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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수구파의 생얼] 인도 정경유착의 어제와 오늘 2015.06.11 PM 12:07
비를라 하우스에서 간디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는 G. D. 비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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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과 정치권의 결탁 사례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식민지 말기부터 독립 직후 시기에 재벌과 정치권의 관계는 노골화되었다. 독립 전에 구성된 국가계획위원회가 독립 후 인도계획경제의 밑그림을 제시하자 대자본가들은 자신들의 독자적인 안을 내놓았다.
이 모임 역시 타타와 비를라가 주도했다. 통칭 ‘봄베이 플랜[Bombay Plan: 혹은 타타 비를라플랜(Tata Birla Plan)]이라 불린 이 안은 사회주의적 요소를 억제하고 자본의 이익을 옹호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 정책에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
G. D. 비를라는 독립 이후부터 1950년대까지 정부의 여러 위원회에 소속되어 정치와 경제 분야 모두에서 활동했고 국민회의 정부는 인도 공산당으로부터 ‘비를라 정부’라 비판받았다.
독립 후 인도 경제는 기간산업을 대부분 국유화했다. 하지만 국영 기업이라고 해도 경영을 담당할 인력은 타타, 비를라 그리고 여타 재벌의 간부들로 상당수 충원되었다.
구체적 사례는 많다.
“존 마타이는 인도 정청 상무국 정보통계국 국장이기도 했는데, 이후에 타타 재벌의 간부가 된 인물이다. 그 후 1946년의 임시 정부에 들어가 단기간에 운수부 장관, 상공부 장관,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는데, 네루 총리와는 사이가 나빠 1950년에 정계를 은퇴하고 타타 재벌로 돌아오는 등 정부와 타타 재벌 사이를 왕래했다. 존 마타이 뿐만 아니라, 인도 최대의 인구수를 보유한 우타르 프라데사(Uttar Pradish) 주 최초의 주지사 호미 모디(Sir Homi Mody) 역시 타타 재벌의 간부였다.”
“재벌의 영향력이 약화되어감에 따라 그들은 정부에 헌납하는 액수를 늘려가며 관료 채용 등에서 정치력을 계속 유지하고자 했다…1967년 제4회 총선거에서는 타타 재벌과 비를라 재벌의 헌납금만으로 인도국민회의에 대한 기업 헌납금의 34%를 점했다. 또한 당시 비를라의 입김이 들어간 의원 수는 40명이었다고 하는데, 이는 곧 전체 의원 수 가운데 10%에 가까운 의원들이 비를라 제국의 일원이었음을 의미한다.”
인도 경제 체제를 국가자본주의라고 부르든 네루식으로 “사회주의 유형의 사회”라고 부르든 간에 실제로 인도에서 나타난 현상은 재벌과 국가는 서로의 이익을 충족시켜주는 관계를 맺게 되었다. 문제는 이 결합에서 얻어진 이익이 결코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분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독립 후 인도에서는 몇 번의 정치적 제스처를 제외하고는 불평등을 실질적으로 감소시키려는 노력도 거의 없었고 그마저도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부패의 또 다른 중요 원천이 바로 이 분배과정에 있다. 평등한 분배를 실현시키려는 국가적 시스템 자체가 아니라 개인의 이익을 위해 그 시스템을 왜곡시키는 힘을 제어하지 목하는 것이 문제다.
현재 인도의 집권연합인 UPA는 보통 사람을 위한 정책을 내세우며 보조금 지급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보조금의 15~30%가 횡령된다는 통계가 있지만 그것을 막을 뾰족한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 횡령된 돈이 가난한 이들이 아니라 인도의 지배층에게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이다.
재벌들이 정치와 국가 기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또 다른 방법은 엘리트 관료들을 자신들의 기업에 채용하는 것이다. 인도는 물론이고 모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관료, 자본이 같은 인력풀을 돌려가며 활용하는 행태는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재벌에 포섭된 관료집단이 주로 하는 역할은 단순한 이권개입은 물론이지만 더 중요하게는 정부정책의 좌경화 방지다.
“정부와 각 자문 기관에는 반드시 재벌 관계자가 있었다. ‘퇴관 관료의 재벌 고위직 임명’, ‘정부 인사에 대한 선거 자금 헌납’, ‘로비 활동’ 등으로 인해 사회주의적 정책은 정부에서 쉽게 배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일본의 인도경제 분석가 스가이 신이치의 말이다. 정경유착은 결국 좌경화 방지를 위한 재벌로서는 당연한 계급투쟁의 방식이다.
