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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일본의 전통 문화들.JPG2016.02.08 PM 11:55
동양 최대의 목조건물인 동대사 모습.
이 건축물의 크기는 대한민국 최고의 크기인 경복궁보다 무려 2배에 가까운 크기다.
도다이지(동대사)를 지키는 금강역사의 모습들.
모두 나무로 조각하여만들었으며 이 목조 조각상의 크기만해도 10m가량이된다.
(동양 최대의 목조 조각상)
일본의 '도리이'
일본의 전통 갑옷 "요로이"의 모습
그 종류는 수백가지에 달한다.
일본의 대창 "야리"
닌자무기인 낫
사무라이 무기 "카타나"
슈리켄(표창)
낫
채찍 철퇴류
눈차쿠(쌍절곤)
일본의 전통 요괴는 그 수만 수천가지가 넘는다고한다.
일본은 동양최대의 염료 수출국으로 이름을 떨친바가있었다.
댓글 : 12 개
- 황혼시계 
- 2016/02/09 AM 12:12
일본 문화제라는게 사실 버블경제 시절에 재가공한게 대부분이라 실제 문화제라고 하긴 힘들고 관광지죠.
- 사과죽을쑤는취한자
- 2016/02/09 AM 12:19
성안에 엘리베이터도 있고....
금각사의 경우도 원래는 3층에만 금이 발라져있고 원형도 저게 아니라죠...
그리고 동대사의 경우도 설명을 저렇게 써놓으셨는데
정확히는 경북궁이 아니라 근정전이라고 하셨어야죠....
참고로 실제 경복궁 크기는 자금성의 7~80% 정도 사이즈입니다.
그렇게 만들었던 이유는 뭐.. 그당시 조선은 중앙집권체제의 완성형인지라 궁궐에 대부분의 행정기능이 결합되면서 그만큼 커진거.
금각사의 경우도 원래는 3층에만 금이 발라져있고 원형도 저게 아니라죠...
그리고 동대사의 경우도 설명을 저렇게 써놓으셨는데
정확히는 경북궁이 아니라 근정전이라고 하셨어야죠....
참고로 실제 경복궁 크기는 자금성의 7~80% 정도 사이즈입니다.
그렇게 만들었던 이유는 뭐.. 그당시 조선은 중앙집권체제의 완성형인지라 궁궐에 대부분의 행정기능이 결합되면서 그만큼 커진거.
- 야옹이수프
- 2016/02/09 AM 01:39
정답
- 히어로사이타마
- 2016/02/09 AM 12:22
무기가 다 슈퍼닌자 류하야부사가 쓰는거네요 전부다 ㅎㅎ
그거만보이는군요
그거만보이는군요
- 사과죽을쑤는취한자
- 2016/02/09 AM 12:30
일본갑옷이 화려하다는건 그만큼 중구난방으로 치고박던 봉건시대가 길었다는거지요...
당시 영주들은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위해 사병들을 화려한갑옷으로 치장했으니.
참고로 한국의 경우도 봉건영주가 있던 고대 삼국의 경우
귀족이나 영주들의 사병이 있었고 그 사병들의 갑옷도 가문의 문장같은걸로 화려하게 치장했다고 합니다.
당시 기록이나 그런걸보면 중앙에 소속된 무사들(낭도, 선비 등등)은 겉만화려하고 하는것도 없는
영주들의 사병들을 비웃고 반대로 영주들의 사병은 무사들을 거지꼴이라고 비웃고 다녔다고 하죠..
물론 삼국이 멸망하고 고려~조선을 거치면서 관료제가 정착해나갈수록 그에 맞춰서 갑옷이나 제복도 통일된 단순한 형태로 바뀌어 갑니다.
그리고, 일본도는.... ㅋㅋㅋㅋ.... 말을 말죠.. 한국은 6세기에 강철주조법이 일반화되었는데 아직도 장인정신 나부랭이라고 접쇠법으로 칼두드리고 있었음.
참고로 일본제국시절 일본군 장교들은 자신의 검을 장인들에게 맡겨서 접쇠법으로 혈도도 예쁘게 나오게 새끈하게 뽑았고 사병들은 공장에서 고철로 뽑아낸 싸구려 일본도를 썼다고 하는데 정작 전쟁터에선 장인의 칼보다 그 싸구려가 더 유용했다고 합니다.
당시 영주들은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위해 사병들을 화려한갑옷으로 치장했으니.
