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5. 복수의 검은 손길 (14)2015.07.01 AM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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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리첼?”



생소한 이름에 리타는 의아해했다. 그러면서도 어디선가 한번 들었던 기억이 난다.



“헬턴트 파병의 총사령관이 로넨 휴리첼이지.”



“아, 그랬군요.”



후작의 말에 리타는 디트리히와 함께 있던 중년의 기사를 떠올릴 수 있었다. 첫 대면에서 손등에 키스하려고 했던 것을 그녀가 거절했었다. 그때는 덤덤하게 했다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치기어린 행동이라 부끄러워진다.



“바이서스에서 가장 명문(名門)은 어디라고 생각하나?”



후작이 갑작스럽게 질문했다. 리타는 당황하지 않고 그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여덟별의 추구자를 비롯한 개국공신들의 가문들이 남아있긴 합니다만, 지금의 상황에서 굳이 하나를 뽑자면 할슈타일 가겠지요.”



“틀렸다. 할슈타일은 가장 강력한 가문일 뿐이다.”



“그럼 어딘가요?”



“휴리첼.”



후작은 짧게 답했다.



“핸드레이크의 가문이지.”



다리 위에 공손하게 올려뒀던 리타의 손이 움찔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후작의 말이 가져다주는 충격은 꽤 컸다.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핸드레이크의 가문이라니.



어째서 떠올리지 못했을까. 핸드레이크는 여덟별 이상으로 바이서스 건국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개국 공헌도나 당시의 위명을 따져 봐도 핸드레이크는 거의 루트에리노와 맞먹을 정도였다. 그런 이의 가문이 있다면 당연히 바이서스에서 제일가는 명문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명분상의 명문이기도 하다.”



“명분상?”



“지금의 휴리첼 가는 백작가에 불과한데다 가주인 로넨은 좌천당해 최전선이 아닌 변방의 임무나 처리하는 지경이다. 실세로 보자면 평범한 백작가만도 못하지.”



“삼백년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 만은 아닌 것 같네요.”



후작이 리타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은 온기 한점 없을 것 같았지만, 지금만큼은 흡족한 빛을 띠고 있었다.



“생각을 할 줄 아는군.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휴리첼 가는 할슈타일 가 이상으로 강대한 세력을 자랑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리타를 잠시 향했던 대견한 시선은 금세 사라져버렸다.



“우습게도 한 세대 전에 가장 강력한 드래곤을 소유하고 있던 가문은 휴리첼 가였지.”



“…… 크라드메서.”



“아는군. 크림슨 드래곤 크라드메서는 지골레이드나 캇셀프라임 따위보다 훨씬 강력한 드래곤이었다.”



현재 할슈타일 가문에 속해있는 드래곤들을 따위라고 표현하는 후작의 언사가 리타는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의 말에서 가문의 드래곤을 향한 애정이나 경의 같은 것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의 경멸 같은 감정이 느껴질 정도다.



“휴리첼과 달리 할슈타일은 바이서스 귀족가의 정통성이 약하다. 드래곤 라자라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리 잡을 수 있었지만 제일 명문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 그런데 명분을 갖춘 휴리첼이 가장 강대한 드래곤 라자까지 보유했으니, 할슈타일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건국 초부터 강력하게 자리 잡은 휴리첼 가와 달리 할슈타일 가는 바이서스와 척을 진 사이였다. 그랬다가 4대 왕의 북벌 때 바이서스에 종속되어 충성을 바치고 있다. 정말로 휴리첼 가문이 핸드레이크의 가문이라면 그 입지에서는 차이가 있는 게 당연했다.



“아버지는 할슈타일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휴리첼과 친분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크라드메서의 드래곤 라자였던 카뮤 휴리첼…… 에게 율리아나를 시집보내기로 진즉부터 언약을 맺었지. 카뮤가 차지하던 비중이 막대하던 휴리첼 가에서도 할슈타일과 관계를 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흔쾌히 승낙했다. 그것이 누이의 유별난 행동 때문에 미뤄지다가 마침내 아버지가 강제로 진행시키게 된 것이다.”



카뮤 휴리첼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할슈타일에게선 사람의 감정에 둔한 리타조차도 단숨에 알아차릴 정도로 격한 분노가 느껴졌다.



리타는 냉정한 후작이 이토록 감정을 보이는 상대가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카뮤 휴리첼이라는 이름은 과거에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의문의 죽음을 당해 크라드메서가 미쳐 날뛰게 만든 라자였다는 게 그녀가 아는 전부였다.



그런데 그가 율리아나 할슈타일과 결혼할 사이였다고 한다.



“카뮤 휴리첼은 신망이 두터운 자였다. 휴리첼 가를 다시 빛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자였지. 다만 한 가지, 그에겐 안 좋은 소문이 뒤따랐다.”



