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 [서평] 다니엘 켈만의『세계를 재다』- “재미없는 독일 문학에 결별을 선언한다!”2014.04.19 PM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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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E의 문학산책 -8-
다니엘 켈만의 『세계를 재다』

이번에 다룰 소설은 다니엘 켈만의『세계를 재다』입니다. 겉표지에 “재미없는 독일 문학에 결별을 선언한다!”고 되어있는데, 동의합니다. 읽는 동안 한 순간도 지루할 틈 없이 책장을 넘겼네요. 괴팍함을 양념으로 친 인물들의 성격 덕분에 엉뚱한 대화들이 재미를 더합니다. 게다가 훔볼트와 가우스라니! 18세기의 학자 판 어벤져스 인가요? 실제로 당대의 굵직굵직한 인사들이 짬짬이 나타나 흥미를 돋웁니다.

다니엘 켈만은 이야기의 완급조절이 뭔지 아는 작가입니다. 두 인물이 가진 심리의 기본이 될 어린 시절은 강렬한 에피소드 위주로 간략하게 지나갑니다. 이후 주인공들의 선택에 개연성을 부여하지요. 그리고 청년이 되기 전에 삶의 바꿀만한 사건을 한 방 터뜨려 주고, 본격적으로 인물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기서 본격적이란 말은 인물이 자주성을 가지고 스스로 사건을 만들어가는 때라는 말입니다. 진짜 이야기는 언제나 주인공이 직접 움직일 때 드러나는 법이거든요. 이렇게 청년 시절이 지나가고 지루한 몰락의 과정 중,(소설에서는 지루하지 않게 아예 뛰어넘어버립니다. 좋은 선택이죠.) 두 인물은 교차됩니다. 그리고 삶을 돌이키려 애쓰고, 절망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가 그들의 자리를 대체하지요. 이해하기 쉬운 정석적인 흐름이지만 맺고 끊음을 워낙 훌륭하게 해서 그 정석이야 말로 가장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네요.

뭐니뭐니해도 이 소설이 가진 최고의 장점은 훔볼트와 가우스라는 두 인물을 대조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점입니다. 훔볼트와 가우스에게는 여러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교묘하게 이야기 속에 녹아 들어있고 독자들로 하여금 두 사람의 관계를 읽어내도록 만들죠. 두 인물은 1828년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 자연과학자 회의에서 처음 만나고, 또 이후로 다시는 보지 못하지만, 그들이 보내는 삶의 과정은 비슷한 길을 걸어갑니다. 처음엔 누구보다 앞서서 걸었기에 주위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다가, 모두에게 이해받을 정도로 유명해진 뒤에는 세상에 뒤처지고 말죠. 그리고 그들의 말년 또한 비슷한 깨달음으로 마무리 됩니다. 세상 앞에 우뚝 서서 세계를 재던 두 명의 위대한 인물들은 결국 자신들이 한 명의 작은 인간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탁월하다고 느낀 부분은 바로 ‘고지’를 점령하고자 하는 두 인물의 모습입니다. 가우스는 우주에 대해 연구했고, 모든 별의 운동을 한 줄로 요약한 짧은 공식을 생각해 냈지만 자신이 그 공식을 발견하지 못할 것을 예견합니다. 자신이 사랑했고 자신을 이해해주던 아내를 잃고 나서요. 훔볼트 또한 침보라초 산을 등반하지만, 정상에 오르지 않고 도중에 그만둡니다. 목숨이 위태로웠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그 때까지 훔볼트의 그림자 신세였던 봉플랑의 의지가 더 강해보이는 대목입니다. 어쨌든 훔볼트는 그 시대의 사람들 중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사람이 되었지만, 에베레스트 산이 발견됨에 따라 그 마저도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두 인물 모두 가장 위대해 질 수 있는 순간에, 가장 커다란 위기에 당면하게 되고 결국 무릎 꿇고 맙니다. 이때부터 이들의 운명은 정해집니다. 몰락이 시작되죠.

이러한 부흥과 몰락의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도출해 낼 수 있습니다. 혹자는 18세기 계몽주의의 한계로도 읽고, 또 누군가는 서구문명에 대한 비판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아니면 인간 내면을 고찰하는 소설로도 읽히고요.

제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주제를 ‘앎’에서 ‘이해’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 달려왔던 주인공들이, 더 이상 알아내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고 나서야 ‘이해’를 깨닫는 장면은 안타까우면서도 감동적인 대목입니다. 그리고 요이겐이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앎의 시대에서 벗어나 이해의 시대로 나아가는 문을 활짝 열어놓습니다. (*)


원문 출처 : http://www.fountainwz.com/index.php?mid=board_sUJo24&document_srl=35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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