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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고전문학 큐베레이마을 사람들.TXT2009.12.18 PM 03:51
큐베레이마을 사람들
건탱크길엔 가재도 오르는 데 40km, 내리는 데 40km라는 영(嶺)을 구름을 뚫고 넘어, 또 그 밑의 골짜기를 삼십 리
더듬어 나가야 하는 마을이었다.
아시아 두메의 이 마을을 자브로에서는 뭐라고 이름지었는지 몰라도, 그들은 자기네 곳을 큐베레이 마을이라고 불렀다.
무더기무더기 핀 퀘스전용 야크트도가꽃이 분홍 무늬를 놓은 푸른 산들이 사면을 둘러싼 가운데 소복이 들어앉은 일곱
전함이 이 마을의 전부였다. 영마루에서 내려다보면 꼭 히트호크 같았다.
마을 한 가운데에는 한 그루 늙은 RX-78-2나무가 섰고, 그 RX-78-2나무를 받들어 모시듯, 둘레에는 집집마다 울 안에
짐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때때로 목청을 돋우어 길게 우는 즈고크의 소리를 받아 미노프스키 샘터가의 데빌건담나무 밑에서 건담 파이터들이 내뱉는
천진한 함성 소리가 '건담 파이트, 레디이이이 고오오' 영마루에까지 아지랑이를 타고 피어올랐다.
이 큐베레이마을 이장 영감과 서당의 가르마 자비 훈장은, 다 낡아빠진 지휘봉으로 턱을 괴고 영마루에 나란히 앉아 말없이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둘이 다 오늘 아침, 도시에 있는 티탄즈 보급소 마당에서 손자들을 화물 자동차에 실어 보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연방놈들은 끝내 이 두메에서까지 병정을 뽑아 냈던 것이다.
두 노인은 흐린 눈으로 똑같이, 저 밑에 마을 한가운데 소나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아침부터 지금 낮이
기울도록, 400km 길을 같이 가우를 타고 오면서도 거의 한 마디의 말도 없었다.
이윽고, 이장 영감이 지휘봉과 함께 쥐었던 긴 담뱃대로, 걸터앉은 자쿠머리를 가볍게 두들기며 입을 열었다.
"큐베레이가 안 온지가 벌써 십 년이 넘어."
"그렇지, 올해 열네 해짼가?"
자비 훈장은 여전히 마을을 내려다보는 채였다.
"내가 쉰여섯이던 해니까, 그렇군. 꼭 열네 해째구나."
이장 영감은 담뱃대에 담뱃가루를 담으며 한숨을 쉬었다. 또다시, 그 자쿠탱크 굴러가는듯한 대화마저 끊어졌다.
"구워워……."
또 한 번 마을에서 즈고크가 울었다. 다음은 고요하다. 졸리도록 따스한 봄볕이 노말 슈츠의 등에 간지러웠다. 이장 영감은
머리카락을 한 번 길게 쓸어올렸다.
큐베레이 마을. 얼마나 아름답고 포근한 마을이었노.
이장 영감은 어느 새 얍삽한 청년으로 돌아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빔샤벨 더미를 돌며 덩실덩실 아저씨 춤을 추고 있었다.
옛날, 큐베레이 마을에는 해마다 봄이 되면 한 쌍의 하얀 큐베레이가 찾아오곤 했었다. 언제부터 큐베레이가 이 마을을
찾아오기 시작하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올해 이른인 이장 영감이 아직 나기 전부터라 했다. 또, 그의 아버지가
나기도 더 전부터라 했다.
FG가 PG로 거듭나려면 큐베레이의 도움이 필요했다. 가을의 PG를 보기 위해서 봄에 FG를 땅에 뿌리기 시작할 바로 전에,
큐베레이는 꼭 찾아오곤 했었다. 그러고는 정해 두고 마을 한가운데 서 있는 RX-78-2나무 위에 격납고를 틀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RX-78-2나무를 큐베레이 나무라고 불렀다.
