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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 한국에서의 학살2008.06.05 PM 10:36
1951년 1월 18일, 피카소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대작 한 점을 완성한는데 바로 '한국에서의 학살'입니다.
피카소는 1937년 스페인 내전 당시 바스크지방의 학살을 그린 "게르니카"와 포로수용소를 고발한 "납골당"등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한 일련의 작품들이 있습니다.
피카소는 1차 세계대전,스페인 내전, 2차세계대전등 근 반세기 동안 유럽을 강타한 제국주의의 전쟁을 경험하였고, 스페인 내전의 참혹을 "게르니카"로 고발하였지만,
새로운 냉전체제에서 발생한 한국전은 식민주의 종결과 동시에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양대이즘의 전쟁으로 계속되는 전쟁의 참화를 고발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많은 비평가들은 "한국전에서의 미군의 세균전의 함평등 양민 학살"을 고발했다는 비평가의 의견은 일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 국전쟁이 발발하자 프랑스 공산당은 피카소에게 반미 선전을 위한 작품을 그려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피카소는 1944년 공산당에 입당했습니다.) 공산당원이었던 피카소는 1951년 1월 18일에「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en Coree)」을 완성하였습니다. 가로 209.5cm, 세로 109.5cm 크기의 목판 위에 유화로 그린 이 그림은 1951년 5월 파리의 살롱 드메(Salon de mai)에서 처음으로 전시되었습니다.
이 그림이 전시되었을 때, 유럽의 평론가들과 각계의 반응은 냉담했다고 합니다. 미국을 비롯한 반공진영은 예술성이 약하다는 시비를 걸었고, 프랑스 공산당을 비롯한 좌파진영은 살인자의 실체가 명확하지 않다고 비판하였습니다.
피카소가 그린「한국에서의 학살」은 냉전기간 동안 국내에서 금기시되었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반공 독재정권은 원작은 말할 것도 없고, 화집의 도판으로도 이 그림을 소개하지 못하도록 금지했습니다.
심지어 1960년대 초반 중앙정보부는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피카소‘라는 상표의 크레용을 '피닉스'로 강압적으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독재정권과 정보기관이 이러한 조치를 내린 배경에는 미국 FBI가 1944년부터 피카소를 공산주의자와 소련의 첩자로 분류하여 그를 감시해온 사실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 그림은 현재 파리 피카소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댓글 : 1 개
- Cerest
- 2008/06/06 AM 11:35
피카소. 죽음 앞에서의 자화상에서의 보라빛 색감이 떠오르는군요. 피카소는 화풍이 정말 그 때 그 때 달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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