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소설]일랜드 사가-심해전설-서장.소년 모험가(6)2019.05.23 PM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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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을 거야. 이디아.”

 

 

 

라고 말하며 아윈은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윈의 눈앞에 이디아가 있었다.

 

 

 

이디아의 모습은 엉망진창이었다.

집에서 갈아입은 게 틀림없어 보이는 새 드레스는 헤지고 찢어져 있었고, 찢어진 옷 사이로 드러난 맨살에는 어김없이 크고 작은 상처가 나와 드레스를 피얼룩으로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몇 번을 넘어지고 부딪친 것일까, 아윈은 자기도 모르게 차오르는 속상한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가 이디아의 어깨를 붙들었다.

 

 

 

“이디아! 어떻게 된 거야!!”

 

 

 

아윈이 마주보며 어깨를 강하게 흔들자, 지금껏 혼이 나간 듯 멍하게 흐려져 있던 이디아의 눈동자에 빛이 돌아왔다.

그리고, 차오른 빛은 이내 물기에 일렁이며,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리기에 이르렀다.

 

 

 

“아........아윈! 아윈!!!”

 

 

 

아윈이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디아는 아윈의 품 안으로 달려들어 오열했다.

이디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아윈은 깜짝 놀랐지만, 이어지는 이디아의 이야기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아윈!! 나 어떡해! 나 아빠 딸이 아니래! 나 내일 여길 떠나야 한데!! 어떡해!! 어떡하면 좋아!! 싫어! 떠나기 싫어!! 떠나고 싶지 않아!!”

 

 

 

“뭐.....라고?”

 

 

 

이디아는 서럽게 흐느끼며 아윈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저택에 돌아가서 발터를 만난 일.

발터를 혼내준 일.

그리고 발터가 이디아를 끝까지 붙잡고 늘어지며 말하면 안 될 일을 말한 것 까지도.....

 

 

 

6.

이디아가 불러낸 바람의 정령에 의해 바닥에 엉망으로 쳐 박혀버린 발터는 고통으로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렇지만, 발터는 지금 이디아를 보낼 수 없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가씨가 여기 계셔야만 해...!’

 

 

 

발터는 생각했다.

오늘 이디아의 13번째 생일을 생각하며 주인어른이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를, 절대 거역한 적 없었던 대모 카디아에게 언성을 높이면서까지 이별의 시기를 늦추려 했었는지, 그런 사정을 조금도 모르면서 자기 멋대로 행동하려는 철없는 천방지축 아가씨가 발터는 얄밉기까지 했다.

더욱 얄미운 것은 지금 일분일초가 아쉬운 이 시간에 이디아는 차마 상종하기도 부끄러운 부모 없는 천박한 말썽꾸러기를 만나려 하는 것이 아닌가?

아윈을 생각하자 발터의 마음속에서 불쾌한 감정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절대 용납할 수 없어.....’

 

 

 

발터는 웅크린 자세 그대로 두 주먹을 부서지도록 말아 쥐었다.

이디아의 앞을 가로막은 감정은 처음에는 사명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결코 생각해선 안 될 개인적인 감정이 발터를 사로잡았다.

이디아가 저택을 떠나선 안 된다는 것이 발터의 동기였다면, 이제 목표는 ‘아윈 같은 놈을 만나선 안 된다.’로 바뀌어 있었다.

집착과 분노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발터는 이디아를 향해 소리쳤다.

결코 해선 안 될 금기의 발언을! 카디아도 아브도 이디아가 떠나는 그 순간까지 감추려 했던 그녀의 비밀을!

갑작스런 폭로에 경악한 이디아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이어지는 발터의 말이 쐐기를 박았다.

 

 

 

“내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카디아님 서재 화초에게라도 물어보시면 될 거 아닙니까! 아가씨의 그 특별하다는 힘으로!! 아니, 그 힘이야 말로 아가씨가 친 딸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발터의 말대로 사실여부를 확인해보기에는 이디아는 너무 어렸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발터의 목소리에는 진실이 실려 있었다.

이디아의 앞에서 늘 거짓과 이간질을 일삼던 발터였기에, 오히려 이 순간 이디아는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항상 소박하기만 했던 생일의 준비가 오늘따라 왜이리 성대했던 것인지, 정원에 서있던 백룡장식의 마차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지, 항상 엄하던 할머니가 오늘은 이상하게 너그러웠던 것인지........ 그리고 오늘 아버지의 얼굴에 지워지지 않는 그늘이 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인지............

모든 현상이 아귀를 맞추고 자리 잡았을 때, 이디아는 이미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결코 자신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그 누구도 데려갈 수 없는 곳으로, 바로 그 누구도 들어가선 안 되는 금기의 숲 속으로, 이디아는 눈물을 쏟으며 달렸던 것이다.

수없이 넘어지고 상처 입는 것조차 알지 못한 채로 그저 앞서 달리는 흰털 담비 엘피르의 모습만을 쫓아 이디아는 아윈에게 당도한 것이었다.

 

 

 

“나 가고 싶지 않아!! 떠나고 싶지 않아!!”

 

 

 

이디아는 아윈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고 흐느꼈다.

 

 

 

“헤어지고 싶지 않아!”

 

 

 

아윈은 도무지 실감나지 않았다.

