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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오늘의 운동. 2km의 추격전. 도저히 그를 따돌릴 수 없었습니다.2021.01.25 PM 10:12
딱 걷기 좋은 날씨다.
간만에 호수공원에 나와 청년은 따스해진 날씨를 만끽했다.
목요일과 금요일의 야근.
토요일과 일요일의 개인적인 용무로 손해본 운동이 며칠이던가!
그런 청년의 손해를 보상해주려는 듯 호수공원은 겨울 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가볍게 입고 나올걸."
거추장스러운 롱패딩을 탓해보지만 이제와서 집까지 다시 돌아가 갈아입긴 번거롭다.
그것 또한 운동이 되겠지만, 롱패딩과 헤드셋이 적절한 땀복이 되줄 것이기에 청년은 그대로 발을 옮겨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따뜻한 날씨라 그런지 추울 땐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청년의 앞에 가득 나와 바깥 공기를 즐기고 있었지만, 청년은 그들과 나란히 경치를 즐길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앞에 있는 그들은 청년 혼자만의 레이싱의 체크포인트요. 보너스 특전으로 보일 뿐이었다.
'한 명 추월할때마다 10포인트.'
그렇게 생각하며 청년은 발걸음에 가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길고 긴 호수공원은 한 바퀴 도는데 대략 2km 정도가 걸리는데, 두바퀴 정도 돌았을 무렵부터 청년은 딱 걷기 좋게 몸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가속도를 낼 차례였다.
앞에 있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하나하나 살피며 전 바퀴에서 추월했던 사람을 다시 발견하거나 하면 청년은 쾌재를 부르며 다시 추월했다.
그만큼 걷는 것만으로도 빠르다는 만족과 희열.
그것이 하염없이 걷는 운동의 몇 안되는 즐길거리 중 하나였는데, 절반정도 운동을 했던 이 시점에 청년에게 즐길거리가 새로이 추가되었다.
어느샌가 뒤에 바짝 쫓아온 누군가가 청년을 추월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꼭 있지.'
청년은 미소지었다.
'누군지 모르고 날 추월하려고 뜀박질까지 하는 사람은 말이야!'
청년은 줄곧 6할의 속력으로 걷고 있었다.
그런 그를 따라잡기 위해 추격자는 빨리 걸었다가 거리가 멀어지면 재빨리 뜀박질을 해서 쫓아오고 다시 거리가 멀어지고 또 뛰어 쫓아오고 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거의 다 쫓아왔다고 여겼던 목표가 고작 6할의 힘만 발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 모습을 상상하자 청년은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절망을 안겨주지.'
청년이 지칠때까지 열심히 쫓아오려는 모양이었지만, 청년은 그 페이스를 엉망으로 흐트려뜨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지금까지 거의 움직이지 않던 팔을 크게 휘젓기 시작하고 두 주먹을 펴 손바닥을 모으며 청년은 자세를 취했다.
'8할의 속력을 보여주지.'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속도가 청년의 다리에서 폭발했다.
살짝살짝 추월하던 앞 사람들의 인영이 청년의 뒤로 흐르듯 사라진다.
따스하던 공기도 거센 바람이 되어 살짝 춥게 느껴질 정도였지만 이내 청년의 몸에서 두방망이질치는 심장의 혈기로 이내 땀방울이 되어 흐른다.
그렇게 30초 정도 지났을까, 이정도면 따라올 의지조차 상실했을 것이다.
보통은 200미터 이상 떨어져 쫓아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지친 숨을 헐떡이며 본래의 페이스를 되찾으려 안간힘을 쓰며 본인의 무모한 도전을 후회하는 법.
쾌적해진 뒷공간을 확인하려 청년은 슬쩍 고개를 돌리려했다.
바로 그때,
[타다다다다닥]
추격자는 청년의 옆에 나란히 섰다.
포기하지 않고 뛰어온 것이었다.
청년의 얼굴이 불쾌함으로 일그러졌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뛰어왔단 말이지?'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걷는 경주의 미덕.
