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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진설(真説) 야규 일족(柳生一族) #142017.02.25 PM 06:23
제 1 장 인닌(隠忍)의 일족 -야규 세키슈사이(柳生石舟斎)와 센고쿠(戦国)
◎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와 츠츠이 쥰케이(筒井順慶)
~ 앞서 이야기한 야규 세키슈사이(柳生石舟斎)의 독자적인 병법(兵法)은, 마흔다섯살에 야규 고(柳生郷)에서 은거하고난 뒤부터 연구해 오던 중에, 한층 더 갈고 닦아 탄생한 것이리라.
그런 세키슈사이가 예순여섯살 때,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를 알현하기 까지의 10여년 동안, 물론 그는 세상으로부터 몸을 숨기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병법 구도(兵法求道) 외길 인생으로 살아가기에는, 천하와 그가 사는 야마토노쿠니(大和国)의 변동이 현저했기 때문이다.
먼저, 특필해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야규에 숨어 산지 4년 째인 텐쇼(天正) 5년(1577) 늦가을 10월, 야규 일족이 수년에 걸쳐 귀속해 왔던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에게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기회를 엿보는 데에 뛰어난 히사히데였기에, 물론 그 나름의 승산이 있었던 반란이었다. 에치고(越後)의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판도를 엣츄(越中)와 노토(能登), 나아가 카가(加賀) 북반부까지 확대했으며, 카이(甲斐)의 타케다 카츠요리(武田勝頼)는 오다와라(小田原)의 호죠(北条) 씨와 동맹을 맺으면서 먼발치서 노부나가 포위망의 활동이 활발해졌다는 것. 또, 봉기를 일으킨 키슈(紀州)의 사이카슈(雑賀衆)가 노부나가의 공격 아래에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봉기했다는 것. 그러한 정세도 물론이거니와, 무엇보다도 이시야마 혼간지(石山本願寺) 공략이 쉽게 풀리지 않았던 것이, 마츠나가 히사히데에게 반란을 부추긴 원인이었다 생각한다.
하지만, 시기산 성(信貴山城)에서 농성하고 있던 히사히데와 히사미츠(久通) 부자는, 10월 10일에 노부나가의 적자인 노부타다(信忠)와 부장(部将)인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들의 군세에게 포위당했고, 다음날 새벽에 성에 불을 질러 자결했다.
여담이지만, 히사히데는 자결하기 직전에 자신이 비장(秘蔵)하고 있던「히라구모(平蛛)」라 명명한 차 솥을 깨트린 것을 상자에 담아 적장인 노부타다에게 선물했다 한다. 그것은 노부나가가 평소 갖고 싶어했음에도 헌상을 거부했던 명물(銘物)이었다. 노부나가에 대한 반의(叛意), 증오를 사후에도 보여주기 위해 그러한 짓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히라구모」라는 솥은 사실 가짜였다고『玉栄拾遺(교쿠에이슈이)』는 말하고 있다. 진짜 솥은, 히사히데와 단금지계(断金之契)를 맺었던 쇼긴안(松吟庵)이라는 다인(茶人)에게 이미 선물했다... 라는 것이 이 서적의 주장인데, 이 다인은 사실 세키슈사이의 동생인 시치로자에몬(七郎左衛門)이었다(일설에는 세키슈사이의 숙부라고도 한다). 진위여부는 확실하기 어렵지만, 이게 만약 사실이라면, 히사히데와 야규 가문의 깊은 관계를 추찰할 수 있는 일화일 것이다.
세키슈사이는 히사히데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억측을 하자면 끝이 없지만, 일찍이 주군이었던 히사히데가 멸망한 것은, 직접적으로 오다 정권에 편입되기에는 절호의 환경을 야마토에 가져다 준 것이다...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야규 고에 숨어서 근신하고 있긴했지만, 일찍이 히사히데의 휘하에 들어가 노부나가와 간접적으로 적대하고 있었을 자신에 대한 노부나가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시 세상에 나갈 좋은 기회의 도래를, 그는 어럼풋이 나마 느끼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 무렵, 이미 야마토는 오다 정권의「다이칸(代官)」이라는 지위로 츠츠이 쥰케이(筒井順慶)가 슈고(守護)로 보임되어 있었다. 일찍이「슈고」비슷한 입장에 놓여있었던 코후쿠지(興福寺)의 야마토, 야마시로(山城)의 사령(寺領)도 안도받았으며, 마츠나가 씨의 멸망 후, 완전히 노부나가의 영지화 된 야마토에는, 평화로운 세월이 흐르고 있었다.
[츠츠이 요슌보 쥰케이]
야규 세키슈사이는 그동안, 노부나가의 뜻에 따라 지배를 대행하고 있던 츠츠이 쥰케이와 필시 부즉불리(不即不離)의 관계에 있었음에 틀림 없다.
츠츠이 쥰케이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철저한 편의주의자(便宜主義者)이다.
야마토 토박이인 그는, 야마토노쿠니의 관리직의 정점이라는 지위에는 집착했지만, 키나이(畿内)의 패권 다툼에 참가할 야심은 털 끝 만큼도 없었다. 때문에, 그가 가진 특유의 감각으로 분석, 일단은 야마토의 실력자라 여긴 상대에게는 그의 장기말이 되어 충심을 다 해 모셨다. 그 전신(転身)의 묘미는, 그야말로 예측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마츠나가 히사히데도 비슷한 유형의「상황 판단(日和見)」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히사히데를 따르다 고배를 마신 세키슈사이로서는, 그런 이유로 쥰케이라는 인간과는 거리감을 두었을 것임에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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