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work] 부모님께 대한 편지 써본거2012.04.29 AM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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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기다리지 않는다고 하죠.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안주하지 못하고 시간을 죽기 살기로 따라가나 봐요. 미래는 잡힐 것 같지만 잡히지 않고 과거는 곁에 있는 것 같지만 어느새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니면 ‘그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런 말을 하나 봅니다. 얼마 전에도 아버지께서 제게 네가 태어날 때가 엊그제 같다고 말씀하셨죠. 그래요. 시간이 흘러 간난아이는 24살의 청년이 되었고, 아버지의 키를 훌쩍 넘었으며, 아버지와 어머니의 등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지난날을 회상하고, 나날이 늘어가는 부모님의 주름살과 흰머리를 깨달았으며, 지금 이 순간 편지를 쓰고 있을 때마저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자식이 되었습니다.
전 신을 믿지 않죠. 지금은 신은 없거나 선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악은 처단 받지 않고 나쁜 일은 좋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니까요. 하지만 다시, 그럼에도 신은 존재한다는 것을 이젠 알고 있어요. 성경에도 그리스신화에도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표현합니다. 이처럼 모든 인간의 부모님은 조물주입니다. 그렇죠. 누가 부정할 수 있나요.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은 진정으로 신입니다. 부모님에게서 제가 비롯되었다는 것과 생후 최초로 경험한 존재라는 것으로도 제게 있어 두 분은 신이었습니다. 제가 자라나면서 부모님께서는 가치와 질서의 기준이었고, 학교이자 종교이며, 고향, 그리고 인생의 향로(向路)였습니다. 눈 뜨지 못한 나를 일깨우신 선지자였고, 지치고 상처입어 고통스러울 때 안식을 위한 둥지였으며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길을 잃고 배회할 때 지표가 되어주는 등대였습니다. 이렇게 절대적인 선이자 질서의 신이기도 하셨고, 동시에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자비로운 신이었습니다. 창조물의 성공에 누구보다 기뻐하고 좌절에 누구보다 슬퍼하는 신을, 진심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신을 이 세상의 어떤 신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낳은 자식을 언제나 바라보며 언제나 힘이 되어주고 슬픔을 이기길 기도하는 신은 제가 알기로는 두 분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다른 것에 관심을 가졌고, 이제까지 지녀온 가치와 인간적인 애정에 대해서는 조금씩 외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잊어버렸습니다. 새로 배운 것과 얻은 것도 있었으나 소중히 간직해야할 것도 점점 잃어버렸고, 어느새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떠나버린 후였습니다. 서리는 회한에 오열하고,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아 생을 포기하고 싶은 두려움만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잠들고 깨면 옆에 잃어버렸던 것들이 있었어요. 어린 저는 그것이 필요 없다고 하나씩 버렸지만 그것들은, 두 분께서 내게 주신 것들은 저를 버리지 않았나 봅니다.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있었어요. 내가 한 발자국만 다가서면 다시 찾을 수 있는 그곳에. 그래서 전 좌절하고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다시 날아오를 수 있었나봅니다. 그것을 저 몰래 부모님께서 제 옆에 두신 것을 그 땐 몰랐지요.
재작년 3월부터 작년 12월까지 짧지 않은 군 생활 동안 느낀 것은 정말 많았습니다. 그 중 사무치게 느낀 것, 그것은 두 분에 대한 것입니다. 부모님과 저는 서로 떨어져 서로가 부재했죠. 하지만 폐쇄된 환경에서 두 분의 미소와 웃음소리를 회상하며 울적한 마음을 달랬고 고된 하루의 시작과 끝에 두 분의 사진에 인사를 올리며 희망을 가졌습니다. 두 분을 생각하면서 저는 외로움과 고통을 달래면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전 두 분 덕에 힘을 낼 수 있었는데, 과연 두 분은 제가 부재한 두 분은 어떠하셨을까요. 두 분께서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신이 없는 이 세상에서 두 분께서는 저에게 몇 번의 기적을 보여주신 것으로 전 그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생각하기 힘들었어요. 어떻게 견디셨죠? 언제나 저를 걱정하고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손이 닿을 수 없는 외지에 있는 저를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짐작하기도 힘듭니다. 얼마나 전화를 기다리고 편지를 기다리셨을까요. 제에게 힘이 되었던 전화나 편지가 두 분께는 위안이 되었을까요. 아니면 아련한 슬픔이었을까요. 보진 못했지만 두 분께서 얼마나 눈물 흘리셨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성혈보다 숭고한, 자애보다 거룩한 것이라는 것도 이젠 알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키우면서 저를 먹이시고 입히신 것이 두 분의 피와 살이며 고통이자 눈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한참이 지나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저에게 아낌없이 베푸신 것을 그동안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받기만 했습니다. 아버지의 술잔은 가벼워지고 어머니의 어깨는 무거워지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저 처음에 어머니의 몸속에 예속되었을 때처럼 그저 두 분의 희생을 모르고 전 그저 받기만 했을 뿐입니다. 이젠 7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유명한 수상소감처럼, 그저 두 분께서 밥상에 숟가락만 얹을 뿐이었습니다. 그 밥상에서 두 분의 희생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가슴으로도 느끼지 못했던 제가 진심으로 원망스럽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는 언제나 미소를 보여주셨기에, 아무것도 몰랐나봅니다. 그 환한 미소가 고행과 헌신이 내재된 씁쓸하고 안쓰럽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저 자신이 너무나 죄스럽고 부끄럽습니다. 얼마나 회개하고 참회해야 이 죄를 씻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억겁을 회개하여도 속죄에 이르겠습니까. 진정한 속죄에 이르는 것이 멀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단순히 죄책감만 지니며 제 자신을 자책하고 스스로를 징벌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가장 좋은 방법, 당신께서 바라시는 방법으로 행동하겠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세기가, 물결이 바뀌었고, 그동안 집은 세 번 정도 바뀌었고, 저는 어느새 성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단 한 번도 두 분께서 저를 단 한 번도 외면하지 않고 계속 바라보고 계셨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으나 느낄 수 있습니다. 날 적부터 그랬듯 이번도 두 분에게서 배운 방식으로, 두 분이 실천하신 방식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한단지보가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물론 감히 두 분만큼은 불가능합니다. 목숨을 바쳐도 무리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조금씩 실천하려 합니다. 더 많이 하는 것보다 더 자주 하겠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더 많이, 그리고 자주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결국은 더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단념하지 않으렵니다. 미숙하지만 진심을 담아서 두 분처럼 저 역시 두 분께 그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사랑받은 아들은 그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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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서 부모님에 대한 편지로 쓰면 6월 학원비 면제라는 말에 혹해서 써본 거 입니다.
저의 누이는 문장력은 좋으나 너무 장황하고 오바가 다분하다....라는 군요.
저도 쓰면서 이게 편지라고? 싶었으니....-_-
맘 같아선 다시 쓰고 싶은데 귀찮습니다...; 걍 이걸로 내고 걍 공부나 할까봐요..-_-
댓글 : 3 개
군대갓따왔는데 학원?..
내용이 무슨 상관이에요 부모님에게 썼다는건 좋은거에요
Defeat Jackson// 학원다니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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