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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번역] 시대극의 오류 찾기 #432017.09.17 PM 11:30
제 03장 -말(言葉)에 관한 거짓과 진실
◎ 에도시대(江戸時代)에「닷판(脱藩)」이라는 말은 없었다
~「닷판(脱藩)」이라는 말로 가장 유명한 것은「토쿠가와 닷판 가신단(徳川脱藩家臣団)」일 것이다.
이는 보신 전쟁(戊辰戦争)에서 패배해 에조치(蝦夷地: 현재의 홋카이도)로 달아난, 에노모토 타케아키(榎本武揚)를 필두로 하는 토쿠가와(徳川) 가문의 옛 가신단이 에조 공화국(蝦夷共和国)을 건국하여 일본 본토로부터의 독립을 하고자 도모, 영국이나 프랑스의 공사(公使)에게 성명서를 보냈을 때에 말미에 붙인 서명이다.
[홋카이도 땅에 에조 공화국이라는 괴뢰국을 건국한 에노모토 타케아키. 덧붙이자면, 에조 공화국은 건국된지 6개월만에 폐망했다]
그런데, 이 성명서는 외국어에 능통했던 에노모토 타케아키답게 프랑스어로 쓰여져 있어, 서명은『Les Kerais exiles de Tokugawa』이다.「한(藩)」이라는 단어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Les는 영어의 The에 해당하는 정관사(定冠詞), Kerais는「家来(가신을 의미한다)」를 그대로 로마자로 표기했고, Tokugawa는「徳川」이고, de는 영어의 of에 해당하는 전치사(前置詞). 로, 문제는 exiles를 무엇으로 번역해야 할까... 인데, 이 단어는 영불 공통으로「망명(亡命)」을 의미한다.
즉,『Les Kerais exiles de Tokugawa』는「토쿠가와 망명 가신단」이라 해석해야 옳다.
깊은 검증도 이뤄지지 않은 채로, 인용되고 재인용되어「토쿠가와 닷판 가신단」이라는 오역(誤訳)이 정착해 있는 현상황은 실로 한탄스럽다.
원래「한」은, 제 6대 쇼군(将軍)인 토쿠가와 이에노부(徳川家宣)의 시강(侍講)으로서 막정(幕政)을 실질적으로 주도하여「쇼토쿠의 치세(正徳の治)」라 불리운 한 시대를 가져다 준 데에 일익을 담당한,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의『한칸후(藩翰譜)』(1702년에 완성)이 첫 출전이다.
이는, 츠나토요(綱豊) 시절의 이에노부로부터 지시되어 편찬된 여러 다이묘(大名) 337개 가문의 유래와 사적을 수록하고 족보(系図)를 덧붙인 것으로, 그 이전에는「한」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고대 중국의 제후들의 영지를 가르키는 말이기 때문에, 유학적인 개념으로는 있었지만).
따라서, 겐로쿠(元禄) 15년(1703)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속에「한」이라는 말이 나온다면, 이는 모두 잘 못 된 것이다.
그 이후라면 항상 잘못되었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한」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게 된 것은 폐번치현(廃藩置県)이 처음으로, 이는 즉,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의 일이다.
메이지 신정부는 토쿠가와 가문과 싸웠던 보신 전쟁에서 쓴 군비로 격심한 궁핍상태에 내몰려, 어떻게 해서든「메이지 신정부 쪽의 치세가 토쿠가와 바쿠후 시대보다 훨씬 좋다」라며 서민들에게 생각케 하기 위해서 코토바가리(言葉狩り: 말 사냥)를 포함한 세뇌교육을 철저하게 행했다.
「고료(御料: 바쿠후 직할령)」를「텐료(天領)」로 바꾸고,「다이묘료(大名領)」를「한(藩)」이라는 말로 바꾸고,「가신, 가래(家来)」를「한시(藩士)」로 바꾸고,「가쿠몬죠(学問所)」를「한코(藩校)」라는 말로 바꿨다.
다이묘는「코쿠슈(国主), 료슈(領主)」가 일반적이었던 것을「한슈(藩主)」라는 말로 대체했다.「쵸닌(町人)」도「쵸민(町民)」으로 바꾸는 사소한 것까지 철저하게, 나아가서 계급제도로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단순한 직종개념을, 너무나도 봉건적이고, 딱딱하고 경직된 신분제도였던 것 처럼 호도하는 고식한 공작까지 치러졌다.
막말(幕末)이 무대인 시대극에서「본인은 XX에서 닷판한 ㅁㅁ이올시다」라는 등... 로닌(浪人)이 자기 소개를 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애당초「닷판」이라는 말은 메이지시대가 될 때까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와서는 안 된다. 에도시대에는 이럴 때 뭐라 말했는가 하면, 치쿠덴(逐電), 슛폰(出奔), 카케오치(欠落), 쵸산(逃散)이라 했다.
메이지 정부는 메이지(明治) 4년(1871) 여름에 토쿠가와 시대의 쇼헤이자카 가쿠몬죠(昌平坂学問所)의 옛터에 창설한 문부성(文部省)을 중심으로, 철저한 코토바가리를 속행했다. 현대의 역사용어는, 태반이 이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이 말은 토쿠가와 시대부터 계속 사용되고 있다」라며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있는 상황이라, 메이지 정부의 목표는 감쪽같이 성공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센고쿠시대(戦国時代)」「카마쿠라시대(鎌倉時代)」「헤이안시대(平安時代)」 같은 말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역사 구별에 대한 정의는, 메이지 20년(1887) 이후에 확립된 역사용어이기 때문에, 에도시대 사람이 옛날에 일어난 일을 인용하기 위해「카마쿠라시대에는...」이라던가「센고쿠시대에는...」 같은 대사로 말한다면 이는 잘 못 된 것이며, 작가가 메이지시대 교육의 주박(呪縛)으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 했다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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