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절주절::] 소설 디아블로- 돌아오는 악마들2011.06.22 PM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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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지직! 쿵!

나무통과 이음대를 박살내는 타격음과 함께 날아간 고뇌의 여신 안다리엘의 거체는 형편없이 처박혔다. 불쌍하게 나동그라진 그녀는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이 일련의 사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무너뜨리려 하는 적을 바라 보았다.

그녀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사나이는 분명히 시체를 일으키는 네크로맨서로 보였고, 지옥의 권능을 다루는 그녀가 죽음을 다루는 법에 있어서 그 자에게 밀려야하는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비슷한 성격의 힘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그 힘의 위력과 다루는 기술이 뒤지고 있는 쪽보다 월등히 뛰어남을 뜻한다.

지옥의 지배자보다 죽음의 힘을 더 잘 다루는 자.

[네가 도대체 어떻게 인간일 수 있단 말이냐!]

이 지옥의 지배자가 느끼는 지옥의 기분. 악몽을 일으키는 자가 꾸는 악몽은 느닷없는 사나이의 침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제 4주

...꽝!

골렘이 휘두른 주먹은 나무문을 산산조각으로 부숴버렸다.

"......"

어두컴컴한 지하, '캐타콤.' 약 4주전 로그들의 캠프를 '지나쳤던' 사나이는 방금 뚫려버린 지하묘지의 입구를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자꾸 덤벼드는 좀비들을 시체에서 일으켜 세운 해골병사들로 하여금 상대하게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을 아예 눈길조차, 아니 어떤 관심의 대상거리로 조차 여기지 않고 있는 듯한 사나이의 모습은 어색하다 못해 이질적으로 까지 보였다.

"웃기는군. 대성당 밑에 있는 지하묘지..."

최하층인 4층까지 내려오는 동안 보았던 석관들에는 더럽고 추악한 언데드 몬스터들만이 들어차 있었다. 악마의 손아귀에 떨어진 로그들의 사원은 마침내 완전한 지옥의 도가니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사나이는 이곳까지 내려왔다. 식탁에 앉은 채로, 혹은 벽에 기댄 채로, 어쩌다가는 땅바닥에 쓰러진 채로 죽은 로그들의 시체가 산만큼 쌓인 대성당을 돌파하여.

"빛나는 신의 성지 아래에 설치된 죽음의 안식처...참 말 그대로 '죽여주는군.'"

사나이는 백발을 쓸어넘기며 킬킬거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의 옆에서는 썩어들어가는 몸을 이끌고 그에게 다가와 육중한 두 팔을 들어올리던 좀비 한 마리가 해골병사의 칼날에 다리를 잃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던 해골병사는 주인의 의지에 따라 다른 목표를 향했지만, 다리를 잃은 좀비는 쓰러진 채로도 맹목적인 진격을 계속했다. 시체에 비친 두 눈에는 인간의 영혼따윈 없었다. 마침내 두 팔로 기어온 좀비가 사나이의 다리를 물어뜯기 위해 더러운 이빨을 들어내며 입을 쩌억 벌리는 순간, 여전히 '그것' 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던 사나이가 조용히 한쪽 발을 들어올렸다.

-콰직.

작은 움직임, 그러나 울려퍼진 소리는 둔탁했다. 짧은 절규와 함께, 좀비의 머리-그것을 아직도 머리라고 부를 수 있다면-는 퍼석퍼석하게 으깨어졌다. 그리고 사나이는 여전히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로 그것을 구기구기 짓이겨 버렸다. 썩다만 내용물이 지저분하게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고, 사나이는 곧 발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그의 눈길은 전방만을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부숴진 문을 통과한 사나이는 잠시 멈춰섰다. 저항하던 몇몇 괴물들을 난도질해 버린 해골병사들이 하나둘 모여 들었고, 마치 바윗돌처럼 든든하게 앞을 지키고 선 클레이 골렘도 온기없는 눈빛으로 주인의 명령을 기다렸다.

지하묘지 최하층의 마지막 방.

영혼의 안식을 기원하는 마지막 의식을 집행하던 곳이었기 때문인지, 다른 곳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길게 쭉 뻗은 복도를 따라 횃불이 양갈래로 늘어 서 있고, 그 사이로 본래는 새빨갛고 단정했을, 퇴색된 검정 카펫트가 너덜너덜하게 이어져 있었다. 각 방의 모서리 구석구석에는 아무렇게나 밀어치워놓은 나무통들이 그득히 쌓여 있었다.