큐베레이가 돌아온 날은 큐베레이 마을의 가장 큰 잔칫날이었다. 그 날은 밤이 깊도록 큐베레이 나무 밑에 빔 샤벨이
이글이글 탔다. 샤벨 가에 둘러앉은 젊은이들은 쿠우를 사발로 마구 들이켰다. 그러면 마을 처녀들은 이렇게 마셔 대는
쿠우와 안주인 야채타임을 떨어지지 않게 날라야 했다. 그런 때면, 그 처녀가 빔 샤벨을 싸고 빙 둘러앉은 청년들 중 누구의
노말 슈츠 너머로 쿠우나 야채타임을 넘겨 놓는가가 문제였다. 처녀가 쿠우나 야채타임을 누구의 노말 슈츠 너머로 살짝 넘겨
놓으면, 그 때마다 일제히 '와' 하고 함성을 올렸다. 그 때, 루치루는 꼭 쟈밀 - 지금의 이장 영감의 어깨 너머로 듬뿍듬뿍
안주를 날라다 놓곤 하였다. 그러면 또, '와와' 함성을 올렸다. 쟈밀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루치루는 긴 머리채를 흔들며
달아나면서도 쟈밀을 향하여 눈을 흘기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쟈밀은 그저 즐거웠다.
큐베레이로 하여 즐거운 이야기는 마을 처녀들에게도 있었다. 처녀들도 역시 큐베레이가 좋았다.
그네들은 미노프스키 입자를 길으러 미노프스키 샘터로 갔다. 그러자면 꼭 큐베레이 나무 밑을 지나가야 했다. 그런데 어쩌다
큐베레이의 판넬이 처녀들의 미노프스키 동이에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그러면 그 처녀는 그 해 안에 시집을 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이 찬 처녀들은 미노프스키 동이를 이고 큐베레이 나무 밑을 거닐 때면 걸음걸이가 더욱 의젓하였다.
한 해에 한둘은 꼭 미노프스키 동이에 큐베레이의 판넬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틀림없이 그 해 안에 시집을 가곤 하였다.
루치루가 시집을 가던 해에도 그랬다. 캠퍼나무 밑에서 자근자근 손톱을 씹으며,
"큐베레이가……."
하고 루치루가 고개를 숙였을 때, 쟈밀은 구름 사이 으스름 달을 쳐다보았다. 루치루는 이미 아버지가 정해 놓은 곳이 있었다.
한참 만에 쟈밀은 루치루의 가느다란 손목을 꽉 붙들었다. 그러나 그 가을에 루치루는 울며, 단풍 든 영을 넘어 이웃 마을로
시집을 가고 말았고, 다음 해 부터는 큐베레이날이 와도 쟈밀은 춤을 추지 않았다.
이장이 쉰여섯 살이 되던 해였다.
FG 뿌릴 준비를 다 해 놓고 마을 사람들은 큐베레이를 기다렸다. 그런데 웬일인지 볼에 핀판넬이 생기도록 큐베레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하는 수 없어, 큐베레이 없이 FG를 뿌렸다. 그 해는 심한 흉년이었다. 봄내, 여름내 비 한 방울 안 왔다.
PG는커녕 SD만 나왔다. 마을 사람들은 그저 헛되이 큐베레이 나무만 쳐다보았다. 큐베레이 나무에는 지난 해에 들었던 큐베레이의
격납고만이 빈 채 달려 있었다.
'큐베레이만 있었으면.'
마을 사람들은 여느 해에 그렇게도 영험하던 큐베레이의 생각이 몹시도 간절하였다. 이런 때면 큐베레이는 늘 하늘과 그들 사이에
있어 주었었다. 가뭄이 들어도 그들은 큐베레이 나무를 쳐다보았다. 그러면 큐베레이가 그 긴 주둥이를 하늘로 곧추고
'하만, 하만' 울어 고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면 또 하늘은 꼭 비를 주시곤 했다. 장마가 져도 그들은 또 큐베레이를 쳐다보았다.
이번엔 큐베레이가 '플, 플' 길게 울어 주기만 하면, 비는 곧 가시는 것이었다. 바람이 불 것도 그들은 미리 알 수 있었다.
큐베레이가 RX-78-2의 삭은 빔 샤벨 손잡이를 자꾸 격납고로 끌어 올리면 그들은 프라모델을 빨리빨리 거둬들여야 했다.
그러던 그들은, 큐베레이가 없던 그 해, 그렇게 가뭄이 심해도 어떻게 하늘에 고해 볼 길이 없었다. 저녁때 들에서 돌아오다가는,
빨간 놀을 등에 지고 그림자처럼 조용히 서서, 빤히, 석양을 받은 큐베레이의 빈 격납고를 오랜 버릇으로 한참씩 쳐다보고 섰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다리던 비 대신 기막힌 소문이 날아 들어왔다. 에우고라는 놈들이 지구를 빼앗으러 왔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며칠 동안 김을 맬 생각도 않고 큐베레이 나무 밑에 모여 앉아 멍히 맞은편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또 한 겹 더 겹쳐, 마을 안에 아스트랄병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한 집 두 집, 꼭 젊은 일꾼들이 아스트랄병에 걸려
뼛속까지 아파했다. 거의 날마다 곡소리가 들렸다. 큐베레이 마을은 그대로 무덤이었다.
