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 [서평] 선거는 민주적인가 - 버나드 마넹 2014.05.29 PM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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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의 민주주의는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등장한 이후로 대의제는 한 번도 심각하게 도전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국가나 독재자들도 명목상으로나마 선거를 합니다. 대의제는 너무나 당연시되다보니 아직까지도 대의제가 실제로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버나드 마넹은 대의제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원칙을 이야기합니다. 인상적이게도, 대의제는, 그리고 대의제의 근간이 되는 선거는 본질적인 의미에서 귀족적입니다.

정부 유형의 다양한 형태로 대의 민주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직접 민주주의가 있습니다. 정치적 개념에서 대의 민주주의는 대의정 또는 공화정이라 부르고, 직접 민주주의는 민주정이라 부릅니다. 직접 민주주의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대부분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떠올리게 되지만 아테네는 순수한 의미의 민주정은 아니었습니다. 아테네의 정치제도에서 인상적인 것은 추첨방식입니다. 제비뽑기로 행정관을 뽑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추첨은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시민들 가운데서 스스로 공직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자원하고, 그 중에서 추첨을 통해 행정관을 선출했습니다. 때문에 추첨제도의 문제점인 무능력하고 의지없는 사람이 랜덤하게 뽑힐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었습니다.



민주정의 기본적인 원칙은 민중이 통치자이자 피통치자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이 두 위치를 번갈아 가며 차지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정의 기본 원칙"인 자유가 취해야 할 두 가지 형태 가운데 하나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자유의 한 형태는 다스리고 또 다스림을 받는 것을 번갈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민주적 자유는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이면 자신이 차지할 그 자리에 오늘 앉아 있는 누군가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 p.46

아테네의 공직은 추첨만으로 결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아테네는 추첨과 선거를 병행했습니다. 최고 재정 담당, 최고 군사령관 등 중요직은 선거를 통해 선출했습니다. 추첨을 통해 선출되던 선거를 통해 선출되던 아테네의 행정관은 언제나 민회와 시민 법정의 감시를 받았고, 임기 중에도 직무 정지를 당할 수 있었습니다. 시민이면 누구나 행정관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제안할 수 있었고, 행정관이 만든 법안에 이의 신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재심사시 법안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되면, 법안을 만든 행정관이 모든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새로운 법안을 통해 대규모 공사를 남발하다가 세금에 막대한 손해를 입힌 국회의원이 있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법안을 통과시킨 국회의원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대의정부는 광대한 국가에서 시민들을 한 데 모으는 것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기술적인 필요로 만들어진 체제가 아니었습니다. 대의정과 민주정을 구분하는 가장 큰 기준은, 우리가 대표자를 선출할 때 선거를 할 것이냐, 추첨을 할 것이냐로 구분됩니다. 만약 대의정부의 필요성이 인구수로 결정된다면, 현재도 작은 마을이나 소규모 지자체는 대의정을 버릴 수 있습니다. 고대부터 근대의 민주주의자들은 추첨을 민주적인 것으로 보았고, 선거를 과두적이거나 귀족주의적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추첨을 정치적으로 사용한 것은 고대 그리스만이 아니었습니다. 추첨은 18세기만 해도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인민들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다.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거하는 기간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그들은 다시 노예가 되어 버리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사회계약론》

18세기의 엘리트들은 당시 등장했던 선거권의 확대 등 정치적 변혁기를 맞이해서 추첨방식과 선거방식에 대해 논의했고, 다수의 엘리트들은 근대의 정치는 오직 선거에 기초해야만 한다고 결정합니다. 대의 정부가 등장했을 무렵에 중요했던 정치적 평등은, 권력에의 동의에 대한 평등한 권리였지 관직을 가질 평등한 기회는 아니었습니다. 선거는 탁월성의 원칙을 지닙니다. 선거로 뽑고자 하는 시민의 대표는 자신을 선출한 사람보다 사회적으로 더 뛰어나야만 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탁월성은 인품일 수도 있고, 때론 능력일 수도 있지만, 언제나 가장 중요했던 것은 재력이었습니다. 돈이 많을수록 자신을 타인에게 더 홍보할 수 있고, 그것은 그 사람의 탁월성으로 연결됩니다.



메디슨은 공화정을 정의하는 특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우선 "나머지 사람들에 의해 선출된 소수의 시민에게 정부의 권력을 위임하는 것이다. 선택된 시민 집단이라는 매개를 거치면서 대중의 견해가 정제되고 확대되는 효과를 가진다. 그들의 지혜는 나라의 진정한 이익을 가장 잘 분별할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의 애국심과 정의에 대한 사랑은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나라의 진정한 이익을 희생시키지 않을 것이다. - p.150

문제는 후보자의 탁월성은, 실제 존재하는 탁월성이라기보단 인지된 탁월성이라는 것입니다. 후보자가 실제로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던 간에,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인지하느냐입니다. 선거는 학력시험처럼 능력 위주의 시험이 아닙니다. 또한 시민들이 어떤 후보의 공약을 보고 투표했다고 해서 그 공약이 지켜지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공약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며, 선거에 당선된 대표자를 절대적으로 구속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선거제도하에서 대표자는 인민과, 인민의 의지와 일치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선거는 본질적으로 불평등주의적이고 귀족주의적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시민이 선거권을 가지고 있고 모두가 합법적으로 공직에 진출할 자격이 있는 한, 선거가 평등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대의제는 불평등주의적이면서도 평등주의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고, 귀족주의적이면서도 민주주의적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의제는 의회 정치 구조에서 민중정당 시대를 넘어 청중 민주주의적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의 변화 속에서도 중요한 것은 대의제라는 큰 틀 안에서는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저자는 오늘날에는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대의제의 귀족주의적 측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귀족주의적 측면은 잘 인식되지 않고 잊혀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의제를 좀 더 민주주의적으로, 혹은 좀 더 귀족주의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적 요소를 원한다면 중요한 것은 여론의 자유와 토론입니다. 대의 체제에서 시민들이 공공 결정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회고적 의견을 바탕으로 투표해야만 합니다. 선거는 그 특성상 불가피하게 엘리트를 뽑습니다. 그러나 그 엘리트가 누구냐를 정하는 것은 평범한 시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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