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절주절::] 소설 디아블로 - 악마를 쫓는 사람들 - 챕터 파이날 -2011.07.12 PM 11:11

게시물 주소 FONT글자 작게하기 글자 키우기

태양은 뜨고 달은 지네

낮에 숨은 별은 밤에 다시 하늘을 밝히네

그건 변하지 않도록 정해진 것.

남쪽에 뜬 해가 북쪽으로 지는 것

동쪽에서 온 별이 서쪽으로 가는 것

그건 변하지 않도록 정해진 것.


천국을 지키는 건 천사의 칼끝

천국을 불사르는 건 악마의 불꽃

그건 변하지 않도록 정해진 것.

천사는 빛에 의지해 신을 경배하고

악마는 어둠에 몸을 맡겨 인간에게 숭배받네

그건 변하지 않도록 정해진 것.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어제 다친 곳 오늘 또 다칠 지

그건 알 수 없는 것, 변하는 인간.

태어나서 자라고, 병들어 신음하다 죽고

누군가를, 혹은 스스로를...아프게 하고, 슬프게 하고,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할 게 뻔한 것.

그건 알 수 있는 것. 그래도 여전히 변하는 인간.


천사에 의해서도 악마에 의해서도 변할 수 없는 인간.

신에 의해서,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변하는 인간.

변할 것이라는 것, 그것은 알 수 있는 것. 그것은 변하지 않도록 정해진 것.

변하지 않는 것, 그것은 알 수 없는 것. 그것은 변하도록 정해진 것.

그리고 그것이 인간.

변할 운명이라는, 변하지 않는 숙명을 가진.

알 수 없는, 그래도 알 수 있는 것을 가진 인간.

그리고 그것이 인간.






-제 5주



아카라는 보이지 않는 두 눈 너머에 있는 남자와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동안 쭉 그렇게 살아왔지만, 어쩐지 요즘 들어서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일 중의 하나였다.

"그러니까, 오신 이유가...악을 추적하기 위해서라구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최근에 만났던 한 팔라딘의 모습이 떠올랐다.

끄덕끄덕.

"저어, 혹시 성함이?"

......

남자는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한 모양이었고, 아카라는 그걸 대충 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왜 장님인 자신과의 대화에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인지 줄곧 궁금했지만, 왠지 물어보기가 꺼림칙했다. 요즘 들어서는 그런 간단한 질문 하나 하려고 하는 데도 머릿속에서 수없이 많은 생각이 떠올라 그녀를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카라가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서는 질문과 고뇌에 신음하고 있는 도중, 남자가 문득 물었다.

"트리스트람에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갈 수 있는 겁니까?"

꽤 깊고 무거운 목소리였다. 적어도 20대 후반, 잘하면 30대도 넘어갈 듯하다. 아카라가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하자, 그는 다시 한번 재촉하듯 물었다.

"내가 왜 그곳에 가려고 하는 지 알아야만 가르쳐 주는 겁니까?"

......

"당신은 그곳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건...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가르쳐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시종일관 공손한 말투로 대화하는 남자였다. 아카라는 혼란한 머릿속을 정돈시켰다.

"알고는 있습니다만, 그게..."

"그게...?"

"지금, 어떤 걸 가르쳐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어떤 거...라니요?"

남자가 목소리를 긴장시키며 물었다. 아카라는 한숨을 쉬며 대답해 주었다.





잠시 후, 남자는 자리에서 검지와 엄지를 짝 벌린후 턱에 붙인 채 좌, 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아카라에게 들은 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오기 며칠전에 이미 당신에게 같은 내용을 물어본 여자가 있었다?"

"그렇습니다."

"케른 스톤이 봉인된 마을 트리스트람으로 가는 유일한 입구이고, 그 여자는 이미 며칠 전에 그 유일한 입구를 여는 열쇠인 '이니푸스 스크롤'을 구하기 위해 다크 우드로 떠나셨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현 시점에서 내가 다크우드로 가야 할지 아니면 스토니 필드에서 케른 스톤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습니다."

"간단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요?"

