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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 이불킥과 허전함 사이2016.09.23 PM 11:06
듣다 보니 옛 생각이 나서 끄적여본다.
1.
전 여친과 헤어진 지도 어느덧 6년이다.
그로부터 현재까지 스쳐간 대단찮은 인연도 기억 저편을 더듬어보면 몇 있겠으나, 선명하게 마음에 새겨진 건 오직 하나뿐이라.
오랜시간 독수공방을 해왔다지만 세간에서 논하듯 옆구리가 시리는 일은 없었는데,
이게 체질이기도 하거니와 남들보다 못한 사이로 끝을 맺었던 그녀와의 관계가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한 가치관을 크게 비틀어놨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와 헤어질 무렵 나는 군대라는 별세계로 뭔가에 쫓기듯 입문한다.
신병휴가를 나왔을 때 방구석 한 켠 서랍장에 고이 모셔놓은, 그녀에게 받은 선물이며 편지들을 정리했다.
꼴에 추억줍기랍시고 다시 한 번 하나씩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직접 만든 초콜릿 상자는 관리가 안된 탓에 귀퉁이가 찌부러져 비루한 모양새였다.
편지에는 그 시절 우리가 서로에게 아낌없이 주고 받은 어떤 감정이 듬뿍 담겨져있다. 삐뚤빼뚤 그녀는 글씨를 참 못썼다.
우리가 찍은 사진은 군대와는 또 다른, 세상에서 머나먼 곳에 있는 듯한 다른 세상의 이야기같았다.
블로그에서 서로 경쟁하듯 올린 애정 이야기, 아이콘만 덩그러니 남은 함께했던 게임들, 고물되기 직전인 피처폰에 저장된 문자들...
심지어는 마이피에 적었던 그녀와 관련된 이야기, 그 모든 것을 나는 지워버렸다.
모든 것을 지우지는 못했다. 생불이 아닌지라 나조차 알 수 없는 기준에 의해 선별된, 미련이 심하게 남는 기록들은 마치 천연기념물 마냥
또한 내 손이 쉬이 가지 않는 곳에 남아있을 거다.
그걸 모두 지운 이유는 물론 인연이 종말을 고함에 따라 더 이상 소유의 의미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게 첫번째지만,
그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신속한 삭제를 독촉했다. 어디라고 할 수 없이, 그러나 분명 어딘가가 참을 수 없이 간지러운 감각이 침기 힘들어서
하루를 꼬박 들여 그녀의 흔적을 말소하는 데에 신경을 쏟은 기억이 있다.
2.
문득 어쩌면 그건 흔한 일상의 추억을 마주할 때 생기는 쑥쓰러움의 한 종류에 불과하단 생각이 들었다.
내 비록 원빈이나 장동건의 자세한 익생역정은 모르지만 그들도 사람인 만큼 생을 통틀어 어찌 부끄러운 일이 없지 않을까 싶은데
하물며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나의 생은 하나의 훌륭한 촌극이라고 해도 될 정도이기에, 추억을 헤집을 때마다 낯이 뜨거워지곤 하는 것이다.
그녀와 관련된 기록들은 하나같이 내 호흡을 빠르게하고, 심장을 흔들며, 미칠듯이 간지럽혔다. 어떤 종류의 쑥쓰러움일까?
추억을 다시 마주한다는 것은 언제나 생소하고도 격렬한 감정과의 조우다.
3.
어쨌든 상기한 대숙청의 바람을 비껴난, 가장 온전하고도 접근성이 높은 물건은 다름 아닌 일기장이다.
고등학생 시절 패기롭게 산, 세자리를 가볍게 넘기는 페이지 수의 그 일기장은 여전히 조금이나마 그 공백을 남겨두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행실과 모종의 이유로 인해 앞으로도 마지막 장에 마침표를 찍지는 못할 것이다.
그 일기장은 그 어떤 그녀의 흔적보다도 나를 격렬하게 괴롭힌다. 내 고교시절의 일상, 대학 신입생 때의 일상은 쥐톨만한 분량인데,
어째서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한가득인지...내 일기장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녀에 대한, 그녀와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만을 주구장창 늘어놓는다.
하여 아무리 맘을 굳게 먹고 정독을 해봐도 채 5장을 못넘기고 커버를 덮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새삼 드는 생각 : 이건 분명 일기장이다.
