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절주절::] 소설 디아블로 - 돌아오는 악마들 -2011.06.25 PM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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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은 흘러오는 바람에서 대세를 읽고 흙 냄새를 맡으며 승패를 가늠한다. 팔라딘 아론 맥클레인이 여명과 함께 로그 캠프를 떠난 지 이틀 뒤, 카샤를 비롯한 몇몇 보이지 않는 눈의 신봉자 무리들은 아카라의 밀명을 받고 소리없이 캠프를 빠져 나갔다. 가장 굳세고 빠르며 용감한 로그들만으로 구성된 정예부대는, 꽤 뚫고 있는 지형 너머의 그리운 집을 바라는 그들만이 낼 수 있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검은 늪지를 돌파했다. 한밤중에도 쉬지 않고 달린 강행군이었고, 그 결과 그들은 캠프를 출발한지 정확히 2일 후 그들의 잃어버린 보금자리에 퍽이나 지친 상태로나마 도착할 수 있었다.

재수 없다고 생각했던 네크로맨서와 실속 없는 팔라딘, 둘다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그 어느 쪽도 신뢰하지 않았던 카샤는, 요 며칠 동안의 행군중에 마주친 몬스터가 겨우 두 셋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크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마주친 두 셋도 무리를 잃은 채 겁에 질려 방황하던 것들이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두운 밤중에도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도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했었다. 그리고 지금, 카샤와 그녀를 따르는 로그들은, 드넓은 평원의 끝에 점처럼 박혀 있었던 그들의 성지를 눈 앞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한낮의 태양은 중천에 뜬 채로 그들에게 따가운 미소를 보내왔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끔찍하기까지 한 절대적 고요함. 간간히 그들의 옷자락을 휘날리는 바람소리와 거기에 쓸려서 꿈틀대는 풀들의 기지개가 소음의 전부인 순간.

로그들은 잃어버린 성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지를 삥 둘러싼 성벽에 뚫린 구멍같이 둥근 대문은 누군가 열고 지나간 뒤에 제대로 닫지 않은 듯 빼꼼히 열려 있었고, 그 속으로 틈틈히 들여다 보이는 그들의 성지는 여기저기 부서진 곳이 많다는 점만 제외하면 지극히 안전해 보였다.

카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두를 데리고 바락(Barrack)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역시, 고요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말을 잃은 채로 한참을 멍 하니 서 있게 된 순간, 카샤가 떨리는 목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네, 네리스."

"에? 아, 네, 네에!"

이름을 불린 로그도 갑작스런 호명에 놀라며 대답했다.

네리스는 뛰어난 시력으로 로그들 사이에서 '멀리 보는 자' 란 칭호를 받고,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콜드 플레인에서 그녀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던 '가장 멀리 쏘는 자' 쏘냐와 함께 경비를 서고 있던 로그였다. 무방비 상태에서 몬스터의 습격을 받던 검은 옷차림에 백발의 이방인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렸던 친구 쏘냐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쓰러져 죽었다. 그것까지는 좋았다. 눈 앞에서 사람이, 그것도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몸을 던지며 죽었는데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멀리 떨어진 이방인은, 채 식지도 않은 친구의 시체를 손짓 한번으로 '폭발시켜버렸다.'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처절하게 통곡 하던 그녀를 철저히 무시한 채로. 커다란 폭음과 함께 터져버린 친구의 유해 아닌 유해를 바라보며, 그녀는 눈물마저 흘리지 못한 채로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었다. 그 한번의 폭발로 다가오던 적들을 모조리 날려버린 이방인이 걸어다니는 해골들과 함께 평원 저 멀리까지 사라질 때 까지.

그리고 거기서 어떻게 돌아왔는지. 뇌와 들러붙어 있는 눈알, 찢겨진 창자, 갈라진 핏줄과 살점. 있는대로 주워 모은 친구의 '유해'를 '가슴에 안고' 캠프로 돌아온 그녀는 사나이가 사라져간 평원의 저 너머를 바라보며 부들부들 떨다가 혼절해 버렸었다.

"캐, 캠프로, 도, 돌아가! 돌아가서 알려! 그리고 되돌아와! 되돌아올 땐, 모두와 함께 돌아와 줘!"

네리스를 비롯한 모두의 얼굴에 거대한 미소가 번졌다. 누군가 흥분한 말투로 외치듯 물었다. "그, 그럼 드디어 우리는...?" 카샤는 다 듣지도 않고 격양된 목소리로 함성을 질렀다.

"갔다! 갔어! 우리의 집을 빼앗은 악마들은 갔어! 이, 이제, 이제 돌아오는 거다!"

와아! 일시에 모두의 입에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모두들 두 팔을 하늘 높이 뻗은 채로 서로 껴안고 펄쩍 펄쩍 뛰면서 기뻐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마침내, 되찾은 것이다.





로그 캠프에는 밤이 찾아왔다. 아카라는 뭔가 알 수 없는 전율을 느끼며 밖으로 걸어 나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었지만, 장님인 그녀에겐 차라리 그게 더 속 편했다. 기억과 느낌을 더듬어 카샤의 부대가 떠난 평원쪽의 입구에 도착한 아카라는, 어둠속을 가르는 전율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그녀 혼자만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안녕하시오, 아카라 사제님."

사막행상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와리브님이시군요."

"그렇다오. 앞도 못 보시는 분이 이 밤중에 밖에는 무슨 일로 나오시었소?"

