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 얘기] 에어즈 어드벤처2020.12.12 PM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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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ga Saturn Lote de 3 Grandia Aires aventura Navidad Noches en los sueños..  | eBay

 

게임스튜디오, 1996년. 세가새턴.

나가노 마모루의 캐릭터 디자인으로 화제가 되었던 새턴용 RPG.

나가노 마모루 뿐만 아니라 개발진이 전체적으로 좀 심상치가 않은데

프로듀서인 엔도 마사노부는 굵직한 것만 적어서 제비우스, 드루아가의 탑, 이시타의 부활 등에 참여했던 사람이고

디렉터인 시바타 가봉은 엔도 마사노부의 제자(?)로 후에 거인 도신으로 나름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양반이다.

음악감독인 사에구사 시게아키는 철완 아톰(!)이나 건담 시리즈(Z, ZZ, 역샤)에도 참가했던 사람이고...

 

크로노 트리거 급의 초울트라슈퍼그레이트한 콜라보는 아니어도

꽤 괜찮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래서 게임은 어떤가 하면...

 

망했다.

한줄로 요약하면 "나가노 혼자 일했냐?"

 

게임이 전체적으로 나사가 굉장히 많이 빠져 있는데

몇 가지만 짚어 보자면,

 

우선 캐릭터 이름을 입력할 때의 커서가 등장인물의 스프라이트다.

이건 좋은데, 내가 조작하는 커서 외에도 다른 캐릭터가 더 나온다.

심지어 이 놈들은 지들 멋대로 마구 움직여서 정신이 없다.

 

던전은 풀3D 그래픽으로, 방향키 좌우로 방향전환(45도), 상하로 전진/후진인데

후진을 하면 어째서인지 캐릭터가 호버링으로 움직인다.

 

보물상자에서 아이템을 얻으면 음악과 함께 주인공이 폼을 잡는 연출이 나오는데(젤다 시리즈에 나오는 그런 거)

간혹 상자에서 몬스터가 나와도 일단 이 연출이 나오고 그 다음에 전투로 넘어간다.

 

전투는 사이드뷰의 턴제 전투인데

타격감이 영 엉망이라 이게 맞은 건지 막은 건지 피한 건지 구분이 잘 안 된다.

피가 줄면 맞은 거다.

 

전체적인 그래픽은 3D 배경에서 2D 캐릭터가 움직이는 방식인데(월드맵이나 이벤트씬은 다 2D)

시점 변경도 안 되고 대각선 이동도 안 된다. 딱 슈패미 시절의 그 방식.

그렇다고 배경 그래픽이 당시 기준으로도 좋은 편은 아니었다. 

왜 굳이?

 

스토리라도 좋으면 참고 하겠는데 스토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초반 스토리를 좀 풀어보자면,

 

시작부터 주인공이 처형당할 위기인데

뜬금없이 공주가 나타나 처형을 막는다. 근데 주인공과 공주는 이 장면에서 처음 만났다.

공주가 처형을 막은 이유는 "왠지 그 분과 또 만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뭔가 좀 어처구니가 없는데 그런 이유로 처형만 중지된 게 아니라 아예 풀려났다.

 

겨우 목숨을 건진 주인공에게 웬 비밀결사의 조직원이 와서 

"우리 조직에 들어와라. 네가 살아갈 길은 그것밖에 없다." 이런 소리를 하고

주인공은 또 그 말대로 조직을 찾아간다.

 

이 비밀결사라는 놈들이 참 걸작인데

비밀결사 주제에 본부가 마을 한 복판에 있다. 심지어 마을 사람들도 그 건물이 뭔지 다 안다.

게다가 비밀결사의 조직원이라는 증표는 왕국 내에서 신분증으로 통용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공주가 납치되자 바로 왕실의 사자가 와서 니들 짓이냐고 따질 정도로 '알려진' 조직이다.

니들 지금 제정신이니?

 

얘네만이 아니고 왕실 애들도 좀 이상한데

마을 사람들은 이미 공주의 납치범이 누구인지 다들 제대로 짐작하고 있다.

왕실만 엉뚱한 곳을 파고 있다.

 

어쨌든 주인공은 (신분증으로 쓸) 조직원의 증표만 먹고 바로 튀어버리는데

그 이유도 멋지다. 상남자다. "아직 공주에게 감사의 키스를 못 했다."

 

여차저차해서 납치당한 공주를 구하고 함께 여행을 시작하는데

뜬금없이 하늘에서 아이템들이 떨어진다. ?????

그러자 갑자기 주인공의 동생이 나타나서 "그건 하늘의 선물이야."라고 설명하고

주인공들은 그냥 납득하고 아이템을 챙겨 간다.

 

...난 여기서 접어서 뒷 얘기는 이제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어쨌든 그나마 좋은 평을 받은 게 나가노가 디자인한 캐릭터들인데

정작 나가노는 이 게임의 평을 보고 며칠 동안 방에 틀어박혀 우울해했다고 한다.

사실 당시 게임잡지에 실렸던 기사를 되살려 보면

게임에 나오는 주인공과 나가노가 디자인한 캐릭터는 많이 다르다. 누구세요? 수준을 넘었다.

 

게임 자체는 아직 소장하고 있긴 한데

의미가 있나 모르겠다.


댓글 : 2 개
뭔가 김성모 만화가 생각나네요
생각해 보니 딱 그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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