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4. 가장 빨리 죽는 새 (6)2015.03.06 PM 02:32

게시물 주소 FONT글자 작게하기 글자 키우기



*








후치가 벌인 난장판은 그가 사라진 후 빠르게 수습되었다. 당사자인 샌슨과 리타는 자신들의 방으로 사라지듯 들어갔다. 남은 이들이 의심하지 않도록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샌슨은 칼과 같이 후치의 옆방으로 갔고 리타는 변장한 이루릴과 후치의 아랫방으로 향했다.



이루릴은 마법을 해체하며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리타는 그 모습을 신기한 듯 지켜보았다. 이루릴은 인간 여성으로 변신해 있었는데, 겉보기로는 전혀 이루릴이라고 짐작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루릴이 주문을 사용하는 장면을 보지 않았더라면 리타도 그녀라는 것을 전혀 몰라봤을 것이다.



리타의 시선을 느끼고 이루릴이 싱긋 웃어주었다. 리타도 같이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까진 계획대로 진행되었네요.”



“네. 그러네요.”



“앞으로가 문제군요. 후치가 지명한 아이가 도둑길드와 줄이 닿은 것처럼 보이진 않던데 말이에요.”



“순수해 보이는 여성이었죠.”



“아무래도 첫 번째 작전은 실패군요. 후치가 두 번째 작전을 잘해줘야 할 텐데.”



리타는 천장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저 위에는 후치가 종업원을 데리고 있을 것이다. 칼의 각본대로라면 침대에 끌어들인 척 연기하기 위해서 진땀을 빼고 있겠지.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는지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간다.



두 번째 작전의 주역도 마찬가지로 후치다. 그가 도둑을 잘 끌어들여야 한다. 도둑이 후치의 방으로 침입하면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행이 동시에 포위한다. 리타는 밖의 낌새를 보기 위해서 창가에 기대 서 있었다.



어둠이 완연해 달과 별이 빛 무리를 은은하게 뿌렸다. 집집마다 창문으로 비치는 불빛들을 받으며 거리는 환하게 빛나고 사람들은 부산히 움직인다. 밤의 정취는 헬턴트의 고즈넉함과는 달리 역동적이다.



리타는 창가에서 고개를 돌려 이루릴을 바라보았다.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네요.”



“후치가 방에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았어요.”



“그렇군요. 소문도 전달되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요.”



리타는 팔짱을 끼며 숨을 삼켰다. 그녀는 침대에 앉아있는 이루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사람이라면 그 시선에 불편함을 느낄 테지만 이루릴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아름다운 얼굴에 순수한 미소를 띠울 뿐이다. 리타는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이루릴. 오늘 우리가 벌였던 일들이 어떻게 보였나요?”



이루릴은 손을 앞으로 모으며 다소곳하게 대답했다.



“흥미로웠어요.”



“그건 좀 예상외로군요.”



엘프는 유피넬의 자식이다. 그리고 거짓을 말하지 않고 진실만을 추구한다. 연기라는 것은 일종의 속임수다. 남들에게 거짓된 모습을 보여주어 속이는 것이다. 목적을 떠나 그 행위자체는 분명히 그릇되었다고 말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루릴은 흥미로웠다 말했다.



“어째서 흥미롭다고 느꼈나요?”



이루릴은 눈을 낮게 내리 깔았다. 그녀의 다소곳하게 모은 두 손이 무엇인가를 어루만지듯 살짝 오므라졌다. 그녀의 시선은 빈손을 향했고 리타의 무심한 눈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리타가 보기에 그녀의 안색은 어둡지 않았다. 그저 편안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그녀는 대답했다.



“사람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마음과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다고 들었어요. 우리는 그렇지 않아요. 누군가에게 마음과 다르게 보일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오늘의 경험은 뭐랄까…… 퍽 신선했어요.”



“속인다는 거부감은 들지 않았나요?”



무심한 말이었지만 이루릴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살짝 웃었다.