그러나 추격자는 청년을 어떻게든 추월해야겠다는 그 욕심 하나로 해선 안될 짓을 저질러 버렸다.
적당히 봐주려던 청년의 마음에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두번 다시 누군가를 추월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해주지.'
무리해서 급하게 운동하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지만, 청년은 마음을 굳혔다.
지금은 무리를 해야할 때였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추격자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청년은 넓게 걷던 보폭을 줄이고 두 팔을 몸에 바짝 붙였다.
일시적으로 속도가 늦춰지고 추격자가 청년의 앞으로 나서려는 찰나, 청년은 평소 보폭의 네배의 속도로 발을 옮겼다.
100%의 속도를 개방한 것이었다.
마치 살짝 조깅하는 것과 비슷한 속도가 청년의 두 다리에서 뿜어져 나왔다.
매우 볼품없는 동작이었지만, (친구에게 방법을 보여주었더니 어디서 하지 말라고 핀잔을 주었다.) 속도만큼은 확실한 것.
가슴이 더욱 가열차게 뛰어오르고, 호흡이 흐트러지는 것을 느끼며 청년은 괴로움에 몸부림쳤지만, 육체의 괴로움과 달리 청년의 마음은 한 없이 희열로 가득차 있었다.
걷는데 자신 있는 청년이 괴로울 정도의 속도다.
추격자는 어떤 상태겠는가?
오버페이스로 만신창이가 된 추격자는 분명 자신의 만용을 후회하며 거친 숨을 몰아쉴 것이 분명했다.
'이제 분수를 똑똑히 알았겠지.'
휙휙 지나가는 가로등 조명을 보며, 앞에 서있는 가로등 3개만 더 지날때 까지 속도를 유지하리라 생각한 청년은 혹시 신발끈이 풀렸나 싶어 자신의 발 밑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청년의 희열 사이로 공포가 스며들었다.
그의 발 밑에 이질적인 존재가 있었다.
검고 어두운 징그러운 형체.
그 형체는 스멀거리며 청년의 다리사이로 그 머리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청년은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림자. 바로 추격자의 그림자였다.
귓전에 요란하게 울리는 헤드폰 음악 사이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잡음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흐트러짐 없는 걸음 소리가 바로 목덜미까지 따라온 것이었다.
멀리 떨어뜨렸다는 것은 청년의 착각일 뿐이었다.
속도를 올림과 동시에 추격자는 단 한 순간도 멀어진 적이 없었다.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한 것은 과연 누구였을까
2km에 가까운 거리를 걸으며 추격자는 단 한 번도 청년의 뒤에서 5미터이상 떨어져 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 상태에서 추격자는 다시 토토토 하고 살짝 뛰었다가 이내 뒤쳐진다.
그 동작에 청년은 경악했다.
'따라잡으려고 했던게 아니야...!?'
추격자는 단지 자신의 페이스대로 인터벌을 수행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처음부터 청년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었다.
흐트러진 호흡. 돌아온 공포와 절망. 몸과 마음이 모두 엉망이된 청년이 최고 속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리 만무한 것.
이내 추격자는 여유롭게 청년을 지나 자신이 가던 길을 향했고, 추격자가 청년을 지나던 바로 그 순간.
청년은 또 다시 충격에 휩쌓였다.
'저... 저자는?!'
작은 체구. 군밤장수 모자. 얼굴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는 의상 착용.
어떻게 그 모습을 잊을 수 있을까.
바로 이전에 청년에게 굴욕을 안겨주었던 정체불명의 복면인!!
(https://mypi.ruliweb.com/mypi.htm?nid=5221771&num=9630)
처음부터 청년이 패배하는 것은 정해진 운명이었던 것이었다.
"누군지 알지도 못하고 만용을 부린건 나였단 말인가...."
지친숨을 몰아쉬며 청년은 고개를 떨궜다.
진것만 사실입니다.
나머지는 창작.
지나가는 사람에게 [절망을 안겨주지!] 이런 사람 아닙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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