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1. 그림자 경주 (4)2014.10.09 PM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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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트리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자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그가 지금 묘령의 여성에게 안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굴이 새빨게지고 말았다.



“엄…… 누나, 이만 내려주세요.”



리타는 어린아이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살며시 디트리히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드래곤 라자가 나오다 삼킨 말이 무엇인지 알아챘기에, 리타와 그를 크게 뜬 눈으로 번갈아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리타는 그들의 시선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으며, 디트리히도 더 이상 붉게 변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을 물들이고 있었다. 수증기가 날것만 같은 얼굴에, 간신히 동료들에게서 풀려난 샌슨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할슈타일공. 따라오시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디트리히는 샌슨이 경비대장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어설프게 웃었다.



“저 노랫소리도 들리고 웃음소리도 들려서…… 별로 위험할 거 같지 않더군요. 오는 길에 이분께 도움……도 받았고요.”



어린 드래곤 라자의 말에 ‘이분’은 어깨만 으쓱했다. 샌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그랬겠군요. 리타, 할슈타일공을 모셔와 줘서 고마워. 자자! 후치와 제미니는 돌아가거라!”



샌슨의 말에 후치는 엉거주춤하게 몸을 돌렸고 후치의 노래를 끝까지 듣지 못하게 된 병사들은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 때 제미니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런데 이 밤중에 여기서 뭐하세요? 언니는 또 어쩌다가?”



리타는 그녀를 올려다보는 디트리히에게 미소를 지어주고 있다가 제미니의 말에 시선을 돌렸다. 샌슨은 제미니의 말에 퍼뜩 자신들의 목적을 생각해 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두 가지 궁금증 중에서 자신들이 해답을 모르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다.



“응, 아참! 리타, 네가 좀 도와줘야겠다.”



“민트 말이네.”



“어? 이미 할슈타일공에게 들었나 보네. 그래, 우리는 지금 민트를 찾으러 나온 거야. 밤중에 갑자기 찾으려니 너무 힘들어.”



“아니, 민트를 뭐 하러? 아! 이 냄새는 민트향이었구나.”



제미니의 말에 후치도 퍼뜩 깨달은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어떻게 해야 사람의 몸에서 이정도로 민트향이 나는지 의문이 들었다. 매일 같이 민트를 접하는 영주라 하더라도 이정도로 향이 나진 않을 거다.



헬턴트의 영주는 맛없는 고기를 먹기 위해 향신료로 민트를 쓴다. 객관적으로 말해 돈이 없다. 거기다 식성도 까다롭지 않기에 비싼 계피나 정향 대신 흔한 민트를 향신료로 쓰는 것이다. 어쨌든 냄새를 없애야 먹을 수 있는 게 고기요리다.



후치가 마음속으로 품은 의문을 아는 것인지, 리타가 입을 열었다.



“캇셀프라임의 식사에 민트가 필요해. 몸집이 몸집이니 꽤 많은 양이 필요할거야. 할슈타일공은 일하는 도중에 샌슨들을 발견했는데, 그 뒤를 누가 따르고 있어서…… 음, 체포하려다 보니 드래곤 라자시더군.”



“……리타.”



“스스로도 많은 반성중이니까 굳이 말 안 해도 돼.”



체포라는 단어에 모든 사람이 경악의 시선을 보냈고, 리타는 샌슨에게 손을 들었다. 정작 디트리히는 아무런 상관없다는 표정이다. 그는 아직도 남아있는 것만 같은 품의 온기에 젖어 있었다.



샌슨은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서 헛기침을 했다. ‘흠.’



“그러면 리타는 민트가 있는 곳으로 좀 안내해 줄래? 아무래도 우리들로는 무리인거 같아.”



“그거라면 내가 어디 있는지 알아.”



“후치?”



“리타는 제미니를 집에 데려다 줘야 하지 않겠어? 민트가 어디에 많이 피어있는진 나도 잘 아니까. 사바인 계곡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거기다 이 달밤에 언제 늑대로 변할지 모르는 남자들 사이에 리타 혼자 있으면 불안하잖아.”



