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5. 복수의 검은 손길 (12)2015.06.19 PM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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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으로 들어갔던 문지기는 중년의 예리한 눈매를 가진 남자를 대동하고 나왔다. 남자는 스스로를 궤헤른이라 밝혔다. 그는 할슈타일 가의 집사를 맡고 있다고 했다.



“후작님은 지금 외출 중이십니다. 응접실에서 기다리시겠습니까?”



할슈타일 가의 문양이 그려진 반지를 보았음에도 궤헤른은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리타를 약속이 없다고 돌려보내지도 않았다. 그는 가문의 문양이 가지는 힘을 알고 있었다.



“기다리죠.”



“알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궤헤른은 정중히 리타에게 인사를 건네고서는 아스화리탈의 고삐를 받아들었다. 곧이어 말구종이 와서 아스화리탈을 데리고 갔다. 리타는 궤헤른을 따라 저택으로 들어갔다.



정문이 열리고 나면 안에는 넓은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임펠리아의 정원만큼 꽃피는 화려함은 없지만 대신 너비가 어마어마했다. 정원수가 아무리 솜씨 좋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혼자서는 도저히 관리하지 못할 것 같았다. 담장의 크기로 대충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막상 직접 보니 정원의 크기가 상상 이상이다.



하지만 리타는 정원의 크기보다도 미미하게 느껴지는 마나의 기운에 더 신경이 쓰였다. 그녀가 마법사는 아니지만 마나를 다루긴 한다. 그리고 선천적으로 마나를 잘 느끼는 체질이라 마법 무기나 인챈트 된 도구는 쉽게 알아차린다.



그런데 이 정원에서는 여러 군데서 마나가 응집된 게 느껴진다. 마나는 한곳에 머무는 것을 거부한다. 그러함에도 마나가 응집되어 있다는 건, 엄청난 마법으로 묶어두었다는 의미다.



이곳은 드래곤 로드에게서 유일하게 라자의 혈통을 부여받은 가문. 드래곤들이 그 마법을 걸어주었어도 이상하지 않다.



누군가 이 저택에 침입하려고 했다간 목숨만 건져도 다행일 것이다.



정원을 통과해 도착한 저택 또한 어마무시하게 컸다. 과연 사람이 사는데 이정도로 큰 집이 필요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크다. 만약 저택으로 성이나 궁을 만들 수 있게 허용했다면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까 싶었다.



주변을 둘러보는 리타를 배려해서인지 궤헤른의 걸음은 느렸다. 하지만 결코 멈추지는 않았고, 그는 저택의 응접실까지 리타를 안내했다.



“후작님께서 돌아오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편히 계십시오. 혹시라도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시녀를 부르시면 됩니다.”



“후작님은 언제 돌아오시나요?”



“용무가 다망하셔서 제가 짐작키는 어렵습니다.”



한마디로 언제 올지 모르니 계속 기다리라는 말이다.



이미 왕성에서 기다림을 경험한 리타지만 그녀는 그다지 싫증나는 기색 없이 궤헤른의 말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궤헤른은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응접실의 문을 닫고 나갔다. 시녀 한 명이 응접실 문가에 가만히 서 있었다.



리타는 소파에 편히 기대앉았다. 검은 잃어버린 이후로 새로 사지 않았기에 어차피 무장도 없는 상태였다. 망토를 벗어서 옆에 놔두자 시녀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망토를 옷걸이에 걸어 주었다.



할슈타일가의 응접실은 왕성과 다른 느낌이다. 왕성은 고급스럽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사치스럽다는 느낌은 없었다. 간단한 장식품만 있을 뿐, 대체적으로 깔끔하고 간단한 인테리어를 했다. 하지만 할슈타일 가의 응접실은 그야말로 사치스럽다는 단어를 빼다 박은 느낌이 든다.



저택의 외향도 그렇고 내부도 할슈타일 후작가의 힘을 보여주었다. 왕이 성에 살기 때문에 신하들이 사치를 부리지 못한다고 했던가? 적어도 할슈타일 가에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다. 드래곤을 다룰 수 있는 가문이라는 것은 국가가 제어하기 어려운 힘이다. 우둔한 핸드레이크는 그 목적에 눈이 멀어서 바이서스의 재앙을 잉태했다.



“큭.”



리타는 머리가 지끈거려 이마를 짚었다. 놀란 시녀가 가까이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 네.”



“마실 것을 가져다 드릴까요?”



리타는 고개만 끄덕여 대답했다.