"앞 못보는 이 사람은 보이지 않는 눈이 이끄는 데로 가니 어둔 밤중에도 걱정 없지요. 와리브님이시야 말로, 밤에는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분이 여기서 무얼 하시는지요?"

잔잔한 웃음이 섞인 아카라의 대꾸에 와리브는 말문이 막혔다.

"에흠흠, 한방 먹은 기분이로군."

어둠의 저편에서 아카라의 얕은 웃음소리가 묻혀왔다.

"저는 지금, 뭔가를 느끼고 있습니다." 아카라가 말했다. 와리브는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쾌감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 태어나서 한번도 느껴 본적이 없는 그런 기분입니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느껴져오니 더 신비하군요. 혹, 이곳을 떠난 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그런 건 아닐게요."

아카라는 갑자기 끼어든 와리브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고개를 돌렸다-.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 너무 초조해서 당신 기분 못 맞춰주겠다...라고 말하는 듯한 그의 태도에 아카라는 호기심이 일었다.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었던 것이다.

"나도, 느끼고 있소. 하지만, 이건 절대로 나쁜 일인 것 같지 않소. 마치 비단 수십 필이 한 사람에게 팔리는 기분이군. 이건 짜릿함이오. 나는 젊었을 때 기드놈과 숱한 사기를 치면서 이익을 남겼지만 그 때의 어떤 순간도 지금과 비교하라면 감히 비교할 것이 없을 것 같소."

털털한 와리브의 대답에 약간의 후련함을 느낀 아카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의 의사를 보낼려고 하던 순간이었다.

백발의 사나이와 성기사, 로그 정예부대가 떠나간 평원 쪽에서, 한줄기 눈부신 섬광이 한순간 번뜩였다 사라졌다.

와리브는 그것을 뜬 눈으로 보았고, 아카라는 감은 눈으로 느꼈다. 밝은 빛이 왔다 간 순간, 그 짧디 짧은 순간에, 두 사람은 끔찍한 고통과 말로 표현 못할 정도의 아늑함을 동시에 느낀 것 같았다. 마치 번갯불이 지나간 듯한 그 순간이 지난 후 믿음에 눈이 먼 사제는 꼿꼿히 선 채로 진땀을 흘렸고 돈에 눈이 멀었던 상인은 탁 풀린 채로 땅바닥에 힘없이 주저 앉았다.

"뭐...였지요? 방금 그것은...?"

아카라가 심하게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와리브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지껏 한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고뇌의 무게에 짓눌리는 듯한 아카라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땅바닥에 주저 앉은 상인의 얼굴에는 세상만사속의 걱정거리에서 두 손을 딱 놓아버린 자의 것이라 할만한 후련함이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대답했다.

"모르겠소..."

아까의 초조한 목소리는 어디로 갔는지, 안락에 겨운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고요하고, 맑게 들려오고 있었다.




"뭐였지? 방금 그 빛은...?"

아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서 있는 곳은 분명히 건물 안이었고, 군데군데 세워진 횃불을 빼고 나면 그의 눈을 놀래킬만한 빛은 근처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빛을 보았다.

"도대체...어디서 나온 거였지?"

갑자기 어디선가, 온몸을 따듯하게 감싸는 듯한 빛이 느껴졌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그는 익숙한 은은함이 느껴지는 곳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그는 거기서 방금전 그의 눈을 놀라게 했던 빛의 근원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칠흑같은 어둠의 저편에, 피로 범벅된 커다란 조각상의 꼭대기에, 어둠속에서 불을 밝히고 있는 작은 것이 있었다.

지옥의 중심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사악으로 물든 세상에서 가장 큰 권위를 가지는 것.

작고 아담한 십자가가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제 5주

캠프에 남아 있던 아카라는 고민에 잠겼다. 며칠 전 홀로 돌아오자마자 말도 제대로 못하고 미친듯이 날뛰던 네리스를 보며, 로그 캠프의 자매들은 카샤를 비롯한 다른 자매들이 모두 죽은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뒤늦게 외쳐진 해방의 기쁨은 로그 캠프 전체를 휩쓸었고, 모두들 기쁨에 들뜬 채로 평원을 걷고 늪을 가로질러 오랫동안 기다려온 그들의 성지로 찾아갔다.

그러나 아카라는 캠프에 남았다. 그녀는 떠날 수 없었다. 무언가 풀지 못한 고뇌의 실타래가, 섬광이 비쳤던 그 날부터 그녀의 머릿속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부터 머릿속에 얼어붙은 채로 있던 사나이의 질문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것 같았다. '신을 믿는가, 악마를 믿는가.'

"당신은..."

아카라는 그들의 성지가 있는 쪽으로 보이지 않는 눈을 안타깝게 돌렸다. 무언가 응어리진, 무겁고 괴로운 감정이 그녀의 목을 휘어잡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외쳤다.

"당신은...!"

그녀는 말을 잊지 못했다. 그녀의 보이지 않는 눈은 여전히 평원의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카라가 돌려받은 것은 로그들에게 돌려준 것과 너무도 달랐다. 와리브는 그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 챕터 끝 -

To Be Continued..
댓글 : 6 개
잘봤습니다 물론 읽지는 않았습니다
sadsda // 그럴거면 리플도 달지마세요...... 물론 저도 읽지는 않았습니다.
이거 공식 소설을 번역한걸 님이 퍼오신거죠??
공식 소설이 아니고 일반 유저분이 작성하신 소설이에요 공식소설은 절판되서 구하기도 힘들더라구요..ㅠ.ㅠ
저작권자 분에 대한건 첫번째 글에 써놓았습니다~
하나도 안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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