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5. 복수의 검은 손길 (20)2015.08.25 PM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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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어 보십쇼, 보스. 아무리 보스가 그러더라도 이건 그냥 못 넘어가겠습니다. 저 놈이 뭐라고 나에게 명령질을 해요? 거기다 보스 멱살을 잡아? 생각해보니 열 받네. 너, 이리와! 언제까지 그렇게 당당하게 서 있을지 보자!”



“쳉! 안 돼! 다시는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 했잖아! 한 달 동안 잘 참았으면서 또 왜 그래!”



보스의 말은 제법 효과적이었다. 30대 사내의 표정이 눈에 띄게 불안해졌다. 그는 키 큰 사내와 보스를 번갈아 바라보며 차츰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처음부터 양 손은 저항의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들어올린 상태였다.



리타는 박수라도 치고 싶어졌다. 양측 다 꽤나 훌륭한 연기지 않은가.



챙이라는 사내는 딱 봐도 행동이 지나치게 크다. 그건 위협의 의미일 뿐, 진짜로 화내는 것이 아니다. 감정을 연기하는 것이라면 그 분야에서 자신 있게 최상위권에 속한다 말할 수 있는 리타다. 그녀가 보기에 저건 연기가 분명하다.



그리고 주춤거리는 30대 사내도 어디까지나 겁먹은 척 할 뿐이다. 진짜로 겁먹었으면 검에 손이 간 그 순간에 냉큼 꼬리를 내리고 튀었을 것이다. 그는 상황을 연출해서 노름빚을 어떻게든 받아낼 생각이다.



30대 사내는 다급하게 외쳤다.



“어이구! 노름빚 받으려다가 이게 무슨 봉변이야. 이봐, 젊은이. 이건 분명히 하자고. 내가 반말을 한 건 사과하지. 미안해. 자네 보스한테 험했던 것도 흥분해서 그랬다. 사과할 수 있어. 하지만 네 보스가 나에게 진 노름빚은 받아야겠다. 이해해?”



챙은 이번에도 또 반말이냐고 따져 묻진 않았다. 그의 감은 눈앞의 상대가 단순한 위협으로 넘어갈 상대가 아님을 알렸다. 겉보기에는 인생을 의미 없이 소비하고 있는 노름꾼으로 보이는데 알맹이는 단순히 그렇진 않나 보다.



챙은 고개를 돌려 보스를 돌아보았다. 보스는 한결 같이 그에게 들러 붙어 있었다. 그리고 챙과 지낸 기간이 상당히 길었던 만큼이나 그를 잘 아는 보스는 그가 눈빛으로 무엇을 묻는지 알 수 있었다.



‘돈 있어요?’



보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번 상행에서 남긴 이문 중에서 본인의 몫은 방금 전 고스란히 잃은 참이다. 상단의 돈이 있지만 그건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



챙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스가 순순히 돈을 내놓아야지만 지금 사태는 평화로이 해결될 터였다. 하지만 그 돈이 없다. 그러면?



챙!



“그딴 건 모르겠고! 우짰든 댁은 오늘 나한테 살려달라고 빌어야 할 거야. 그래야 덜 아프게 죽을 테니까.”



자신의 이름과 비슷한 소리를 내며 챙은 검을 기어코 뽑았다. 그리고 사납게 어금니를 드러내며 검을 30대 사내에게 들이밀었다.



“으헉!”



눈앞에 날붙이가 다가오자 사내는 기겁하며 몸을 뒤로 뺐다. 그는 당황한 눈으로 챙을 바라보았다. 그는 맹수 같은 모습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그를 말리듯이 달라붙어서 말리지는 않는 보스는 입만 나불거렸다.



“참아! 참으라고, 챙! 제발 좀 참아! 사람 좀 안 죽인다고 네가 죽진 않아! 또 송장 하나 치우게 하지 말고 제발 성질 좀 죽여!”



그러고 그는 30대 사내에게도 다급하게 외쳤다.