“속임수, 거짓말. 정말 숲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전혀 모를 것들이에요. 저는 제가 그런 것들을 하게 될 줄 몰랐어요. 그것들은 모조리 악이라고 생각했고, 우리에겐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죠. 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이용해 관계를 형성해요. 무조건적인 악이 아니었어요.”



리타는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이루릴의 말은 자괴감이나 죄책감 같은 부의 감정은 담겨있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평온하게 말을 이었다.



“저는 칼라일 영지에서 뱀파이어를 속였어요.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지요. 하지만 그 행동에 놀랐을지언정 후회는 하지 않아요.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우리를 공격했을 거예요.”



“이루릴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위험에 처했겠죠. 고마워요.”



이루릴은 큰 눈을 한 번 깜박였다. 사슴같이 고운 눈망울이 잔잔하게 겸양을 표했다.



“타인을 위해서 행동한다는 것은 전에는 알지 못하던 것이에요. 엘프는 조화롭지만…… 효율적이지요. 모두가 조화롭기에, 그만큼 애착하거나 위하는 것이 없어요.”



“희생이 당연하게 되면 그건 희생이 아니다. 그런 건가요?”



“맞아요. 우리는 희생이라는 개념을 가지지 못해요. 어떤 목적을 위해서 내가 손해를 보아야 한다면 당연히 감수해요. 그게 합리적이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니까요.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당연히 그렇게 되어요.”



“그렇군요.”



“제가 여러분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없었겠지요. 친구가 되기 위해서 먼저 손을 뻗고, 그것이 받아졌을 때 느끼는 기쁨과 거부당했을 때 느끼는 슬픔도 몰랐을 거예요. 제 도움에 기뻐하는 타인들에게서 행복을 느낄 수도 없었겠지요. 거짓말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이루릴은 진심으로 기쁜 것처럼 보였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그녀의 눈이 감정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아름다운 꽃들이 완연해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녹아들 것처럼 청초하고 환한 표정이다.



리타는 캇셀프라임이 떠올랐다.



건방진 말에도 의연하게 반응하고 걱정을 비웃기도 하며 드래곤으로서의 모습을 잃지 않았던 그녀. 그녀는 너그러운 언니처럼 리타를 대했다. 그래서 술김에 언니라고 마구 불렀던 것이겠지. 여전히 부끄러움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경험이긴 하지만, 그런 캇셀프라임은 변화를 긍정했다. 그리고 눈앞의 이루릴도 마찬가지다.



옛말에 ‘엘프는 느리게 배우지만, 결코 잘못 배우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리타는 그 말이 틀리지 않길 바란다. 캇셀프라임에게 했던 쓸데없는 걱정과 같이, 이루릴에게도 쓸데없는 걱정이 되길.



“거짓말의 매력은 사람을 잡아당깁니다. 엘프도 잡아당길지는 모르겠지만요.”



“주의할게요.”



“여하튼 이번 연기는 꽤 재밌었네요. 전에 혼자서 했던 건 아무래도 심심했었는데 말이에요.”



“혼자 하신 적도 있나요?”



“정의감 넘치는 남자들 때문에요.”



레너스 시 투기장에서 했던 일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그때 이루릴도 같이 감옥에 갇힌 상황이었으니, 그녀의 연기는 이루릴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루릴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리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했어요. 후치나 샌슨도 그러했고요. 제가 여러분을 몰랐다면, 그 모습 그대로를 여러분의 원래 모습이라고 받아들였을 거예요.”



“연기란 게 그런 거니까요. 그래도 후치나 샌슨이 그렇게 연기를 잘 할줄 몰랐어요. 칼은 그럴 거라 생각은 했지만.”



“리타도 훌륭했어요. 후치가 가슴을 잡았을 땐 지켜보던 저도 놀랬는걸요. 하지만 리타는 정말 수치스러운 것처럼 연기했어요.”