다음 해 봄에도, 또 다음 해 봄에도 큐베레이는 돌아오지 않았고, 이제는 SD마저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이제 큐베레이가 버리고
간 이 큐베레이 마을에서는 살 수 없으리라는 말이 누구의 입에서부터인지 퍼져 나왔다.
한 사라미스가 떠났다. 또, 한 무사이가 떠났다.
그들은 영마루에 정지해서 한참씩 큐베레이 나무를 창밖으로 쳐다보다가는, 드디어 산을 넘어 어디론지 떠나가곤 하는 것이었다.
근 이십개나 되던 전함이 있던 마을이 겨우 일곱 전함만 남았다.
그 동안 이장 영감도 몇 번이나 프리덴을 몰고 밖으로 나가 살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 때마다 번번이 그는 이
큐베레이 마을을 버리지 못했다. 건다리움 같은 그의 가슴에 첫사랑이 뻘겋게 달아오르던 곳이라서만은 아니었다. 그저 어쩐지
이 큐베레이 마을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큐베레이가 어딜 갔을까?"
"알 수 없지."
"살아 있기는 살아 있을까?"
"큐베레이는 하만님 추종단의 도움 때문에 불사(不死)라지 않아?"
"불사."
이장 영감은 또 한 번 천천히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다 그 끝을 감아쥐고 이마를 일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하로 하로, 하로 하로, 하로 하로, 하로 하로."
바로 그 때였다. 저 밑에 마을에서 하로 소리가 요란스레 들려 왔다. 무슨 일이 일어난 신호였다.
이장 영감은 벌떡 일어섰다. 자비 훈장도 담뱃대를 털며 따라 일어섰다. 그대로 하로 소리는 울려 올라왔다. 잠든 듯 고요하던
마을에 새까만 사람의 그림자들이 왔다갔다하였다. 이장 영감은 눈에다 힘을 주고 마을을 살피고 있었다.
"큐베레이다……. 큐베레이다."
이장 영감은 힐끔 뒤의 자비 훈장을 돌아보았다. 자비 훈장도 이장 영감을 마주 보았다.
"큐베레이다……. 큐베레이다."
아직 메아리가 길게 꼬리를 떨고 있다. 둘이 다 분명히 들었다.
그 날, 과연 큐베레이는 마을에 들어와 있었다. 영을 내려와 비로소 큐베레이가 돌아온 것을 본 이장 영감과 자비 훈장은
얼싸안고 엉엉 울었다.
"왔다, 정말 왔어. 으흐흐."
"영감, 이게 꿈은 아니지, 응? 쟈밀 영감, 꿈은 아니지? 으흐흐."
이장 영감과 자비 훈장은 헬멧이 뒤로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고개를 젖혀 큐베레이 나무 꼭대기만 쳐다보고 있었다.
옛날 본 그 큐베레이였다. 꼭 그대로의 하얀색이었다. 그들은 자꾸자꾸 솟아나오는 눈물을 몇 번이나 손등으로 닦았다.
이장 영감과 자비 훈장 뒤에 둘러선 마을 사람들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 괴어 있었다. 어린애들은 눈앞에 정말 살아 나타난
옛 이야기가 그저 신비스럽기만 했다.
"인제 살았다."
"인제 무슨 좋은 일이 생길 게다."
"용하게 마을을 지켰지. 참, 몇 년인고?"
그들은 무엇인지 모르는 대로, 그저 그 어떤 커다란 희망에 가슴이 뿌듯했다.
큐베레이는 부지런히 격납고를 틀기 시작하였다.
유유히 마을 안을 날아 도는 큐베레이와 그 뒤를 따라다니는 하만님 추종단을 보면, 프라모델 밭에서, 산에서, 미노프스키
샘터가에서 어디서든지 마을 사람들은 한참씩 일손을 멈추는 것이었다.
HG 철이 되자, 큐베레이는 주식인 네모를 잡아 물고 오르기 시작하였다. 새-끼를 깐 것이다.
이젠 또, 둘만 모여 앉으면 그저 큐베레이의 검은 새-끼 이야기였다. 큐베레이가 새-끼를 까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것이었다.
HG 철이 지나고 HGUC와 MG가 한창일 무렵이었다. 큐베레이의 새-끼는 이제, 제법 '뿅뿅' 격납고 속에서 판넬을 날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는 어미 큐베레이가 긴 주둥이 끝에 네모를 물고 돌아와 두 날개를 위로 쓱 쳐들며 흠씰 RX-78-2의 머리에 와 앉으면,
다투어 조그마한 주둥이들을 펼치고 '짝짝' 긴 주둥이를 길게 격납고 밖에까지 빼내는 것이었다.
