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 타] 트라우마2013.10.10 AM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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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면서 이런 저런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트라우마가 생기기도 하는데
저는 피해를 입은 트라우마보다 피해를 입힌 트라우마가 강력해요. 지금도 트라우마때문에 심장이 아파서 썰이라도 풀어봅니다...가끔 이러면 해소가 되는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요.

피해를 입었던 것에 트라우마는 없는게 아닌가...할 정도인데(기억력은 좋아서 그때 생각하면 좀 화가나거나 한다던가 정도는 있음) 피해를 입힌것에 대한 트라우마는...생각하면 기분이 엄청 다운되고 미안해서 심장이 꽉꽉 조이는 기분이 들어요. 심하면 눈물도 나고요.

첫째로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시골동네에 살던 시절이었는데 네 살? 다섯 살? 정도의 꼬마가 있었습니다. 물론 한동네니 갓난아기때부터 봤죠. 할머니께서 업거나 손잡고 동네 돌아다니셨는데. 암튼 애가 가끔 혼자 나와서 돌아다니면 친구들이랑 같이 놀아도 주고 그러던 어느날, 또 혼자 말도 못하고 어부어부 하면서 아장아장 걸어다니고 있는걸 봤어요.
볼이 참 토실토실했습니다. 만져보니 말랑말랑한게 너무 신선한 감촉이었던거에요. 그래서 찰싹찰싹 쳐봤습니다(세게 때린건 아니고 톡톡 보다 좀 센 정도로). 애초에 폭력으로써 휘두른 손이 아니었고 그래도 마냥 좋다고 해실해실 웃길래 재밌어서 몇 번을 더 계속 했는데 어느 순간 아장아장거리면서 뛰어서 도망가더라구요. 그때도 아이가 신나서 뛰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쫓아가서 다시 찰싹찰싹놀이를 했는데...애가 울지 뭡니까. 처음으로 그 아이가 우는걸 봤던것 같네요. 우는걸 보고 급히 사과했지만 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가버렸어요. 그때 가해자가 된 충격을 받아서 그 직후의 일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나중에야 들은 이야기지만 그 아이는 지능이 모자라서 특수학교에 다녔다는 말을 들었네요. 그래서 곱절로 미안해짐.
크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빅뱅이라는 그룹이 유명해지면서 여기저기 얼굴이 보이는데 그중에 태양이라는 멤버와 생긴게 비슷하여 자꾸만 생각이 납니다.

두번째로는 고등학생때. 이놈들이 남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쉬는 시간마다 팔씨름을 해댔는데 어느날은 벌칙게임이라고 옆에서 샤프연필을 세워놨어요. 적당히 질것 같으면 손을 빼거나 살짝 콕 찔리면 멈출줄 알았는데 그 미친놈이 손 뺄 틈도 없이 콱 넘겨버리는게 아니겠어요?
그리하여 샤프는 친구의 손등을 뚫고.................큰일이 날 뻔했는데 기적적으로 각도가 틀어지면서 손등의 피부와 근육 그 사이를 파고들어 피해가 아주 경미했습니다. 피도 안 날정도로요. 그냥 빨간약 바르고 끝났습니다.
그날 얼마를 사과했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그때가 문득 생각나면 제 손 등이 찌릿찌릿해지고 미안해지고......

그리고 세번째. 올해 헤어진 전 여자친구와의 일입니다.
딱히 뭐가 어땠다를 집어내기엔 뭣 할 정도로 못해준게 너무 많아요.
애초에 그 아이가 사귀자고 했을때 차마 거절을 못하고 승락을 했다가 후회하고 며칠을 어떻게 해야 상처를 안 주고 헤어질 수 있을까...를 고민했었어요. 하지만 만나다보니 재밌는 아이고 볼수록 괜찮아져서 오랜기간동안 사귀게 됐는데...연애관계에서 내가 우위에 있다는 생각과 매정하고 정을 붙여주지 않았던 전여친에게 나름 헌신적으로 대했다가 실패했던 기억때문에 "그렇게 하면 관계가 망하는구나"하고 생각했고, 그에 따라 아주 편하게 대했었죠.
그게 문제였습니다. 툭하면 짜증냈거든요.
사실, 참으면 참을 수도 있는거였지만 그냥 서로 편하게 한쪽이 짜증나면 다른 한쪽은 받아주고 원하는거 있으면 해주고 그냥 주거니 받거니 살아가는걸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맘놓고 승질부리고 틱틱거리고...했는데 그 아이는 그냥 잠자코 다 받기만 하더라구요. 부모님과 자식의 관계처럼 싸워도 그냥 그때뿐이고 심술을 부려도 그냥 지나가면 허허할 수 있는 그런 관계를 꿈꿨었는데 진짜 가족이 아니니...그게 맘처럼 되진 않더군요.
뭐...그래도 뒤늦게나마 그래선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뭐 잘못하면 바로바로 사과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했어요. 미안하단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었네요. 그래서 과부하 일으키지않고 5년여를 지낼 수 있었던듯.
연애 말기때는 초기와 반대의 상황이 되어 짜증 받아주고 그랬었는데 그때 그 애의 심정이 어땠는지 제대로 알겠더라구요 ㅋㅋㅋ 그래도 사랑하니까 그정도는 괜찮다는 것도.
암튼 그 5년여의 기간동안 가벼운 마음으로, 혹은 실패하지 않는 연애를 하기 위해 나름의 꾀를 부렸다가 상처준 일들이 하나하나 생각나서 너무 미안한게 지금의 상황입니다.
특히, 사귄지 1년도 안 된 초기에 기껏 자취방에 놀러와준거 고마워할 줄도 모르고...그러다가 뭔 의견다툼이 있었는데 화난다고 돌아가버린다는거에요. 근데 거기서 저는 어리석게도 여기서 약한모습 보이면 다음에 또 그럴 것이니 단호하게 대처해야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제발 돌아와ㅠㅠ'를 속으로 외치며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러나 한참 후에도 돌아오지 않아 나가봤는데 문고리에 딸기가 들어있는 비닐봉투가 걸려있었죠. 집에 가다가 딸기 먹고 싶단 말을 기억하고 시장에 가서 사온 뒤 다시 간 거...그래서 담부턴 그런일 없게 붙잡았음.
이후에 이에 관련해 몇 년에 걸쳐 몇 번이나 사죄를 하고 용서를 받았으나 마음은 계속 불편합니다. 앞으로 살면서 잘 해줘야지 했지만... 앞으로가 없어졌으니 전 수십년을 더 괴로워해야겠죠.


뭔가 트라우마가 10년을 주기로 하나씩 기존 데이터가 삭제되지 않고 신규 업데이트 되는 느낌인데...평생 가만 있어도 고통받는 인생이네요. 해방되고싶습셉습니다. 난 왜이리 기억력이 좋은것인가
댓글 : 3 개
우와 써놓고 보니 나 완전 나쁜놈이네; 잘해준 것도 있는데ㅠㅠ
전 중1 축구 반대항전때 자책골 넣었다가
그후로 평생 자신감있게 축구못하는중...
아예 모든 구기운동을 멀리.이것이 저의 트라우마
1번이 젤나빠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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