리타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간 색으로 물들었다. 화끈거리는 얼굴에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리타는 시선을 딴 곳으로 두었다. 그녀는 차마 이루릴의 반짝이는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그걸 실수라고 해야 할까? 후치의 평소 성격을 생각해보면 제미니말고 다른 여자에게 손 댈 간은 없는 소년이다. 아무리 혈기왕성한 나이라고 해도 스스로를 절제할줄 안다고 자신한다. 그녀가 보기엔 그저 용기가 없는 것을 합리화 하는 것 같다지만, 어쨌든 일부러 가슴을 만길 정도로 파렴치한은 아니다.



하지만 벌써 두 번이나 만졌다. 꿈속이거나 연기중이라는 미묘한 상황을 이용해서. 어렸을 때야 시도 때도 없이 안겼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은 다 자란 나이지 않은가. 그 행동에 대해서 누나로선 어떻게 반응을 해야 좋을까? 실수라는 걸 아는데 나무란다면 상처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냥 넘어간다면 괜찮을 거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리타는 괜히 창밖을 보았다. 밤의 서늘한 바람이 그녀의 달아오른 얼굴을 어루만진다. 이루릴에 대한 생각은 어느덧 후치에게 침식당해버렸다. 리타는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휘날린다.



머릿속에 들러붙은 후치를 흔들어 떨친 다음 그녀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이라무스 시를 가로질러 왔으니 저 먼 곳에는 일행이 원래 자리를 잡은 여관이 있을 것이다. 그녀는 한 인물, 아니 생물이 떠올랐다.



캇셀프라임을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카피가 생각났다. 칼이 계획을 짤 때 카피는 연기에 몹시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칼은 연기는 최대한 적은 사람으로 이루어지는 게 좋다고 그녀를 설득했다. 그리고 운차이를 감시할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유였다. 운차이는 샌드맨에 의해 잠들었지만, 어떤 일로 그가 깨게 된다면 이루릴이 없는 상황에서 도망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카피는 눈물이 그렁그렁할 정도로 애처롭게 칼에게 애원했지만 칼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런고로 카피는 홀로 여관에 남아서 잠든 운차이를 원망하고 있으리라.



잔뜩 삐져있을 그녀를 생각하니, 다음에 이런 일이 있다면 뭐라도 시켜줘야겠다고 생각이 든다. 레너스에서 에포닌을 연기했던 경험이 퍽 재밌었나 보다.



리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창밖을 계속 바라보았다. 그러다 뒤쪽에서 부스럭거리는 느낌이 들어 시선을 안으로 향했다. 그녀의 눈에 침대에 올라서 있는 이루릴이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입이 열렸다.



“뭐 하는 거죠?”



이루릴이 하던 행동을 멈추고 리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구멍을 뚫고 있어요.”



“으음, 왜죠?”



“도둑이 들어오면 마법을 쓰려고요.”



계속 저렇게 당당하게 말하면 뭐라 대꾸할 말이 없다. 남들에게 이상하단 소리를 듣는 리타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엘프인 이루릴보단 낫다는 생각이 든다.



리타는 뭐라고 대꾸하려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말대로 도둑에게 마법을 사용하는 게 더 생포할 확률이 높다. 천장에 구멍을 낸다는 행위가 가져오는 도덕적 배덕감만 무시하면 된다. 그리고 인간의 도덕은 애초에 엘프가 신경 쓸게 아니다.



이루릴은 다시 조심스럽게 천장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리타는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사각사각 소리도 안 날 정도로 섬세하게 작업이 이루어졌다.



윗방에선 후치가 종업원과 같이 있을 것이다. 연기 목적은 여자를 방에 끌어들여 거사를 치르고 지쳐 잠든 상황을 연출하는 것에 있다. 그러고 보니 여자아이는 후치랑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데다 외모적으로도 꽤 준수한 얼굴이었다. 남자라면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느낄만한 상대다.



“음……”



리타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길게 흘러나왔다. 그녀는 얼굴을 착 가라앉힌 채 천장을 주시했다. 팔짱을 끼고 있는 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미묘하게 그 손놀림이 빨라 보인다.



