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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번역] 시대극의 오류 찾기 #242017.08.14 PM 12:36
제 02장 -사물에 관한 거짓과 진실
◎ 일본도(日本刀)는 어째서 양손으로 쥐는가?
~ 일본도(日本刀)는 츠카(柄: 자루)를 양손으로 쥐고 쓰는 게 특징인데, 이는 세상의 도검술(刀剣術) 중에서도 꽤 진귀한 케이스인 듯 하다.
미국에서 살면서 동남 아시아 무술도 배운 적 있는 일본인으로부터,「일본의 검술은 어째서 방패를 사용하지 않나요? 그래서야 방어를 할 수 없잖아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확실히... 중국이나 다른 아시아의 전통 무술에서도 도검은 한 손으로 쥐며, 다른 손에는 방패나 또 다른 검을 쥐는 게 일반적이다.
서양 검술에도 롱 소드(long sword) 같은 거대한 검 이외에는 한 손으로 검을 쥐며, 남은 한 손에는 방패를 쥐는 게 당연한 듯 하다.
즉, 도검은 한 손으로 쥐는 게 세계 무술의 지론(theory)일 것이다. 하지만, 롱 소드 같은 예외는 있다.
어쩌면 이 롱 소드의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중국에도 쌍수검(双手剣)이라 불리우는 길고 무거운 검을 두 손으로 쥐고 쓰는 검술 있다.
일본의 카게류(陰流)의 영향을 받았다는 묘도술(苗刀術)이라는 이름의 중국 도술(刀術)도 예외적으로 양손을 쓴다.
이러한 예외에서 공통되는 것은,「길고 무거운 도검을 쓰는 기술이다」라는 점이다. 요컨데,「한 손으로 쥐기에는 지나치게 무겁기 때문에 두 손으로 쥘 뿐」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인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도는 어째서 두 손으로 츠카를 쥐고 쓰는 게 기본인걸까?
정설(定説)은 아니지만, 최근들어 가설(仮説)로 지적되고 있는 게,「일본도를 두 손으로 쥐게 된 이유는,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에 등장한 오오다치(大太刀), 노다치(: 야전용 타치)가 유행하면서 부터가 아닐까?」이다.
헤이안시대(平安時代)에서 카마쿠라시대(鎌倉時代)에 걸쳐서 사용된 일본도는 가늘고 가벼워 마상에서도 휘두르는 식으로 한 손으로 쓰는 타치가 주류였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된다.
그 증거 중 하나로, 츠카가 깊게 곡선(curve)을 그리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곡선을 그리고 있는 개소(箇所)가 미끄러짐 방지 처리가 되어 있어서 한 손으로 쥐기 쉽게 만들어져 있다.
헤이안시대 이전의 도검은 중국이나 한반도로부터 전래 된 그대로인 직검(直剣)이나, 한 쪽 날을 지닌 직도(直刀)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이 도검들은 길이도 짧아서 확실히 한 손으로 쓰는 타입이었다.
이것이 훗날의 일본도의 형태로 변해 간 것은, 토호쿠(東北)의 와라비테도(蕨手刀)의 영향을 받았다 여겨지고 있으며, 케누키가타타치(毛抜形太刀: 모발형 태도)라는 츠카까지 도신(刀身)과 일체화시켜 만든 타치를 거쳐, 도신이나 츠카(나카고)에도 곡선이 들어간 일본도의 형태가 탄생한다.
[와라비테도에서 케누키가타다치로의 변천 과정. 위에서 부터 차례대로 와라비테도, 케누키가다와라비테도, 케누키가타가타나, 케누키가타타치]
하지만, 이러한 타치는 사실 전장의 주무기가 아니었다.
가장 우선시 되는 무기는 활, 그 다음이 야리(槍: 창)나 나기나타(薙刀)가 사용되었으며, 그러한 주무기가 싸우다가 부러지면서 사용하기 힘들어질 때에 부차적인 무기로서 타치를 사용했던 듯 하다.
여기서 주목해 두고 싶은 것은, 활, 야리, 나기나타는 모두 두 손으로 다루는 무기다... 라는 점이다.
오오다치나 노다치가 탄생한 것은, 활이나 야리, 나기나타를 몇자루씩이나 떠안고 전장으로 가는 게 힘들었기 때문에, 하나의 무기로 모든 상황을 마무리하려 했기 때문이라 여기고 있다.
타치의 길이를 극단적으로 늘려서 야리나 나기나타에 대항할 수 있을 법한 무기로서, 도신이 3척(약 90cm) 이상인 이형(異様)을 띈 카타나가 탄생한다.
게중에는, 도신의 길이가 2m, 츠카의 길이도 비슷해서 전체 길이가 4m를 넘어가는 이상할 정도로 거대한 오오다치까지 있었던 듯 하다.
당연히 이런 카타나는 중량도 적게는 수킬로그램에서 10 킬로그램을 넘었기 때문에, 한 손으로 휘두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때부터, 장대한 크기의 타치를 두 손으로 쥐고 사용하는 관습이 생겼으며, 나중에 가서까지 정착된 게 아닐까 하고 여겨진다.
[센고쿠시대의 대표적인 전투인 아네가와 전투 묘사도에서 발췌한 노타치를 휘두르는 기마무사의 모습]
오오다치를 사용한 유명한 검호(剣豪)로 사사키 코지로(佐々木小次郎)가 있긴 하지만, 사실 검술이나 이아이쥬츠(居合術: 발도술)에는 오오다치를 사용하는 기술을 전하는 유파도 많아서 이아이쥬츠의 개조(開祖)라 전해지는 하야시자키 칸스케(林崎勘助)도 도신 길이 3척 5촌(약 1m)이나 되는 오오다치를 재빨리 뽑는 기술을 연구해서 이아이쥬츠를 전했다고 일컬어진다.
무엇보다 이런 길고 큰 타치는 사용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후세에 카스리아게(擦り上げ)라 일컬어지는 가공을 가한 짧고 곧게 만든 카타나가 다수 현손하고 있다.
일본도의 신이라 일컬어지는 마사무네(正宗)의 카타나는 명문(銘)이 들어간 게 거의 없는데, 이는 오오다치를 카스리아게 방식으로 나카고(茎: 슴베)를 잘라내었기 때문에 나카고에 새긴 명문이 사라졌다고 보는 설도 있다.
이러한 오오다치의 유행에 의해서 두 손으로 쥐는 도법(刀法)이 일반화하였고, 그 흔적으로 인해서 카타나가 짧아진 뒤에도 두 손으로 쥐게 된 게 아닐까 하고 생각된다. 덧붙여, 에도시대(江戸時代)에는 날 길이가 2척 3촌(약 70cm)이 표준 길이였다.
기술적으로도 일본도의 형상을 구사하여 공격과 방어를 겸한 기술이 연구되었기 때문에, 방패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로는, 일본도의 중량과 크기에 있었다고 생각했으며, 실제로 길이가 짧은 와키자시(脇差: 표준 도신은 1척 5촌 = 약 45cm)는 한 손으로 다루는 게 기본이다.
물론, 대소 두 자루를 사용한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의 니텐이치류(二天一流) 같은 유파도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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