"두 쪽 다 찾아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

아카라는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왜 자신이 그런 간단한 사실에 탄성을 지르는 것인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남자가 의기양양하게 로그 캠프를 뛰쳐나간지 한 시간 정도 경과 후, 아카라는 며칠 전에 자신에게 방금전 뛰쳐나간 남자와 같은 내용의 정보를 얻어 갔던, 얼음 조각을 몸 주위에 휘날리고 있는 여자, 티아나르 운디네프와 대면하고 있었다. 그녀는 전부터 절대로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아카라가 먼저 물어야 했다.

"뜻한 바는 이루셨는지요?"

그러자 운디네프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데카드 케인."

"예?" 얼른 알아듣지 못한 아카라가 다시 물었다. "데카드 케인."

그제서야 아카라는 그녀가 트리스트람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옛 현자 케인의 이름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운디네프는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데카드 케인은 살아 있었습니다." 아! 아카라는 다시 탄성을 지른다.

"정말인가요?" 그녀는 기쁜 나머지 크게 소리쳤다. 데카드 케인, 트리스트람의 장로이자 최후의 호라드림 계승자. 평소 아카라와도 막연한 사이였던 그가 트리스트람이 괴멸될 때 미처 몸을 빼치지 못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아카라는 트리스트람 자체의 불행보다도 케인 한 사람의 죽음이 가져올 엄청난 고대지식의 손실을 더 두려워 했을 정도다. 물론, 프리스트인 그녀가 사람의 목숨을 그런 지식보다도 더 높게 치지는 않았겠지만, 일단 놀라긴 했었다는 얘기다.

"예, 살아있습니다." 운디네프가 대답했다. "그러나 상태는 몹시 위중합니다. 제가...힘을 너무 써버려서 도저히 같이 데리고 올 수 없었던 관계로 이렇게 도움을 요청하러..."

"아아, 이런!" 아카라가 탄식했다. "지금 다른 모든 사람들은 사원으로 떠나고 없는데...이렇게 된 바에야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여러번 신세진 관계라 부담되긴 하지만..."

운디네프는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고, 그래서 아카라는 스스로 천막 밖으로 나가서 직접 그를 불러야 했다. "와리브님!"





캠프를 벗어난 남자는 생각보다 빠르게 스토니 필드에 들어설 수 있었고, 탁 트이고 약간 좁은 지형의 도움으로 쉽게 케른 스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맹렬히 회전하고 있는 붉은 포탈의 모습도. 그는 약간 의심하면서도 결국 그 포탈에 발을 들여놓았고, 세상이 까맣게 변했다고 생각한 순간, 마치 마법처럼 바뀌어 버린 주위 환경에 놀랐다. 그리고 자기 옆에 쓰러져 있는 노인의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

"어? 영감님, 여기서 뭐하고 있는 겁니까?"

......

"영감님? 영감님?"

초최하기 짝이 없는, 지독하게 꾀죄죄한 몰골의 노인이었다. 손에 굳게 쥐고 있는 지팡이는 도대체 뭣에 쓰려는 건지 알 수 없어 보였고, 입고 있는 다 떨어진 옷과 수염, 머리카락에는 땟국물이 줄줄 흘렀다. 그러나 남자는 곧 노인의 허리를 받쳐 제대로 눕힌 다음 허리에 차고 있던 물통을 꺼내 입으로 흘렸다.

"...으음...콜록, 콜록. 케, 케엑!"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몸 속으로 흘러들어가자, 기절해 있던 노인이 심한 기침과 함께 깨어났다.

"정신이 드십니까?"

노인은 몽롱한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낮게 물었다. "다, 당신은 누구야?"

"그러는 영감님은 누구십니까?"

"콜록 콜록,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버릇은 나쁜 거야."

"헤에, 정신이 드시는 모양이군요?"

"켁, 켁켁, 그, 그런 모양이군. 자네가 날 구한 건가? 으...맙소사, 그 많던 악마들을 다 죽여 버린건가."

"엥? 아뇨? 전 그냥 방금 이곳에 들어왔을 뿐인데요?"

