든 붙이려고 하는데 하후돈은 정말 군공이 너무 없기 때문에 눈물이 나온다. 그가 맡은 직책과 비중에 비해 지나치리만큼 공적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너무 두드러진다. 다만, 14세에 스승을 욕한 자를 때려죽이는 모습이나, 미미했던 초기 조조군에서 요직을 차지했던 것, 지기는 했어도 애꾸가 되기 전까지는 주요 전투에 참여를 했던 걸 보면 눈을 잃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용맹하지는 않았을까 추측할 수도 있다.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하후돈의 실제 군재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인물열전 하후무 참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답이 안 나온다. 조조도 장군으로서 실무를 맡기는건 자제하기 시작해서 복양 전투 무렵부터 본격적인 목민관의 길을 걷는다. 여포와의 싸움에서 군사가 부족해지자 모병에 힘쓰고, 고향에 큰 가뭄이 들었을 때 앞장서서 흙을 날라 저수지를 만드는 등 인자하고 솔선수범하는 목민관으로서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다스리던 영지에서 홍수가 났을때는 몸소 흙을 짊어지고 둑을 쌓았다는 일화도 있다.

이쪽 기록이 주목을 받게 되면서 DC 삼국지 갤러리에서 시작된 행보관이란 별명이 넷상에 널리 퍼지게 된다. 병사들에게 '어머니처럼 상냥하게 대해주는' 이미지나 여러 모습으로 보아할 때 사실은 행보관이 아니었을까 하는 농담이 나온 것.

한중에서 장로와 싸울 적에 길을 잃고 적진으로 가 버렸는데 당황하지 않고 적을 물리쳤다는 걸 보면 확실한 짬밥은 있던 모양이다. 창천항로나 삼국전투기가 이 에피소드를 넣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비의 부름을 받아 입궐하다가 하늘에 떠 있는 복황후의 유령을 보고 기절해 그 뒤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창작일 뿐이고, 실제로는 노환으로 죽었다. 사실 이 시대 기준으로 60살이면 상당한 고령자에 해당된다. 지금이야 의학이 고도로 발달했기 때문에 누구나 웬만하면 80살까지는 다 살기 때문에 이게 나이가 많은 건지 체감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그 시대에서는 고령인 나이임이 틀림없다.

그 밖에도 연의에서 파생된 일부 작품에서는 번성에서 촉군을 무리하게 공격하다가 촉군에게 발리고 죽는 듣보잡인 하후존의 역할을 떠맡고 그 장수 대신에 하후돈이 번성에서 죽는 굴욕을 겪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한결작의 곱빼기 만화 삼국지.

화려한 일세를 풍미하고 안락한 노후를 보내다 천수를 다했다는 점 때문인지 삼국전투기에서는 대부의 비토 콜레오네의 죽음 장면으로 패러디했다.

하후돈은 동료들보다 떨어지는 군사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중요한 직책을 맡았고, 야전에서 맹위를 떨친 쟁쟁한 장군들보다도 훨씬 고위층인 대장군의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임에도 이에 대한 별다른 설명이 없다. 이때문에 현대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정사 삼국지에서도 상당히 높은 평을 받는다. 무장으로서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인물이었지만 진수가 중시했던 인품과 학식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무장에게는 평가가 짠 진수로서는 이례적인 케이스. 그의 인품을 보여주는 일화로서, 허창에서 하후돈의 무덤이 발굴되었을 때 무덤 속의 그의 부장품이라고는 검 한자루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의 죽기 전 직책이 한나라의 최고직인 대장군이었음을 고려하면 실로 청렴한 무인이었음을 보여준다.
댓글 : 10 개
아무래도 배신과 암살이 밥먹듯 벌어지던 난세인지라, 조조 입장에선 믿고 의지할 죽마고우이자 피를 나눈 친족인 하후돈을 계속 곁에 두고 싶어 했을 겁니다.
여포나 관우 등 특급 장수들과 견줄 무력이 안되서 전면에 나서는건 조조가 허락하지 않았을 것 같고(혹시라도 싸우다 죽으면 조조도 큰 위기에 봉착하는거죠.), 아마 하후돈도 자기 실력을 잘 알기에 상대를 봐가며 나섰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지금의 자수성가 사업가들만 봐도 답이 나옵니다.
자신의 측근에 그냥 아무나 사업수완만 보고 곁에 두지 않습니다.
자신과 코드가 통하는 오랜 인연을 이어온 친구 수준의 동료를 곁에 두지요.
그리고 대개 사업가 성격이 독선적일수록 곁에 둔 동료는 성격이 모나지 않습니다.
어차피 서로 자기주장이 강해서 의견대립이 심하면 사업도 안되고, 의만 상하거든요. ㅎㅎㅎ
회사로 치면,
어차피 나는 사장님 측근이라 실적이 좋아도 나빠도 짤릴 리 없으니 니들이 나눠먹어라 그런건가.
  • rudin
  • 2015/08/15 PM 01:55
헐 삼국지에 깊이 있게 관심이 없다보니 처음 알게 된 사실이네요.
하후돈은 전공이 없음 ㅜㅜ 오죽하면 조조가 마련한 유비떡밥도 못먹음.. 아마 그게 박망파였나??
행보관니뮤ㅠ
하후돈니뮤ㅠ
행보관 ㅋ
하후돈 강한줄 알았더니
실제로 정사기준으로 보면 무장으로써의 능력은 비리비리했지만
목민관으로써 큰 활약을 보여준건 사실입니다.
조조가 하후돈을 신임한것도 단순히 동향친구라서만이 아니라
자기에게 부족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 능력으로 하북지방을 공고히 만들어 조조의 위나라 건국을 가능케 했던
진짜 1등공신이었기 때문이죠...

아마 게임이나 만화등의 원작이 되는 연의에서는 용장으로 그려지는이유는
하후돈의 외모때문일듯. 덩치도 굉장히 큰데다 애꾸눈의 험상궂은 인상이었으니..ㅎㅎ
하후돈 위 최고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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