“뭔가요?”



할슈타일의 싸늘한 얼굴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그는 조소하며 입을 열었다.



“여자관계가 나쁘다더군.”



“……”



“단순한 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에게 유일하게 흠잡을 게 있다면 여성 편력이 심하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냥 흠 하나 있는 것에 불과했지만, 혼처의 입장에서 보자면 꽤 신경 쓰이는 소문이었지.”



“소문은 사실이었나요?”



“당시는 모르겠군. 하지만 이후의 행실을 보면 단순히 헛소문이었던 건 아닐 거다.”



카뮤 휴리첼의 최후를 아는 할슈타일은 한껏 그를 조롱했다. 그로서는 정말 이용하기 좋은 짓을 저질렀다. 제대로 이용해먹고 휴리첼 가의 이름까지 바닥에 떨어트렸으니 만족스런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분노는 풀리지 않는다.



“후우……”



후작은 긴 한숨을 내쉬어서 감정을 몰아냈다. 다시 그의 눈에 냉정한 빛이 감돌았다.



“어쨌든 카뮤 휴리첼과 율리아나의 결혼 날이 잡혔다. 그런데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있던 율리아나가 몰래 집을 빠져나갔다. 집에서는 난리가 났지. 아버지는 불같이 노하며 그녀를 찾을 것을 명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오라고.”



“도망간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정확히 봤군. 율리아나는 제 발로 돌아왔다. 그녀를 잡아먹을 것처럼 어디 갔었냐고 묻던 아버지에게 그녀는 카뮤를 만나고 왔다고 답했지.”



귀족의 결혼 풍습은 조금 독특하다. 결혼 날이 정해지면 그 전에 남녀는 서로를 만나지 않는다. 특히 여성은 함부로 밖을 나가지 않는다. 조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앞으로 다른 가문의 사람이 되기에 집에 오래도록 머문다는 의미에서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관습처럼 굳어졌다.



그러했기에 율리아나의 행동은 가문의 명예를 중시하는 아버지에게 상당히 불쾌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갑자기 입을 다무시더군. 더 이상 화를 내지도 않으셨지. 그분은 하나만 물어보셨어. ‘말했느냐?’ 이것이었지. 그것 말고는 어떤 물음도 하지 않으셨다.”



리타는 질문하지 않고 그가 말을 잇길 기다렸다. 후작은 잠시 끊어가며 금방 이어 말했다.



“무엇에 관한 것인지는 두 사람 다 이야기하지 않았다. 율리아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고 아버지는 침묵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지. 나도 이유는 짐작하고 있었다.”



지쳐 보이는 후작의 눈이 낮게 깔렸다. 그는 목을 매만지며 길고 깊은 목소리를 냈다.



“율리아나는 병이 있었다.”



“……”



“언제까지 살지 몰랐다. 발작은 없었지만 이따금씩 고통스러워하곤 했지. 그랬기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녀의 방종을 허락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자 버릇이 나쁜 카뮤에게 그녀를 시집보내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지.”



후작은 입이 타는지 침을 삼켰다. 리타가 마시던 차를 내밀까 잠깐 고민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그녀도 갑자기 들은 이야기에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율리아나 할슈타일에게 병이 있었다는 것은 이제까지 이야기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것을 숨겼다. 몇 사람밖에 모르는 사실이었다.”



후작의 아버지는 가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의 병이 알려져 봐야 가문의 입장에서는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족가의 입장에서 동정어린 시선을 받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문의 명예를 가장 중시하기 때문에 그녀를 인형처럼 다루려던 아버지가 오히려 그녀가 오래도록 살길 가장 소망했지. 반대로 가족으로서 그녀가 자유롭길 바라던 어머니는 그녀가 죽을 것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상태였다.”



그리고 가문의 힘만을 바라며 크던 후작에게 있어서도 율리아나는 유일하게 가문 이상의 의미를 차지했다. 지금 와서는 그런 것이 전혀 없어졌지만.



후작이 율리아나의 죽음을 금방 받아들인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였다.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것은 희망이었다. 그러나 추측은 어디선가 금방 죽었으리라는 것이다. 세상은 희망보다는 추측대로 흘러가는 게 더 많다.



미래를 가불한다는 어이없는 말을 받아준 것도 그 때문이다. 나이젤을 죽자 살자 쫓아다닌 것도 그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게 많았던 것도, 이것저것 해보려고 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카뮤 휴리첼은 혼약을 파기하지 않았다. 파기하기 충분한 이유가 있었음에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게 가문을 위해서 참은 것인지, 아니면 아리따웠던 누이를 보고 반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른다. 할슈타일이 먼저 파기할 이유가 없었기에 혼약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리타는 몸이 앞으로 기우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다시 똑바로 세우지 않았다. 그녀가 듣기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나이젤과 율리아나, 그리고 휴리첼까지. 얽히고 얽힌 관계가 어떻게 풀리는 것인지 궁금했다.