남자의 대답에 노인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타던 집. 그날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어쨌거나 배가 심하게 고픈 와중에도 정신은 또렷하게 돌아오는 것이,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기절한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자, 잠깐. 내가 지금 감옥 밖에 나와 있는 건가?' 오! 망령난 늙은이 같으니! 이렇게 오랜만에 얻은 자유의 기쁨을 누리지 않고 뭐하는 거야? 노인은 마음속으로 자신을 타박하며 미친듯이 고함을 질렀다.

"만세! 만세! 난 이제 자유다! 으핫하하! 쪼다같은 악마놈들, 봐라, 봐! 난 이제 자유다! 크하하하! 어쩔꺼냐~ 또 들고 있는 창으로 찔러봐라~ 개구리 점심식사도 이젠 끝이다~ 메롱, 메롱, 메에롱!!!"

"......"

순간 남자는 이 노인이 충격으로 머리가 돌아버린 것이 아닌가 심히 의심스러웠다.

"저, 외람된 질문입니다만, 나이 먹으면 다 영감님처럼 됩니까?"

그러자 노인은 기겁을 하며 벼락같은 호통을 쳤다. "에끼! 늙은이를 놀리려 하면 못써!"

그리고 노인은 남자의 손길을 뿌리친 후 지팡이를 짚으며 힘겹게 스스로 일어섰다.

"앗싸...드디어 이렇게...오랜만에 대지에 서 보는 구나..."

노인은 눈을 스르르 감았다. 그리고 대지가 뿜어내는 천연향수를 뱃속 깊이 들이마셨다. 비록 악마가 짓밟았던 땅이건만, 느껴져 오는 자연의 기운의 생생함은 조금도 거북하지 않았다.

그렇게, 노인은 자유를 만끽했다.

'...쑈하는 건가?'

...사람에 따라, 같은 상황을 받아들인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이봐, 젊은이!"

"뭡니까?"

하지만 남자의 마음을 들여다 볼 재주가 없을 바에야 남자의 마음을 알아낼 재간이 없던 노인은 진심으로 감사하는 태도로 말했다.

"날 로그들의 사원까지만 데려다 주겠나?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도와줄 수 있을꺼야. 그리고 저 지하에서 다시 풀려난 위험도 알려야 하네!"

"에...저기 말입니다, 그거 이미 늦은 거 같은데요?"

"...? 무슨 소린가? 늦었다니?"

"지금 영감님이 말씀하시는 지하에서 풀려난 위험이란게, 로그들의 사원을 황페화시킨 악마 아닙니까?"

"뭐! 로그들의 사원이 황폐화 됐다구?"

"잘 모르겠는데, 여기 오는 방법을 물으러 갔던 아카라씨는 멀찍이서 캠프치고 살던데요?"

노인은 발밑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이미...늦었단 말인가...하긴, 한 달? 그 정도는 됐으니..."

"에엥? 우는 거 아니죠? 캠프에 데려다 드릴껀데 왜 우세요?"

"그게 아니야! 그렇다면 이미 늦었어! 정말 늦었단 말야!"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무슨 말이야, 도대체? 노인은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 이름이 뭐지?"

남자는 싱긋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카르마라고 하는데, 남의 이름을 물을 때는 항상 자기 이름부터 먼저 밝히는게 순서가 아닐까요?"

"...맞군. 카르마? 희한한 이름이군. 만나서 반갑네. 나는..."

노인은 여기서 잠시 뜸을 들이다가 두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호라드림 최후의 계승자, 데카드 케인이라고 하네."

"그래요? 희한한 이름이시네? 만나서 반갑습니다, 라고 했다 치고, 나 여기서 할 일 좀 끝내고 캠프에 데려다 드려도 되겠습니까?"

......

케인이 신음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카르마는 싱긋 웃으며 허리춤에 달려 있던 물통과 건빵을 건네 주었다. 그리곤 그는 마을 언덕 근처에 있는 황폐한 대성당으로 걸어가 버렸다.

건빵 한 봉지와 물 한통은 지치고 홀로 남겨져 있던 노인에게 큰 힘이 되었다. 주위에 위험이 하나도 없음을 확인한 케인은 온몸을 큰 댓자로 펴며 흙바닥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넓었다.

