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절주절::] 소설 디아블로 사막의 결전 - 챕터9 -2011.07.26 AM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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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얏!"

콰당탕! 파라가 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바람에 의자가 큰 소리를 내며 널부러 졌다. 그녀는 말릴새도 없이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방을 뛰쳐나갔고, 곧 좀 전의 비명보다 더 큰 비명을 지르며 돌아왔다.

"끄아아아아!"

"무슨 일이야! 파라, 무슨 일이냐고!"

케인은 지팡이를 짚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는 와중에도 파라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연신 알아들을 수 없는 이런저런 고함을 질러대며 악을 써대고 있는 중이었다. 카르마는 그녀의 동작과 표정을 열심히 관찰해 보았지만 여전히 그녀가 뭘 말하고 싶은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시뻘개진 얼굴과 무지막지한 고함소리로 보아 분명 뭔가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진게 틀림없었다.

"꺄아악! 캬아아악!"

"말을 해, 말을!"

"잠깐 물 좀 마셔도 될까요? 목이 타서 그러는데, 괜찮겠죠?"

"끄아아악! 아아아악! 악, 아악! 악!"

"파라, 진정하라니까! 설명을 해보게나!"

"영감님, 그 종이 좀 봐도 되죠? 우와, 양피지네?"

...모두가 허둥거리고 있는 동안, 티나는 침착하게 방에서 걸어 나갔다. 어둠이 이미 온 도시를 덮고 있었다. 주점 안을 재빨리 둘러본 티나는 빠른 걸음으로 바깥을 향했다. 주점 안에 있는 사람이라곤 술에 쩔어서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고 있는 뚱보 한 사람밖에 없었던 것이다. 도시 전체는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등불이 켜진 집들과 가게들, 그리고 팔라스(Palace)만이 눈에 띌 뿐이었다.

비명은 어디에서 들려온 것일까? 그 때였다.

"살려주세요!"

아까 전에 들려온 비명의 주인이 틀림없었다. 티나는 몸을 홱 돌려 비명이 들려온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때, 순간적으로 그녀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어둠이 짙었다.

짙다.

짙다.

너무...짙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생각한 바로 그 순간, 눈 앞에 꽉 차 있던 어둠은 그녀를 향해 똑바로 날아 들었다.

콰카칵! 부딪혔다...라고 느끼고 몸을 한껏 움츠린 순간, 그녀를 향해 똑바로 날아오던 '어둠'은 누군가가 번개같이 내지른 창끝에 무참히 짖 찣혀 땅바닥으로 흩날렸다.

"이봐요, 아가씨! 괜찮소?"

굵직한 목소리가 어둠에서 튀어나왔다. 주점의 처마에 매달린 등불이 사내의 얼굴을 슬쩍 비추었고, 티나는 시커먼 턱수염을 잔뜩 기른 병사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

그리고 그 험상궂은 얼굴은 귀신보다 무서웠기에 티나는 거의 비명을 지를 뻔 했다. 그러나 그러기도 전에 또 다시 휙 하고 어둠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무언가가 다가왔기에 그녀는 그런 것에 신경쓸 틈이 없었다.

"비켜요!"

사나이가 티나를 급히 옆으로 떠밀고는 들고 있던 창으로 '그것'을 푹 찔렀다.

꾸어어억!

끔찍한 신음 소리가 들렸다. 옆으로 나동그라졌던 티나는 게슴츠레 눈을 떠서 그것을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놀랐다.

그것은 팔이 하나 떨어져 나간, 추하게 썩어 문드러진 좀비였다. 그 때 옆에서 어떤 여자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흩어진 머리칼을 미친듯이 쓰다듬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사나이의 창끝에 꽃힌 좀비를 본 순간 다시 한번 끔찍한 비명과 함께 통곡하기 시작했다.

"내 남편, 내 남편이에요!"

그녀는 바로 티나를 밖으로 불러내게한 비명의 주인공인 술집 여주인 아트마였다.





사막용병대의 대장인 그리즈는 야간 경비를 돌던 도중 비명소리를 듣자 마자 곧바로 부하들을 소집시켜 도시를 누비기 시작했다. 그러나 너무 어두운 탓에 시야가 극히 제한되어 있었고, 아직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섣부른 행동은 금물이었다.