“이자식이.”



딱! 소리가 나며 후치는 정수리를 양손으로 잡으며 주저앉았다. 샌슨은 주먹을 문지르며 제미니와 리타를 번갈아 보았다. 어떻게 하겠냐는 시선이다.



“나도 늑대들 사이에 있는 건 불안하니까, 제미니를 데리고 가야겠어. 후치, 잘 부탁해.”



리타는 병사들을 순식간에 인간으로 둔갑한 늑대로 만들어 버리고는 제미니에게 다가갔다. 병사들은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었고, 디트리히는 순간 진짜 늑대인간인가 하고 고민했지만 금방 농담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언니다아아. 헤헤. 언니이이.”



제미니가 말을 길게 늘이며 리타에게 반가움을 표시했다. 얼굴이 살짝 붉은데다 발음이 틀어지는 걸 보니 하나의 결론이 내려진다.



“너 술 마셨구나.”



리타는 황급히 손으로 입과 얼굴을 가리는 제미니에게서 후치로 시선을 돌렸다. 동생과 동갑인 이 소년도 살짝 취기가 엿보인다. 입가가 자연스럽게 스르륵 올라간다.



“후치, 아무리 낮에 내가 말했다지만 진짜 실천으로 옮길 줄 몰랐다. 제미니에게 술까지 먹이고 이런 야밤에 숲 속이라니. 샌슨이랑 터너, 자렌, 해리는 밤길 조심해야겠어. 후치가 얼마나 욕망에…… 아니 사랑에 눈멀어 용기를 냈는데 그걸 방해했으니까.”



“리타!”



“언니!”



“하하하! 안 그래도 너랑 할슈타일공이 나타나기 전까지 그걸로 놀리고 있었어.”



“놀림 받는 건 샌슨, 너인 거 같았지만. 도대체 그 불쌍한 물레방앗간 아가씨는 누구야?”



“악! 리타!”



리타는 후치와 샌슨에게 연이어 자기 이름을 확인받으며 웃었다. 디트리히도 야밤에 벌이는 콩트가 퍽 재있는지 얼굴에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후치를 공격하다 공격의 화살이 자기에게로 향하자 한껏 목청을 시험해본 샌슨은 다시 분위기를 추슬렀다. 그가 생각해보기에 후치와 리타는 그가 놀라는 반응을 즐기는 부류고, 더 호응해주면 자신만 손해다.



“그럼 후치, 안내 부탁해. 리타는 제미니 데리고 잘 들어가고. 자, 할슈타일공, 가시죠.”







*








샌슨네 일행과 꽤 멀어지자 리타는 같이 걷고 있는 붉은 머리의 소녀를 쓰다듬었다.



“이 여우야. 누가 그렇게 술을 마시래.”



“힝, 언니이.”



“어디서 술을 마신거야? 해너 아주머니 네에서 마시진 않았을 거 같고 후치도 먹일 배짱은 없을 텐데.”



“칼씨가 주셨어.”



“칼이?”



“응, 맛있는 사과주였어.”



칼은 숲 근처의 오두막에서 살고 있는 중년이라기에 조금 젊은 독서광이다. 리타의 평가로는 이런 시골에서 독서나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꽤 중후하고 지적인 멋이 있는데다, 마을 처녀들 중에 은근히 흠모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직 미혼이다. 허슨은 인기를 즐기는 아저씨라고 하지만 그런 이유는 아닐 것이다.



리타는 종종 이야기를 나누는 말벗이, 아직 어린 동생과 그 남자친구에게 술을 권했다는 사실에 상념이 생겼다. 음, 그 남자가 그런 구석도 있구나.



“다음부턴 조심해서 먹어. 후치를 꼬시는 건 둘째 치고 어머니한테 꽤 맞을 걸.”



“으…… 언니. 엄마 좀 막아줘.”