사내는 천천히 그 카펫트를 밟아 나갔다. 일으켜 세워진 해골들과 골렘은 마치 그를 호위하듯 주위를 둘러싸고 따라 갔다. 그리고 그 카펫트의 끝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고뇌와 번뇌로 가득찬 무언가가. 사나이가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그것은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져 왔고, 마침내 복도에 늘어선 마지막 횃불의 그림자가 사나이의 몸 위에서 걷히워 졌을 때, 마침내 사나이는 그것이 어떤 것이며, 또한 자신이 찾던 것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백골로 장식되고 독액으로 윤을 낸 지옥의 옥좌가 그곳에 있었고, 그 '무언가'는 그 위에 그윽한 미소를 띈 채로 앉아 있었다. 마치 사나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막 단검을 던지기 시작한 서툰 병사도 쉽게 앞에 선 상대를 맞출 수 있을 정도로 두 개-하나는 사람, 그러나 또 다른 하나는?-의 사이가 가까워졌을 때, 옥좌에 앉아있던 '그것'은 인간이 서 있기 조차 힘들게 만드는 끔찍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어떤 무지한 자가 고뇌에 찬 죽음을 찾는 것이냐]

말을 꺼내는 '그것'의 얼굴은 평온한 오만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짙은 녹색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남자의 것인지 여자의 것인지 구분하기 힘든 괴상한 소리였다. 인간을 초월한 것처럼 보이는 거체...그것의 붉은 머리칼은 지옥불이 이글거리는 모양으로 곤두 서 있었고, 고혹적이면서도 잔인한 눈매와 독향에 젖은 혓바닥은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황홀한 나신-그러나 그것마저도 끔찍해보이는 독향이 묻어나는 것처럼 보였다-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사나이는 그 모습에 취하기 이전에 등과 척추뼈, 목에서 돋아나온 거대한 집게발가락같은 네 개의 다리(?)에 공포에, 혹은 하다못해 섬뜩함이라도 느껴야했다.

그러나 사나이는 아주 무덤덤한 얼굴로 '그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역시 대답을 기다리느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잠시 동안의 정적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그 답답한 정적을 먼저 깨뜨린 것은 백발의 불청객 사나이였다.

"너는 무엇이냐."

[무엇이라니 발칙한 놈 같으니]

"네가 스스로 네 자신을 증명해 보인 적이 있나? 아니, '무엇'이 아닌 '누구'라고 설명한 적이 있느냔 말이다."

[네 감히 내 앞에서 농짓거리를 하는 것이냐]

"다시 묻는다. 너는 무엇이냐."

화가 머리끝까지 찬 '그것'이 드디어 그 육중한 거체를 지옥의 옥좌에서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로그들과 그것의 부하들의 피로 물든 두 손과 두 발이 격렬하게 꿈틀거리면서 자신의 몸이 일으켰다.

[그렇게 알고 싶다면 이야기 하여 주마]

'그것'의 목소리가 온 지하에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사나이는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을 지은 채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나는 지옥의 일곱 지배자중의 하나, 고뇌의 여신 안다리엘Andariel the Maiden of Anguish이다]

"알고 있다."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한 사나이는 조용히 허리춤에서 막대기wand를 들어올리며 차갑게 말했다. "나는 나. 어차피 곧 지옥불로 돌아가게 될테니 소개는 필요없을테지."

키아-아아아!

분노에 가득찬 악마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안다리엘, 고뇌의 여신은 목 뒤에서 뻗어나온 네개의 갈고리를 활짝 펼치고는 거대한 몸을 천천히 숙여 사나이의 얼굴에 가깝게 가져갔다. 이윽고 팔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다다른 고뇌의 여신은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사나이의 눈을 쏘아보며 매섭게 외쳤다.

[너에게는 나에게 대항했던 그 어떤 자들보다도 더 깊고 괴로운 고뇌를 선사하마 끝없는 고뇌속에서 네 자신을 구속하며 파멸해 버려라]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모든 적들에게 내린 그 어떤 고뇌의 저주보다도 더욱 더 깊고 깊은 고뇌의 힘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때, 잠자코 있던 사나이의 입이 열렸다.

"안됐지만, 보이지 않는 눈의 신봉자들은 이미 그들의 고뇌를 벗어던졌다."

...? 안다리엘은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사나이는 여전히 혼잣말하듯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선택을 받아들여 너를 지옥으로 되돌려 보내겠다."

그 순간 안다리엘은, 자신이, 이 강력한 지옥의 지배자가 아마도 눈 앞에 있는 미물같은 사나이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었다. 그녀는 사나이의 손이 천천히 들어올려지는 것을 보면서도 어이없게 그것에 대해 고뇌하기 시작했고, 그 직후부터, 고뇌의 여신은 스스로 고뇌에 빠질 여유마저도 잃어가기 시작했다.




[저주한다 네놈을]

"마음대로 해라. 허락할테니."