“이보게! 자네도 얼른 도망가게! 내 어떻게든 돈은 마련해 줄 테니까! 지금은 일단 도망가!”



“그, 그걸 어떻게 믿어!”



“일단 살고 봐야지! 이놈이 마음먹으면 진짜로 사단이 벌어진다고!”



별로 좋지 않다. 리타는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저건 챙이라는 사내와 보스 사이에 약속된 어떤 행동 패턴일 것이다. 아무리 돈에 목숨을 건다는 노름꾼들이지만 진짜로 목숨을 걸진 않는다. 목숨과 돈의 가치 중에서는 어떤 경우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대게는 목숨의 가치가 우선이다. 더욱이 돈을 잃는 것이 아니라, 얻어야 할 돈을 못 얻는 경우라면 가치가 덜할 수밖에 없다. 그게 편법으로 얻은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그들은 두 가지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하나는 30대 사내가 그들이 자주 맞닥뜨린 평범함과는 조금 거리를 둔 사내라는 점. 그리고 두 번째는 여기가 헤게모니아가 아니라는 점이다.



30대 사내는 겁먹은 표정으로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악에 받힌 표정으로 주변을 향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것들이 노름빚을 때먹으려고 사람까지 죽이려 드네! 헤게모니아 놈들이 바이서스 사람하나 잡는구나!”



“헤게모니아?”



순간 구경꾼들의 분위기가 변했다.



단순히 재미난 사건의 방관자적 입장이던 이들이 사건의 참여자로 입장을 바꿨다. 그들의 눈에는 흔하게 보이기는 해도 바이서스와는 분명히 다른 복장이 들어왔다. 저런 옷은 헤게모니아의 상단 사람들이 주로 입는다. 즉, 칼을 뽑은 청년과 그의 보스가 헤게모니아 인임을 확인시켜 준다.



당황한 보스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며 30대 사내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는 연이어 외쳤다.



“바이서스가 자이펀이랑 전쟁하는 틈을 노려서 자기들 뱃속만 불리더니, 이제는 염치도 없이 사람을 죽이려고 들어? 헤게모니아에서는 그딴 식으로 하는 게 법이냐! 하긴 전쟁을 이용할 생각만 하는 것들이니 그럴 수도 있겠네.”



전쟁이라는 말이 구경꾼들의 신경을 다시 한 번 자극했다.



이 술집은 마을의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 아니다. 붙박이로 있는 이들도 몇 있지만, 주된 고객층은 먼 길을 오가며 들리는 상인들이다. 그리고 상인들이라 함은 헤게모니아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헤게모니아는 바이서스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자이펀은 바이서스의 남쪽에 위치하며, 두 나라는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바이서스 사람들에게는 자기들이 자이펀을 막기에 헤게모니아가 안전하다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 꽤나 박혀 있다.



그런데 그렇게 보호받는 놈들이 전쟁 때문에 품귀현상을 일으키는 물건들을 비싸게 팔아먹는다. 당연히 바이서스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좋은 감정이 생기긴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이펀 인처럼 항상 으르렁대며 적대하는 대상은 아니다. 조금 안 좋은 이미지가 있다고 해도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는 사이다. 그런데 지금 같은 경우라면 달라진다. 노름빚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것도 아니고, 노름빚을 달라는데 오히려 검을 들고 목숨을 위협하는 꼴이라니? 억하심정을 가지고 있던 바이서스인으로서는 꽤나 열불이 나는 일이다.



구경꾼들 중에서 덩치가 산만한 사내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군. 바이서스에 빌붙어서 밥 빌어먹는 북부 놈들이 무서운 줄 모르고 설쳐?”



“노름판에서 벌어진 일에는 인종도 국경도 없다지만 이건 아니지. 최소한의 도덕은 있어야 한단 말이야.”



그 말을 하며 나선 이는 꽤나 연륜이 있어 보이는 전사였다. 행색으로 보아서는 상단에 고용된 호위무사인 것 같았다.



