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절주절::] 소설 디아블로 - 사막의 결전 - 챕터42011.07.14 PM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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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의 제단(?)은 마치 바닥에 단단하게 고정된 모습으로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거기 있었던 탓인지 모래에 시달린 흔적이 뚜렷했고, 쌓여 있는 모래가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고 있었다. 모래에 거의 묻혀 있는 듯 했다.

사막은 여전히 더웠다. 툴리아는 새삼 등에 메고 있는 장비의 무게를 느꼈고, 순간적으로 휘청거리는 다리를 바로잡기 위해 애썼다. 이걸 보기 위해 여기까지 걸어왔단 말이지?

데이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그 웨이포인트의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며 그것을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웨이포인트에 가까이 다가가 조용히 무릎을 굽혔다. 그리곤 지독히 섬세한 손길로 웨이포인트 위에 쌓인 모래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도와줄까요?" 툴리아가 팔을 걷으며 물었지만 데이먼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무안해졌다.)

시간은 꽤 걸렸다. 데이먼은 조심조심, 행여나 그것이 다치기라도 할 것처럼 세심하게 신경을 썼고,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툴리아는 그 곁에서 창을 거꾸로 꽂아 놓은 채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괴상한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 또 다시 한참이 지났다.

툴리아는 로브를 펼쳐놓고 그 위에 큰 댓자로 뻗은 채 하늘에 떠 가는 구름만 바라보고 있었다. 데이먼의 작업은 여전히 계속됐다. 미칠 것 같은 심심함에 사로잡힌 툴리아는 그만 버럭 고함을 질러버렸다.

"아아악! 도데체 언제까지 그러고만 있을 거에욧!"

데이먼은 못 들은 척 작업을 계속했다. 화도 나거니와 도데체 어떤 것이길래 저토록 신경쓰는 것인지 호기심이 동한 툴리아는 살짝 다가가 데이먼의 '작업현장'을 바라보았다.

모래에 거의 덮혀 있다시피 했던 웨이포인트는 이제 거의 그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주위의 모래사막과는 이질적인 분위기가 드는, 마치 진흙으로 만들어진 듯한 푸르죽죽한 색깔과, 그리 높지도 않은 단을 둘이나 쌓아 만든 제단. 아랫단은 가로 세로 약 2미터 정도의 사각형 모양이었고, 그 위에 얹어 놓은 듯한 윗단은 그보다 약간 작았다. 하지만 적어도 두, 세사람이 넉넉히 붙어 설만한 넓이였다. 특이한 것은 그 위에 마치 소용돌이 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이게 그...웨이 포인트?"

툴리아는 말을 약간 더듬고 말았다.

'순간이동장치라고 했잖아? 무슨 제사라도 해야하는 건가?'

"...그거, 내놔라."

그동안 입 한번 떼지 않고 있던 데이먼이 갑자기 손을 불쑥 내밀며 말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웨이포인트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툴리아는 순간적으로 당황해 버렸다.

"뭐, 뭘요?"

그 때, 데이먼의 짐을 몽땅 짊어지고 있던 클레이 골렘의 팔이 스르르 움직였다. 데이먼은 툴리아를 무시하고 골렘이 주먹에 꽉 쥐고 있던 주먹만한 자루를 건네받았다.

"그건 뭐예요?"

툴리아가 물었다. 데이먼은 언제나처럼 음험한 얼굴로 주머니의 가죽끈을 풀며 말했다. "마법재료. 보석을 갈아만든 거지."

"흐음..."

툴리아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데이먼이 하는 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데이먼은 주머니 속의 내용물을 보는 순간 기분이 상당히 나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젠장, 싸구려군."

"엥? 뭐가요?"

"싸구려다. 싼 보석으로 대충 갈아 만든 거란 말이다."

그러나 툴리아는 더욱 아리송해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데이먼은 더욱 음험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칩(cheap). 칩 보석으로 만들었다는 거다. 갈아서 재료로 만든 놈도 어처구니 없이 초짜로군. 그리 오래 쓰지도 못하겠는걸."

그러나 마법적 지식이 없는 툴리아에게는 여전히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을 뿐이었다. 데이먼은 부슬부슬한 보석가루를 손바닥에 약간 재어서 웨이포인트의 양쪽 모서리에 조금씩 부었다. 그리고는 제단의 소용돌이로 파진 무늬를 따라서 보석가루를 계속 부었다. 이윽고 제단의 모든 무늬에 보석가루가 꽉 차자, 데이먼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뭐 하려는 거에요?"

툴리아가 다시 물었다. 데이먼은 대답 대신 웨이포인트 위로 살짝 발을 옮기고는, 윗단의 제단을 밟아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섰다.

"이봐요, 뭐하려는 거냐니깐요?"

"......"

