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역] [번역] 시대극의 오류 찾기 #152017.07.17 PM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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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01장 -사람에 관한 거짓과 진실

 

 

◎ 에도 마치부교쇼(江戸町奉行所)의 관할은 에도 부(江戸府) 만이 아니었다

~ 히츠케토조쿠아라타메(火付盗賊改)가 온 일본을 돌아다녔다고는 말하긴 힘들겠지만, 상당한 범위에서 수색 활동을 했던 데에 반해, 에도 마치부교쇼(江戸町奉行所)는, 이른바「에도 하치햐쿠하치 쵸(江戸八百八町)」만이 관할 지역이었다고 오해하고 있는 사람을 볼 수 있다.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가 에도에 바쿠후(幕府)를 연 이래, 에도의 마을들은 확장을 계속했고, 나아가서는 세계 제일의 거대 도시로까지 부풀어 갔다.

 그러는 동안, 에도의 치안을 지키는 역할인 마치부교의 관할 지역은 애매해서, 이것이 확정된 것은 에도시대(江戸時代) 후반쯤 되는 분세이(文政) 원년(1818) 연말이 되어서였다.

 메츠케직(目付職)에 있었던 마키노 스케자에몬(牧野助左衛門)이 수사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에도 시역(市域)의 확정을 요구한「御府内外境筋之儀(고후나이가이케이스지노기)」라는 건의서를 제출해, 이를 받아들인 로츄(老中) 아베 츠시마노카미 마사키요(阿部津島守正清)가 바쿠후의 공식 견해로서『江戸朱引内図(에도슈비키나이즈)』를 공표했다.

 이로 인해, 에도 성(江戸城)을 중심으로 하는 슈비키센(朱引線)으로 둘러싸인 구역이... 이른바 오오에도(大江戸)로서 나타내고, 거기다가 그 내측에 마치부교쇼의 관할 지역이 스미비키센(墨引線)으로 표시되어 있다. 

 다만, 류센지(瀧泉寺: 메구로 후도) 일각만은 예외적으로 스미비키센이 슈비키센보다 바깥 쪽까지 쳐져 있다.

「에도고시키후도(江戸五色不動)」중 하나인 메구로 후도(目黒不動: 이 이외에 메지로 후도, 메아카 후도, 메아오 후도, 메기 후도)에는「에도의 산토미(三富)」라 일컬어진 토미쿠지(富籤: 이 이외에 유지마 텐만구우와 타니나카 칸노지)가 치러졌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쇄도하여, 마치부교쇼로서는 경내의 치안 유지에 힘쓸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스미비키센 내측 만이 마치부교쇼의 관할이라는 오해가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죠마치마와리도신(定町廻り同心) 등의 "세이후쿠구미(制服組)"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현대의 경찰 기구에서는 제복을 입은 순경과, 사복을 입은 형사 같은 식으로 말하고 있는데, 마치부교쇼에도 시후쿠구미(私服組)가 있었으며, 그것이 바로 온미츠마와리도신(隠密廻り同心)이다. 온미츠마와리는 마치부교 직속으로, 그러한 지시를 받아 에도 시중 뿐만 아니라, 임무의 내용에 따라서는 칸핫슈(関八州), 나아가서는 좀 더 먼 곳까지 부임했다. 

 온미츠마와리가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로는,「사자나미 덴베에 사건(さざ波伝兵衛事件)」이 있다. 덴베에는 리키시(力士) 같은 거한으로 70명이나 되는 수하를 거느리고 난동을 피우며 다녔는데, 기록에 남겨진 것 만으로도 열여덟번에 달하는 방화 강도 사건을 일으켰다. 

 여기에 화가 치민 오오오카 에치젠노카미 타다스케(大岡越前守忠相)가 온미츠마와리에게 덴베에 포박을 엄명, 온미츠마와리는 아사쿠사 단자에몬(浅草弾左衛門)... 즉, 야노 단자에몬(矢野弾左衛門)에게 조사 협력을 요청, 단자에몬은 여기에 응해 전국에 덴베에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한 수색망을 펼쳤다.