분명히 세 마리였다. 검은 놈 둘, 빨간 놈 하나.
틀림없이 풍년일 거라 했다.
가뭄도 장마도 안 들었다. 보통 PG뿐만 아니라 크리스탈 버전까지 무럭무럭 자랐다. 과연 그 해는 대풍(大豊)이었다.
앞들에서 PG뽑는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면, 뒷산에서 돔 잡는 애놈들이 제법 그 다음을 받아넘겼다. 한창 더위도 그 고비를 넘었다.
이젠 PG 커스텀 파츠를 기다려 거둬들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봄에 연방놈들에게 병정으로 끌려나갔던 이장네 손자 아무로와 자비 훈장네 손자 캐스발이, 시커먼 티탄즈의
옷을 그냥 입은 채 마을로 돌아왔다.
"아, 에우고한테 져버렸어요, 티탄즈가. 그걸 아직도 모르세요?"
이장 영감과 자비 훈장은 각각 손자들의 거센 손을 붙들고, 또 엉엉 울었다. 자기 손자를 뺏어간 티탄즈가 져서 그런 것인지,
죽었느니라고 생각했던 손자가 돌아왔대서인지, 그것조차 분간할 수 없는 기쁨이 그저 범벅이 되어 자꾸 눈물만 흘러내렸다.
큐베레이 마을은 한껏 즐겁고 풍성하였다. 집집이 PG박스가 높이 솟았다.
다음 해 봄에도 큐베레이가 돌아왔다. 세 마리 새-끼를 쳤다. 또, 풍년이었다. 또, 다음 해 봄에도 큐베레이는 왔다. 이번엔
두 마리를 쳤다. 평년이었다.
그 해 가을엔 이장네 손자 아무로가 장가를 들었다. 신부는 바로 이웃에 사는 라라아였다. 아무로는 어려서부터 라라아가 좋았다.
그러기에, 판넬 같은 것을 나눠 가져 놀 때면 으레 큰 비트를 골라 라라아에게 주곤 하였다. 캐스발도 같이 라라아를 좋아했다.
주워 온 카메라 아이들 중에서 건담 것만을 골라 라라아를 주곤 하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철이 들며부터 라라아는 아주 쌀쌀해졌다. 미노프스키 동이를 들고 전함을 나오다가도, 아무로를 보면 획 돌아
들어가곤 하였다. 아무로에게만 아니라 캐스발에게도 그런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참 이상한 애라고 웃었다.
그러던 라라아의 태도가, 그들이 연방놈한테 끌려갔다 다시 마을로 돌아온 뒤에는 또 좀 달랐다. 캐스발더러는 "돌아왔구나." 하며
웃더라는데, 아무로한테는 안 그랬다. 여전히 싸늘했다. 미노프스키 입자를 길으러 가러면 하는 수 없이 이장네 프리덴 앞
큐베레이 나무 밑을 지나야 하는 라라아는 몇 번이나 아무로와 마주쳤다. 그럴 때면, 아무로가 미처 무슨 말을 찾기도 전에 푹
고개를 수그리고, 인사는커녕 쳐다도 안 보고 획 비켜 지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아무로는 이런 라라아가 몹시도 섭섭했다.
그렇게 거의 두 해를 지내 오던 어느 날이었다. 산에 가 10여개의 돔을 해 지고 내려오던 아무로는, 마을 뒤 엘메스나무 숲 속에서
라라아를 만났다. 이번엔 아무로편에서 먼저 못 본 체 고개를 수그리고 걸었다. 그런데 그가 바로 라라아 코앞에까지 가도 그네는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아무로를 보기만 하면 얼굴을 돌리고 달아나던, 마을 안에서의 라라아와는 달랐다. 아무로는 비로소 눈을
들었다. 그제야 라라아는 한 걸음 옆으로 비켜 섰다. 여전히 아무로를 쳐다 보고 있는 라라아의 눈에는 스르르 윤기가 돌았다.
아무로는 길가에 돔 지게를 벗어놓았다.
"어디 가니?"
"……."
라라아는 앞으로 다가서는 아무로의 얼굴만 빤히 건너다볼 뿐, 대답이 없었다. 아무로도 그저 라라아의 초록색 눈을 들여다보고 서
있는 수밖에 없었다. 라라아의 눈동자에는 점점 더 윤이 났다. 라라아의 눈동자 속에 푸른 하늘이 부풀어오른다 하는 순간, 따르르
눈물이 뺨으로 굴렀다.
