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유열의 기본2015.07.12 AM 07:19

게시물 주소 FONT글자 작게하기 글자 키우기

Fate/Zero 를 보면 젊은시절의 키레와 그의 둘없는 파트너 금삐까가 서로 알콩달콩 하면서 유열을 즐기는 부분이 나오는데, 나는 그곳에서 우로부치의 필력을 가장 강하게 느꼈다.

유열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키레와 금삐까 커플씬이 나오기보다 전에 위치한 에피소드, 질 드레와 류노스케 팀의 첫 만남에 대한 에피소드에서, 질드레가 잡혀있던 아이를 풀어서 도망가게 해주는척 하면서 도망가는 도중의 아이를 마수로 참살해버리는 에피소드가 있음을 기억하자. 그곳에서 질 드레는 말하길 "공포에는 신선도라는게 있습니다." 라고 한다. 이미 죽을 것을 알고, 그것을 받아들이기 직전의 공포로는 광인의 미학에 어긋난다는 것이 바로 질 드레의 말이었다(그 말 뒤에 바로 류노스케가 "형씨 엄청 쿨 하네!" 라고 하면서 찬사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것은 우로부치가 적는 작품들의 인물들의 절망의 과정과 상당히 연관이 있는데,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비록 질 드레와 같은 광인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상황에 배신당하는' 것을 즐긴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로부치는 이 상황이 인물을 배신하는 것을 즐겨 사용하며, 이것을 Fate/Zero 에서는 유열의 한 요소로 사용하고 있다.

이제 키레와 금삐까의 유열 즐기기 에피소드로 가서 생각해보면, 위의 상황이 배신하는 구도가 그대로 들어맞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상황의 피해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우리의 애증어린 카리야 아저씨고, 그것을 극대화 시키기 위한 장치는 도짓코 토키오미와 아무것도 모르고 반쯤 죽은 아오이다. 키레는 유열극이 준비된 장소인 성당의 윗쪽에서 카리야가 토키오미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음을 알게되고, 아오이가 들어와서 상황을 착각하는 비극을 겪고, 마지막엔 카리야 자신이 가장 사모했던 아오이를 목졸라 반쯤 죽여버린다. 상황이 배신한 것은 같으나, 이곳에서는 질 드레의 미학을 설명하기 위한 학살과는 명확히 다른 점이 있다. 카리야는 분명한 피해자지만, 표면상으로는 가해자이기도 하며, 자신이 그곳으로 가고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으로 갈 수 밖에 없는, '비극'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비극적으로 미쳐가는 과정 자체가 바로 키레와 금삐까의 유열이며, 카리야가 아오이를 목조르고 난 뒤에 반쯤 놔버린 정신으로 교회바깥으로 도망갈 때는 이미 키레와 금삐까는 이미 카리야에게 흥미를 잃고서 자기들 사이에서의 이야기를 하면서 유열의 정도가 어떻다 하면서 평가한다. "술의 맛이 이렇게 좋았던가" 라고 하면서 자신이 제작한 유열극에 자화자찬하는 키레를 보고 있으면 그들이 얼마나 이 유열극을 즐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광인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는 연기자는 드물고, 그만큼 귀중하다. 그러나 광인이 되어버린 연기자는 별 가치가 없다. 관객이 원하는 것은 언제나 광인의 문턱에 발을 집어넣고서 그곳의 광기를 훌륭하게 전달하는 비극의 화신이다. Fate/Zero 의 유열을 즐기는 키레와 금삐까는 이 연기자를 일회용으로 사용해서 광인이 되어버리면 버려버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비극, 혹은 관객의 입장에서는 유열극일 연극의 훌륭한 프로듀서다. 우로부치는 자기 자신의 명백한 일부를 이 잔악한 미치광이들 둘과 질 드레에게 투영시켰고, 그건 꽤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로부치의 각본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상황에 배신당하고, 결과적으로 비극적으로 미쳐가거나 혹은 신선한 공포와 함께 참살당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 관객에게 있어서, 최고의 유열이다.
댓글 : 1 개
와 좋은 글입니다. 비슷한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풀어서 설명해 주시니 제대로 와닿네요...
친구글 비밀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