"오랜만에 보는 구나, 하늘이어! 아, 저토록 넓고 푸른 하늘을 나는 몇번이나 올려다 보았던가? 잊고 있던 푸른 하늘이 오늘 따라 더 감회롭도다!"

나름대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토해낸 그 였기에 마음은 끝없이 나른하고 후련하기 짝이 없었고, 그랬기에 곧이어 댓구처럼 들려온 여인의 목소리에 그가 기겁을 하며 놀랐다는 사실도 설명 될 수 있을 것이다.

"깨어나셨군요, 케인. 감회를 방해해서 죄송하지만 잊고 있던 은인도 오늘 따라 더 감회로와요."

"으아, 으아아, 으아아아악!!!"





두 사람 다 나간지 한나절이나 되었을까? 아카라는 석양과 함께 되돌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오, 아카라! 보이지 않는 눈의 사제여!"

"케인! 살아계셨군요, 데카드 케인!"

일단 갑작스런 재회의 기쁨을 맞이한 호라드림의 계승자와 눈먼 여사제가 눈물의 제회식을 끝낸 후, 조용히 입 다물고 있던 카르마가 말을 꺼냈다.

"에에, 진정들 하시렵니까? 네, 그럼 말 좀 해도 될까요? 예, 감사합니다...그러니까 제가 찾던 그 거대한 악은 이미 트리스트람에서 벗어났었기 때문에 본인은 청상 그 악을 쫓는 수 밖에 없겠는데요? 혹시 조언하실 말이 없으신지?"

그러자 아카라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저, 그런데 기사님께서 그 악을 쫓으려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여쭈어 보아도 되겠습니까."

"아, 일단 난 기사가 아니거든요? 그리고...에, 그 악을 쫓아가는 이유는 아-주 개인적인 것이므로 넘어가고 싶은데, 괜찮아요?"

"아...예. 물론입니다."

카르마는 잠시 뜸을 들였다. "에, 그러니까...조언은?"

"아, 이런!" 케인이 이마를 탁 치며 탄식했다. "내 정신 좀 보게나."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와리브는 조용히 사라졌다가 모두가 앉을 의자를 가지고 돌아왔다. 사람들은 탁자에 빙 둘러 앉았고, 운디네프와 아카라, 그리고 와리브등은 케인이 묻는 질문에 이것저것 대답하며 그에게 많은 사실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케인은 그들이 말한 정보를 종합하여 새로운 사실을 추리하기 시작했고, 카르마가 책상을 똑똑 두드리며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을 때쯤에야 무겁게 입을 열었다.

"흠, 흠. 그 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구료. 그래, 안다리엘은 죽었단 말이지?"

아카라가 대답했다.

"예. 그게 그러니까...밤에 찾아왔었던 낯선 네크로맨서가 혼자서 처리한 모양입니다."

"네크로맨서, 네크로맨서라."

케인이 중얼거렸고, 운디네프의 눈이 요상하게 돌아갔다.

"흐음, 그건 제쳐 두고...그렇다면 아무튼 그 무명의 전사는 이 지역을 벗어났다는 결론이 나오는군."

이번에도 아카라가 대답했다.

"악마들이 쳐들어 오기 전 날, 혼자...아니지. 한 노인과 함께 사막으로 떠났던 사람이 있습니다."

"노인이라? 아, 마리우스. 그렇군...자네들과 이야기를 했나?"

"아니요...그저, 모두가 잠든 사원을 소리없이 가로질러 들어와 사막쪽으로 사라져갔죠. 그 시기가, 악마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는 걸로 봐서, 악마들을 불러들이는 지옥의 입구와 연관되어 있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그러니까, 그가 지옥의 입구를 열었다? 그 입구는 어떻게 됐소?"

"우리들이 사원을 되찾은 후에는 이미 닫혀 있었습니다. 아마도, 앞서 갔던 네크로맨서 씨나 팔라딘 님이 입구를 닫은 모양이지요."

케인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던 그는 문득 생각이 난 듯 다소곳히 앉아 있는 운디네프를 돌아보며 말했다.

