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절주절::] 소설 디아블로 - 악마를 쫓는 사람들2011.07.12 PM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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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서 떠오른 태양

북쪽으로 저물어 가네

그 빛의 흐름을 좌우하는 자에게 찬양을

그 빛의 흐름을 좌우하는 자에게 영광을




하나의 태양은 대낮에 빛나고

두 개의 달은 밤하늘에 떠오르네

서른 세개의 별이 하늘을 수놓으면

빛의 흐름을 좌우하는 자가 오리라



태고적부터 존재해온 고뇌와

태고적부터 이어져온 죄악을

현세에도 존재하는 선택의 고통과

현세까지 이어지는 인간에 대한 거짓말을



끝내는 자가 오리라.






-제 5주


바람은 비교적 서늘한 편이었다. 특히나 옷을 얇게 입은 작고 가냘픈 여인에게는. 그러므로-더욱이나 그 몸이 사납게 요동치는 얼음조각으로 뒤덮혀 가고 있는 모습이라면 그녀를 발견한 사람들이 기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 하다- 이 정도까지가 일반인들의 생각일 듯 하다. 그러나 지금 불타는 건물앞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남자는 '일반인'들의 상식을 거부하고 있었다.

"잔 에수의 어린 딸이로군요."-남자가 말했다.

"...네."-그리고, 여자가 대답했다.

"이곳에는 무슨 일로...아니, 어떻게 들어왔는지를 먼저 물어야 합니까? 아무튼, 아무리 소서리스라도 이런 곳에 혼자서 들어오기는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닐텐데..."

걱정해주는 듯한 말투였지만, 까무잡잡한 피부에 약간 반항적인 눈빛을 한 여자는-아무래도, '소녀'라는 호칭이 더 어울릴 듯 하다-잔인하게 말허리를 자르며 대답했다.

"전혀 위험하지 않아요."

어린 개구장이가 어른에게 대드는 듯한 말투에 남자는 그만 피식 웃어 버렸다. 그러나 주위의 환경은 그 이상 두 사람에게 화기애애한(?) 대화의 시간을 남겨 주지 않았고,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등을 돌리며 낮고도 무겁게, 혹은 가늘고도 매섭게 서로의 특기라 할만한 기술을 사용했다.

"아이스 블라스트!"

"아크틱 블라스트!"

여자의 손에서는 동그란 구체의 얼음덩어리가 뿜어져 나왔고 멀리서 화살을 겨누던 리턴 아쳐(되돌아온-되살아난-궁수:return archer)는 화살을 당기던 그 모습 그대로 쩡쩡하게 '얼어붙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버렸다. 여자는 남자를 작지만 충분히 모멸적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남자는 빙긋 웃으며 그 눈빛을 '받아들였다.' 남자에게로 달려들었던 카버(고기베는사람...?carver)의 죽음도 역시 뼈다귀 궁수의 최후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남자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얼음 소용돌이는 겁없이 덤벼들던 카버를 갈갈이 찢어놓았던 것이다.

"샤먼에 의한 부활도 불가능하게 만드는...당신은, 실전에 경험이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남자가 물었다. 매서운 눈매를 지어보이던 여자는 맥없이 평범한 표정으로 돌아와야 했다. "별로...그저, 아는 사람에게 약간 들은 정도지요."

그 때, 갑자기 남자의 손이 휙 들어올려졌다.

콰아악!

방금 전처럼 뿜어져 나온 얼음 소용돌이는 아슬아슬하게 여자의 머리를 지나쳐 등 뒤로 소리없이 다가섰던 나이트 클랜(어둠의 일족:night clan)에게 적중했다. 말 같은 머리를 한 채로 거대한 도끼를 들어올리던 나이트 클랜의 상체는 얼음소용돌이에 휘말려 처참히 찢겨져 나갔다. 표면이 약간 얼어붙어가는 채로 남은 하반신은 잠깐 꿈틀대다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내색은 않았지만 약간 놀랐던 여자는 고개를 돌려 상황을 인식한 다음 다시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씨익 웃고 있었다.

"실전 경험은 별로 없는 모양이군요."

여자의 눈빛이 다시 날카로와졌다. 남자는 허허 웃으며 어깨장식을 가다듬었다. 사내의 손은 희고 거칠면서도 위엄있는 독수리의 깃털을 따라 연결된 번뜩이는 세 개의 발톱 끝에서 멈췄다.

"네."

