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떡 배틀 뒤 한석봉의 삶2010.08.13 PM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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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어머니와의 떡배틀(?)로 잘 알려진 한석봉.
일단 이름부터 많은수가 한석봉으로 알고 있다. (호가 석봉이다.)
이름은 한호(韓濩), 그나마 본명은 조금 역사에 관심있으면 아는 정도인데..

일단 그뒤의 삶을 보면

한석봉은 쉽게 말하면 레이저 프린터(?)였다고 봐도 좋습니다.

일단 한석봉은 대과(사법고시 정도?)에 합격하지 못하고 진사시만 합격했다.
하지만 글씨를 워낙 잘써서 발탁이 된다.(이 떄도 발탁에 대해 사간원에 말이 많았다.)

그 뒤 워낙 글씨를 잘쓰다보니 조선의 많은 공무서를 쓰게 된다.
평소대로라면 문서만 쓰다 끝날 인생이었으나
임진왜란이 터진다.
한석봉의 명성이 중국으로 넘어가 명나라에서 한석봉의 글씨를 너무 좋아했고
여러가지 이유로 중국사신에게 로비를 해야했던 조선정부에게
돈도 별로 들지 않는 한석봉의 글씨는 최고의 뇌물이었다.
어찌보면 한석봉도 공신급이라고 봐도 좋을정도 이다.
(뭐 하성군이 자기 주변에 심부름 하던 사람도 호정공신으로 넣었는데)
임란 이후 선조는 너무 고생했다면서 가평군수를 맡기려 한다.
하지만 대과를 합격하지 못한 한석봉이라 탄핵을 받는다.
하지만 한석봉을 총애한 하성군은 그냥 맡긴다.

문제는 가평이 원래대로라면 한양에서도 가깝워서 한석봉을 호출하기 좋았고
호구도 적어서 일도 적어 포상 형태로 준것인데..

임란 이후 복구해야할 일이 많았던 가평을 거의 방치하고 글만 쓰러다니니.
고을 행정은 붕괴되었고..탄핵을 받고 쫓겨난다.

그 뒤 미안한 선조는 강원도 금강산 인근의 흡곡 현령에 제수하는데..역시
성적이 좋지 않았다.

문제는 그 뒤에 터진다. 사실 한석봉의 공도 크다고 할것이다. 그 수많은 공문서를
썼고 특히 임란이란 상황세더 어찌되었든 명과의 관계에도 도움을 준것이다.

하지만 그런거는 무시하고 낙하신이라느니 능력없다고 까기만 하니
열이 받았던 것같다.

그 뒤 공신교서를 작성할때 '신하 신(臣)'을 '클 거(巨)로 잘못 쓴 일로
일차 탄핵을 받고
뒤의 공신 녹권을 잘성할 떄 또 글자를 잘못 씁니다.

수십년간 글씨를 써온 한석봉이 실수했다기보다..반항해본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암튼 그일로 파직당하고 얼마 안있다가 죽는다.

떡배틀로 유명한 한석봉..하지만 그 뒤의 삶은 그다지 평탄치 않았던것 같다.



댓글 : 8 개
이런 야화 좋아합니다..ㅇㅅㅇ
그러고 보니 달달 교과서만 외우거나 열심히 토익점수는 올렸지만 실제 업무에 있어서는 별차이 없는 현대인들이 떠오르는군요

(상관없는건가 ?;;;)
에미랑 배틀뜨는 희대의패륜아.
임금한테도 한번 개겨보다가 인생패망.
이런일이 있었군요... 보통 어릴때 한석봉에 대한 책읽으면 글 잘써서 나중에 성공했다... 이런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 그냥 그런가보다..했는데..
헬렌켈러하고는 정반대네..
급하게 쓰다보니 약간 비문이 많군요..나중에
제대로 수정을 해서 올리던가 해야지.
ㅋㅋㅋ 이거뿐만아니라
거의 모든 위인들 안조치 않나
에미랑 배틀뜨는 희대의패륜아.(2)
임금한테도 한번 개겨보다가 인생패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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