가끔씩 이럴 때가 있다. 생각을 하다 보면 이상한 것들이 떠오른다. 그럴 때면 항상 머리가 아프고 했다. 마치 그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자신 안의 또 다른 누군가가 방해하는 기분이다.



시녀가 금방 물을 한 컵 가져왔다. 리타는 찬물로 목을 축이자 조금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소파에 앉아 있던 리타는 시녀에게 부탁해 읽을만한 책을 가져와 달라고 했다. 짐은 모두 여관에 놔두고 왔기 때문에 그녀가 애독하는 책은 지금 수중에 없었다. 얼마 전에 새로 구한 ‘남녀관계 발전을 위한 100가지 새로운 접근법.’을 계속 보지 못한다는 게 아쉬웠지만, 시녀가 가져온 역사 서적도 나름대로 읽을 만은 했다.



리타는 시녀에게 커피를 주문하고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편하게 책장을 넘겼다.



시녀는 응접실이 자기 집 안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태연자약하게 책을 읽는 리타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차림으로 보아선 귀족가의 여식은 아닌 모양인데, 귀족가에 방문한 사람치고는 너무 자연스럽다.



귀족, 특히 할슈타일 가문의 저택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준다. 드래곤 라자의 가문이라는 위엄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저택은 상당한 사치가 들어갔다. 평민들은 물론이고 중소 귀족들조차도 압도되는 곳이 이 저택이다.



하물며 후작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다. 긴장감에 덜덜 떨거나 초조함에 목이 바짝 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리타는 평온하기만 했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리타에게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남들만큼 확고하지 않았으니까. 거기다 할슈타일 가라는 인위적인 압박감은 그녀를 건들지 못한다. 왕성에서조차 긴장하지 않은 여자인데, 할슈타일 가라고 긴장을 할까.



그건 본래 타고난 성격이라거나 리타가 특별히 대범해서 그런 게 아니다. 애초부터 그랬다. 무엇인가가 일반적인 사람과 어긋나 있었다. 그 괴리감이 그녀를 괴롭혔고, 아직까지도 무엇인가를 갈구하게 만들었다. 발러가 그녀의 가녀린 몸을 씹을 때조차도, 그녀는 공허함이 더 괴로웠다.



시간이 꽤나 지났다.



리타는 꽤 두꺼운 책을 다 읽고서 책장을 덮었다. 체감으로는 서너 시간 정도가 흐른 것 같았다.



응접실이 저택의 외곽에 있기 때문인지 그녀가 책을 읽는 동안 별다른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간간히 누군가 복도를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가 전부였다. 후작가에는 아이들이 많을 게 분명한데도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리타는 그 사실에는 의문을 가지지 않고, 대신 책을 한권 더 부탁해야 하나 고민했다. 아직 시간은 늦지 않았으니 더 기다릴 수 있었다. 가만히 멍 때리고 잡념에 빠지는 것 보다는, 책이라도 한 권 더 읽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리타가 시녀를 부르려고 하는데 갑자기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쾅!



이윽고 문이 부서져라 열렸다.



리타는 애매하게 손을 든 상태로 열린 물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숨을 헐떡이며 서 있는 중년의 남성이 있었다. 갈색머리에 히끗히끗 보이는 새치와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남성은 경악한 눈으로 리타를 바라보았다.



“율리아나?”



“틀렸습니다.”



“……”



그가 굳어있는 와중에 뒤늦게 궤헤른이 나타났다.



“각하.”



그의 부름에 할슈타일 후작은 정신을 차렸다. 궤헤른은 서둘긴 했지만 후작의 변화에 어떠한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할슈타일 후작이 문을 손으로 꽉 붙들고 말했다.



“…… 너는 누구냐?”



“방금 부른 이름을 가진 분의 딸입니다.”



리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그가 할슈타일 후작 같았다. 주인이 왔는데 손님이 앉아서 맞는 것은 아무래도 매너가 아니다.



“앉으시겠습니까? 마침 책도 다 읽은 참입니다.”



“……”



소파로 손짓하는 리타를 보며 후작과 궤헤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시녀는 당황을 숨긴 채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궤헤른은 후작이 화를 내면 또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후작은 경악으로 물들었던 얼굴을 천천히 정상으로 돌렸다. 그는 꽉 잡고 있었던 문을 놓으며 리타의 손이 가리키는 소파에 앉았다.



뒤에서 궤헤른이 놀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것을 무시하며 후작은 리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닮았군.”



“그렇습니까?”