힘 좀 쓸 것 같은 이들이 먼저 나서자 나머지 구경꾼들도 나서기 시작했다. 형세는 단번에 챙과 보스를 사람들이 단체로 위협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챙은 보스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불안하게 흔들리던 보스의 시선이 챙의 눈빛을 읽었다.



‘어쩌죠?’



“나도 몰라!”



보스는 다급하게 외치며 챙의 커다란 몸 뒤로 숨었다. 특별히 호위무사라는 자각은 없지만, 어찌되었든 챙의 실력은 꽤나 확실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실력 있는 사람의 뒤에 숨는 게 가장 좋다.



챙은 더 이상 연기가 필요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사나웠던 표정은 차분하게 가라앉았고 필요이상으로 껄렁했던 자세도 똑바로 섰다. 그는 동요하지 않은 눈으로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보스에게 말했다.



“이길 가망이 없어요.”



“그, 그럼 어떡해?”



“도망가죠.”



그 대답은 보스가 아닌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어딜 도망가! 내 돈 내놔, 이 헤게모니아 놈들아!”



챙에게 위협 받던 30대 사내다. 그는 사람들의 위세를 등에 업고 당당하게 말했다. 눈앞에 검이 들이밀어져 있는 상황은 변함없었지만, 아군이 많아졌기에 마음껏 배짱을 부리는 것이다.



챙은 그 사내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큰 소리가 나서 잠깐 쳐다보았을 뿐이다.



그는 천천히 주변을 살피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도망갈 길은 없어 보이네요, 보스.”



“말 안해도 알아!”



“그냥 얌전히 맞는 게 어떨까요?”



“뭐?”



이건 무슨 쉐도우 하운드가 풀 뜯어 먹는 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보스가 챙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챙은 한 없이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보스는 챙이 헤게모니아의 한 마을에 있는 아가씨를 만날 때를 제외하고서는 늘 기만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는 어디까지나 진심이다.



“죽기 직전까지만 맞으면 봐주지 않을까요? 노름빚에 사람 잡는다는 말은 없다고 했잖아요.”



“채, 챙!”



“발음을 바로하세요. 파가 놀려요.”



보스는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챙을 바라보았으나 챙은 이미 검을 집어넣은 이후였다. 그는 사람들을 향해서 열린 자세를 취했다. 너희가 때린다면 얼마든지 맞아줄 테니까 마음껏 주먹을 날려보란 느낌이다.



“……”



챙이 그런 자세를 취하자 오히려 사내가 애매해졌다. 이런 식으로 상황을 몰아가면 냉큼 돈을 내놓고 사라질 줄 알았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턱을 긁었다.



“괜히 험악한 꼴 보지 말고, 그냥 돈만 내놓고 사라지시지?”



“돈 없어.”



“그럼 몸으로 때우겠다, 이건가?”



굳이 묻지 않아도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고 챙은 눈빛으로 말했다. 처음 만나는 사내지만 그 눈빛만은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돈만 받아내는 게 중요할 뿐이지, 사람을 때리는 취미는 없었다.



그가 인상만 쓰고 있자, 먼저 나섰던 덩치 큰 사내가 말했다.



“이봐, 형씨. 이런 놈들은 다시는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흠뻑 두들겨 패줘야 해.”



“맞아. 매가 약이지.”



전사까지 거들고 나서자 사람들은 그들을 손봐주자는 쪽으로 의견을 제시했다. 30대 사내는 그다지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래도 받지 못한 돈에 대한 억울함이 마음속에서 슬며시 소리쳤다. 바라는 대로 해주라고.



그래도 그는 마음의 소리를 듣지 않았다. 단지 인상만 찌푸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자 이미 흥분한 사내들이 나섰다.



“마음 약한 형씨군. 됐어. 우리가 그냥 혼쭐을 내주지.”



“그게 좋겠어.”



“이, 이봐!”