 단자에몬은 5만 석의 다이묘급 정도라 일컬어진 재력을 가졌던지라, 그의 휘하에는 가죽 가공업자나 등심(燈芯) 제조판매업자, 대나무 세공 제조판매업자, 또, 사루마와시(猿回し: 원숭이를 훈련시켜 재주를 부리게 하여 돈을 버는 자), 만담, 곡예 등의 거리 예술가를 다수 포섭하고 있어, 정보 수집 네트워크가 상당했다. 

 덴베에는 얼마지 않아 이 정보망에 걸려 오다와라(小田原)에서 발견되었다. 덴베에는 토카이도(東海道)를 따라 서쪽으로 달아났지만, 후지카와(富士川)에서 쫓겨다니다 온미츠마와리와 협력자 및 20명에 의해 포박되어 에도로 호송되었다. 오오오카 에치젠노카미의 취조를 받고 스즈가모리(鈴ヶ森)에서 처형당하는 말로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鬼平犯科帳(오니헤이한카쵸)』에서 이 사건은 하세가와 헤이조(長谷川平蔵)가 해결한 사건으로 되어 있다.

 온미츠마와리 이외에 먼 곳까지 출장을 가는 사례가 있었던 것은 켄시요리키(検使与力)이다. 켄시요리키라는 것은 변사체 등의 검시(検視: 検死라던가 検屍라 쓰는 사람이 프로작가들 중에서 있긴 한데, 이는 터무니 없는 착각이다)를 행하는 전문관이다.

 에도시대에는『無寃録述(무엔로쿠쥬츠)』라는 검시의 안내서가 있었다. 이는 과거 중국(中国) 원조(元朝) 시대에 왕여(王與)에 의해 편찬된『無寃録(무원록)』을 저본(底本)으로 삼고있다(조선 세종 때에『신주무원록』이라는 제목으로 최치운 등이 번역했다. 현재 규장각에 소장: 역자주).

『무원록』은 명조(明朝)가 되어서야 조선(朝鮮)을 거쳐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에 일본에 전해졌는데, 이것을 겐분(元文) 원년(1736)에 카와이 나오히사(河合尚久)가 번역하면서 일본 최초의 법의학서가 되었다.

 켄시요리키는, 이『무엔로쿠쥬츠』를 지침서 삼아 검시를 했는데, 요리키 이외의 아마추어는 이 지침서를 읽어 보는 정도로는 정확한 검시를 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요 인물의 변사체가 나와서 어떤식으로든 사인(死因)을 밝힐 필요가 있는 사례일 경우, 전국 각지에서 일부러 에도 마치부교쇼까지 켄시요리키 출장을 요청하는 일이 허다했다.  

 먼 곳까지 출장을 가야할 경우 경비도 상당하게 들기 때문에, 로츄(老中)의 결제를 받지 못하면 출장을 갈 수 없는데, 기록에 남겨진 가장 먼 출장지는, 독도 문제(원문은 竹島問題. 궁핍해진 가문을 되살리기 위해 밀무역을 꾀하다 발각된 사건)에 얽혀 자살한 하마다 마츠다이라(浜田松平) 가문의 가로(家老)인 오카다 타노모 모토요시(岡田頼母元善)의 사체 분석을 위해, 오늘날의 시마네 현(島根県) 서부에 있는 하마다(浜田)까지 출장 간 것이다. 

 이 출장에는 2개월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했는데, 검시에 걸린 시간은 검분서(検分書) 작성까지 포함시켜도 단 3일이라, 태반이 왕복하는 데에 걸린 시간이다.

 그 외에 유명한 것으로는「반샤의 옥(蛮社の獄)」으로 사로잡혀 자살한 와타나베 카잔(渡辺崋山)의 출장 검시가 있다.

 장소는 현재의 아이치 현(愛知県) 타하라 시(田原市)로, 켄시요리키는 10월 6일에 에도를 출발해, 강에서 발이 묶이는 등... 여러가지로 걸림돌이 많아서 11월 4일에 도착. 단 하루만에 검시를 끝내고, 6일에 타하라를 출발해 11월 14일에 에도로 돌아왔다.

 엄청나게 바쁜 임무였다. 

 

댓글 : 2 개
번역 감사합니다~!
새로운 책을 번역하셨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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