데이먼은 조용히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는 듯 했다. 툴리아는 잠깐, 아주 잠깐, 주위의 공기가 살짝 뒤틀렸다 제자리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갑작스레 데이먼이 서 있는 중심부부터 푸르고 하얀 빛이 새어나왔다. 툴리아가 놀랄 새도 없이, 그것은 마치 전류처럼, 뿌려진 보석가루를 따라 웨이포인트의 무늬를 두 갈래로 빠르게 가로질렀다. 이윽고 두 갈래의 광채가 양 모서리에 도착하자, 모서리에서는 갑자기 불길같은 것이 확 일어나며 웨이포인트의 모든 부분이 순간적으로 한꺼번에 찬연한 빛을 뿜어내다가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무늬를 파고드는 광채는 아직도 은은하게 남아있었고, 모서리에 타오르는 불길또한 여전했다.

"......"

정적이 흘렀다. 아니, 툴리아는 잠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이해하지 못 했기 때문에 침묵하고 있었다. 데이먼은 곧 닥쳐올 막강한 음공(音攻...맞나?)에 대비하기 위해 귀를 틀어막고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꺄아아아아아악! 꺄악! 꺄아아아악!"





같은 시각, The hall of the dead의 내부에서는 길 잃은 성기사가 다 꺼진 횃불을 손에 쥔 채로 주저앉아 공허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길을 찾을 수가 없잖아...?"

그랬다. 그는 길을 잃었다.

횃불을 지켜들고 지하로 들어선 아론은 잠시 내부가 생각보다 훌륭하게 만들어진 것에 대해 놀랐다.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벽돌과 바닥에 돌을 끼워박아 만든 도로를 따라 정신없이 내부로 들어서는 동안, '자카룸의 손' 그 왼손 두번째 손가락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내부는 정신없이 복잡했다. 그러니까, 규칙이 전혀 없다. 크기가 제멋대로인, 서로간의 거리나 배치도 전혀 균일적이지 못한 수십 개의 방이 중앙에서 부터 뻗어난 세 개의 대로를 따라 꼬이고 얽혀 있었다. 한번 첫 번째 방으로 들어선 순간, 아론은 이미 위치를 상실하고 있었다.

그리고 횃불은 꺼졌다. 구석구석 박혀 있는 야명주가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처음 온, 그것도 복잡한 지하동굴에서 길을 찾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헤메고 헤멘지 어느 덧 몇 시간, 밖을 볼 수가 없어서 시간도 알 수 없었고, 지금 어디에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아론은 허탈한 기분을 느끼며 벽에 기대어 주저 앉았다. 서늘한 주위의 공기가 불안으로 둔갑하여 그를 엄습했다. 게다가 약간 독향이 스민듯한 메케한 냄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주위에 있는 갖가지 관과 유골들은 그의 기분을 상당히 으스스하게 만들었고, 어디선가 웅웅 울려오는 듯한 오묘한 노랫소리 같은 것도 불쾌하기 그지 없었다.

한마디로 최악의 상황이다.

하룻밤 자고 가려고 했을 뿐인데. 아론은 천천히 투구를 벗었다. 한결 나았다. 야명주가 박혀 있는 곳에서만 은은한 빛을 볼 수 있을 뿐, 주위는 한치도 보이지 않았다.

아론은 그의 성기사단 시절을 추억한다. 아니, 그저 기억해 본다. 그는 아직도 팔라딘이다. 자카룸의 손, 그 왼손 두번째 손가락이다.

흔히들 왼손이라고 하면 약한 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천만의 말씀. 최근 전 교황 쿠에-히간을 뒤이어 새로 즉위한 교황, 쿠에-다린(Que-Darin)은 왼손잡이였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론 맥클레인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왼손' 다섯 팔라딘은 오른손의 다섯 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특히 오른손의 다섯중 하나가 배교해버린 이후로 오른손 부대의 위명은 크게 하락하고 말았는데, 그 때문에 왼손과 오른손이 각각 대표 하는 좌군과 우군의 기세는 누가봐도 명백한 좌군의 우세로 치우쳐져 있었다.

아론은 두번째 손가락, 즉 집게 손가락이다. 집게 손가락은 공격의 손가락. 그렇다. 그는 공격자다. 컴뱃의 달인, 전투 팔라딘이다. 그는 최고위 열손가락 팔라딘중에서도 으뜸이라 할 만한 전투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그것은 그가 항상 최전방에 배치된다는 점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피곤했다. 그런 것 따위, 지금은 소용없지. 그러면서도 아론은 지금 자신이 저지른 과격한 결단에 대해 교회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대해 잠시 우려했다.

'뭐, 별로 신경쓰지는 않을 거야.' 아론은 속으로 생각했다. '난 언제나 그런 놈이니.'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그는 어둠속에 흔들리며 다가오는 수백, 수천개의 그림자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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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 개
오늘 많이올려주시네요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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