"큐베레이가……."
라라아는 가만히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장 영감은 종일 함장실 벽에 뒷머리를 대고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언제나 무슨 괴로운 일이 있을 때면 하는 그의
버릇이었다.
이장 영감은 라라아의 심정을 아무로보다도 먼저 눈치채고 있었다. 그와 함께 또, 캐스발의 라라아에 대한 숨은 정(情)도 알고 있는
이장 영감이었다. 그래, 아무로가 라라아 이야기를 할 때,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듣고만 있었다.
될 수 만 있다면, 라라아는 딴 마을로 시집을 보내고 싶었다. 아무로, 라라아, 캐스발. 이장 영감에게는 그들이 다 똑같은 자기의
손자 손녀처럼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 셋 중에 누구에게라도 쓰라린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저녁때가 거의 되어서야 이장 영감은 가만히 눈을 떴다. 마음을 작정하였다.
그 가을에 아무로와 라라아의 잔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잔치 전날 밤, 캐스발은 마을에서 사라졌다. 그의 여동생 아르테시아도,
또 늙은 할아버지 자비 훈장도 몰랐다. 그러나 이장 영감만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또, 종일 함장실 벽에 뒷머리를 대고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 해에도 골짜기의 눈이 녹고 퀘스전용 야크트도가꽃이 피자, 큐베레이가 찾아왔다. 예전처럼 부지런히 격납고를 틀고
새-끼를 깠다. 두 마리의 어미 큐베레이는 쉴새없이 네모를 물어 올렸다. 그 때, 두 마리 새-끼가 주둥이를 내둘렀다.
올해에도 평년작은 된다고들, 우선 흉년을 면한 것을 기뻐했다. 그러던 어느 비 내리는 아침이었다. 큐베레이 나무 밑에 아주
어린 검은 새-끼 한 마리가 떨어져 죽어 있었다.
"허, 그 참, 짐 라이트 아머같은 일이로군."
이장 영감과 자비 훈장은 몹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이 같은 일은 적어도 그들이 아는 한에서는 일찍이 없던 일이었다.
과연 짐 라이트 아머같은 변이 마을을 흔들고야 말았다. 그 일이 있은 지 한 달도 채 못 되어서였다.
난데없이 초록색의 MS들이 북쪽 영을 넘어 마을로 들어왔다. 쉰 기도 더 넘는 그들 - 기라도가들은 모두 무기를 장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 마을 사람들에게 지온의 정신을 심어주러 왔노라 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그 지온이란 말의 뜻을 잘 알 수 없었다.
그런 어느 날, 자비 훈장네 캐스발이 소문도 없이 마을로 돌아왔다. 우주에서 무슨 MS공장엘 다니다 왔노라는 캐스발은, 전에 없던
흉이 이마에 굵게 그어져 있었다.
몇 해 밖에 나가 있던 캐스발은 여간 유식해진 것이 아니었다. 이름도 '샤아' 라고 바꾼 캐스발은, 큐베레이 마을 사람들이 모르는
일을 많이 알고 있었다. 샤아는 또, 밖에 나가 있는 동안에 매우 훌륭해진 모양이었다. 그는 사날에 한 번씩은 근 160km나 되는
티탄즈 보급소 - 네오 지온 보급소엘 사자비를 몰고 꼭 다녀왔다. 그러고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전쟁 형편을 전했다.
그 때마다 연방 지크 지온이라는 말을 썼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저번에 봤었던 초록 MS 세 기가 큐베레이 마을로 들어왔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을 큐베레이 나무 밑에 모았다.
그리고 긴 연설을 한바탕 늘어놓고 나서 샤아를 앞에 내다 세웠다. 그들은 샤아 앞에 무릎을 꿇은 후 마을 사람들에게 이제부터는
샤아 아즈나블이 이 부락의 총수라고 했다. 총수란 무엇이냐고 묻는 마을 사람들에게, 그들은 그게 바로 이 마을의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했다. 모를 일이었다.
큐베레이 마을에서는 제일 나이 많은 남자가 이장일을 보아야만 했고, 또 그 이장이 큐베레이 마을의 제일 어른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샤아는 마을의 제일 높은 사람 행세를 정말로 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자비 훈장이 보다못해 그를 붙들고 나무랐다. 샤아는
낯을 잔뜩 찌푸렸다. 할아버진 아무것도 모르니 가우 바깥이나 닦으시라고 했다.