덩치 큰 사내와 전사가 주먹을 우드득거리며 챙과 보스에게로 다가갔다. 뒤에서 30대 사내가 말렸지만 그의 말은 깔끔하게 무시되었다. 그들은 만족할 만한 반응을 보이는 보스와 전혀 겁먹지 않은 챙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이거 아까 전에 죽이겠다고 설치던 기세는 다 어디 가셨나? 나도 죽이겠다고 검을 뽑아 보시지?”



챙은 그들이 원하는 건 보스처럼 겁을 먹고 벌벌 떠는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 걸까? 그는 전혀 겁이 나지 않았다. 그에게 겁나는 것은 하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두들겨 맞는 건 좀 많이 아프기는 하지만 겁나는 일은 아니다.



챙은 멀뚱멀뚱하게 팔을 벌린 자세 그대로 서 있었고, 위협이 통하지 않자 인상을 구겼다. 뭔가 위험한 냄새가 풍기는 놈이다. 하지만 하고 있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애초부터 헤게모니아인이기 때문에 마음에 들턱도 없었다.



“쿡.”



사내들의 대치로 인해 묘하게 조용해진 가운데 작은 웃음소리 하나가 정적을 깼다.



덩치 큰 사내는 인상을 팍 썼다.



“지금 누가 웃었……”



뒤에 쌍소리를 덧붙일 계획이었던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구경꾼들을 비롯해 이 장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웃음소리의 주인공이 있었다.



그녀는 긴 검은 머리를 출렁이며 입가에 손을 대고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참으려고 했는데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어떻게든 참아보려는 모습이다.



“쿡쿡…… 큽.”



억지로 웃음을 삼키며 간신히 자신을 진정시킨 리타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수많은 시선을 마주했다.



“왜 웃지, 아가씨?”



“저 남자가 웃겨서요.”



“그래?”



그 대답은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 웃기다니까. 하지만 리타의 이어지는 말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나도 겁먹지 않았으면서 겁먹은 척 연기를 해야 할까 망설이는 게 너무 티 나게 보여서요.”



챙의 시선이 돌아갔다.



“무슨 말이지요?”



“말 그대로의 의미인데요.”



“어떻게 알았습니까?”



“보이니까요.”



“대화가 안 되는군.”



“이해력이 부족하시네요.”



챙과 리타는 서로를 향해 짤막한 평가를 내렸다. 사람들은 도대체 이 연놈들이 뭘 하나 싶은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흠.”



리타는 그들의 시선을 보며 아스화리탈 위에서 내렸다. 그녀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챙과 사내들 사이로 걸어 들어왔다.



“그냥 지나갈까 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넘어가긴 힘들겠군요.”



리타는 검은 머리를 가볍게 쓸어 넘겼다. 사람들은 느닷없이 나타난 훤칠한 미녀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상황이고 뭐고 일단 예쁘니까.



그러나 그녀가 한 말은 가출했던 이성을 다시 붙잡아 오도록 만들었다.



“괜히 나서지 않는 게 좋을 텐데.”



“괜히는 아니죠.”



리타는 느긋하게 대답하며 사내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완전히 챙의 편에 선 듯한 모습에 사내들의 표정이 조금 꿈틀거렸다.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말했다.



“아직 아무런 폭력행위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대화로 해결해 보는 게 어떨까요? 그쪽에서 협박도 일종의 언어적 폭력이기 때문에 심리적 타격을 받은 것에 대한 폭행혐의를 주장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물리적 접촉은 없었으니 대화로 풀어갈 여지는 충분할 것 같네요.”



“심리…… 뭐?”



“서로 피를 안 봤으니 좋게 넘어갈 수도 있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리타는 말하며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어디까지나 그녀의 인상이 좋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좋게 보이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대게 웃어주면 상대방은 화를 내지 않더라.



“어? 어, 음…… 그, 아가씨가 그렇게 말한다면 뭐 그럴 수도 있지.”