“율리아나는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그렇게 활발하던 누이가 밖으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혼인 전날이 되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동하고 나는 그녀의 방으로 갔다. 마지막 날은 가족과 같이 식사를 하는 관습이 있건만, 그녀는 그때조차도 밖에 나오지 않았었다.”



과거를 회상하는 후작의 얼굴은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언뜻 보기엔 무표정해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평온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화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상한 표정이었다.



“카뮤를 만나고 온 뒤로 애써 과거처럼 밝은 척을 했다. 방 밖으로 나오지는 않은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그녀는 활기차게 이야기했다. 그것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정확히는 포기해버린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조차도 그 순간에는 어떤 잔소리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일이 일어났지.”



“일?”



“노크 소리가 들렸다. 여기까지는 평범했지. 우리는 암담한 분위기였기에 누구도 노크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이 열렸다.”



시종이라면 절대 문을 열리가 없다. 주인의 명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그들은 계속 밖에 서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규칙이다. 그런데도 문이 열렸다는 사실은 노크를 한 이가 시종이 아닌 다른 누군가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린 문으로 나타난 건, 갑자기 사라졌던 아스화리탈이었다.”



“나이젤……”



리타의 입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가늘게 새어나왔다.



“놀란 우리들에게 그는 평소처럼 웃으며 말했지. [2층 왼쪽에서 세 번째 방은 잠기지 않았군요.] 누이의 얼굴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환하게 밝아졌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죠?”



후작이 리타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그는 달려드는 누이를 안으며 말했다. [카코스 다이몬은 당신을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오스발은 당신을 외면하지 못했죠. 그리고 나이젤 아스화리탈은 당신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자유를 희망했기에 속박을 갈구하게 되었군요, 나의 반왕이여, 같이 가시겠습니까?]”



반왕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으나 리타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녀라도 지금 분위기가 질문을 해서는 안 될 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후작은 이상한 표정을 풀며 턱을 괴었다. 약간은 허허로워진 얼굴이 되어 그는 다시 리타에게서 율리아나를 보았다.



“누이는 기꺼이 그러겠다며 그를 따랐다. 그리고 우리가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그들은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사라져버렸다는 말이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나이젤이 저택에서 사라질 때도 나가는 걸 아무도 못 봤다고 했는데, 그러면 마법의 일종을 사용한 것일까? 하지만 이 저택은 드래곤이 건 마법이 있어서 마법을 쉽게 사용할 수가 없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무슨 수를 썼을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건 그 사라진 방법이 아니다. 사라졌다는 사실 자체다. 리타는 후작에게 집중했다.



“당연히 혼인은 파기되었다. 신부가 사라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휴리첼 가문에서는 당연히 분노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그들의 분노를 받아들였다. 어머니는 납치를 당했을 뿐이라며 딸의 명예를 지키려고 했지만, 그다지 소용없는 일이었지. 세간에는 하인과 눈이 맞아 야반도주한 망나니로 알려졌다.”



으드득.



후작의 이가 갈리며 섬뜩한 소리가 났다.



“그 이야기를 카뮤 휴리첼이 퍼트리고 다녔다. 가문 입장에서는 파기된 혼약이 알려져 봐야 좋을 것 없기에 쉬쉬하는 분위기였지만, 정작 본인은 그다지 거리끼지 않고 떠들어댔지. 율리아나가 처음부터 마음에 둔 남자가 있었다고 했다며, 틀림없이 그 남자랑 눈이 맞아 약혼을 깬 것이라고. 추악한 소리를 지껄여댔다.”



후작의 분노는 여과 없이 드러났다. 그는 참을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할슈타일이란 이름이다. 그 이름이 더러워지면 당연히 화가 난다. 하지만 그보다 더 화나는 건 할슈타일 앞에 율리아나라는 이름이 붙을 때다. 그 누구도 누이를 욕보여선 안 됐다.



가문에만 얽매이던 사람들이 가족에게 얽매였다. 율리아나는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후작도 누이만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랬기에 카뮤 휴리첼 만큼은 그에게 있어 가문을 벗어나 마땅히 증오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당 시대에 가장 강대했던 드래곤 라자와 그 가문. 후작의 분노는 그것들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침묵이 흘렀다. 리타와 후작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후작이 조금 힘이 빠진 소리를 냈다.



“카뮤는 죽었다. 그로 인해 크라드메서는 미쳐 날뛰었고, 지금의 휴리첼 가문의 상황을 낳았다.”



휴리첼 가의 몰락 이유는 그걸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아무리 위세 높은 가문이었다 하더라도 드래곤이 날뛰어 미드 그레이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다면 죄를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후작은 이어 말했다.



