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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일본사 박식하신 분들께 질문.(명치유신. 일본의 근대화)2012.01.02 PM 09:06
메인에 바람의 검심 관련 글 보고 쓰는 질문입니다.
바람의 검심은 19세기 중~말 중세 -> 근대로 넘어가는 시대를 배경으로한 작품이죠.
어렸을 땐 '우왕ㅋ 히무라 존나멋짐 굳ㅋ'하면서 좋아라하면서 봤는데 지금 와서 보면 의문점이 한가지 남습니다.
제가 세계사(&일본사)를 배우질 않아서 전혀 모르는데 바람의 검심 내용과 메인에 나와있던 분석 글을 보면
19세기 중~말까지의 조선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거의 막장 오브 막장 상황으로 생각되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수년 만에 서양세력이 자기네들한테 했던 것과 똑같이 우리한테 강화도에 그런 굴욕을 주고 그 이후엔 식민지화.
그리곤 제국 주의 열강의 한축.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위협한 전범국까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본이 명치 유신을 함으로써 근대화에 성공했다는 것은 알겠지만 어떻게 왜 그렇게 극도의 단기간 내에 성공을 이루었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모르다기 보다 분합니다. 불과 몇년 몇십년 전만해도 우리랑 똑같은, 혹은 우리보다도 더 미개하게 칼들고 끼리끼리 편먹고 권력잡겠다고 서로 살육을 하던 놈들이었는데.... 양놈들은 그래도 산업혁명이다 공화정이다 천부인권이다 뭐다 시1발 지구는 도는게 맞았다 뭐다 뭐시깽이 뭐다하면서 그래도 수세기에 걸쳐 제국주의세력으로 성장했잖습니까.)
우리는 세도세력의 방해(중앙 정부). 청의 간섭(외세의 간섭). 일반 백성들의 반외세 감정(일반 민중)으로 실패했습니다.(정확히 말하면 근대화가 이루어져야 할 시기에 이루어지지 못했다....겠지요.)
일본도 똑같이 막부의 방해(중앙 정부), 흑선의 개항 요구(서양 제국주의 열강), 일반 민중들의 반외세 감정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졌었고, 심지어 일본은 우리보다 더하게 ~번하면서 지방 세력들이 갈기갈기 찢겨 직접 총칼을 맞대고 피 흘리며 싸워대는 내란 상황이기까지 했었는데 어찌 성공을 한 것이고, 어떻게 치트키 쓴거마냥 단기간 만에 된건지 모르겠습니다.
제 아무리 개혁가(유신지사)들이 중앙 권력을 잡아 개혁을 실시한다해도 말로 외쳤다고 없었던 제도, 기술, 계몽, 간접시설, 무기 등. 그리고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들이 툭 튀어나오진 않을테고,(어디선가 요 때 당시 국민소득인지 삶의 질 순위인지가 근대화된 일본보다도 우리나라가 더 높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본이었는데....)
거기다가 비용이 있다한들 이런게 이루어지기까진 최소 반세기에서 한세기는 필요할텐데, 이걸 어떻게 수년에서 수십년만에 이루어냈으며,
(우리의 갑오개혁, 광무개혁 등은 사실상 실패잖습니까. 현대로 와서 하향식 (이젠 용어가 바뀌어 개혁이 아닌)개발인 군사독재시절 n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새마을 운동도 당시 노동자들을 억압하며 최대한 빨아냈음에도 그 실질적 혜택은 수십년 후인 80년대 이 후의 세대들이 받았고.....)
또, 일본이 우리한테 끈질기게 간섭했던 것처럼(결국엔 성공을 했죠.) 서양 열강들이 똑같이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 굉장한 견제를 했을텐데 이 것을 어떻게 이겨냈으며,
일반 민중들의 반외세 감정 또한 대단했을 것이었을텐데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점들을 어떻게 이겨내고 그런 단기간에 성공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댓글 : 8 개
- 고생끝에 아이돌덕후
- 2012/01/02 PM 09:19
잘은 모르지만.. 정말 일부만 알고 있습니다만... 일본도 찬반으로 싸웠고 그때 신선조가 유명했죠 그후에 3명? 바람의 검심에도 과거에서 나오는 코고로? 암튼 그 사람들의 출신번 번은 도처럼 나뉘어져있는 행정으로 보시면 될듯?
이 출신번의 영주? 그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반대하는 영주들과 막부를 전쟁으로 눌러버리는데
여기서 검보다 조총을... 현대식? 군대를 이끌어서 승리하는걸로 압니다
서양 문물을 잘 받아들였다는건 적극적으로 받아서 응용할 줄 알았다는거겠죠
지들이 당한거 우리나라한테 한거보믄... 개눔들...