놀랍도록 딱딱하고 냉담한 어조. 아까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그녀의 말투는 너무나도 쌀쌀했다. 그러나 남자는 목적을 잊지 않고 있었다.

"아무튼 이곳은 위험합니다."

대답은 없었다.

"...딱히 이유가 없다면, 이곳에서 나가라고 권유하고 싶은데요?"

"거절합니다."

"어째서입니까?"

"이유가, 있으니까요."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지옥의 입구를 닫기 위해서, 라고 해두죠."

지옥의 입구?

남자는 약간 놀랐다는 듯이 턱을 쓰다듬으며 그녀를 새삼스런 눈길로 바라보았다. 구렛나루로부터 턱까지 이어진, 금빛에 가까운 주황색 수염이 그의 손길에 따라 부드럽게 흔들렸다.

"허어, 그건 독특하군요."

"......"

"어떻게 닫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등 뒤에 있는 적을 인식하지 못하는 정도의 실력으로 과연 이 트리스트람에 벌려져 있는 지옥의 입구를 닫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물론."

"이유를 물어봐도 좋을까요?"

"나만이 할 수 있으므로.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할 수 없어요."

바로 다음 순간 남자는 여자의 말을 정정했다. "스스로 그 문을 연 자는 제외하고?"

"...그렇겠군요."

"그것만으로는 성지에서 보호받아야 할 어린 나이의 소녀가 악마들의 도가니가 된 이곳까지 홀로 와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에 모자라다고 생각합니다만."

여자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러나 대답은 하지 않았다.

"...하나만 물어봐도 좋습니까?" 대답을 듣기를 포기한 남자가 정중하게 물었다.

"네."

"당신은 밤의 익숙함 속에서 만족을 느낍니까, 아니면 낮의 낯설음 속에서 만족을 느낍니까?

"......"

묘한 질문에 여자는 생각보다 짧은 시간을 소요했다.

"밤의 익숙함에는 미련두지 않고, 낮의 낯설음에 두려워 하지 않아요."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후우..."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발걸음을 돌렸다.

"제가 드리는 선택에서...벗어나 계신 분이군요. 하하..."

여자는 흠칫 놀라며 들고 있던 스태프를 세게 움켜쥐었다. 그러나 남자는 그 이상 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마을이 아닌 마을의 유일한 출구를 향하며 등을 보이고 있던 남자는 나직하게 물었을 뿐이다.

"이름이 뭐죠?" 대답하지 않고 싶었던 여자는 타성적으로 대답했다. "티아나르 운디네프."

남자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창을 쥔 두손으로 뒷짐을 진채 흔들흔들 붉은 출구로 걸어갔다.

"흠, 흠,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이미 가고 없었다 이겁니다. 아아, 지겹게 걸어서 숲까지 돌아가야 겠군요. 그럼 안녕히! 무사하시길 빕니다."

남자는, 왔었던 그 모습 그대로 붉은 포탈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사라졌다.





이제 다시 혼자였다. 운디네프는 스태프를 살짝 쥐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남자가 등장하기 전에 혼자서 해치운 숫자가 상당했고, 멋대로 도와주었던 남자가 해치운 숫자또한 상당했으므로 이미 눈에 들어오는 몬스터는 없었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해골과 나이트 클랜, 그리고 카버와 샤먼의 시체가 약간 역겨울 뿐. 그녀는 작은 발을 놀려서 마을의 중심으로 들어섰다.

집들은 거의 다 전소되어 있었다. 중앙에 가깝게 위치한 거대한 건물은 안에 놓여져 있는 여러가지 물건들의 흔적들을 보아 여관으로 추정되었고, 근처에 보이는 건물은 너무 많이 손상되어 알아보기 힘들었다. 지붕이 통채로 날아가 버린 돌집은 사람이 살았던 것처럼 보였고...바로 그 옆에, 커다란 나무기중기가 서 있었다. 큰 물건을 들어올리는 기계...삼사미터 높이로 들어올려진 그 끝에는 큰 나무감옥이 있었고, 그 속에는 사람이 있었다.

죽어 있는 듯한, 그러나 분명히 살아 숨쉬는...

"데카드 케인?"