계획경제 시기의 이런 여러 커넥션을 통해서 인도 재벌은 현재 어떤 특혜를 누리게 되었을까? 수입대체산업화의 보호 조치 외에도 국가 경제의 핵심 부문을 위탁받고 납품권을 독점해 몸집을 키우고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지속될 수 있는 방전의 기초를 마련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도의 IT산업 발전은 인도 정부가 주도한 원자력 산업에 그 기초가 있다고 한다. 원자력 산업을 관장하는 위원회의 위원장도 재벌 출신이 맡았다. 또 엄청난 세금감면 혜택을 받았다. 설비투자 등의 명목으로 재벌들이 실제로 부담해야 하는 실효세율은 턱없이 낮게 유지되었다. 한국에서도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들이 연구개발, 설비투자 등의 명목으로 법정세율 절반 수준의 법인세만 내는 일과 비슷하다.
또 국가가 재정을 투입해 발전시킨 각종 사회기반 시설인 철도, 도로, 전기 등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재벌의 행태가 문제가 되자 인도 정부는 1960년에 마할라노비스위원회(Mahalanobis Committee: 소득 배분 및 생활수준에 관한 위원회)를 만들어 실태조사에 나섰는데 조사보고서는 “계획 경제가 그 의도와는 반대로 더욱 부의 집중을 가져왔다. 또 사업의 신규 참가와 규모 확대에 대한 인허가 제도는 기업이 더 유리하게 만들었다”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하지만 정부는 대책을 내놓지 않다가 1969년이 되어서야「독점및무역실행규칙(MRTP법: The Monopolies and Restrictive Trade Practice Act)」을 제정해 1970년부터 시행했다.
하지만 이런 재벌규제는 인디라 간디가 자신의 정치적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 기만적으로 시행한 좌선회 정책의 일환일 뿐이었고 재벌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1973년 이후에는 재벌규제는 다시 무력화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재벌 군기잡기에 나섰다가 슬그머니 물러서는 일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지 않은가?
인도에서 ‘재벌’, ‘정경유착’ 하면 ‘부패’가 빠질 수는 없다. 정부와 정치 체제는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억제와 균형 체계가 마련되어 있다. 부패가 그 틈을 뚫고 들어가 마비시키기는 하지만 그 체계가 작동함으로써 부패와 독직이 발각되는 경우가 만만치 않게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1989년 라지브 간디 정부가 스웨덴의 보포르사(社)로부터 엄청난 규모의 뇌물을 먹은 게 발각되어 정권이 야당에게 넘어간 사건이다. 그렇지만 재벌과 관련하여 벌어지는 부패 사건은 드러나는 법이 없다.
재벌의 부패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재벌이 부패된 정부와 정치인들과 협잡하는 것이다. 세금 포탈이나 이권 개입, 혹은 라이벌 기업에게 불이익을 주게 하는 것 등 주로 경제적 이익과 관련된 형태다. 이러한 부패는 대부분 언젠가 발각된다.
그렇지만 기업의 회계 부정이나 주작 조작과 같은 경우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한 부패는 자기 기업에 대한 투자자나 종업원 혹은 소비자의 돈을 갈취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부정부패는 정치권에만 있는 것이고, 기업인은 국민에게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주체라는 이미지를 널리 심는데 주력한다.
한국의 삼성그룹 이건희가 몇 년 전 정치가 4류라고 폄하한 것의 이면에는 바로 기업은 정치와 같이 더럽지 않고 성실하고 깨끗한 일을 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심기 위한 것이었다.
1991년 7월 인도정부가 발표한‘신경제 정책’은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시대로의 돌입과 함께 재벌집단에게도 새로운 경제 환경의 도래를 의미했다. 산업 인허가 규제의 폐지 및 완화, 독점규제법 완화, 외국인 투자 규제 완화, 관세 인하, 국공영 기업의 민영화, 재정 및 금융 시스템 개혁 등의 조치들은 새로운 재벌이 등장하게 해주었다.