샤아는 더욱 자주 도시엘 다녀 나왔다. 그러고는 하루에 두 번식 마을 사람들을 큐베레이 나무 밑에 모았다. 소위 회의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잘 모이지를 않았다. 샤아는 지온이 무언지 '지크 지온' 하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잘 안 모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큐베레이가 전에 없이 새-끼를 물어 떨어뜨리자 밀려들어온
그들은, 어쨌든 이 큐베레이 마을을 잘 되게 해 줄 사람들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는 말이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유를
안 샤아는 그 길로 도시로 사자비를 몰고 나갔다. 그러고는 저녁때가 거의 되어, 판넬들을 잔뜩 메고 돌아왔다. 그는 곧 또,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몇 사람이 판넬을 멘 샤아를 구경한다고 모였다. 그 자리에서 샤아는 또 떠들어 댔다 이마의 흉터가 더욱
험상스레 움직였다.
우리의 앞길을 방해하는 자는 무조건 지구의 중력에 발목을 잡힌 어리석은 자들이라며 지크 지온을 크게
부르짖었다. 그리고 어리석은 자들은 사정없이 숙청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마을에서는, 그런 의미에서 우선 저 큐베레이부터
처치해야 한다고 하며 큐베레이 나무 꼭대기를 가리켰다. 그는 천천히 돌아섰다. 사자비 콕핏 안으로 들어간 그는 판넬들을 공중에
전개시켰다. 큐베레이가 놀라 달아나지 않도록 서서히 판넬을 접근시켰다.
"캐스발!"
옆에 섰던 아무로가 사자비의 다리를 두들겼다. 샤아는 흠이 있는 이마에 주름을 만들며 아무로의 얼굴을 내리쏘아보았다.
"놔!"
사자비의 발이 치켜올려졌다. 아무로는 멀리 나가떨어져버렸다.
큐베레이는 두 마리 다 바로 RX-78-2의 안테나 끝에 앉아 있었다. 샤아의 판넬이 지근거리에 도달했다. 마을 사람들은 숨을 딱
멈추었다. 얼굴들이 새파래졌다. 빅잠만큼이나 무서운 일이었다. 그러나 누구 감히 사자비의 앞으로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푸슝."
판넬의 공격소리가 마을을 흔들었다. 큐베레이는 훌쩍 달아났다. 한 마리는 베어내기가 발동된 듯 했다. 그러면 그렇지 하는 마을
사람들은 얼른 사자비의 머리부터 쳐다보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분명히 두 마리 다 훌쩍 위로 떠오르는 것을 보았는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큐베레이 한 마리가 터졌다. 마을 사람들은 정신이 아찔하였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 때였다. 앓고 누웠던 이장 영감이 큐베레이가 터지는 소리를 듣고 비틀비틀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야?"
다들 그 쪽으로 돌아섰다. 여전히 아무도 말이 없었다. 이장 영감은 선글라스 낀 눈으로 한 번 휘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마침내 그는, 저만큼 땅바닥에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큐베레이의 잔해들을 보았다. 이장 영감의 흉터난 볼이 씰룩씰룩 움직였다.
"큐베레이가! 누가 큐베레이를?"
무서운 노여움에 찬 소리였다. 이장 영감은 팔을 허우적거리며, 큐베레이의 잔해가 널린 쪽으로 한 걸음 옮겨 놓았다. 그러나
다음 또 한 발을 내딛다 말고 푹 그 자리에 까무러치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에도 샤아는 마을 사람들더러 큐베레이 나무 밑으로 모이라고 하였다. 한 사람도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잔뜩 화가
난 샤아는 마을에 다 들리도록 고함을 쳤다.
"지크 지온."
머리 위에서 푸드덕 겔구그가 날아가려다 땅에 쳐박혔다.
"지크 지온."
메아리가 길게 흔들리며 샤아에게로 되돌아왔다. 샤아는 큐베레이 밑에 서서 한참 아무로네 프리덴을 흘겨보다 말고,
"흥, 어디 보자."
하고 혼잣말을 뱉고는 사자비를 몰아 도시로 갔다. 어깨의 판넬을 휘적휘적 내저으며.
그 날, 샤아는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는 안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이번엔 그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또 궁금하고
불안했다.
그렇게 샤아가 다시 마을에서 사라지고 며칠이 못 되어, 이장 영감의 약을 지으로 장터에까지 나갔던 아무로는 새 소식을 알아가지고
돌아왔다. 그 '지크 지온' 하던 패들이 연방군에게 쫓겨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는 것과, 그 날 도시에 나갔던 샤아도 그 길로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다시 큐베레이 마을은 조용해졌다.