리타는 머리하나는 더 작은 동생의 가냘픈 어깨에 손을 올리며 보듬었다. 제미니는 그녀를 감싸는 따스한 체온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싫어.”



“아앙! 언니야아.”



리타는 살짝 웃으며 앙탈을 부리는 제미니를 계속 보듬고 걸었다. 이제 시간은 꽤 어둑해져서 숲은 잘 살피지 않으면 앞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숲지기의 딸로 자란 두 여성에게는 전혀 문제될 게 없는 길이었지만.



두 자매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숲길을 걸었다. 주로 마을 남성(제미니는 후치 한정)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였다. 리타는 동생의 투정 섞이고 속마음이 빤히 보이는 이야기들에 적당히 놀려가거나 호응해주고 있었다. 그러다 제미니가 문득 생각난 듯 손뼉을 치며 리타를 올려다보았다. 두 눈이 초롱초롱한 게 살짝 불안하다.



“아참! 언니, 드래곤 라자님은 왜 언니보고 엄마라고 부를 뻔 한거야?”



“그러게?”



“힝, 제미니가 물어봤잖아.”



리타는 제미니에게 두른 손은 그대로 두고 반대 손으로 볼을 긁적였다. 아까 헤어질 때 디트리히는 샌슨이 말려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열렬히 손을 흔들었다. 제미니에게 흔들지는 않았을 테니 대상은 리타일 텐데, 리타의 생각에 그렇게 친근감을 표시할만한 일은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칼을 겨누기까지 했는데.



“잘 모르겠는걸.”



“아이, 드래곤 라자님이랑 만난 거부터 차근히 이야기 해봐.”



제미니는 볼을 부풀리며 눈을 반짝였다. 이 두 가지 중에서 한 가지도 제대로 하기 힘든 리타는 제미니를 존경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감정에 둔한만큼 있었던 일들을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는 재주를 가졌기에, 제미니는 무리 없이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간단하네. 드래곤 라자라고 해도 아직 어리니까 언니한테 안겨서 엄마를 떠올린 게 아닐까?”



리타의 눈이 살짝 커졌다.



“안겼다고 그럴까?



“낮에 칼씨에게 들었는데, 아마 이번에 온 드래곤 라자님은 양자일 거래. 할슈타일 가문에 약속된 300년이 15년 전에 지났으니까, 할슈타일 가에서는 드래곤 라자가 태어나지 않아서 입양한 거라고 했어. 진짜 할슈타일 가문일수도 있지만 그건 아마도 아닐거라고 봐. 그러면 아직 어린 나이에 입양 되었을 테니까 엄마의 품이 한창 그리울 거…… 언니, 그 시선은 뭐야?”



“제미니가 맞나 싶어서.”



“언니도 차암. 칼씨는 나보고 언제나 기품과 교양이 넘친다고 한단 말이야.”



“칼이 그렇게 거짓말에 능숙한 남자인줄은 몰랐네.”



제미니는 말로 그녀의 감정을 표현하는 대신 행동으로 표현했다. 기대어있던 리타의 갈비뼈를 그대로 어깨로 들이밀었다. 하지만 가벼운 소녀의 몸과 리타가 입고 있던 라이트 레더 덕에 거의 충격은 없었다.



제미니가 눈을 흘겼다.



“그만 놀려. 이야기 더 안 해줄 거야.”



“미안.”



리타는 담백하게 사과했다. 그 모습은 성의 없어 보였지만, 언니가 원래 사과할 때 이렇다는 걸 아는 제미니는 그냥 넘어갔다.



“어쨌든 드래곤 라자님은 어린 나이에 엄마 품을 떠나서 지냈을 거야. 대신 유모가 붙고 수발을 드는 하녀들이 돌봐주었을 걸. 입양이라고 해도 귀족 가문의 아이를 유모나 하녀가 안아줄 순 없었을 테고. 그렇게 다른 사람의 품을 모르다가 언니에게 오랜만에 안겨서, 예전에 엄마한테 안기던 걸 떠올린 게 아닐까?”



“후치가 그렇게 말했어?”