어떻게 케인을 끌어내리긴 했지만 그는 의식이 없었다. 먹을 것은 어떻게 해결된 모양이지만, 죽은 시체와 악마들이 보란 듯이 걸어다니는 죽음의 도가니에 인간이 먹을 만한 것이 제대로 있었겠는가...그리고 노쇠한 몸에 불어닥친 날씨의 힘도 커다란 요인이었다. 골격의 흔적이 앙상하게 드러나는 노인의 몸을 보며 운디네프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 이 불쌍한 노인을 안전하게 보호해 줄 곳은 없을까? 아니, 보살펴 줄 사람은...있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안됐지만...그녀는 케인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수 밖에 없었다. 지금 그녀에게는 더 크고 중요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이 근처에 있을 로그들의 캠프를 측정해보면, 그 '일'을 끝마친 뒤에 그를 옮기는 것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결단을 내린 그녀는 케인을 눕혀두곤 주위에 있는 여러가지 천 조각들을 주워모아 몸을 덮어 주었다. 그리곤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찾고 있던 것을 찾았다. 그리고 건물들이 거의 없는 어느 곳에, '그것'이 있었다. 그랬다. '그것'이 있었다.

붉은 용암이 새어나오는 듯한 균열. 운디네프는 조용히 그곳으로 걸어갔다. 이것이 분명했다. 트리스트람을 두번이나 위험에 빠뜨린...이제 더 이상 이곳이 지켜져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적어도 또 다른 악마들이 인간들의 세상으로 들어오기 전에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지옥의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고개를 빼꼼히 내민 그녀는 지옥의 입구속에 비치는 모든 것들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울부짖는 악마들의 광기어린 춤과 노래, 이글거리는 지옥불과 타들어가며 비명을 지르는 다른 악마들, 그리고 어둠 깊은 곳에서 무한으로 걸어나오는 새로운 악마들.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퍼뜩 고개를 돌렸다.

붉은 용암이 입구를 끓이고 있었다. 조금씩 부식되며 넓어진 입구는 거의 1~20미터에 달했고, 잔 에수의 어린 딸 티아나르 운디에프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스태프를 지켜들었다. 그녀는 지옥의 권능에 맞서고 있었다. 홀로...무한에 다다른 악마들의 외침을 이겨 내고 있었다.

'할 수 있을까...?'

그녀는 마음속의 질문에 애써 태연하게 대답했다. "할 수 있어."

그녀는 스스로를 믿으려 노력하며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외쳤다. '난 할 수 있어.'

그리고 운디네프는 스태프를 휘둘렀다. 지옥의 불길을 잠재우는 불꽃이 그녀의 두 손에서 뿜어져 나왔다.



티아나르 운디네프는 그렇게, 트리스트람의 비극의 시작이었던 지옥의 입구를 닫아버렸다.



그녀는 그녀 자신에게 일말의 이성조차도 남겨놓지 못했다. 인페르노! 지옥의 불길은 '지옥 같은' 불길에 잠재워지고 있었다. 악마들은 뿜어져 나오는 그녀의 불꽃에 쫓기어 지옥 저 깊은 곳으로 몰려갔고, 입구는 자연히 닫혔다.

그러나 그녀의 불길은 계속되고 있었다. 끊임없이 뿜어져 나온 그 불길은 단단하게 들러붙는 지옥의 입구를 지지고 있었다. 이윽고 지면이 다 타버리고 난 뒤에도, 그녀는 미친 듯이 불길을 퍼부었다. 하얗게 뒤집힌 눈이 뜨여지는 순간, 불길의 장벽이 땅바닥을 수놓았다. 그 불길이 닿을 듯 말듯 한 곳에, 케인이 누워있었다.

"으...으음..."

신음소리. 케인의 신음소리.

"으...으...으..."

신음...소리. 케인의...

운디네프의 눈이 돌아왔다.

그녀는 스스로 불살라버린 트리스트람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케인은 이제 의식을 되찾고 있었다. 지옥의 문은? 닫혔고...

운디네프는 일어섰다. 그녀는 케인의 귀에 나직히 속삭였다. "곧 돌아오겠습니다. 저 혼자서는 도저히 당신을 안전한 곳까지 데려가기 힘들어요...기다려 주세요. 이 근처에서 로그들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 테니...조금만 더, 기다려 줘요..."

그녀는 들어왔던 붉은 포탈로 발걸음을 옮겼다. 번뜩이는 순간의 암흑과 함께, 그녀의 몸은 다른 곳에 서 있었다. 다섯 개의 기둥, 그리고 스토니 필드. 운디네프는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로그 캠프! 갑작스런 운동에 그녀의 다리가 경련을 일으켰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달려갔다. 로그 캠프, 로그 캠프!

그녀는 멈추지 않고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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