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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계백에 대한 꽤 근거 있는 가설.2012.01.16 AM 11:31
사실 백제 멸망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의자왕은 신라를 탈탈 털고 있었죠..
갑자기 멸망당하게 됩니다.
아마 의자왕은 신라를 털며.자신감에 찼고..그에 따라 왕권을 강화하려 했던것 같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죠..
나당연합군 침공
의자왕 : 큰일 났네..신하들이 병력을 끌고 와라
신하: 미쳤음..너네 아들보고 막으라 하셈.
(이 떄만 해도 중앙권력이 병력을 통솔못하고 하위 귀족들이 병력을 통솔했죠.)
의자왕 : 신발..나라가 멸망하게 생겼는데 미쳤음.
신하 : 족하
이 떄 병력을 끌고 온게 계벡.
왜 계백만 끌고왔나? 그거에 대해선 계백이 왕족이란 설이 존재합니다.
실제로 대동지지에서는 부여승이란 기록이 있죠..
다만 조선 때 자료라 조금 신뢰도에 의심이 가지만요..
여러모로 봤을 떄 꽤 설득력있는 가설 같아요.
드라마에선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네요..
드라마에선 의자왕이 좀 찌질하게 나온다고 하던데
댓글 : 10 개
- 푸른 날개
- 2012/01/16 AM 11:52
사실 의자왕이 그렇게까지 이상한 왕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마지막 전투 때도 놀다가 죽은게 아니라, 적은 군사로 적을 상대하다 포석정 뒤 자신들의 조상을 모시는 사당까지 밀려 거기서 죽었다고 합니다.
- 레이피엘큐트
- 2012/01/16 AM 11:52
원래 삼국사기 자체가 신라 입장에서 쓴거라....
당나라 쪽에서 남긴 역사서를 보면 또 다를듯
당나라 쪽에서 남긴 역사서를 보면 또 다를듯
- 외계 생명체
- 2012/01/16 AM 11:52
보지마 절대 보지마 드라마 쓰레기임 ㅋㅋㅋ
- 먹는샘물
- 2012/01/16 AM 11:54
머 명말한 나라왕 까는거야 그렇다고 치지만 어쨌든 왕권이 꽤 약해진것은 사실인듯 싶네요..
- 관바
- 2012/01/16 AM 11:56
의자왕 살아서 당나라 끌려가지 않았나요. 그리고 신라 탈탈 털리다 빡쳐서 한번 제대로 당이랑 샌드위치로 털었던게 발린거구요. 실제 큰전투는 황산벌 말고 하나 더 있었죠. 계백은 황산벌에서 지연전 한거고 당 격파하고 잡으려 했겠지만 fail..
- sigurudo
- 2012/01/16 PM 12:08
삼국사기는 고려인인 김부식이 썼고, 백제나 고구려에 대한 내용이 부실한건 자료가 없어서입니다. 영 허무맹랑한, 현실성이 떨어지는 부분은 빼다보니 그렇게된거임.
드라마는 별 쓸데없는 여캐가 날뛰어서 영 좋지않고(여자가 많이 나오는거야 좋지만 너무 판타지성이 강하다고봄), 의자왕은 계백에게 질투심을 가지는 쪼잔한 남자로 나옵니다. 계백이 왕명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행동하는데도 의자왕은 병신, 계백은 충신으로 묘사되죠.
근데 방어전에 호족들이 병력을 내지않았다면 왕의 통치력에 심각한 문제가 없지는 않았을것 같습니다.(나라망하면 호족들도 자기들 기득권이 보장안됨은 마찬가지, 근데 망하는걸 좌시하겠다고 했다면 망하는게 나을지경이라고 여겼다는것) 나라망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죠.
드라마는 별 쓸데없는 여캐가 날뛰어서 영 좋지않고(여자가 많이 나오는거야 좋지만 너무 판타지성이 강하다고봄), 의자왕은 계백에게 질투심을 가지는 쪼잔한 남자로 나옵니다. 계백이 왕명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행동하는데도 의자왕은 병신, 계백은 충신으로 묘사되죠.
근데 방어전에 호족들이 병력을 내지않았다면 왕의 통치력에 심각한 문제가 없지는 않았을것 같습니다.(나라망하면 호족들도 자기들 기득권이 보장안됨은 마찬가지, 근데 망하는걸 좌시하겠다고 했다면 망하는게 나을지경이라고 여겼다는것) 나라망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죠.
- M.데이비스
- 2012/01/16 PM 12:19
의자왕은 살아서 당나라에 끌려갔죠 삼천궁녀는 개소리고.. 거기서 당고종에게 무릎끓고 술을 따르는 치욕을 겪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음.. 그걸보는 백제유민들도 펑펑 울었다 합니다 의자왕은 실제로는 영민하고 용맹스런 왕이었어요 계백이 끝까지 목숨을 걸고 싸운것도 그런면에서 납득이 되죠.
단지 외교정책에서 신라가 자존심보다 실리주의 외교였다면 백제는 당당한 외교를 주창했고 거기서 차이가 생긴거죠.. 신라 외교의 승리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단지 외교정책에서 신라가 자존심보다 실리주의 외교였다면 백제는 당당한 외교를 주창했고 거기서 차이가 생긴거죠.. 신라 외교의 승리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 pag116
- 2012/01/16 PM 04:46
요즘 사람들이야... 백제라고 하면 딱 전라도 지역이 떠오르지만... 원래 백제의 근거지는 한강이 있는 서울, 경기도, 인천 지역입니다.. 전라도 지역에는 마한이라는 이름의 연맹체 성격의 소국들이 많았습니다. 백제는 이 마한 지역을 정복한거구요. 그런데 백제가 고구려한테 털리면서 한강지역을 상실하게 됩니다.. 결국 백제의 왕실은 전라도 쪽으로 남하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원래 마한에 있던 지역 호족(이들은 마한 연합체 당시의 소국들의 왕족이거나 힘쎈 귀족들이었을겁니다.)들이 백제 왕실을 좋게 보는거 자체가 이상한거죠..
- pag116
- 2012/01/16 PM 04:50
전라도 지역 호족들 입장에서는 "옛날에 칼들고 쳐들어와서 강제로 백제 영토로 만든 주제에.. 한강유역을 상실하니 전라도로 내려와서는 옛날처럼 힘도 없는 주제에 한강유역을 수복해야 된다면서 물자나 인력을 더 빼내려고 하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서.. 백제는 왕실과 호족들간의 힘싸움이 백제 멸망시까지 계속 벌어집니다.
- pag116
- 2012/01/16 PM 04:59
계백이 백제의 왕족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의자왕이 믿고 쓸수 있었던 친 백제왕실 계열의 사람이었던건 확실합니다. 또 계백이 황산벌에 데리고 갔다는 5000 결사대는 의자왕이 호족들의 도움을 받지않고 동원할수 있는 최대한의 숫자였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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