사나이가 던진 날카로운 뼛조각으로 개시된 싸움은, 처음부터 고뇌의 여신의 생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지옥의 지배자가 일으켜 세운 좀비와 해골병사, 지옥불과 평원에서 불러들인 타락한 악마들, 그리고 고뇌의 저주에 젖어 미쳐버린 비운의 로그 병사들은 어둠의 각지에서 한번에 쏟아져 나왔고, 제 아무리 단단한 골렘과 병장기를 갖춘 해골병사들이 있는 사나이일지라도 이 노도와도 같은 악마부대의 공격을 막아낼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 방은 굉장히 넓다고는 말할 수 없는 T자형의 방이었고, 입구가 있었던 가로선부분의 복도에서부터 몰려들기 시작한 악마부대가 탈출구마저 완전히 틀어막고 있었다. 그리고 세로선부분의 복도 끝에는 막다른 곳에 선 지옥의 지배자...진퇴양난에 빠진 사나이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때부터 고뇌의 여신의 고뇌를 짓밟아 버리는 사나이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진흙으로 만들어진 클레이골렘은 주인의 의지를 따라 거대한 안다리엘에게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굼뜬 자식으로 무엇을 하려드느냐] 안다리엘은 갈고리를 힘껏 펼치며 사정거리에 들어오는 즉시 그 머리빈 골렘을 찰흙반죽으로 만들어 버릴 준비를 했다. 그러나 골렘은 안다리엘 바로 앞쪽에서 몸을 획 틀어 그녀가 전혀 상상도 못했던 곳으로 달려가 부닥쳤다. 바로 나무통barrel들이 쌓여 있는 모서리였다. 당황한 여신이 목표를 잃고 허둥거릴때, 골렘은 아무런 방해도 없이 밀집한 나무통들을 향해 돌격했다.

콰지직,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몇개의 나무통이 박살이나자, 쌓여 있던 열댓개의 나무통들인 우당탕쿵쾅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놀란 여신이 피에 물든 발을 쳐들어 그녀에게로 빠르게 굴러오는 나무통을 으깨려고 할 때, 한 발로 서 있는 틈을 타서, 자세를 가다듬은 골렘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안겨들었다.

뻐어억!

그리고 여신은 골렘, 나무통들과 한덩이가 되어 옥좌로 굴러가 처박혔다. 여신은 골렘의 공격이 적중할 때마다 가해지는 무시무시한-큰 타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시하기 힘든-타격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리고 그녀는 그제서야 저주의 네크로맨서가 그녀에게 내린 저주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상처가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쳐라]

여신은 계속해서 엉겨붙은 골렘을 밀쳐내며 그녀의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괘씸한 놈 같으니, 이제 곧 내 부하들에게 짓밟히게 되리라. 재미있는 장난이었다고 기억해 주지.

그러나 그것마저도 뜻대로 되지 못했다.

좁은 복도였다. 넓은 가로선부분에서 좁은 세로선부분으로 뛰어들 수 있었던 여신의 부대는 그리 많지 않았고, 단정하게 일렬로 복도를 틀어막고 있던 해골병사들은 닥치는 대로 무기를 휘둘러 몇 안되는 '상대'를 도륙했다. 너무 많은 부대를 한번에 우겨넣은 탓에 과포화 상태가 일어나 오히려 실제로 싸우는 병사들의 수가 현저히 줄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해골병사들 따위로는 그 무지막지한 숫자의 악마부대를 오래 막아 낼 수 없음이 당연하다. 문제는 네크로맨서가 내린 또 다른 저주였다.

전방에서 싸우지 못하고 있는 뒷쪽의 부대사이에서 집단최면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고뇌에 빠져 자신을 잃었던 비운의 로그들은 네크로맨서가 내린 더욱 더 깊은 저주에 뼛속까지 삭아들어 그저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뒷쪽에는 오로지 악마들, 악마들 뿐이었다.

더욱 좁아진 전장, 싸우지 못하는 악마들, 혼란에 빠진 뒷쪽, 골렘에게 쳐박힌 자신...고뇌의 여신은 드디어 이 상황이 결코 자신에게 우호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자각했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악마의 거대한 울음소리가 온 지하를 뒤흔들었다. 그 순간 만큼은 모든 것이 멈추었다. 그리고 그 순간, 네크로맨서가 로그들에게 내렸던 끔찍한 저주는 사라지고, 악마들은 고뇌의 여신의 명령에 사로잡혀 무조건적인 돌격을 시작했다.

상황은 다시 역전되고 있었다. 죽어버린 동료의 시체를 끌어안고 서로를 밀고 밀치며 달려드는 무지막지한 군대의 돌격은, 공격력에 앞서 그 엄청난 무게의 힘이 해골병사들을 압도했다. 드디어 견디다 못한 해골들이 하나둘 뼛조각으로 부서져 갈때, 고뇌의 여신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차분히 그 모습을 관찰하던 사나이가 막대기를 휘둘렀다.

"본월(Bone wall)! 일어서라, 뼈의 장벽들이어!"

그러자 땅에 떨어진 수많은 뼈다귀들은 하나로 들러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나이가 휘두르는 막대기를 따라, 그곳에서 죽어버린 혼령의 힘이 하나둘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들은 찢겨진 그들의 영혼을 저주하며 뼈의 장벽으로 섞여 들어갔고, 단단하고 단단하게 응축된 본월은 무지막지한 악마부대의 공격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고뇌의 여신은 분노와 공포가 뒤섞인 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완전히 봉쇄된 막다른 골목에 사로잡힌 것은 자기 자신이 되어었다.
댓글 : 2 개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 장면에서 눈물흘릴뻔
내일 또 다음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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