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조선이 당파싸움으로 망했다."에 대한 음모론? 잡설?2012.11.17 PM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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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어렸을떄 많이 나오고 가르친게 조선이 당파싸움으로 말했다라는 것..
요즘은 역사교과서에서 잘 수정되어 나오지만

저게 어렸을 떄만해도 꽤 많이 나온 말이었죠.

일단 사실관계를 보면 조선이 망조로 집어든것은

두 정파가 싸운게 아니라;...한 개 당파가 권력을 차지하고 더 나아가
한가문이 권력을 독점한게 문제가 되었죠.(세도정치)

그러면 왜 그런식으로 교육을 했을까?

첫번째는 그 당시 조선왕조실록이 번역이 안되어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물론 그럴수도 있지만 한국사를 공부하는 연구가라면 전문적은 아니더라도 세계사를 배웠을 꺼고
모든 세계사에서도 정파가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을리없다고 봅니다. 과연 다만 한국의 문제일까?
한 의심을 해봅니다..

둘째는 우리나라의 연구가 일본의 영향을 받았고 일본은 일제시대떼 조선을 폄하기위한 교육으로
그렇게 가르치기도 했됴..(조선인의 당파성)

세번째는 독재정권의 필요성..사실 조선의 정치구조를 잘보면 오히려 군부독재 시절보다 권력의
견제 원칙 만큼은 잘 돌아갔다고 보여지든요.(사간원, 왕의 모든 행실을 기록하는 사초등)
사실 왕의 뜻을 꺽기 위해 성균관 유생이나 신하들이 반대 데모(?)같은 것을 하는 것도 비일비재했고
왕의 권한으로 누를수도 있었지만 그러려면 성리학의 기본질서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후폭풍을 겪어야
했죠. 간단한 예로 조식은 상소를 올려 당시의 거의 여왕이었던 문정왕후를 씹지만(문정 왕흐를 과부라고 칭하기도 하죠) 왕은 건드리지 못합니다. 물론 조식이 일반 양반이 아닌 재야의 학자라서 못 건드리긴 한거지만 현대사에서
재야의 인사들을 알게 모르게 죽인적도 많죠. 물론 유생들 자체가 양반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대학생과 완전히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왕이 잘못했다고 성균관 유생이 데모를 해도 그렇게 건드리지 못헀죠..그에 대한 처벌로 과거 응시 박탈을 하곤 했지만 신하들이 반대하기도 해서 성공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어쩌면 독재정권은 '조선은 당파싸움떄문에 망했다.'란 인식을 통해 야당인사나 학생들의 데모를 망국의 행위로
만드려고 한게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상 그 데모하는 삭생이나 야당인사에게 저런게 '당파싸움'이다. 이런식으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걸로 기억합니다.
"각하는 큰 일을 하려고 하시는데 야당인사나 학생들읜 북한의 사주를 받아 당파싸움이나 하고 있다."
이런거 아닐까요?





댓글 : 17 개
성리학 때문에 조트망한거 같음..
너무 이론에만 빠져서 망한 것 같아요
당파 싸움때문에 망한거 맞아요.

한 당파가 권력을 독점하면 또 거기서 나눠먹기에 대한 갈등이 터져서 또 당파가 갈라지기를 여러번 루프하는 동안 조선은 그야말로 거덜이 났답니다.

일본에 먹히기 전에는 민씨네 일가가 한참 해먹었고요.
정조가 조금만 더 장수했으면 좀 변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성리학 자체는 송명철학을 아우르는 말이고...
좁게 보면 정주학, 그 중에서도 주자학을 말하는거죠.
주자학이 좀 고지식한 면은 있었지만,
조선에 들어오고 예학, 보학이 더해진 후에 변질이 심해서 문제였습니다.

