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상] [감상] 소년이 온다2024.11.25 PM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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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감상.



영상 매체였다면 눈을 감았을 텐데.

아무리 잔인한 장면이 나와도, 아무리 슬픈 장면이 나와도

질끈 감았다 뜨면 지나갔을 텐데.

활자 매체는 끈덕지게 머물러 있기에

한 문장, 한 문장 읽고 나서야 다음을 내어주었다.


부글부글 끓어오를 것만 같은 어떤 기운이

덤덤하게 적은 활자를 만나 심장보다 조금 더 낮은 그 어딘가.

간장이라고 부를 그 어딘가쯤에 뭉쳐 꽉 하고 얹히는 탓에

몇 번이나 책을 덮었다. 무거워서, 너무 무거워서.


나는 광주를 알고 있다.

나는 그날을 알고 있다.

아니, 사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내가 어찌 그날의 광주를 안다 할 수 있을까.

내가 어찌 그들의 아픔을 이해한다 할 수 있을까.

그저 흩뿌려진 조각들을 흘깃흘깃 곁눈질하며

상상할 수 있는 아픔이라 짐작했을 뿐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픔인지도 모르고.


전두환이 눈을 감은 것마저 나는 부끄럽다.

그에게도 영혼이란게 있다면, 그가 죽인 모든 이들,

그가 해친 모든 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은 후에 지옥으로 떨어지길 바랄 뿐이다.

어쩌면 이마저도 비겁한 분노일지 모르겠다.

그저 내 안의 뭉친 기운을, 답답하고도 무거운 응어리를

이렇게 뱉어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남겨진 인간의 악의가

지극히 평범한 손으로 여린 뺨을 때리고 있다.

으르렁거리며 또다시 뺨을 때리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안다.

기록 매체가 한 글자, 한 글자.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그 손을 끈덕지게 붙잡고 있으리란걸.


더는 잊지 않기 위해.

더는 홀로 두지 않기 위해.

더는 홀로이지 않기 위해.


댓글 : 6 개
사놓고 아직 펼쳐보지도못한
저도 뭉그적뭉그적 거리다가 이제서야 다 읽었는걸요.
감상이 비범하시네요. 글 잘쓰시는 분들 부럽습니다 ㅠㅠ
저도 소년이 온다 봐야하는데 시작도 전에 무섭네요.
"현실"이었기에, "우리나라"였기에 더 무섭지요.
그래도 천천히 읽어보셔요.
아무리 잔인한 장면이 나와도, 아무리 슬픈 장면이 나와도

질끈 감았다 뜨면 지나갔을 텐데....이 책 읽다보면 그게 안됨.

나이 먹으니 눈물도 많아져서 몇번이고 책을 덮었다 펴기를 반복중이네요.
저도 몇번이고 덮었다, 폈다.
참, 무거운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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