“잘 생각했어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리타의 말에 납득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납득은 하고 있었지만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대화로 어떻게 없는 돈을 만들어 낼 거지? 저 사람들은 돈이 없다잖아? 아가씨가 대신 갚기라도 할 건가?”



노름빚을 떼먹었다며 처음에 화내던 사내다. 그의 말대로 챙과 보스에게는 돈이 없었다. 돈이 있었다면 상황이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리타는 슬쩍 손가락을 들었다.



“옷깃 뒤에 뭐가 튀어 나와 있네요.”



“어?”



순간 사내는 움찔하며 손을 옷 뒤로 가져갔다. 그러나 그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는 게 없었다. 사내는 눈을 크게 뜨며 리타를 바라보았다. 리타는 여전히 선선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못 봤나 봐요. 분명히 그렇게 느꼈는데.”



“……”



“전 마나를 느낄 줄 알거든요.”



사내의 얼굴이 대번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이제까지와는 달리 진심으로 불안해하는 눈빛으로 리타를 바라보았다.



“아가씨는 혹시?”



리타는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그녀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30대 사내는 리타가 말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마법을 써서 카드를 바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직접 그 광경을 보지 못했으니 아니라고 잡아 땔 수는 있다. 그러나 의심을 사게 된다. 의심은 소문을 낳고 소문은 사실 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정말로 마법사가 맞았다.



단순히 여기서 속임수가 들통나지 않는다고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이곳에서 다시 도박을 하진 못한다. 이곳뿐만이 아니라 다시는 바이서스에서 도박을 하지 못하게 될 지도 모른다. 도박장과 도둑 길드는 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도둑 길드의 정보는 상당히 광범위하고 자세하니까 말이다.



그는 자연스럽게 기세가 줄어들었다. 원래부터 혼내주자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내들을 방관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완전히 물러나는 자세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다른 사내들의 입장이 애매해졌다. 당사자가 망설이니 그들이 먼저 나서기에는 그림이 이상해진다.



리타는 말했다.



“노름빚은 그냥 넘어가실 수 있죠?”



“어?”



“그 정도는 그냥 개평이라 생각하고 넘어가는 아량은 보일 수 있지 않나요?”



“……”



30대 사내는 물끄러미 리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리타는 어지간한 사람은 전혀 읽어낼 수 없는 얼굴을 가진 여자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어쩔 수 없지. 없는 돈을 만들어 낼 수도 없으니. 이번엔 꽤 많이 땄으니까 그냥 넘어가겠어.”



“잘 생각했어요.”



리타는 생긋 웃으며 몸을 뒤로 돌렸다. 그곳에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보스와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챙이 있었다. 리타는 챙을 향해 말했다.



“이렇게 예쁜 여자는 처음 보나요?”



왜 그렇게 뚫어지게 보냐는 의미다. 챙은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두 번째로 봅니다.”



리타는 눈을 깜박거렸다. 그녀가 시도한 농담에서 돌아오는 반응 중에서는 꽤 획기적인 대답이다.



이번에는 반대로 물끄러미 바라보는 리타에게 챙이 말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선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는 그의 태도에 리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는 사이 정신을 차린 보스가 리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리타의 시선이 그에게로 내려갔다.



“고맙네! 고마워, 아가씨. 덕분에 살았어.”



“별 일 아니에요.”



“아니야. 내 이 은혜는 진짜로 잊지 않겠어.”



“잊으면 그게 나쁜 사람이겠죠.”



“어?”



“농담이라는 부류에 속하는 말입니다.”



“하하……”



보스는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세상에는 챙 말고도 이상한 사람이 많구나.



보스는 연신 리타에게 감사를 표했다. 챙은 처음 딱 한번 감사한 것 외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리가 어색했기에 금방 떠나갔다.



“혹시라도 헤게모니아에서 도움이 필요하다면 우리를 찾게나. POG상단을 찾으면 될 거야. 드래곤을 물리치는 것 말고는 무슨 일이든 도와주지.”