참고로 한국의 경우도 봉건영주가 있던 고대 삼국의 경우
귀족이나 영주들의 사병이 있었고 그 사병들의 갑옷도 가문의 문장같은걸로 화려하게 치장했다고 합니다.
당시 기록이나 그런걸보면 중앙에 소속된 무사들(낭도, 선비 등등)은 겉만화려하고 하는것도 없는
영주들의 사병들을 비웃고 반대로 영주들의 사병은 무사들을 거지꼴이라고 비웃고 다녔다고 하죠..
물론 삼국이 멸망하고 고려~조선을 거치면서 관료제가 정착해나갈수록 그에 맞춰서 갑옷이나 제복도 통일된 단순한 형태로 바뀌어 갑니다.
그리고, 일본도는.... ㅋㅋㅋㅋ.... 말을 말죠.. 한국은 6세기에 강철주조법이 일반화되었는데 아직도 장인정신 나부랭이라고 접쇠법으로 칼두드리고 있었음.
참고로 일본제국시절 일본군 장교들은 자신의 검을 장인들에게 맡겨서 접쇠법으로 혈도도 예쁘게 나오게 새끈하게 뽑았고 사병들은 공장에서 고철로 뽑아낸 싸구려 일본도를 썼다고 하는데 정작 전쟁터에선 장인의 칼보다 그 싸구려가 더 유용했다고 합니다.
- 武者ALEX
- 2016/02/09 AM 01:03
일본군도는 장교와 부사관에게 주어졌고 일반사병들은 특수한 병과에만 주어진 겁니다.
그리고 현대에는 일본도가 여러매체에 비해 과대평가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조선에서는 꽤 높은 평가를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현대에는 일본도가 여러매체에 비해 과대평가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조선에서는 꽤 높은 평가를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 이귤이
- 2016/02/09 AM 12:34
사실상 우리나라 유적들 부셔버린 가장 큰 공신중의 하나인 나라...
- chimbang
- 2016/02/09 AM 12:35
과연...서양애들이 처음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을 법 하구만.
일본 자체가 동양적 질서에선 조금 벗어난 쪽이었으니.
일본 자체가 동양적 질서에선 조금 벗어난 쪽이었으니.
- 사과죽을쑤는취한자
- 2016/02/09 AM 12:37
서양애들 입장에선 쉽게 받아들일지도...
자신들처럼 봉건시대가 길~었으니까요... 실제로 문화적으로도 비슷한 감이 있고.
자신들처럼 봉건시대가 길~었으니까요... 실제로 문화적으로도 비슷한 감이 있고.
- 간냘프
- 2016/02/09 AM 12:38
딱봐도 서양애들이 일본문화 찬양할만함 독립적인 나라특성상 문화컨텐츠가 독창적으로 발전될수밖에없었음.
가장 이색적이고 화려한.
가장 이색적이고 화려한.
- 실비귀여워
- 2016/02/09 AM 12:58
나라자체가 대륙과 동떨어져 문화제 파괴도 적었으니 남은것도 많았을테고 이래저래 일본자체가 지형적으로 축복받은 땅임 한반도 보면 위쪽에선 중국의 압력이나 이민족 침입이 끊이지 않았고 밑에선 일본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으니 국력 소모가 끊이지 않다보니 문화제 지키기도 쉽지 않았을듯
- TAMAKU
- 2016/02/09 AM 02:04
1990년대 이전까지 아시아의 문화중심 중국은 서방에겐 닫혀진 국가였고, 한국은 일제 와장창에 내전 개박살 이후 올림픽 마치고나서 간신히 근대국가의 꼴을 갖춘 나라였지만, 일본은 70년대부터 이미 공산품으로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음. 서양은 동양의 문물을 일본이 아니고서는 배울 방법이 없었을 뿐이고 일본은 그에 맞게 기존의 잊혀진, 버려진 문화들을 재발굴해서 판매하기 시작했을 뿐. 서양이 일본문화를 동양문화의 대표로 인식할 수 밖에 없었죠.
결국 나라가 잘 살아야 문화도 융성하는 법입니다. 수백년후엔 한국의 독특한 아파트문화가 문화유산이 되겠죠. 여러분은 21세기 초 융성했던 한국주거문화를 대표하는 타워팰리스를 보고 계십니다.... 같은.
결국 나라가 잘 살아야 문화도 융성하는 법입니다. 수백년후엔 한국의 독특한 아파트문화가 문화유산이 되겠죠. 여러분은 21세기 초 융성했던 한국주거문화를 대표하는 타워팰리스를 보고 계십니다....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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