“절반정도만…… 그치만 엄마 느낌을 받은 건 다 내가 생각한 거라구.”



“쿡, 알겠어.”



“거기다 언니는 가슴도 크니까 더 엄마 같았을 걸?”



제미니는 짓궂게 웃으며 리타의 가슴을 가리켰다. ‘나를 계속 놀린 복수다.’



리타는 라이트 레더에 가린 자신의 가슴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이 도담한 가슴이 어떻게 어린 아이에게 엄마의 느낌을 준걸까? 이유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 의아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제미니는 한숨쉬었다. 놀림도 상대방이 알아차려야 재미가 있는 법이다.



“아줌마들은 대게 가슴이 크니까.”



“아!”



“……”



제미니는 리타를 보면서 가끔 생각한다. 후치는 자기더러 멍청하다고 언니를 본받으라고 하지만, 언니가 때론 더 멍청해 보인다. 칼이랑 어려운 이야기를 곧잘 하지만서도, 가끔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놓칠 때가 있다.



뭔가 깨달은 표정을 짓는 리타를 보며 제미니는 말했다.



“그러고 언니가 내 나이에 결혼했었다면, 지금쯤 드래곤 라자님 같은 아이가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겠네. 네가 지금 후치랑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언니!”



빽 하고 고함을 지를 수밖에 없다.



제미니는 어떻게 자기처럼 순결하고 고결한 아가씨를 그런 한량과 연결지을 수 있냐는 의견을 펼쳤지만, 리타는 살짝 웃으면서 무시했다. 제미니는 계속 투닥 거리면서 길을 걸었다.



리타는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달과 별이 검은 캔버스를 하얗게 물들이고 있다. 마침 셀레나와 루미너스를 보니 어딘가의 엄마와 아이가 생각난다. 둘은 떨어져 있었다.



“드래곤 라자는……”



“흐에에엥! 히잉!”



“투정은 그만 부리고.”



“응.”



“드래곤 라자는 어떤 존재일까?”



리타는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미니는 그녀의 붉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베베 꼬우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당연히 드래곤과 인간을 이어주는 존재잖아. 그것도 몰라, 언니?”



“드래곤과 인간을 잇는다는 게 정확히 뭘 말하는 건가 싶어서 그래.”



“드래곤은 인간과 말을 나누지 않는데. 하지만 드래곤 라자가 있어서 맹약을 맺은 드래곤은 사람과 말을 나눌 수 있게 되잖아. 그러니까 드래곤과 인간이 말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게, 그 말 아닐까?”



리타의 고운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누가 그딴 걸 만들어서……”



“응?”



“아, 아니야.”



제미니는 손을 뒤로 깍지 끼며 얼굴을 앞으로 쭉 빼면서 깡충깡충 뛰었다. 소녀틱한 치마와 숄이 그녀의 머리와 함께 나풀거린다.



“드래곤 라자가 없었다면 오늘 왔던 드래곤 라자님처럼 부모와 헤어지는 일은 없었을 거야. 하지만 우리 마을에 드래곤이 오는 일도 없었을 거야.”



“그래……”



그런 의미의 말은 아니었지만, 리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아직 그녀 스스로도 정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제미니는 리타가 말이 없어지자 금방 대화에 흥미를 잃었다. 대신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나 하늘을 보며 자신의 풍부한 감수성을 느끼는 일에 집중했다. 리타는 그런 제미니를 바라보면서 생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디트리히는 캇셀프라임을 걱정하였다. 그는 드래곤을 이름으로 불러주길 원했다. 그는 드래곤이 기분 나쁠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 자신의 기분이 나쁘기에 그렇게 생각한 걸까. 사람이 이름 대신 ‘인간’이라는 대명사로 불리면 기분 나쁘듯이 드래곤도 기분이 나쁘다라……



고의는 없을 것이다. 의도한 바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어린 아이는 분명히 드래곤을 인간화 시켰다.



그리고 드래곤은 디트리히의 생각 안에서만 인간화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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