반면에 교역같은 경우는 우리는 뱔 필요없는데 외국에서는 굉장히 진기하게 여겨지는게 있죠
오렌지는 외국엔 흔한데 우리나라에선 귀하듯이 그렇게 하는거죠
식민지는 아무래도 미국이 가장 근접하게 했을듯 한데... 뭐 미국도 영국식민지였었고 그 시기에 미국이 뭐가 있어서 그랬을듯?? 잘 모르겠네요
이 출신번의 영주? 그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반대하는 영주들과 막부를 전쟁으로 눌러버리는데
여기서 검보다 조총을... 현대식? 군대를 이끌어서 승리하는걸로 압니다
서양 문물을 잘 받아들였다는건 적극적으로 받아서 응용할 줄 알았다는거겠죠
지들이 당한거 우리나라한테 한거보믄... 개눔들...
반면에 교역같은 경우는 우리는 뱔 필요없는데 외국에서는 굉장히 진기하게 여겨지는게 있죠
오렌지는 외국엔 흔한데 우리나라에선 귀하듯이 그렇게 하는거죠
식민지는 아무래도 미국이 가장 근접하게 했을듯 한데... 뭐 미국도 영국식민지였었고 그 시기에 미국이 뭐가 있어서 그랬을듯?? 잘 모르겠네요
- 역습의 빨갱이
- 2012/01/02 PM 09:23
설명하자면 엄청길어질 것 같은데...
가장 쉽게 이해할려면 소설『료마가 간다』를, 소설도 읽기 귀찮으시면 만화『어~이! 료마』를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약간의 비약도 섞여있긴하지만, 메이지유신을 그린 작품들 중에서는 가장 접근하기 좋았던 매체가 아닐까 싶어요.
가장 쉽게 이해할려면 소설『료마가 간다』를, 소설도 읽기 귀찮으시면 만화『어~이! 료마』를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약간의 비약도 섞여있긴하지만, 메이지유신을 그린 작품들 중에서는 가장 접근하기 좋았던 매체가 아닐까 싶어요.
- 인생분쇄기
- 2012/01/02 PM 09:28
제가 아는 지식내에서는 이렇습니다.
사카모토 료마의 대정봉환이 이루어진 후, 주축에서 밀려난 사이고 타카모리 등의 서남전쟁으로 유신 정부가 중추에서 반대 세력이 거의 뽑혀나갔습니다.
뽑힌 반대 세력들의 재산의 몰수와, 당시 3:7 또는 2:8 까지 들었던 서방 열강과의 불평등 조약과 거래들도 수완이 뛰어났던 외무대신(이름이 생각안납니다만, 료마와 같은 토사번 출신이었습니다.)의 활약으로 5:5 수준까지 끌어 내렸고..
이와사키 야타로의 미츠비시와 같은 대형 회사들이 그 이윤을 모아 점점 자본 경제의 형태가 이루어져가, 부를 축적해나갔던 걸로 압니다.
사카모토 료마의 대정봉환이 이루어진 후, 주축에서 밀려난 사이고 타카모리 등의 서남전쟁으로 유신 정부가 중추에서 반대 세력이 거의 뽑혀나갔습니다.
뽑힌 반대 세력들의 재산의 몰수와, 당시 3:7 또는 2:8 까지 들었던 서방 열강과의 불평등 조약과 거래들도 수완이 뛰어났던 외무대신(이름이 생각안납니다만, 료마와 같은 토사번 출신이었습니다.)의 활약으로 5:5 수준까지 끌어 내렸고..
이와사키 야타로의 미츠비시와 같은 대형 회사들이 그 이윤을 모아 점점 자본 경제의 형태가 이루어져가, 부를 축적해나갔던 걸로 압니다.
- 오토바이꼬마
- 2012/01/02 PM 09:31
일단 일본은 열강들의 견제보다는 도움을 받았습니다.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국가들이 일본을 많이 지원했죠.
그리고 일본의 근대화 과정도 쉽게 얻어 진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외무대신 무츠 무네미츠가 가내수공업공장에서 저임금으로 살인적
노동을 강요당하는 노동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죠.
'당신들은 뼈골 빠지게 일만 하다가 죽을 운명이지만, 그 대신 후손은
번영을 얻을 것이다' 일본도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까지 어렵게 어렵게
이어나간거에요. 강화도조약때 일본도 사실 별거 없었습니다. 우리가
명성황후와 대원군 싸움에 나라가 절단나서 힘한번 못써보고 일본에 먹힌것
뿐이에요.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국가들이 일본을 많이 지원했죠.
그리고 일본의 근대화 과정도 쉽게 얻어 진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외무대신 무츠 무네미츠가 가내수공업공장에서 저임금으로 살인적
노동을 강요당하는 노동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죠.
'당신들은 뼈골 빠지게 일만 하다가 죽을 운명이지만, 그 대신 후손은
번영을 얻을 것이다' 일본도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까지 어렵게 어렵게
이어나간거에요. 강화도조약때 일본도 사실 별거 없었습니다. 우리가
명성황후와 대원군 싸움에 나라가 절단나서 힘한번 못써보고 일본에 먹힌것
뿐이에요.
- 인생분쇄기
- 2012/01/02 PM 09:33
당시 대정봉환이 이루어지기 전, 다케치 한페이타와 같은 일왕에게 권력을 돌리기 위해 일어났던 존왕양이의 기운이 활발하였을 때에는 일본 민중의 열강에 대한 감정이 거세었지만.. 유신정부에 들어서며 지사들의 일원들 중 란학(네덜란드 쪽 유학) 등에 정통했던 학자들과 당시 앞서갔던 문물의 편이성과 우월성에 점차 매료되어 사회 일부에 녹아 들기 시작했습니다.