후치라면 그럴 리가 없다. 방금 전에도 생각했지만 그는 여자를 강제로 밀어 넘어트릴 정도로 본능에 충실한 소년은 아니다. 하지만 상황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반대로 여성 쪽에서 유혹해 온다면 어떻게 대처할까? 계속 이성을 유지하긴 어려울 거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연기에다 일행이 바로 근처에 있다는 걸 아는데 홀라당 넘어가진 않겠지. 일행의 돈을 되찾는다는 중요한 목적이 있는데 말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한창 때의 남자아이라면 물불 안 가릴 수도 있다고 책에서 보았다. 이별 선물로 제미니에게 넘겨주고 온 그 책에서는 여성이 적극적으로 상황을 만들었을 때 반응하지 않을 남자는 없다고 적혀 있었다.



물론 후치를 의심하는 건 아니다. 그녀가 오랫동안 지켜본 후치는 제미니 이외의 여성에겐 일정 이상의 호의를 보이지 않았다. 헬턴트 영지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충실하다.



하지만 지금은 여행 중이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지고 흥미를 끄는 일이다. 그리고 후치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꽤 여성에게 인기가 있을만한 스타일이다. 또래에 비해 생각이 깊지만 그렇다고 자만하지 않으며 남을 배려할 줄 안다. 여자를 웃게 만드는 말재주 같은 것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 레너스에서 유스네도 함락시키지 않았던가? 그리고 칼라일에선……



리타는 머리를 재빨리 흔들었다. 그녀는 달아오른 볼을 감싸며 당황했다.



이건 아니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제미니의 언니로서 동생의 남자친구이자 친동생 같은 아이가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뿐이다. 그런 거다.



“리타.”



나지막한 목소리에 리타는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어느새 구멍을 다 뚫어놓은 이루릴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루릴의 손가락은 세로로 세워져서 입술 가운데를 가렸다.



“조용히.”



“네……”



리타는 조용히 그녀의 주의를 받았다. 어지간히도 부산스러웠나 보다. 주의를 준 이후 이루릴은 구멍으로 몸을 옮겼다. 리타는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기로 했다. 지금 상황은 잡생각에 빠져있을 만큼 여유롭지 않다.



생각에서 도망치듯 리타는 창문에 붙어 밖을 감시했다. 정말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작정했는지 그녀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만약 누군가 창 밖에서 그녀를 보더라도 무시하고 지나칠 정도로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손가락은 계속 창틀을 두들기고 있었다. 일정한 박자감을 가진 그 행위는 일련 초조함이 느껴졌다.



방 안에 있던 이루릴은 위로 사라졌다. 다행인지 뚫린 구멍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엇이 다행인진 모르겠지만……



다시금 머리를 흔들려던 리타는 순간 느껴지는 작은 소리에 행동을 멈추었다. 무엇인가 벽을 긁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그 소리는 아주 작았기에 잘못 들었을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숲지기의 딸로서 감각에 자신을 가진 리타는 정신을 집중하며 상황에 몰입했다.



그 소리는 점차 간격을 두고 들렸다. 소리의 발생지가 움직인다는 의미다. 그 소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지척에서 들렸다. 창 옆의 벽으로 몸을 숨기며 리타는 집중했다. 소리는 바로 윗방으로 이어져 조심스럽게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지 창문을 열어놓고 있음에도 집중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소리가 나지 않았다. 조금 딸깍거리던 소리가 나더니 이내 소리가 사라졌다.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리타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이루릴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틈을 노려 마법을 쓸 테고, 도둑은 혼란에 빠져든다. 도둑이 도망치려고 할 때 창문을 막아 퇴로를 봉쇄하는 게 그녀의 목적이었다.



조심스럽게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어 주변을 살폈다. 혹시 감시하는 동료 도둑이 있을지 보았으나 아무도 눈에 띄는 이는 없었다. 그녀는 창문으로 몸을 빼내며 천천히 위층의 난간을 붙잡고 몸을 움직였다.



그 순간 위층에서 굉음이 들렸다.