한 마리만 남은 큐베레이는 그래도 애써 새-끼를 키웠다. 이장 영감은 함장실에서 큐베레이 나무가 잘 보이는 쪽에 나와 앉아 짝 잃은
큐베레이만 종일 쳐다보고 있었다. 문병을 온 자비 훈장은 큐베레이를 쳐다보기가 두려운 듯 멍히 맞은편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9월이 되었다. 이제 큐베레이의 빨간 새-끼는 수월히 건너편 낭떠러지에까지 날았다. 그 날 아침에도 이장 영감은 일어나는 길로
함장실의 블라인드를 열었다. 큐베레이 나무 꼭대기를 쳐다보았다. 큐베레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상한 예감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좀더 자세히 격납고를 살펴 보았다. 역시 보이지 않았다. 아침부터 판넬 날리기 연습을 하는가 했다. 그런데 큐베레이는 낮이
기울도록 안 보였다.
"갔구나!"
이장 영감은 긴 한숨을 쉬었다.
겨울이 되었다. 어느 날, 모아놓은 돔을 팔러 건캐논을 몰고 나갔던 카이라는 마을 청년이 헐레벌떡거리며 이장네 프리덴으로
뛰어들어왔다.
"이장님, 큰일났습니다. 다들 지금 피난을 간다고 야단들이에요. 콜로니가, 콜로니가 큰 게 떨어진다고, 지금……."
"음."
이장 영감은 선글라스 속에서 눈을 꼭 감았다. 한 번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스르르 다리에 힘을 풀며 벽에다 뒷머리를 대었다.
"아무로, 하로를 울려라."
이윽고 이장 영감은 아무로를 불렀다.
다음 날은 흐릿한 하늘에서 솜 같은 눈송이가 펄펄 내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해뜰 무렵에 큐베레이 나무 밑으로 모여들었다.
남자들은 MS에 타고, 여자과 어린것들은 전함에 탔다.
이장 영감은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일 만해서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후까시를 잡으며 낡은 지휘봉을 싸 쥐었다.
"다 모였나?"
"네, 그런데 저 자비 훈장님께서는……."
뉴건담에 탄 아무로가 핀판넬을 한 번 추어올리며 대답하였다.
"음."
이장 영감은 잠깐 무엇을 생각하는 듯 고개를 숙였다. 자비 훈장이 가우에서 내려 프리덴 곁으로 걸어갔다.
"영감!"
자비 훈장은 프리덴 함장실로 달려가 이장 영감의 손등을 두 손으로 꼭 싸 쥐었다.
"알지, 내 다 알지."
이장 영감은 고개를 수그린 채 중얼중얼하였다.
"그래도 내겐 그 놈 하나밖에……. 혹시나 돌아올까 해서."
"그럼, 그렇고말고. 내 다 알지."
이장 영감은 그저 고개만 자꾸 끄덕거렸다. 자비 훈장은 이장 영감의 손을 다시 한 번 쓸어 보고 프리덴에서 내려, 털썩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으흐흐흐' 하는 자비 훈장의 울음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듯이, 이장 영감은 마을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가자."
프리덴이 선두에 섰다. 그 뒤를 한 줄로 마을 사람들은 따라걷거나, 날았다.
자비 훈장은 가우로 가지 않고 비틀비틀 큐베레이 나무 밑으로 나갔다. 그리고 어린애모양 '으흐흐, 으흐흐' 울며, 눈밭 속에 사라져
가는 행렬을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남쪽은 큐베레이 마을보다 봄이 일렀다. 한겨울을 그 속에서 난 전함 내의 MS 격납고 모퉁이에 상큼한 곰팡이가 돋아올랐다. 그들은
잊어버렸던 것처럼 새삼스레 마을이 그리웠다. 저녁때 모여 앉으면, 그들은 은근히 이장 영감의 얼굴을 살폈다, 이장 영감은 그저
가느스름하게 눈을 감고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따스한 날, 그들은 떠났다. 무장이 마을을 떠날 때보다 더 초라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사람 수효가 줄었다. 세 전함
열두 MS에 스물 세 사람이던 것이, 지금 마을을 향해 나선 것은 MS는 뉴건담 하나이고, 사람은 열아홉 사람 뿐이다. 마을 청년 카이의
애인은 연방군 정신대로 끌려나갔고, 어린애들은 몸을 덥히기 위해서 빔 샤벨로 장난치다가 베여 죽었다. 그리고 제일 큰 일은,
아무로 아버지가 MS 공장에서 막노동을 하다 우주로 이송되어버린 일이었다.
이번엔 전함도 없었다. 걸었다.