"모두들 흩어져서 무슨 일인지 확인해보도록 해라!"

대장의 명령이 떨어진 즉시 그를 따르던 몇몇 경비병들이 쏜살같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즈는 몸소 경비초소의 높은 곳으로 올라가 도시를 내려다보았지만, 들려오는 것은 찢어질듯한 비명과 괴성들뿐, 도저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젠장..."

그는 입으로 몇마디를 우물우물거리며 다시 본부로 내려왔다. 루트 골레인의 서북부 구석에 위치한 사막용병대 임시 경비본부에는 이미 야간 경비대 서른 명이 모두 집합해 있었고, 연락장교가 수하를 동원하여 잠들어 있는 나머지 부대원들을 속속 모아들이고 있었다. 그리즈는 굳은 얼굴로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어둔 밤이라 아직은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모두들 횃불을 들고 각자 순찰구역을 순회하되,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나타나면 곧 각자의 호루라기를 이용해서 신호하도록! 그리고 반드시 각조의 조장들을 중심으로 단체행동하도록 한다! 지하의 괴물놈들이 삐져나온 걸 지도 모르니까!"

명령을 내린 그리즈는 창을 높이 쳐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하타쿤타르 술탄 아헨티! (hatakuntar sultan Ahentee:위대하신 술탄 만세)"

하타쿤타르 술탄 아헨티! 경비병들도 그를 따라 창을 쳐들며 크게 외친 뒤 모두들 바람같이 흩어졌다. 도시는 점점 비명의 도가니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가 초조하게 보고를 기다리고 있은 지 약 2분, 맨 처음 먼저 보냈던 자신의 직속 경비병들중 하나가 돌아와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언데드 몬스터들입니다! 정말 엄청나게 많습니다! 도시 전역을 모조리 그 흉악한 놈들이 장악하고 있어요!"

그리즈는 눈이 뒤집혔다.

그날 밤 루트 골레인에 나타난 언데드 몬스터들은 비단 죽은 아트마의 남편 뿐만이 아니었다. 바다에 버려진 시체들이 물길을 타고 항구에 들어서고 있었다. 지하에 묻힌 시체들이 솟아나고 있었다. 지하하수도의 뚜껑이 열리고 거기에서 수많은 좀비와 스켈레톤 병사와 썪어빠진 구울들이 추악한 괴성을 지르며 도시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늦은 밤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 문을 꽁꽁 걸어잠갔고, 어두운 밤의 공포와 상태를 알 수없는 이웃의 비명소리는 루트 골레인 전역으로 흡사 몹쓸 전염병처럼 순식간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의 곳곳에서는 경비병들과 언데드 몬스터들 사이의 격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어느 지역에서나 언데드 몬스터들의 숫자가 월등히 많았지만, 날렵하고 용맹한 사막용병단원들은 현란한 창술을 뽐내며 그들을 민간인이 없는 지역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실제로 그들의 실력은 눈부실 정도여서, 단 서른 여남명의 용병단원들은 넓게 퍼진 채 여러갈래로 언데드몬스터들의 행로를 차단하며 그들을 몰아부치고 있었다.

"그리즈 대장니-임!"

다시 연락병이 그리즈에게로 달려왔다. "오, 그래! 적들의 추정숫자는?"

"어림잡아서 1~200은 되보입니다! 현재 야간 경비대가 그들을 모두 중앙 공터로 몰아넣는데 성공했습니다만, 숫자가 너무 많아서 역으로 밀릴 지경입니다! 위급합니다!"

"제기랄! 조금만 더 버텨라! 상비군을 곧 투입하겠다!"

그리고 얼마 후, 도시에 상주하는 거의 모든 경비단원들이 전투에 투입되었다. 먼저 언데드들을 몰아부치다 힘에 겨워 밀리고 있던 서른 남은 명에다, 상주군 6~70명이 가담하자 이제 전투에 참여하는 용병단들은 모두 백여명으로 언데드들의 절반가까이 숫자를 채울 수 있었다. 실력으로만 따지면 하나가 능히 열을 당해내는 그들로서는 이긴거나 다름없었다.

언데드들의 괴성과 용병단원들의 고함소리, 무기와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와 시체가 터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마을 전체에 시끄럽게 울렸다. 전황은 흡사 용병단쪽으로 기울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쉬이익!