특히 ICT분야와 인프라산업에서 새로운 재벌들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그동안 국가가 관리하던 인프라 산업을 전면적으로 시장에 개방하면서 기존재벌들과 신흥재벌들은 국가의 인프라 산업을 불하받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2년 국영 통신사 VSNL(Videsh Sanchar Nigam Limited)을 국제 전화 회선의 규제 완화 조치에 힘입어 타타 재벌이 인수한 것이다. 릴라이언스 그룹이 타타와 맞먹는 규모로 성장한 계기도 2002년 인도석유화학공사(Indian Petrchemicals Corporation Limited)를 정부로부터 인수받은 것이다.
인도정부와 재벌들은 공공인프라의 민영화를 통해 재정적자를 해소하고 효율성을 높인다는 뻔한 명분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 한국 경제부총리처럼 수익성이 있는 알짜 공공자산을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매각되는 국유자산에 대한 저평가가 이루어졌고 인수에 성공한 재벌들은 순식간에 몸집을 불릴 수 있었다.
해마다 세계 부자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인도의 슈퍼리치들은 대개 제철?에너지?통신?IT?부동산 부문과 관련을 맺고 있다. 현재 인도의 이 산업들은 과당경쟁, 회계부정에 2008년 경제 위기까지 겹쳐 몸살을 앓고 있다..
인도 재벌이 벌이는 행태는 우리나라의 막장드라마를 현실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비를라 가문의 상속을 둘러싸고 몇 년째 진행되고 있는 유서 위조 논란이나 릴라이언스 그룹 창업자 디루바이의 사망이후 장남 무케시와 차남 아닐 형제간의 진흙탕 싸움(그 결과 릴라이언스 그룹은 둘로 나누어졌다.)은 가십거리 수준이다.
릴라이언스 그룹은 그것 말고도 ‘외화로 발행된 전환사채의 자금 용도에 대한 부정 의혹’, ‘통신 사업자 면허료 회피를 위한 신고 누락 의혹’, ‘주가 조작 의혹’, ‘사업 인허가 입찰 시 수뢰 의혹’, ‘국영 통신사에 대한 부정 회선 접속’ 등 수많은 스캔들의 주인공이다.
인도 재벌의 과도한 소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신자유주의 이후 급성장한 재벌들의 사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개인 저택, 요트, 전용기에 한 번에 수천만 달러를 쓰는 일은 흔하다. 그러면서도 재벌들은 자신들의 소비를 통해 가난한 이들에게 기여하는 일종의 자선행위라고 강변하기도 한다.
재벌 관련 스캔들 가운데에서 압권은 2009년에 일어난 IT소프트웨어 업계 4위 기업이었던 사티암(Satyam)의 회계부정 사건이다. 수년 동안 설립자이자 사주인 라주(Ramalinga Raju)는 10억 달러가 넘는 규모의 회계부정을 저질렀다. 현금자산 536억 루피(12억 달러) 가운데 94% 정도가 허구였고 영업이익률을 8배나 부풀린 해도 있엇다.
인도 재벌의 이런 행태의 배경이 가족 중심의 소유와 경영, 금융이나 회계 관행의 후진성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인도 정부나 재계도 사티암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미국과 손잡고 금융과 회계 선진화에 나서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사티암의 회계부정이 M&A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회사를 팔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 그리고 미국에서도 엔론 사태를 비롯해 이런 류의 부정과 사기가 끊이지 않는다는 점을 보면 실질적이고 생산적인 경제활동이 아닌 금융적 투기에 의한 이익만을 추구하는 경제환경과 그것을 규제하지 않는 제도 자체가 문제라고 봐야할 것이다.
인도 재벌이 인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해서 고용창출이나 노동자들의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하는 것도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고 있고 비정규직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자 수련생이라는 편법을 사용해 여전히 고용과 임금의 차별을 받는 노동자를 채용하고 있고 아예 해외로 사업을 이전하기도 한다.
간디 정신의 계승을 내세우며 이미지를 유지하는 타타 그룹은 인도 내에서보다 오히려 영국에서 더 많은 신규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제 인도의 실질적 지배자인 재벌이 인도의 국민들의 편인 적은 별로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재벌을 해체하고 더 나아가서 자본주의 이전의 촌락공동체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지금 인도에서 영향력 있는 주장도, 해결책도 아닐 것이다.
독립시기의 간디주의 자본가처럼 이런 주장은 비현실적이어서 오히려 현실의 문제를 바로보지 못하게 만들 위험이 높다. 특정 가문의 소수가 독점한 그 많은 부를 인도 국민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 관심가지고 지켜보고 응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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