뭣보다 막부 허가 외의 서양문물 취급에는 극형이 따랐는데, 대정봉환 후에 그런 막부도 사라지니 그 속도가 빨라졌고 자신들의 식으로 변형시키기도 하였죠.
뭣보다 막부 허가 외의 서양문물 취급에는 극형이 따랐는데, 대정봉환 후에 그런 막부도 사라지니 그 속도가 빨라졌고 자신들의 식으로 변형시키기도 하였죠.
- 자웅을겨루자
- 2012/01/02 PM 09:33
일본이 진짜 운이 좋았다고 해야하나? 료마란 존재만 없었어도 그렇게 못컸습니다. 각자의 톱니바퀴가 기가막히게 맞물려 돌아갔다고 밖에는 설명하기가 힘들어요.
오히려 중앙집권적이지 않고 각자의 번으로 나뉘었던것도 꽤 중요한 역할을 했구요. 불만에 가득찬 번들이 있었으니까요. 물론 이것도 료마 아니었으면 그냥 내전벌이다 끝났을거고..
또 한편으로는 료마가 유신완성을 못보고 도중에 죽었다는것도 역사적으로는 괘 괜찮았던듯.
오히려 중앙집권적이지 않고 각자의 번으로 나뉘었던것도 꽤 중요한 역할을 했구요. 불만에 가득찬 번들이 있었으니까요. 물론 이것도 료마 아니었으면 그냥 내전벌이다 끝났을거고..
또 한편으로는 료마가 유신완성을 못보고 도중에 죽었다는것도 역사적으로는 괘 괜찮았던듯.
- 역습의 빨갱이
- 2012/01/02 PM 09:36
그리고 재미있는점은, 메이지유신세력들의 대부분이, 전국통일 전쟁인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배자쪽 인물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통일로부터 300여년의 시간이 지나있었지만, 그들이 지배자의 위치에서 피지배자로 있으면서 겪어온 300여년의 수모가 어느정도 밑거름이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민중봉기나 정권쿠데타에 비해 성공하기 수월했던 요인 중 하나로, 당시의 '토쿠가와'정권이 뿌리까지 썩어있다는 것을 깨닫고, 지사들을 지지해주고 자금을 제공해준 권력자들이 어느정도 있었다는점?
통일로부터 300여년의 시간이 지나있었지만, 그들이 지배자의 위치에서 피지배자로 있으면서 겪어온 300여년의 수모가 어느정도 밑거름이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민중봉기나 정권쿠데타에 비해 성공하기 수월했던 요인 중 하나로, 당시의 '토쿠가와'정권이 뿌리까지 썩어있다는 것을 깨닫고, 지사들을 지지해주고 자금을 제공해준 권력자들이 어느정도 있었다는점?
- DJ숫컷
- 2012/01/02 PM 09:39
1.깊숙한 문제네요. 제가 느끼기엔 임진왜란 전부터 이미 포르투갈과 네덜란드등의 서양세력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것(전국시대의 무한경쟁속에 선진무기와 문물을 각 지방토호세력이 경쟁적으로 받아들였던것으로 생각됨)
2.막부말기의 전에 없는 평화시대속에서 산업혁명의 밑바탕이 되는 일반민중과 산업세력의 내실을 착실히 키울수 있었고 내전과 피의 투쟁을 (상당히 미화됐다고 생각하는 신선조등이 등장하는..)승리로 이끈것
3.세계적으로 몇손가락에 꼽을정도로 일본의 산업혁명을 매우 빨랐던 편이라고 하더군요.(러시아보다도 빨랐음)그 당시의 일본의 산업발전상 식민지의 확보가 필요해지기 마련인데..이를 막을수 있는 세력이 주변에 없었던 것(조선은 너무나도 미숙했고 청나라는 안일하게 대처하다...서양세력의 각축장이 돼버림)
*흥미로운 질문에 평소에 느껴왔던 점 몇개 적고 갑니다.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기에 혹 실례가 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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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부말기의 전에 없는 평화시대속에서 산업혁명의 밑바탕이 되는 일반민중과 산업세력의 내실을 착실히 키울수 있었고 내전과 피의 투쟁을 (상당히 미화됐다고 생각하는 신선조등이 등장하는..)승리로 이끈것
3.세계적으로 몇손가락에 꼽을정도로 일본의 산업혁명을 매우 빨랐던 편이라고 하더군요.(러시아보다도 빨랐음)그 당시의 일본의 산업발전상 식민지의 확보가 필요해지기 마련인데..이를 막을수 있는 세력이 주변에 없었던 것(조선은 너무나도 미숙했고 청나라는 안일하게 대처하다...서양세력의 각축장이 돼버림)
*흥미로운 질문에 평소에 느껴왔던 점 몇개 적고 갑니다.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기에 혹 실례가 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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