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_습작모음] [시] 종의 몰락2023.02.01 PM 09:22

게시물 주소 FONT글자 작게하기 글자 키우기


종의 몰락



불행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었다지만

바닥을 기는 것은 고놈이 고놈 같아

어제 온 바퀴벌레가 아니라 항변한들

내쫓기는 게 일상이지


불행도 알약처럼 셀 수 있었으면 좋겠어

떨어지면 채우고 또 떨어지면 채워야 할지라도

어렴풋이 눈 뜨면 왜 그리 밝은지

가끔은 모든 게 무너져버렸으면 좋겠어

실없는 상상하며 낄낄거리다가도

종의 몰락이 나의 승리가 아님을 깨닫곤 한없이 가라앉지


바닥을 기는 불결한 것을 혐오해보세요

불결한 바닥을 기는 것을 연민해보세요

불결한 바닥을 기는 것을 혐오해보세요

바닥을 기는 불결한 것을 연민해보세요


너무도 흡사해 구분할 수 없는 것들은

징글징글할 정도로 많아 보이고

끔찍할 정도로 질겨 보이지만

어제 본 바퀴벌레는 이미 먼 길을 떠났는걸

웃기지 않는 말장난처럼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너의 죽음이 종의 몰락이 아님에 안심하다가도

가끔은 변치 않는 그 사실이 너무 분해

보란 듯이 스치곤 해

혐오로 범벅된 분노가 공허한 바닥을 울리도록

실패가 낳은 실패가 꼬리를 무는 울림이 되어

삐뚤어진 심성이 다시금 취하도록

기자! 종의 부흥을 위하여!

댓글 : 0 개
친구글 비밀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