이디아의 생일을 맞이해 위험한 도전을 하고, 아버지가 말했던 진짜 바다를 목격하고 두 사람에게 자랑했던 일이 불과 반나절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디아는 친딸이 아니라고 하고, 또 여기 샤농 마을을.. 아니, 아예 다른 대륙으로 떠나간다고 하는가? 깜짝 놀랄 일이 너무나 연속적으로 벌어져 아윈은 순간 자신이 숲의 위험에 매혹되어 헛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까지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품안에서 가냘프게 떨고 있는 이디아의 온기는 환각도 착각도 아니었다.

흐느끼는 이디아를 다독이며, 아윈은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이디아의 곱고 푸른 머리카락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둘을 비춰주고 있는 이디아의 머리색과 같은 색으로 빛나는 달을 말없이 올려다보았다.

달빛이 이내 물기를 머금고 먼지는 것을 아윈은 어금니를 악물며 고개를 떨쳐내었다.

이디아와는 함께 모험을 떠날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같이 공부하고 시간을 보내며 선생과 함께 언젠가 같이 마을을 떠날 일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일부터 이디아가 없는 하루가 온다는 사실을 아윈은 생각해본 적도 없고, 견딜 자신도 없었다.

아윈도 이대로 이디아와 이별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금 달빛이 물기에 번지려 할 때, 아윈은 품안의 소녀가 지금까지의 푸른빛이 아닌 신비로운 분홍색 광채를 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디아는 어느새 아윈이 준 선물, 요정의 꽃을 들고 있었다.

 

 

 

“그건...”

 

 

 

“요정의 꽃이야.”

 

 

 

눈물이 있던 자리는 어느새 단호한 결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양손바닥에 고이 올린 요정의 꽃.

분홍 빛으로 빛나는 신비한 조약돌을 아윈의 눈높이까지 올리며 이디아는 입을 열었다.

 

 

 

“소원을 빌겠어! 아윈과 헤어지지 않겠다고!! 여길 영원히 떠나지 않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 거야!”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요정의 꽃.

낮의 모습과는 다르게 변해버린 그 꽃을, 은은한 광채를 아윈은 잠시 눈에 담았다.

아윈도 이디아와 같았다.

현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렸다.

이별의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지금까지 들었던 이야기들을 없던 일로 할 수만 있다면, 지푸라기 같은 가능성이라도 붙잡고만 싶었다.

그러나 아윈은 말없이 이디아의 손을 맞잡아 요정의 꽃을 가렸다.

 

 

 

“아윈.....?”

 

 

 

단호했던 결심이 모래성같이 무너지고 이디아의 얼굴엔 절망이 자리잡았다.

 

 

 

“아윈은... 아무렇지도 않아? 난 아윈하고 헤어지고 싶지 않은데........ 아윈은 괜찮은거야? 아무렇지 않은거야?”

 

 

 

“그런게 아니야!”

 

 

 

맞잡은 손을 뜨겁게 움켜쥐며 아윈은 깊은 숨을 토해냈다.

 

 

 

“이디아...”

 

 

 

아윈은 5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사람이 마지막 모험을 떠나던 바로 그 날.

자신과 눈높이를 맞추고 해주었던 그때 그날의 기억을, 그 이야기를.....

 

 

 

“우린 뭐가 되기로 했지?”

 

 

 

그날의 아윈이 그랬듯이 이디아가 답을 말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때 아윈은 웃고 있었다는 것 뿐이었다.

 

 

 

“모험가...”

 

 

 

“소원을 빌어버리면, 우린 영원히 약속을 지킬 수 없을거야.”

 

 

 

“그치만... 그래도....!”

 

 

 

이디아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방울지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아윈은 이디아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때의 아버지처럼 떨림을 숨기며 말했다.

 

 

 

“이별하기 위해 떠나는게 아니잖아. 이별이 영원한 것도 아니야. 이디아는 그 곳에 가서 많은걸 배우고 나보다 더 모험가의 길로 앞서 나가게 될거야. 그러니까........”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아윈은 잠시 숨을 골랐다.

같이 울음을 터뜨리면 둘에게 허락된 이 찰나의 시간이 의미없이 흘러가 버릴 테니까, 아윈은 이디아를 바라보며 목에 힘을 주었다.

 

 

 

“나와 약속해! 이디아!”

 

 

 

“약속...?”

 

 

 

“그래!”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아윈은 말했다.

 

 

 

“나는 널 만나러 갈 거야.”

“나도 널 만나러 갈 거야.”

 

 

 

손가락을 마주 걸며 이디아도 말했다.

 

 

 

“그때까지 당당한 모험가가 될 거야.”

“나도 그 때까지 당당한 모험가가 될 거야.”

 

 

 

“그러니까... 다시 만나는 그때... 우리 웃으면서 다시 만나자. 이디아.”

“꼭.. 다시.. 만나자...”

 

 

 

말을 잇지 못하고 이디아는 다시 아윈의 가슴을 뜨겁게 적셨다.

그리고 이디아의 어깨 역시 뜨겁게 젖어 들어갔다.

이윽고 선생을 포함한 마을사람들과 이디아의 아버지 아브가 찾으러 올 때까지 소년과 소녀는 유년기의 마지막 시간을 추억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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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다음이 서장의 마지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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