“그리고 아스화리탈과 사라진 율리아나의 소식은 그 이후로 듣지 못했다.”



“……”



“내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후작은 길었던 이야기가 피곤했는지 눈두덩이를 손으로 짚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결코 풀어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 그였지만 지금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였다.



리타는 그런 후작을 보면서 곰곰이 그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을 곱씹었다. 이제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내용들이다. 그 누구도 몰랐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 왜 아버지가 홀로 그녀를 데리고 헬턴트로 향했는지, 그리고 어머니는 왜 그렇게 일찍 죽었는지.



그러나 궁금증은 더 커졌다.



도대체 아버지의 정체는 뭘까? 지금 이야기만 들어서는 평범한 사람은 절대로 아니다. 꿈속에서 보았던 아버지는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평범한 인간 남자에 불과했다. 약간 특이한 구석이 있긴 했어도 사람의 범주에서 벗어나진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 나이젤은 그녀에게 일어날 일들을 알고 있었는지 꿈에서 여러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후작의 말로 봐서는 이상한 마법 같은 것을 쓸 줄 아는 것 같다.



칼라일과 이라무스에서 나이젤은 리타에게 경고했었다. 평범한 말이 시기에 맞춰서 적절하게 기억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나이젤 아스화리탈, 카코스 다이몬, 오스발, 율리아나 할슈타일, 반왕, 크라드메서, 카뮤 휴리첼, 핸드레이크, 할슈타일 가, 드래곤 라자, 드래곤의 연구자, 페이 아스화리탈.



“하아……”



머리가 복잡해진 리타는 깊은 한숨을 뱉어냈다.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리타라고 했나?”



갑자기 후작이 말을 걸었다.



“네.”



“이름으로 부르겠다.”



“마음대로 하세요.”



“리타.”



“네.”



“네 이야기를 해라.”



“제 이야기요?”



“네가 겪은 모든 일들. 그것을 말해봐라. 여기까지 오면서 겪은 일들도 모두.”



후작은 명령하듯 말했다. 하지만 말에 비해서 거기에 담긴 어조는 그렇게 강제적이지 않았다.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저녁까지 시간은 많았다. 할슈타일의 이야기는 꽤 길었지만 하루에 비하자면 짧았다. 리타는 슬쩍 밖을 한번 바라본 후에 이제까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타이번이나 카피 등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는 빼버렸다. 그녀는 후작에게 카피의 이야기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리타의 이야기는 후작의 이야기만큼이나 길었다. 한 순간이 아닌 이제까지의 삶을 모두 말하는 것이었기에 짧을 수 없었다. 태어나서 죽는다는 식의 단축으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다.



후작은 무표정한 얼굴로 리타의 말을 들었다. 그러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곧장 질문했다. 흐름이나 분위기는 상관치 않고 그는 물었다. 어찌 보자면 리타보다도 더했다. 덕분에 이야기는 번번히 끊겼으나, 리타는 별로 개의치 않으며 이야기를 마쳤다.



긴 이야기가 끝나고 후작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럼 지금은 북쪽으로 가는 건가?”



“네.”



카피의 이야기를 할 수 없었기에 막연히 북쪽에 일이 있다는 식으로 말해뒀다.



“무기도 없는 상태로?”



“바이서스 임펠에서 구하고 가야겠지요.”



“흠……”



후작은 잠깐 생각하는 듯 하더니 말했다.



“이곳에 머물 생각은 없나?”



“예?”



후작이 똑바로 리타를 쳐다보았다. 세월의 무게도 그의 눈에 깃든 정염을 깎아내리진 못했다. 어떤 굳건하고 열정적인 힘이 느껴지는 후작의 눈이 리타의 시선을 붙들었다.



그는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할슈타일의 이름을 달 생각이 없는 거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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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내 동료가 돼라. 의 DR판입니다.

최근 무협을 적다보니 점점 건조체가 되어갑니다.

이거 좀 고쳐야 할텐데 말입니다.

어쨌든 길었던 할슈타일 후작과의 대화도 다음화면 끝나는군요.

어휴. 이거 풀어낸다고 머리 감싸고 고민했던거 생각하니 속이 시원하네요.

그럼, 좋은 밤 되시길.






댓글 : 5 개
언제나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화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할슈타일 후작은... dr에서는 그냥 악역1 정도의 느낌이었습니다만.. pw에서 그 캐릭터성(?)을 일깨워준 느낌이었는데 요번 글에서도 약간 그 때의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후작의 인간적인 면이 드러나는 사후(?)의 모습을 모티브 삼아서, 반왕으로 인해 바뀐 후작의 모습으로 그려봤습니다.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한테는 다 DR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라는 게 잘 보엿는지 모르겠네요.
왕비의 자리를 거절한 리타가 과연 할슈타일을 이을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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