콰쾅!



“으아아악!”



창문으로 보이는 불빛과 굉음, 그리고 비명소리. 확실히 도둑이 걸려든 모양이다. 리타는 숨길 의도 없이 재빨리 몸을 움직여 난간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창문으로 미끄러지듯이 몸을 던졌다.



“이야아압!”



“안 돼요!”



“꺄아악!”



연이어 들리는 소리들. 후치는 도둑을 몸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비명소리의 주인은 종업원과 도둑이었다.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가진 도둑은 놀랍게도 여자였다. 타오르는 붉은 머리칼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네리아!”



외칠 것도 없이 그녀는 네리아였다. 타이밍 맞춰 방문이 열리며 샌슨과 칼이 램프를 들고 들이닥쳤다. 계획한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네리아는 후치의 돌격에 이미 기절해 버렸다. 그녀는 거대한 트라이던트를 등에 짊어진 채 눈을 뒤집고 벽에 기대어 쓰러져 있었다. 후치가 외쳤다.



“우하! 한 방에 잡았어!”



기세등등하게 외치는 그는 하의 하나만 걸친 상태였다. 즉, 중요부위를 가리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만 남긴 채 나머지는 다 벗어두었다.



샌슨과 칼의 겸연쩍은 시선이 그와 침대를 번갈아 향했다. 침대에는 아까의 종업원이 몸을 시트로 가린 채 놀라고 있었다. 시트로 가렸다지만 얼핏 드러나는 모습으로 보아선 분명히 알몸이다.



“절대로 아니에요!”



“물론이에요!”



후치와 그녀가 이어서 외쳤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풀어질 줄 몰랐다. 후치는 아연한 표정을 짓다가 이상함을 느꼈다.



“어, 이루릴은?”



“여기 있어요.”



이루릴은 침대 밑에서 기어 나오며 대답했다. 후치는 심정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 표정 어딘가에는 안도했다는 감정도 담겨 있었다.



이루릴은 몸을 일으키며 덤덤히 말했다.



“이 아랫방에 있었죠. 천장을 소리 없이 뚫고 올라오기가 퍽 힘들더군요.”



“됐어! 그럼 이루릴이 증언해줘요! 아무 일도 없었죠?”



“아무 일? 뭘 말하죠?”



“어, 그, 그러니까……”



후치는 차마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그때 리타가 나섰다.



“그것보다 어서 밖으로 나가시죠. 저 소녀가 옷을 입어야 하니까요.”



“아, 그, 그래요.”



리타는 당황하는 후치에게 그의 옷을 집어서 던져 주었다. 후치는 옷을 잡으며 리타를 바라보았으나 그녀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후치는 길게 생각할 틈도 없이 바로 옷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따라 샌슨과 칼이 네리아를 챙겨서 나갔다. 리타는 방문을 닫으며 침대 위에서 벌벌 떠는 소녀에게 말했다.



“옷 입어요.”



“아, 고맙습니다.”



이루릴이 그녀의 떨어진 옷가지를 주워 가져다 주었다. 소녀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그녀의 옷을 받아들고서 황급히 옷을 입었다. 리타는 아직 풋내가 묻어나는 싱그러운 그녀의 몸을 보다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으음……”



묘한 그녀의 신음소리가 방을 울렸다.








*













--------------------------------------------------------------



후치의 두근두근 하렘전설의 클라이막스격인 장면입니다만

주인공이 리타란 점에서 과감하 묘사를 생략했습니다. 흑흑.

그래서 20장에 다다르는 씬을 1/3로 줄어 버렸네요.

그럼, 좋은 밤 되시길.


댓글 : 2 개
그럼 아마 네리아 상담가도 후치가 아니라 리타겠네요??
메리안 묘사가 아쉬워요 ㅋㅋㅋ
16세 소녀는 몬스터다. 라는 후치의 말이 있죠. 그 파괴력을 재현할 자신이 없는 것도 한몫했네요 ㅋㅋ
친구글 비밀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