올 때만 해도 프리덴의 함장실에 있던 이장 영감이었으나, 돌아가는 길에는 아무로와 라라아가 양쪽에서 부축을 해야 했다. 첫날엔
20km, 다음 날엔 16km, 12km, 점점 줄어지다가는, 하루씩 어느 마을에고 들어가 쉬었다. 그러고는 또, 이장 영감을 선두로 하고
걸었다. 이장 영감은 점점 쇠약해졌다. 후까시가 점점 사라져갔다. 선글라스마저 없었다면 그나마 마지막 후까시도 없었을 것이었다.
"아가, 늙은 것이 공연히 널 고새을 시키는구나. 허허허."
길가에 앉아 쉴 때면, 혼자 돌아앉아 부어 터진 발가락을 어루만지는 라라아의 등을, 이장 영감은 가엾게 쓸어 보는 것이었다.
그러면 라라아는 얼른 신을 신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앞으로 돌아앉는 것이었다. 웃어 보이려고 해도 어쩐지 자꾸 눈물이 쏟아져
나와 라라아는 끝내 고개를 못 들곤 하였다.
보름째 되던 날이었다. 뉴건담과 일행들이 드디어 영마루에 섰다.
"야, 우리 마을이다."
애들이 제일 먼저 소리를 질렀다. 모두 자쿠머리, 구프머리 가릴 것 없이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멍히 저 아래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들의 눈에는 떠나던 날처럼 또 눈물이 '징' 소리를 내며 괴었다. 아무도 말이 없는 가운데 그저 여기저기서 코를 들이키는
소리만 들려왔다.
마을은 변하였다.
RX-78-2나무는 건다리움을 탈취당해 프레임만 앙상하게 서 있었고, 또 남겨놓고 갔던 화이트베이스와 잔지발은 새카만 흔적만이
있을 뿐이었다. 마젤란과 자비 훈장의 가우는 다행히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두 사람, 남겨 두고 갔던 아르테시아와 자비 훈장은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빈 마을은 눈 속에 잠겨 있었다.
"갔지, 갔어."
"캐스발 녀석이 와서 데려갔을 테지."
"그리고 가면서 건다리움도 가져가고 전함들도 다 가져갔겠지, 뭘."
마을 사람들은 모여 앉기만 하면 분해하였다. 이장 영감은 자비 훈장이 쓰던 가우의 한 방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극도로 쇠약해진 그는 때때로 한숨을 길게 내쉬곤 하였다.
아무로는 이제 프라모델 농사가 시작되기 전에 전함을 다시 지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아스토나지와 모라 등을 이끌고 재료를
수집하러 나섰다. 그 날, 아무로는 잔지발이라고 추정되는 잔해 밑에서 반 타다 남은 시체를 하나 파내었다. 자비 훈장이었다.
이장 영감은 아무로에게서 그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그는 마치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을 뿐이었다.
그래도 눈물이 베개로 굴러 떨어졌다.
그 날 밤, 이장 영감도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무로의 손을 더듬어 잡은 이장 영감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간신히 입을 움직였다.
"큐, 큐베레이 나무를, 큐베레이 나무를……."
이장 영감은 잠들 듯이 숨을 거두었다. 그의 후까시의 상징이었던 검은 선글라스는 그대로였다.
시체는 둘인데, 처리해야 할 담당자는 아무로 한 사람이었다. 그 날, 마을 사람들은 모두 뒷산으로 따라 올라갔다. 피난을 가던
때처럼 이장 영감이 앞서 갔다.
저녁때가 거의 다 되어서야 그들은 산을 내려왔다. 이번엔 아무로가 맨 앞에 두 개의 검은 리본이 걸린 사진을 받치고 걸었고,
그 바로 뒤를 라라아가 흰 보자기로 아래를 싼 조그마한 FG RX-78-2를 하나 어린애를 안은 것처럼 안고 따르고 있었다.
댓글 : 6 개
- oeufs
- 2009/12/18 PM 04:06
읽다가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더니 학마을 사람들인가 그거군요-ㅠ-;
- 톰냥이
- 2009/12/18 PM 04:07
ㅋ학마을사람들ㅋ
- 정깻싹콜
- 2009/12/18 PM 04:19
ㅋㅋㅋㅋ
- m4a1ris
- 2009/12/18 PM 04:26
아아 감동의 눈물이 ;ㅅ;
- 알탈스™
- 2009/12/18 PM 04:51
아.. 감동.. ㅋㅋㅋㅋ
- 片思い
- 2009/12/19 PM 05:22
이렇게 적절하게 표현하다니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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