“……”



후작은 입을 닫았다. 리타의 반응에 놀란 것은 아니다. 그는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마구 솟아나는 단어와 추억의 향연에서 그는 어느 것도 잡아채지 못한 채 허우적거렸다.



리타는 천연덕스럽게 할슈타일 후작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녀는 결코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후작이 떨리는 입술을 힘줘 악문다음 입을 열었다.



“제대로 네 소개를 해주겠나?”



“리타 스마인타그. 헬턴트 영지 숲지기의 딸입니다.”



“스마인타그?”



“양부모님의 성입니다.”



후작은 간신히 찾은 차가운 이성의 가면을 다시금 벗었다.



“율리아나는?”



“저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서 운명하셨습니다.”



“…… 그런가.”



후작은 소파에 힘없이 기대었다. 그는 천천히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머리를 타고 넘어간 손이 그의 뒷목까지 이어져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의 매서운 눈매는 무섭도록 퀭했다. 누이의 죽음을 처음 들었다. 어디선가에서 가문의 굴레는 벗어던지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허례허식에 얽매이지 않고 평범하고 단란하게…… 그렇게 살고 있기를 바랐다.



언뜻 보이는 새치와 맞물려 숨길 수 없는 회한이 드러난 후작의 얼굴은 차마 보기 힘들 정도였다. 리타는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그는 눈물을 흘리거나 괴성을 지르지는 않았다. 그냥 보면 슬퍼한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러함에도 궤헤른이나 리타는 후작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았다.



궤헤른은 그가 충성을 바치는 후작을 알기에, 리타는 가족의 죽음을 접한 사람의 심정을 알기에.



후작은 간신히 목에서 손을 땠다. 그 동작 하나가 몹시 피곤해 보였다.



“양부모가 숲지기인가?”



“네.”



“어째서 아스화리탈을 안…… 아니, 그 놈도 죽었나?”



누구를 말하는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된다.



리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여덟 살 때 몬스터의 습격에 돌아가셨습니다.”



“안 됐군.”



후작은 짧게 조의를 표했다. 부모가 모두 어린 나이에 죽었다. 보통 사람이 듣는다면 동정심이라도 표할만 하건만 후작의 감상은 안됐다는 게 전부였다.



냉정하게 보이지만 리타로서는 오히려 그 편이 편했다.



후작은 소파에 기댄 몸을 앞으로 당기며 말했다.



“그래서 날 보자고 한 이유는 뭔가?”



처음 보는 조카에게 하는 말 치고는 상당히 메말랐다. 사이가 나쁜 남매였더라도 조카에게 이렇게 싸늘하게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리타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과거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과거?”



“어머니와 아버지의…… 어떤 일이 있었고 왜 아버지가 홀로 극서의 마을에 와야 했는지도.”



“흠.”



후작은 곧바로 궤헤른에게 손짓했다.



“지금 이후로 오늘 일정을 다 비워.”



“각하?”



“그리고 저녁에는 만찬을 준비시켜.”



“알겠습니다.”



궤헤른은 가타부타 말없이 그의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심중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가 모시는 후작은 결코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율리아나라는 사람이 후작의 누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다. 그가 집사로서 일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율리아나가 집을 나가고 꽤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많은 의문이 생겼지만 궤헤른은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것으로 의문을 접었다. 후작이 원하는 좋은 수하는 주인의 일을 물어보지 않는다. 그는 충실히 그 조건을 이행한다.



후작은 시녀도 내보냈다. 이제 응접실에는 리타와 후작만이 앉아있게 되었다.



리타는 가만히 앉아 후작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보기에 후작은 냉정을 가장하고 있지만 아직 불안한 상태였다.



후작은 몸의 힘을 풀었다. 그는 다리에 팔꿈치를 기대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지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이젤에게 율리아나에 대한 것을 듣지 못했나?”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기억하지 못합니다.”



“왜?”



“아버지의 죽음으로 제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사람들에게 들었습니다. 여덟 살 이전의 기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불안하겠군.”



그는 불쌍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리타는 처음으로 어머니의 동생이 아니라 할슈타일 후작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흥미가 생겼다.



사람은 일반적인 상식에 입각해 멋대로 타인을 판단해 버린다. 부모를 어린 나이에 모두 잃은 아이는 불쌍하다. 이것이 통상의 시선이다. 그러나 후작은 기억을 잃은 것의 불안함을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누이의 이야기가 궁금한 건가?”



“네.”



