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잡담] 태종(이방원) 과 세조(수양대군)의 결정적 차이 2016.03.22 PM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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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정통성

이방원이 1차의 왕자의 난 일으킬때
명분이
"적장자를 놔두고 막내를 세자로 삼았다."
하자가 별로 없습니다.
물론 이성계가 세자를 정했지만 하다못해
삼국지의 원소,유표,손권을 볼때 특히
난세 떄 후계자 잘못지정해 망한경우는 많고
무리수였음..
게다가 당시 적장자인 정종을 내세우고
자기 왕될때 삼남은 정치에서 물러나고 사남은 제2의 왕자의 난으로 물러났으니
명분상 하자가가 별로 없죠.

반면에
수양대군은

조선역사상 가장 빵빵한 정통성을 가진 사람이 왕인데
(아마 원손은 못된걸로 알아요,가장 큰 전통성은 숙종)
단종은 세손-세자-왕 코스 거치고
전통서 빵빵한 왕이였죠.
왕비만 살아있었어도 힘들었을꺼고
말그대로 수양대군은 밤에 김종서를 기습 암살 해서 정변에 성공했을정도로
처음엔 기반이 약했죠..

공신에 대한 대우도 어떻게 보면 정통성에 대한 차이 일수도 있을것 같은데

다른예로
이방원 집권기에는 '조사의의 난'정도가 있고(그것도 이성계가 배후에 있어서)
정통성을 흔집잡고 일어난 역모가 별로 없는데

세조는 사육신,금성대군 등 반란이 많았죠.

두사람의 정치력도 물론 차이가 있긴하겠죠.









댓글 : 10 개
그보다 이방원은 조선 건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라도 했는데.. 세조는 그냥 권력이 탐나서 올라간거라..
조선은 세조이후에 망국의 길로 들어섰다고 생각됨
정통성 부분은 이방원역시 생각하신 만큼 확고하지 않습니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에서 정종을 왕으로 인정받고 묘호를 받은건 꽤 후인 숙종때의 일입니다. 그 전까진 왕으로 인정도 못받은 임시군주였습니다. 실제로 모든 권력은 이방원에게 있었고 모두 그걸 알고 있었죠. 그러므로 적장자 원칙의 정통성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
어린 나이에 죽은 것만 불쌍한 파트...
세조가 의 정통성이 문제긴 했지만 그래도 업적과 이룬일은... ....

문제는 연산군과 두 암군에 의해 나라가 망해갔지
그나마 광해군때 나라가 좀 부흥하나 했는데
인조가 그 부흥기간을 없애버림....
광해군때도 부흥은 못했죠,,당시 왜란 피해가 너무 심한데다가
광해군은 이상할 정도로 궁궐 만드는거에만
집착 했으니.,,
성리학에선 적장자를 우선으로 해야한다고 하는데 그걸 지킨 왕이 손에 꼽을 만큼 없었음. 정통성이고 뭐고 첫단추를 잘못 끼우니까 후대에까지 미친게 아닌가 싶음. 선례가 있으니까요.
단종만 불쌍 ....
제일 큰 차이는 능력임.
세조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종도 할 수 있는 일이고
무리하게 왕위에 올라서 사람들 죽이고 공신들 남겨둬서 폐단만 가속화 시킴.
업적이라는 것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뭘 한 것도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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