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밌는거] 대기업 신입사원의 사직서.txt2015.11.29 PM 05:49

게시물 주소 FONT글자 작게하기 글자 키우기



1
[삼성물산 46기 신입사원의 사직서 전문]

1년을 간신히 채우고,

그토록 사랑한다고 외치던 회사를 떠나고자 합니다.

다른 직장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공부를 할 계획도 없지만 저에게는 퇴사가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회사에 들어오고나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2
술들은 왜들 그렇게 드시는지,

결제는 왜 법인카드로 하시는지,

전부다 가기 싫다는 회식은 누가 좋아서 그렇게 하는 것인지,

정말 최선을 다해서 바쁘게 일을 하고 일과후에 자기 계발하면 될텐데,

왜 야근을 생각해놓고 천천히 일을 하는지,

실력이 먼저인지 인간관계가 먼저인지,

이런 질문조차 이 회사에서는 왜 의미가 없어지는지..

6
상사라는 회사가 살아남으려면 도대체,

문화는 유연하고 개방적이고

창의와 혁신이 넘치고 수평적이어야 하며,

제도는 실력과 실적만을 평가하는

냉정한 평가 보상 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사람들은 뒤쳐질까 나태해질까 두려워 미친 듯이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술은 무슨 술인가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더라도,

3
도대체 이렇게 해도

5년 뒤에 내 자리가 어떻게 될지

10년 뒤에 이 회사가 어떻게 될지 고민에,

걱정에 잠을 설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이 회사는 무얼 믿고 이렇게 천천히 변화하고 있는지

어떻게 이 회사가 돈을 벌고 유지가 되고 있는지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4
반면에 회사를 통해서 겨우 이해하게 된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니부어의 집단 윤리 수준은

개인 윤리의 합보다 낮다는 명제도 이해하게 되었고,

막스 베버의 관료제 이론이 얼마나 위대한 이론인지도 깨닫게 되었고,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던, 코웃음 치던

조직의 목표와 조직원의 목표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대리인 이론을

정말 뼈저리게,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12
가장 실감나게 다가오게 된 이야기는, 냄비속 개구리의 비유입니다.

개구리를 냄비에 집어넣고 물을 서서히 끓이면

개구리는 적응하고, 변화한답시고, 체온을 서서히 올리며 유영하다가

어느 순간 삶아져서 배를 뒤집고 죽어버리게 됩니다.

냄비를 뛰쳐나가는 변혁이 필요한 시기에

그때 그때의 상황을 때우고 넘어가는 변화를 일삼으면서

스스로에게는 자신이 대단한 변혁을 하고 있는 것처럼

위안을 삼는다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것입니다.

5
사람이 제도를 만들고, 제도가 문화를 이루고,

문화가 사람을 지배합니다.

하지만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모두가 알고 있으니

변혁의 움직임이 있으려니,

어디에선가는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으려니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신문화 웨이브라는 문화 혁신 운동을 펼친다면서,

청바지 운동화 금지인 '노타이 데이'를 '캐쥬얼 데이'로 포장하고,

인사팀 자신이 정한 인사 규정상의 업무 시간이 뻔히 있을진데,

그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사원과의 협의나 의견 수렴 과정 없이

업무 시간 이외의 시간에 대하여 특정 활동을 강요하는 그런,

신문화 데이같은 활동에 저는 좌절합니다.

3
변혁의 가장 위험한 적은 변화입니다.

100의 변혁이 필요한 시기에 30의 변화만 하고 넘어가면서

마치 100을 다하는 척 하는 것은

70을 포기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회사 미래의 70을 포기하자는 것입니다.

더욱 좌절하게 된 것은

정말 큰일이 나겠구나, 인사팀이 큰일을 저질렀구나

이거 사람들에게서 무슨 이야기가

나와도 나오겠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에,

다들 이번 주에 어디가야할까 고민하고,

아무런 반발도 고민도 없이 그저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2
월급쟁이 근성을 버려라, 월급쟁이 근성을 버려라 하시는데..

월급쟁이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구조와 제도를 만들어놓고

어떻게 월급쟁이가 아니기를 기대한단 말입니까.

개념없이 천둥벌거숭이로

열정 하나만 믿고 회사에 들어온 사회 초년병도

1년만에 월급쟁이가 되어갑니다.

3
상사인이 되고 싶어 들어왔는데

회사원이 되어갑니다.

저는 음식점에 가면 인테리어나 메뉴보다는

종업원들의 분위기를 먼저 봅니다.

종업원들의 열정이 결국

퍼포먼스의 척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
분당 서현역에 있는 베스킨라빈스에 가면

얼음판에 꾹꾹 눌러서 만드는 아이스크림이 있습니다.

주문할때부터 죽을 상입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꾹꾹 누르고 있습니다.

힘들다는건 알겠습니다. 그냥 봐도 힘들어 보입니다.

내가 돈내고 사는것인데도

오히려 손님에게 이런건 왜 시켰냐는 눈치입니다.

3
정말 오래걸려서 아이스크림을 받아도,

미안한 기분도 없고 먹고싶은 기분도 아닙니다.

일본에 여행갔을때에 베스킨라빈스는 아닌 다른 아이스크림 체인에서

똑같은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먹어보았습니다.

꾹꾹 누르다가 힘들 타이밍이 되면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모든 종업원이 따라서,

아이스크림을 미는 손도구로 얼음판을 치면서

율동을 하면서 신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4
어린 손님들은 앞에 나와서 신이나 따라하기도 합니다.

