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잡담] 육룡/정도전 북벌이야기가 나오는데2016.03.09 PM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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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결과를 알고 이방원 아들 먼치킨 때문에 긍정적으로 생각될수 있지만
우선 요동정벌은 가능했을것 같은데

내전 끝낸 영락제가 과연 어떻게 했을지

북벌옹호론자들은 조선이 요동먹었으면 내전이 길어졌을거라고 주장하는데
뭐 어차피 역사에 가정을 둔것이긴 하지만요

하지만 반재쪽도 생각해보면
주체(영락제)가 워낙에 능력도 있고 대외정벌 능력도 뛰어난지라..
물론 이성계가 군사적 능력이 떨어지지않지만 이미 늙었음+객관적 열세 때문에

과연...
일단 적어도 포기는 안했을거 같은데
그렇다면 2차 전쟁으로 ....

물론 요동 수복 못한게 아쉽긴 하죠

재미있는것은 이방원이 고개를 숙여서 사대주의로 볼수 있지만
일부로 조공을 많이가서 하사품을 받아옴

황제국은 조공을 받고 은혜를 내려 조공보다 많이 주는것이 관례인데
조선이 워낙 자주오니
오지 말라고 함 ..ㅋㅋㅋㅋㅋㅋㅋ


생각해보면 나름 실리를 거두었음.





댓글 : 8 개
좀 애매한게 명이 당시 요동에 대해서 어떤 정도의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는지가... 몽골이 아직도 강성하던 때라..
영락제가 남경에서 북경으로 수도 천도한사람인데..
북경과 가까운 요동을 그냥 남겨두겠음?
영락제가 집권 전이니까 명이 어떻게 대응할 지는 모르겠고, 단순히 조선 vs 명이 아니라 여진족에게 신망이 높았던 이성계니까 조선 + 여진 vs 명이었을 겁니다.
정도전의 전략도 여진과 같이였고...
솔직히 결과는 모르겠네요.
당시 조선도 사병 혁파와 군사력 증강으로 20만을 동원할 능력이 되었다고...
조선이 설사 요동 정벌을 못했다 하더라도 명의 국력이 조선을 완전정벌할 정도는 아니었으니 어떤 선에서 외교적 타협이 있었을 겁니다.
요동조차 완전히 복속하지 못한 명이었으니 조선을 먹는다는 건 힘들었겠죠.
세종이 4군 6진까지 영토 넓힌게 그나마 어디..
영락제시절 요동이었음 우린 지금 중국말 쓰고있었을듯..
영락제 성격이면 그냥 공격임..
답이 없음...
요동은 계륵이라고 보이는
그리고 시기상 왕자의 난 이후에 주체가 내전을 일으켜서
조공무역을 그냥 군신관계로 해석하는 서양사관이 문제많죠 특히 서양에서 동양의 사대주의를 단순 식민관계로 해석하는게 어이없죠

명나라시절에 조공하지말라고 짤라버린걸 이유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명나라와 전쟁을 일으켰죠

근데 고려말이나 조선초의 요동정벌, 효종때 북벌론 모두 힘들었던게 당시 중국은 왕조교체가 되서 안정권에 접어들었을때라 조선 병력이 북상해봤자 얻는게 없었을겁니다. 원말 최영 리즈시절에 몽고를 돕지말고 그대로 요동을 점령해 버렸으면 나중에 명과의 관계도 많이 달라졌을거임
원말은 가능했을수도..하지만 조선초에는 주체가 버티고 있고 효종시기에는
강희제가 버티고 있다는게..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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