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방] 단편소설 - 지구, 인류 멸망 1시간 전2016.07.30 AM 03:30
NASA의 지구 근접물체 프로그램 팀은 소행성의 낙하 위치를 러시아 이르쿠츠크 근방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그 폭발 에너지는 추산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다만 이미 보도되었듯……구원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심판의 때에 심판받지 않음을 뜻합니다. 구원은 심판을 초월하지요.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왜 오십니까? 심판하기 위해서, 어린 양과 미련한 염소를 구별하기 위해서 오십니다. 종말 뒤엔 천국과 지옥이 있고, 믿음과 회개로서 우리는 그분의 왕국에 들 수 있음을……영화에서 자주 보신 장면이죠. 파국이 닥치면 온갖 범죄가 일어나는 현상을 상상하시는데요, 의외로 현재 범죄율은 분명 증가한 추세이긴 하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건지, 백일몽 기자가 전해드립니다……나선주 리포터입니다. 지금 서울 시청 앞 광장에는 2002년 월드컵을 방불케 할 정도로 수많은 인파가 모여 있는데요. 모두가 최후의 시간을 함께하러 모인 광경이 무척 훈훈합니다.
“지구, 나아가 인류에게 유예된 시간이 1시간 뒤 끝나게 됩니다. 그동안 이룩해온 인류 문명모든 것들이 신의 의지 아래 먼지로 돌아가게 됩니다.……신의 축복이 있길 바랍니다.”
아메리카 대륙 어딘가 지하 깊숙이 마련된 방공호에 있을 백인 대통령이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마친 연설을 끝으로, TV를 꺼버렸다.
20XX년 12월 24일 23시. 소행성이 지구로 처박히기 전까지 단 한 시간이 남았다. 2000년 넘게 쌓아 온 인류의 기술력은 겉치레가 아닌 탓에 인류는 자신의 종말을 한 달도 전부터 관측할 수 있었다. 다만 상대가 안 좋았을 뿐이다. 크기는 달의 4분의 1만한, 웬만한 위성 급의 소행성이었다. 어느 영화광이 모 재난 영화를 따라해 굴착팀을 소행성으로 보내 핵폭탄을 터뜨려 궤도를 변경해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NASA의 관측을 따르자면, 소행성은 머나먼 우주에서 공교롭게도 빛의 4분의 1 속도로 오직 지구만을 바라보며 맹렬하게 질주해왔다. 굴착팀이 소행성까지 가기에는 기술도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첫 발견 이후 하루가 지나자, 미합중국 대통령은 이 소행성의 이름을 ‘The end’라고 명명했다. 친절한 건지 잔인한 건지, 종말은 인류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한 달의 시간을 줬다.
먼 우주 어딘가에서 절대영도에도 코트 한 벌과 머플러만 두른 쌈박한 저격수가 신중하게 쐈을 법한 그놈의 종말 때문에 세계는 난리법석이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언론은 소행성에 대한 온갖 정보와 더불어 이제는 약빨이 다한 종말론까지 하나하나 끄집어냈다. 부자 소리를 듣던 재벌들과 돈 좀 있다는 소문 도는 이웃들은 하나같이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었다. 더 이상 공부할 이유가 사라진 학생들이 제일 신나서 주변의 모든 것들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정치권은 뭐가 그리 바쁜지 말이 없었다. 제일 신이 난 건 종교계였다. 과연 온 동네의 교회는 단기속성으로 천국을 가기 위해 한 달 이용권을 끊은 신자들이 드글드글 거렸다. 돈이라는 신의 대리자가 제 힘을 상실하고 나니 진정한 신에게 뒤늦은 미사를 올리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 저격수는 단언컨대 우주 최고의 저격수다. 단 한 발로 목표를 이렇게 뒤흔들었다.
돌이켜보면 기이한 한 달이었다. 김 대리, 그거 들었나? 어떤 거 말입니까? 우린 이제 30일 뒤면 모조리 끝장이잖나. 전 인류에 대한 사형 선고가 내려진 다음 날, 아무 일 없다는 듯 출근한 회사에서 박 과장이 내게 건 말이었다. 아아, 저도 TV에서 봤습니다 그거. 동기인 이 대리도 껴들었다. 갑자기 한 달 뒤에 죽는다니, 실감이 안 나잖아요. 장난스럽게 투덜거리는 이 대리를 보며 박 과장이 껄껄 웃는다. 기분도 찝찝한데 오늘 한 잔 하지. 당구도 한 판 칠까? 아이구 좋습죠. 나 역시 씩 웃으면서 손에 들린 자판기 커피를 홀짝였다. 언제 식어버렸는지, 더 이상 먹지 못하겠다 싶어 반씩이나 그냥 버렸다.
회장님도 상무님도 이사님도 사장님도 보이지 않았다. 부장은 그나마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과장들이 제출하는 서류만 묵묵히 검토하는 모양이었다. 신기하지 않은가. 우린 여전히 일을 했다. 누굴 위해서? 고용주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우리의 생산 활동은 한 달 뒤 먼지로 치환됨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야말로 쥐새끼 쳇바퀴 돌리듯 한 일상이었다. 물론 적지 않은 이들이 과감히 제 과업을 집어 던지고서 자신의 숙원을 위해 떠나갔다. 점점 한산해지는 사무실에서 나는 그동안 밀린 서류를 모두 처리해버렸다. 이내 심심해져 나와 마찬가지로 꾸준히 출석카드를 긁는 이 대리와 박 과장과 시답잖은 농담 따먹기를 하거나, 사무용 컴퓨터로 열심히 웹 서핑을 즐겼다.