사실 주희 본인은 라이벌(?)인 육구연(육왕철학.. 후의 양명학의 선구자)을 초청해서 제자들에게 특강도 열어주고 했었습니다.
조선에서 변질된 것만으로, 성리학 자체가 나라 말아먹는 학문쯤으로 치부되는걸 보면 아쉽긴 하죠.
이론에 빠진게 아니라 걍 탐욕에 빠진거죠. 결국 관리가 부패하면 망하는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죠. 사실 임진왜란때 망했어야 되는겁니다. 이미 그때 나라가 수구적이고 내부적으로 곯아 있었어요. 근데 조선 대신 명나라가 망해버렸죠.
당파성론은 식민사관임
싸우다가 망했다는 건 일제 강점기 시절 사학 공부한 원숭이들이 주장한 거
옛부터 자주 나오잖아요 침략이란게 여간 힘든게아닌데 당파 싸움에 스스로 내분이 일어 주변에서 밑바닥 표현으로 그냥 줒어먹어도 될 정도로 만들어놓는다
댓글에 아직까지 식민사관에 오염된 분들 보이네
유신 시절 박정희가 야당 탄압의 근거로 당파성론을 끌어들임
갈등은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하는 법인데 쪽바리들이 우리 역사를 부정하려고 강조한 당파성론이 아직까지 힘을 얻고 있는 슬픈 현실
국사가 선택과목이 되고 내년부터는 국사라는 과목이 사실상 수능에서 빠짐으로 인해서 이 상태는 더더욱 심화되리라고 봄
당파싸움 때문에 망한게 아니라 그냥 조선이라는 나라가 망할 때가 되서 망한거고, 굳이 관련성을 맺자면 당쟁이 아닌 조선 후기 일당전제화와 세도정치 때문에 완전히 훅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제와서 우리는 조선의 정신적 근간이 된 성리학을 헐뜯고 욕하지만, 막상 성리학이 조선은 물론 동아시아 전체의 발전을 저해한 학문이다!라고 말하기엔 어려운 것이 그 때 당시엔 그 것 말곤 없었거든요.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이미 모든 것을 다 아는 상태에서 과거사를 배우는 입장이고, 현재 국가 경영과 관련해서 수많은 연구와 학문들이 존재하는 상태지만, 그 때는 뭐 행정학이 있던 것도 아니고, 그 때는 성리학이 지금 우리가 보는 최신의 행정학, 사회학, 경제학 정도 됩니다. 성리학을 비롯한 유학과 관련된 학문 밖에 없는 상황에서 전왕조인 고려와 명백하게 다른 관료제 국가 조선에서 관리를 뽑기 위해서는 성리학을 취할 수 밖에 없었죠.

중기, 후기로 넘어가서는 운명의 톱니바퀴들이 정말 절묘하게 어긋나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어야 할 패러다임이 바뀌지 못해 기존의 것을 고수하다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대로 된 것이구요.
당파 초기에는 상호견제가 순기능적으로 이루어져 현재의 의회 민주주의같은 형태로 발전했는데 숙종 이후로 갈등이 심화돼서 상대 당파를 멸절(말 그대로 죽임. 상대파가 회의에 지각했다는 이유로 사약을 소청하기도 하고)시키려 들면서 당파정치가 변질돼고 정조가 왕권을 강화해서 당파싸움을 힘으로 눌렀는데 정조가 죽으면서 강화된 왕권이 왕의 외척세력으로 흡수되면서 조트망했지요.
당파갈등으로 나라가 망했다는건

일본식민사관에 세뇌 당한 사람들이 낸 헛소리랍니다.

동서고금에 있어

정치당파 싸움이 없는 적이 있기나 합니까?????

더군다나 당파싸움은 조선 초부터 치열했었는데

그조선은 500년 이상 유지가 됩니다. 당파싸움으로 조선이 망했다는건 말도 안되는 헛소리임
위에 여러분들이 말했든 당파싸움보다는 세도가들의 전횡이 조선멸망의 결정타였음.
사실 세제법 때문에 망함. 뭐 이건 망하는 왕조의 공통점이긴 합니다만, 닫힌 세계를 지향한 동양이 좀더 강하죠.
식민사관이죠 조선이라는 나라는 분열밖에 할줄모르는 인간들이었다..로 부터 시작하는 식민사관입니다
식민지배 당위성 부여해주는 꼴밖에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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