“기억할게요.”



“그럼.”



챙은 짤막하게 고개만 숙였다. 감정을 연기하는 남자는 더 이상 연기하지 않았다. 다만 의미 모를 시선을 던질 뿐이다. 그러나 리타는 그를 마주보지 않았다.



보스는 끝까지 허리를 숙이며 감사하고 떠났다. 그들을 보내며 리타는 중얼거렸다.



“북부목동은 그들 자신 외의 도움은 거절하지만, 헤게모니아라고 해서 반드시 외인의 도움을 수치로 여기진 않는군요.”



“무슨 말이다 해요?”



어느새 아스화리탈과 함께 다가온 카피가 물었다. 아스화리탈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카피가 아스화리탈을 몰아온 것인지, 아스화리탈이 그저 주인에게 걸어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신기한 사태에 리타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조금 있다 말해 줄게요. 일단은 먼저 인사부터 해야 하거든요.”



“인사?”



“사람이 오랜만에 만났을 때에는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니까요.”



그러며 몸을 돌린 리타의 앞에는 다른 구경꾼들처럼 주점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아직 남아있는 사내가 있었다. 리타가 속임수를 밝혀낸 사내다. 그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지?”



“아는 방법이니까요.”



리타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나 사내는 조금도 반응하지 않고 다그쳤다.



“왜 끼어든 거야? 그냥 가던 길 가면 되잖아. 남의 사업을 방해할 요량이었던 거야?”



“당황해서 도와주길 원했던 거 같은데, 아닌가요?”



“뭐?”



“그리고 같은 헤게모니아인들끼리 타지에서 싸우는 건 좋지 않죠.”



“……”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는 흔들리는 눈으로 리타의 얼굴을 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가씨는 누구지?”



“모르겠어요?”



“전혀. 우리 언제 본 적 있나?”



리타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바이서스 남자들만 눈이 이상한 건 줄 알았는데, 그냥 세상 남자들의 눈이 이상하다는 것으로 정정해야겠다. 그녀는 손을 들어 머리를 한데 뒤로 묶었다. 그리고 마치 머리가 짧은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이래도 모르겠어요?”



“…… 글쎄.”



“눈썰미가 별로군요.”



리타는 아쉬워하며 뭘 더 바꿔야 할까 고민했다. 가슴을 가릴까 했지만 지금 여기서는 무리다. 그렇다고 머리를 그때처럼 자르기는 아깝고. 그러다가 그녀는 그때와 달랐던 점 하나를 생각해냈다.



얼굴에 주었던 힘을 풀었다. 입가를 올리고 있던 근육이 이완되며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내려왔다. 그리고 가볍게 곡선을 그리도록 만들던 눈가의 근육에 힘이 빠지며 눈매가 원래대로 날카로운 선을 그리게 되었다.



단지 미소가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봄의 꽃밭에서 겨울의 설원으로 배경을 바꿔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그 정도로 리타의 얼굴은 인상이 달라졌다. 그저 무표정하게 되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리타의 얼굴에서는 표정이 사라졌다. 그러자 사라진 그녀의 표정 이상으로 남자의 얼굴에 표정이 생겨났다. 그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처럼 눈을 부릅뜨고 경악하고 있었다.



“페이!”



리타는 차가워진 얼굴만큼이나 고저가 없이 딱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랜만입니다, 레이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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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데레 청년은 이걸로 등장 끝!

엮일 줄 알았다면 경기도 오산입니다. 엮이는 건 30대 아재지롱!

레이저를 처음부터 이름으로 쓸까 고민했습니다.

계속 30대 아저씨로 쓰기엔 타자가 많아서 귀찮았거든요.

과연 쇼타 속성인 리타에게 30대의 멋스러움을 레이저는 어필할 수 있을까요.

알콩달콩 로맨스 소설 아무르타트는 다음화로 이어집니다.

그럼,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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