출퇴근길은 예전과는 다른 종류의 부산함이 자리 잡았다. 더 이상 모두가 지하철로 버스로 우르르 몰리는 일 따윈 없었다. 앉을 자리가 많아서 편했다. 그 대신 거리에만 머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침저녁을 가리지 않고 건물에서 불꽃이 치솟고, 어딘가의 유리창은 꼭 하나씩 깨지고, 누군가의 목구멍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처음 사나흘 동안은 빨간 차 백차 할 거 없이 부산하게 움직이더니 그 뒤로는 다들 포기한 건지 무법천지였다. 뉴스를 봐서 안 일이지만, 살인의 비율은 압도적으로 낮았다. 죄다 강도 강간 방화였다. 보통 셋 중 하나만 저지르는 범죄자는 없었다. 둘 혹은 셋 모두였다. 왜 살인율이 낮은지는 생각 없이 사는 나도 알 것 같았다. 어차피 다들 곧 뒤질 마당에 일찍 보내줘서 무엇하랴. 그런 느낌인거지. 불과 이십 보 옆에서 벌어지는 범죄의 현장과 묵묵히 출퇴근하는 나 사이에는 절대로 깨지지 않을 통유리가 놓인 것만 같았다. 살려줘요! 새된 목소리가 누군가를 향해 소리쳤다. 그 소리가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 새어나오는 노래의 간극에 정확히 삽입되었다. Feat. 아무개 ‘살려줘요!’
종말이라는 녀석이 등장하기 전이나 후나 내 생활은 다른 게 전혀 없었다. 단 하나 다른 게 있었다면, 3일에 한 번 걸려오는 부모님의 전화였다. 그래서 언제 내려오는 거니? 글쎄요. 회사가 아직도 쌩쌩하거든요. 무슨 놈의 일을 그렇게 해? 스피커폰 너머의 격양된 아버지의 목소리에 나는 저도 모르게 씩 웃었다. 됐다, 그딴 의미 없는 일 때려 치고 내려와 인마. 다섯 번의 제자리걸음 공방 끝에, 끝내 부모님은 나를 포기하셨다. 그래…알았다. 잘 살고…이럴 때는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구나. 어머니는 그 말을 끝으로 울음을 터뜨리셨다. 나도 말문이 막혔다. 뭐하고 해야 하나. 시한부 환자를 상대해 본 사람들은 알까.
그리고 오늘. 12월 24일 18시. 마지막으로 나간 회사에는 나와, 그리고 박 과장만이 남아 있었다. 이 대리마저도 종적을 감추었다. 기본적으로 상사와 부하라는 계급적 차이에서 생기는 증오를 제외하고서, 나는 인간적으로 박 과장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도 내가 마음에 꽤나 드는지 잘 어울리곤 했었다. 헌데 둘만 남은 사무실은 이날따라 적막하기 짝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걸 서로 의식하게된 건 겨우 퇴근 5분 전이었다. 그러고 보니 김 대리. 마지막 날인데, 가족 보러 간다거나 하지 않나? 어찌저찌 마무리 지어서요. 과장님은 가족들이랑 같이 시간 안 보내십니까? 아, 말 안했었나? 내 가족은 다 미국에 있어.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구태여 물을 필요를 찾지는 못했다. 그가 지금, 여기,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나. 다만 사무실의 불은 껐지만 문은 잠그지 않고 계단을 내려가는 그의 두텁한 등에 약간의 안쓰러움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집에 돌아오자, 심하게 어질러진 거실이 나를 반겼다. 투 룸 전세 8천이라는 파격적인 가격, 반 지하 주제에 채광이 말도 안 되게 좋다는 말을 믿은 내가 호구였지. 과하게 큰 창문에 비해 매일 낮 햇빛은 성에 안 찬다는 듯 고작 15분 체류 뒤 다른 곳으로 움직인다. 후줄근한 집에는 황송스러울 정도로 고급스런 소파에 그대로 주저앉아 TV 채널만 주구장창 돌렸다. 리모콘을 툭 던져놓고 나니 코트도 벗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벗으려다 만다. 정리정돈과는 한 달째 별거 중이다. 정리정돈은 훗날 이 장소를 이어갈 어느 누군가를 위해 해놓는 거다. 종말은 별별 거에 다 끝, 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준다.
12월 24일 23시 8분. 남은 한 시간 동안 뭘 해야하나 고민이 된다. 이대로 늘어져 있다가 죽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문득 목이 말랐다. 생(生)이란 이토록 잔인하다. 곧 뒈질 마당에도 생에 대한 갈증은 성수기다. 한 시간만 있어봐 천국을 보여줄 테니. 내면의 타이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물 생각이 간절해 어쩔 수 없이 냉장고로 걸음을 옮긴다. 그러는 중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과제로 써봤던 단편. 납득할만한 마무리를 못지었다...
- 까레라
- 2016/07/30 AM 03:44
- 인꾸르
- 2016/07/30 AM 03:49
- 바다별*
- 2016/07/30 AM 03:54
사실 이런이야기 마무리는 시작부터 끝까지 비슷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밖에 없던데.. 확 바뀔 뭔가가 없음.
- 인꾸르
- 2016/07/30 AM 04:13
user error : Error.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