왠지 즐겁습니다. 아이스크림도 맛있습니다.

같은 사람입니다.

같은 아이템입니다.

같은 조직이고, 같은 상황이고, 같은 시장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사무실에 들어오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하루하루 적응하고 변해가고,

그냥 그렇게 회사의 일하는 방식을 배워가는 제가 두렵습니다.

2
회사가 아직 변화를 위한 준비가 덜 된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준비를 기다리기에 시장은 너무나 냉정하지 않습니까.

어제 오늘 일이 아닌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내일에 반복되어져서는 안되는 일이지 않습니까.

조직이기에 어쩔 수 없는 문제인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조직이 가진 모든 문제들을 고쳐보고자 최선의 최선을 다 한 이후에

정말 어쩔 수 없을때에야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까.

3
많은 분들이 저의 이러한 생각을 들으시면

회사내 다른 조직으로 옮겨서 일을 해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어느 조직을 가던 매월 셋째주 금요일에

제가 명확하게,

저를 위해서나 회사에 대해서나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활동에

웃으면서 동참할 생각도 없고

그때그때 핑계대며 빠져나갈 요령도 없습니다.

1
남아서 네가 한 번 바꾸어 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이 회사에 남아서

하루라도 더 저 자신을 지켜나갈 자신이 없습니다.

또한 지금 이 회사는 신입사원 한명보다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필요한 시기입니다.

제 동기들은 제가 살면서 만나본 가장 우수한 인적 집단입니다.

제가 이런다고 달라질것 하나 있겠냐만은

제발 저를 붙잡고 도와주시겠다는 마음들을 모으셔서

제발

저의 동기들이 바꾸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세요.

4
사랑해서 들어온 회사입니다.

지금부터 10년, 20년이 지난후에

저의 동기들이 저에게

너 그때 왜 나갔냐. 조금만 더 있었으면 정말 잘 되었을텐데.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10년 후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오늘의 행복이라고 믿기에,

현재는 중요한 시간이 아니라,

유일한 순간이라고 믿기에

이 회사를 떠나고자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댓글 : 23 개
순서가 섞인건가
아따 좋다
첫직장이라 이런글도 쓸 열정이 있는듯. 저도 첫직장 떠날때 좀 울컥했는데 다 부질없슴.
내맘이랑 똑같네..
본인이 혁명가라 정말 바꾸는 사람 아니고서야 저런 생각도 곧 접히지
저런걸 바꿀 자리에 위치하면 당대 현자가 아니고서는 바꾸고싶지가 않게됨
군대보면 , 꼭 그렇지도 않음 바꾸는 사람이 적기야 하지만

부조리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고참이 한 두명씩은 있잖슴,,,

대학교 꼰대짓 문화가 있었는데
제가 좀 바꿔볼려고 햇거든요
우리는 선배들처럼 쓸데없이 집합시키고 얼차례주거나 갈구지말자고
그랫더니
형 이것도 다 필요한거야 (제가 동기중에서 1살 많았음)
라고 하더니 결국 바뀌는거 하나 없더군요
근데 군대를 보면 저같은 경우에도 제 동기들이랑 같이 부조리 없애고
그랬는데 제가 말년되니까 밑에 있는 애들이 다시 만들더군요.
누군가가 없애도 또다른 누군가가 이상한걸 만들어내는 악순환.ㅋ
현자가 아니라...이재용이 바꾸면 됨
진짜 이해안가는것 투성이 ㅋㅋ
현실에 맞서 박차고 나왔지만 앞으로 한참을 긴 방황속에 허우적 거리겠지요?? ㅠㅠ

슬프구나
아마 대폭 필터링 되어 위로 보고 되었을 듯...
내부고발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 생각이 드네요..
글 겁나 잘쓴다;
꽤 몇년전에 봤던 글 같은데.....회사의 현실이 안타까울따름..
회사는 절대 안바뀜.. 네버
기네...
말많네요. 뭐같아서 나간다고 하면 되는것을.
오....멋있네....
지펠리카 저분 말따나 그냥 뭐같아서 나간다 해도 되는데 자기 생각 다 써서 제출하고 나간거 보면 어디 가서 대장자리 하나 차지하고 진행하면 잘할거같은데....
  • YUI!?
  • 2015/11/29 PM 06:39
용기있는 발언과 행동은 대단한것 같습니다.
다만...
다음 취업은 힘들겠죠. 윗대가리들이 좋게 받아들일리가 없고 보복 할 생각만 하니... 타 회사에 전부 필터링으로 돌릴듯...
썩어빠져가는게 눈에 보이는데 월급쟁이는 어쩔수 없어서 그냥 입 다물고 참고 일하는분들 많을겁니다..
아아. 이것이 젊음인가..
일본 베스킨라빈스 벤댕이 소갈머리만큼 퍼주는데..
숟가락 넘치는 부분 다 커트하죠..ㅋㅋㅋ
  • Pax
  • 2015/11/29 PM 06:46
삼성물산같은 최상급 종합상사 직원쯤 되면 스펙과 능력은 동년배중에 탑클래스일거고...
실리콘밸리 같은데 진출하는게 좋지 않을까 싶음.
저희 팀장도 하다하다 안되서 곧 퇴사하는데 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네요 ㅠㅠ
여기 댓글같은 말들을 들었겠죠. 나간다 했을때.....
친구글 비밀글 댓글 쓰기

user error : Error.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