하지만 내 일기장은 아니다. 그녀의 일기장이 아닐까.
4.
쓰다보니 감정이 실려 글이 길어졌지만, 이야기 하고 싶었던 바는 '기록'에 대한 것이다.
나는 추억줍기라는 행위를 무척 가치있게 보는 편이다. 흔히 회고回顧라고 하는 그것이다.
추억이라는 것은 너무 자주 접하면 감흥이 없지만, 시간을 두고 숙성시켜 감상하면 그만한 명작 소설이, 영화가, 예술이 따로 없다.
때로는 그것이 선사하는 감정이 너무도 부담스러운 탓에 홧김에 이를 지워버리는 일이 생긴다. 뇌내에 따로 백업이 되어있다면야 다행이지만,
일반적으로 내 뇌는 휘발성이 무척 뛰어나기에 종이보다 못한 것이 현실이라, 기록에도 기억에도 없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내게는 없었던 일이 된다.
때문에 나는 약간 강박적으로 기록을 하는 편이다. 흔히 성욕의 이유를 종의 번식에서 기인한다고 해석하던데, 어쩌면 내겐 기록이 내 존재 증명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스스로 여기는 것 같다. 더해서, 기록은 내가 직접 담그는 일종의 와인이라고 그럴듯한 비유까지 붙여가면서.
하지만 장인이랍시고 기록을 하는 당사자가 알 수 없는 괴팍한 이유로 와인을 냅다 깨고, 또 뒤에와서 후회를 하니 문제다.
5.
이불킥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좀 더 가벼운 행위이긴 하지만 이불킥의 작동 원리는 내가 하는 짓과 비슷하다. 누가 붙였는지는 몰라도 훌륭한
네이밍이지만, 그것이 짧은 기간 내 행위자의 과실만을 주목한다는 게 아쉬운 부분이다. 내가 저지른 과를 비로소 자신이 좀 더 객관적으로 성찰할 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것, 망각하고 싶을 기억이지만 으레 부정적인 기억이 그렇듯 쉽게 잊혀지지 않을 터다. 그리고, 그것은 오히려 잊지 않는 것이
좋다고 개인적으로는 확신한다. 왜냐면 그걸 잊는다면 나처럼 응당 있어야 할, 곱씹어볼 기억 자체가 없는 허전함을 절절히 느낄테니까.
5.
상기한 이유로 글이든 영상이든 사진이든 어떤 형태로든지 기록이라는 행위를 할 때면, 와중에 가벼운 딜레마가 계속 내게 엄습한다.
지금 기록하는 건 후일의 나에게 어떻게 여겨질까? 잘 숙성되는 걸까? 아니면 실패작 취급받고 버려지고, 또 폐기한 걸 후회하는 연속일까?
와인에 빗댄 김에 더 해보자면, 미래의 상품가치를 가늠할 수 없기에 나는 갈등한다. 기록해봐야 어차피 버려질 것인지, 살아남아 내게 소소한
기쁨을 선사해 줄 것일지. 그냥 모조리 지우지 말고 냅두면 되지 않냐고 물을 법도 하다. 실제로 그게 합리적이고 나 또한 조선시대 사관처럼
대쪽같이 모든 것을 기록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순간의 감정이라는 게 너무도 무서운 녀석이라, 한 번 발동하면 이미 행동으로 옮겨져 있다.
이성이 집으로 돌아오면 모든 상황은 종료가 되어 있고, 감정에 의한 검열이 한 차례 이뤄져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감정이 후회를 하겠지.
6.
마이피에 글을 남길 때 조차, 내 가치관을 담은 댓글을 남길 때 조차 이런 고민을 하는 내가 정상인가 싶다.
어쩌면 추억이라는 것에 미련을 둔 많은 이들이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할 지도 모른다. 좌절은 이르다.
내가 지금 남기는 기록이 후일 어떤 의미로 내게 다가올 것일까?
피식 웃으며 감상할 수 있는 한 때의 재기발랄함일까, 혹은 도저히 눈 뜨고 못 볼 중2병의 치기일까.
내 자신이 몸만 아니라 마음까지 성숙해진다면 먼 훗날 모든 사건의 민낯을 웃으면서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이불킥과 허전함의 간극을 없애고, 그저 충실히 현재를 파종하여 기꺼이 추억 수확을 기다리는 여유로운 멘탈을 가질 수 있으면 하는 소소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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