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람부는 저녁에는 나도 함석지붕처럼 흐르고 싶다 - 신지혜2015.09.20 PM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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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부는 저녁에는 나도 함석지붕처럼 흐르고 싶다

신지혜


무늬진,
저녁 뼈마디에 내 이름을 꽂는다. 무슨 무인도 깃발같은 붉은 창문
을 달고 지나가는 바람을 간절히 부른다. 늦은 구름이 태연히 지나
간다. 목울음 삼키는 먼 산등성이 툭, 붉어져 나온 심장에도 투명한
유리창이 달려 있을까.셀로판지 같은 허공에 뺨을 부비는 함석 지붕
들이 흐르고 싶어 안달이었다. 길가, 거꾸로 선 나무들이 맨 뿌리로
서로를 더듬는 저녁, 이따금씩 빈 인스탄트 캔들이 골목을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자꾸만 눕혀도 다시 일어선 길들이 녹슨 철문의 문고리
를 잡아 흔든다. 깜깜한 어둠이 공중에 낳은 새알 하나가 허공을 더
높이 밀어올리고 있었다. 주름진 어둠의 표피속에서 수련처럼 천 년
을 훌훌 벗어 버린 채 푸른 붓꽃이 다투며 피고 있었다. 잘 망치질
된 함석지붕처럼 나도 흐르고 싶었다. 바스락, 귀를 달싹거리며 무엇
인가, 두터운 어둠의 표피를 파열시키며 수수꽃다리 같은 꽃불을 밀
어올렸다. 가느다란 소리의 실핏줄이 죽죽 어둠에 칼금 그었다. 그러
자 검붉은 소리알들이 저 공중에 솟아올라 물총새처럼 오래도록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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