후작은 조금 침묵을 가졌다. 그는 조금은 피곤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절대 웃을 것 같지 않던 차가운 얼굴에 번지는 미소는 꽤나 무거웠다.



“내 누이는…… 참 특이했지.”



후작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귀족가의 아가씨답지 않았어. 밝고 활발하고 순수했지. 모두가 좋아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사랑스러운 소녀였지. 정말로……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웃어주는.”



후작은 오래된 세월에도 빛바래지 않은 소녀의 모습을 기억했다.



“어린시절에는 나에게 장난도 많이 치고 몰래 데려 나가기도 하는 철없는 누이였다. 평민인척 굴면서 스스럼없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곤 했어. 당연히 가문에선 탐탁치 않게 여겼지만 하는 짓이 귀여워 대부분 넘어갔지.”



리타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었다. 후작의 눈은 그녀를 보고 있으면서도 그녀를 보지 않았다.



“어린 나이이기에 그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아질 거라 생각했던 그녀의 기행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더 심해졌다. 느닷없이 검술을 배우겠다고 난리를 부리기도 하고 빛의 탑에 몰래 찾아가서 마법사가 되는 방법을 묻기도 했지. 어떤 때는 평민으로 가장해서 유랑극단에 들어가기도 했다. 당연하겠지만 부모는 그런 누이를 타박했다.”



후작은 가문의 유일무이한 후계자였다. 그렇기에 그는 누이와 다르게 완전히 맞춰진 환경에서 자랐다. 평범한 삶이라는 것은 그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라자의 혈통과 그 혈통의 계승 가문이 주는 압박감은 상당했다.



스스로가 가장 강력한 드래곤 라자이면서도 그는 후계자이기에 드래곤의 라자가 되지 못했다. 그것을 그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기댈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집안에서 모든 것을 벗어나고 있는 누이였다.



후작은 가는 웃음을 머금었다.



“누이는 부모가 타박할 때마다 곧잘 이렇게 말했지. 어차피 자신의 미래는 저당 잡혀 있으니, 저당 잡힌 미래의 몫까지 현실에 가져오겠다고.”



명문가의 여식에게 주어진 삶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율리아나는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었기에 기행을 택했다. 결혼은 인생에 가장 중요한 자유이니 그 자유를 구속받는 만큼 다른 자유를 누리겠다는 의미였다.



“부모는 그것을 알았기에 그녀의 기행을 어느 정도 묵인했다. 누이의 가치는 그 사람보다는 그녀가 가진 혈통이 더 컸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어느 날 깨어졌다.”



갑자기 후작의 눈매가 바뀌었다. 정겨운 과거를 회상하는 평온함에서 태풍이 몰아칠 것 같은 흉포함으로 변했다.



“그녀는 한 남자를 데려 왔다. 아주 먼 곳에서 온 남자는 자이펀에서 노예로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배가 난파되는 바람에 일스에 갔다가 이곳까지 흘러들어오게 됐다지. 그가 가진 이야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었을까? 누이는 그를 데려와 소개했네.”



후작은 온통 검은색 일색이던 남자를 떠올렸다. 마치 지금 리타가 하고 있는 것처럼 다른 색은 피부 밖에 없었다. 검은 머리에 검은 옷, 검은 눈. 그는 오로지 검었다.



결코 노예나 인생의 패배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눈빛으로, 그 남자는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카코스 다이몬이라고 불렸고 자이펀에서는 오스발이라고 불렸으며, 진짜 이름은 나이젤 아스화리탈. 세상의 주인이자 드래곤의 연구자. 그게 그의 소개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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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나 공주는 반왕(Anti-King)입니다.

폴라리스 랩소디를 읽으신 분이라면 그 설정을 아실 겁니다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다음화에 조금 설명을 첨부해 보지요.

거울인 키 드레이번과는 다르게 모두를 바꾸어 버리는 게 반왕입니다.

그럼, 좋은 밤 되시길.


댓글 : 6 개
ㅎㅎㅎ 역시 오리지널 처음부터 뒷통수를 때리는 반전이...
폴랩과 시간축은 다르겠습니다만 어떻게 풀어나가실지 기대하겠습니다
제가 한 뒷통수 합니다. 헤헤
흥미진진합니다, 그려.
이야기를 어디까지 어떻게 풀어나가실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실망시키지 않도록 열심히 쓰겠습니다
와.. 이전보다 훨씬더 몰입해서 봤네요
역시 글은 아무나 쓰는게 아니라는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이런식으로 칭찬받으니까 힘이 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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