"티나, 네가 트리스트람에 열려 있던 지옥의 입구를 닫았지?"

"...네."

티나라는, 생소한 이름을 들은 아카라가 케인에게 물었다. "티나라니요? 운디네프씨인데...?"

"아아, 그건 애칭이지." 케인이 대답했다.

"애칭?" 카르마가 끼어들었다. "아니, 두 사람이 아는 사이란 말입니까?"

"그래, 그래. 나는 호라드림 마법사단의 최후 계승자. 자랑은 아니지만 잔 에수 성역의 정령사들과도 몇번 만난 적이 있지. 그 때는 정말 애송이였는데."

"입 조심하시죠. 애송이라니, 당치 않은 말씀." 운디네프가 톡 쏘듯 말했다.

케인은 껄껄 웃으며 고개를 흔들더니 지팡이로 땅을 툭툭 두드렸다. 가만히 듣고 있던 카르마가 갑자기 궁금한 듯 턱에 손을 갖다대며 물었다.

"그...'무명의 전사'가 뭐하는 사람이죠?"

"...으응? 아아, 그렇군. 자네는 외지에서 왔지? 그래서 잘 모르겠군. 으음...그러니까 그는 근래에 부활했던 공포의 군주 디아블로를 제압한, 트리스트람의 영웅일세."

그러자 카르마는 더욱 더 궁금한 얼굴이 되어서 물었다.

"트리스트람은, 멸망했잖습니까?"

"그래, 멸망했어. 하지만 그는 살아있네. 그리고 우리 마을의 주민이었던 마리우스 영감과 함께 사막쪽으로 떠났고."

"이봐요, 왜 그 사람은 살아있는 거죠?"

"몰라. 모르네. 전혀 추측 되질 않아...하지만...난 공포의 군주가 이 세상에 다시 도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아주 불쾌하고도 확실한 예감이 드네."

아카라가 그 말에 동의했다. "그게, 가능성이 가장 높겠지요."

"흐음...?" 묘한 표정을 지으며 두통에 시달리던 카르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나가도 되겠습니까?"

"아니, 왜 갑자기?"

"전 떠나고 싶은데요? 그러니까 만약 그 무명의 전사와 디아블로가 관련이 있는 거고, 또 그 남자가 동쪽으로 떠난 거라면, 저도 동쪽으로 그를 쫓아가는게 가장 빠르게 그를 잡는 길이겠죠?"

"물론일세." 케인이 대답했다. "서쪽으로 가는 것 보단 빠르겠지. 하지만 도대체 왜 쫓아가겠다는 건가?" 빠르겠지. 잡을 수 있다면 말이야. 그러나 무기도 하나 안 들고 있는 주제에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걸까? 케인은 이 남자의 흉중을 짐작하기 힘들었다.

"...말해드렸다시피, 그건 개.인.적.인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그건 재끼고...아무튼 목숨값 대신에 어떻게 쫓아가야 될는지에 대한 조언이나 주시렵니까? 이거야 원, 서부와 남부, 심지어 북부까지 샅샅이 돌아다녔는데, 동쪽으로 단서가 잡힐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쪽은 하나도 모르거든요?"

"...으흠."

케인은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 그러니까 무조건 동쪽으로?" 카르마가 재차 물었다.

"잠깐만요, 카르마님." 대답은 뜻밖에도 아카라에게서 나왔다. 카르마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요?"

"동쪽으로 사막을 가로지르실 생각이라면, 굳이 혼자서 가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여기 계신 와리브님께서도 내일 루트 골레인으로 출발하실테니까요. 그 때 상단과 함께 떠나시면 좋을 겁니다."

"그렇겠지. 보아하니 여행을 많이 다녀보신 모양인데, 사막을 혼자서 건너는 건 자살행위요." 와리브가 덧붙였다.

"에...?" 카르마는 말끝을 올리며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문제라도?"

진지하게 물었던 아카라는 약간 귀엽기까지한 카르마의 대답을 들으며 웃음 지었고, 운디네프를 제외한 방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실소를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저, 루트 골레인이 뭔데요?"
댓글 : 1 개
다음화 궁금!!
친구글 비밀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