어둠을 가르는 화살소리가 들렸다.

파아악!

"크아악!"

전방에서 잘 싸우고 있던 한 용병단원이 화살이 꽃힌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그 잠깐 새에 이미 그는 수많은 언데드무리 속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었고, 고통과 공포에 질린 그의 비명은 수많은 언데드들의 그림자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살이 뜯기고 찢기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시체로 변하는 동료를 보며, 언데드들과 수많은 전투를 치뤄온 사막용병단원들은 전에 없던 공포를 느꼈다.

해골궁수들이 도시 중앙공터에 있는 하수도비상통로를 통해 삐져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이 다른 곳에서는 언데드들의 증원이 없었지만, 수많은 언데드들로 둘러싸인 공터의 중심에서 솟아나온 궁수들은 다른 시체들의 완벽한 바리케이트 안에서, 그들만이 볼 수 있는 어둠의 시야로 살아있는 자들에게 화살을 쏘아보냈다.

안 그래도 어두운 밤이었다. 거기다 갑옷도 그리 대단치 않은 경비단원들에게 있어서 화살 공격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전세는 역전되고 있었다. 그리즈는 연락병의 활약에 힘입어 전장의 상황을 시시각각 보고 받고 있었지만, 이제는 더 투입할 병력도 작전도 없었다. 화살의 여파는 아직도 남아 있었고, 밀리는 병사들은 거듭 후퇴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도 가겠다!"

"잠깐!"

이를 북북 갈며 스스로 창을 집고 뛰쳐 나가던 그리즈는 누군가가 자신을 만류하는 것을 듣고 그 자리에 멈춰섰다. 단지 누군가가 그를 불렀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목소리는 그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목소리였던 것이다. 고개를 돌렸을 때, 역시 그곳에는 푸른 겉옷을 걸친 한 젊은 남자가 칼을 빼들고 서 있었다.

"제라힌 술탄!"





"빨리 와요!"

파라는 아무렇게나 무장을 한 뒤 방패와 몽둥이를 들고 뛰어나갔다. 케인은 재빨리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카르마는 어느 새 사라지고 없었다.

'젠장, 이 자식은 또 어딜 간 거지?'

케인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만으로도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자신의 눈앞에서는 울다지쳐 실신해버린 아트마가 누워있었던 것이다.

"케인, 아트마를 부탁합니다!"

"걱정말게."

파라가 성문쪽에서 나타난 새로운 용병단원들과 함께 전장으로 사라져가자, 케인은 아트마를 술집에 데려다 놓은 뒤 술집 문 앞을 단단히 지키고 서서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 때, 어디선가 좀비 한 마리가 더 기어 나왔다.

"끼에에!"

"우아악! 저리가라, 저리가!"

케인은 황급히 들고 있던 지팡이를 휘둘러 그 좀비를 밀어내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체구가 작은 좀비는 비실비실한 지팡이를 슥슥 피하며 어느 새 케인에게 근접하고 있었다. 좀비의 손이 크게 올라가는 순간, 케인은 아찔함을 느끼며 눈을 꼭 감고 말았다.

타닥!

의외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을 뜬 케인은 굵직한 팔뚝이 좀비의 팔뚝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당신은...?"

굵직한 팔뚝의 주인은 거대한 몸집의 뚱보였다. 술 냄새가 풀풀 풍기던 그는 대답대신 무지막지한 손아귀로 좀비의 머리를 싸맨 뒤 그대로 '쥐어버렸다.' 퍼석하는 혐오스런 소리와 함께, 좀비의 머리통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누, 누구요? 구해줘서 고맙소이다!"

뚱보는 꺼억 하고 트림을 하더니 입가에 흐르는 침을 스윽 닦으며 대답했다. "기이글랑쉬이유우...우으윽, 꺼억! 구리이즈으 짜아시기 이일를 재에대로오 모옷하는구마안..."

케인은 뚱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이 거대한 사나이는 분명 방금 전까지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깨어난게 분명했다. 간신히 안심할 수 있었던 케인은 불현듯 티나에 대한 걱정에 휩싸이고 있었다.

'그 아이는 또 어딜 간거야!'

뒤늦게 방에서 뛰쳐 나온 걸 다시 한번 후회하는 케인이었다.


댓글 : 1 개
잘보고갑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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