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work] 독후감 '백경'2013.12.11 AM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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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시와 함께 수상받은 독후감입니다.
읽은 책은 허먼 벨밀의 백경입니다.
읽느라 너무 힘들었었어요;;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라 기회가 온 김에
같이 준비하자고 마음먹고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수상까지 되서 저로서는 보람이 정말 남다르네요.
너무 방대한 책이라 독후감의 중점을 상당히 축소해서 냈는데
그래도 좋은 결과가 나왔네요.


에이하브, 궁극적인 집념 혹은 광기, 숙적 모비 딕과의 대립, 그리고 독존적인 숭고성


멜빌의 『백경Moby-dick』은 선장 에이하브와 백경 모비 딕의 사투를 다루는 작품이다. 방대한 분량만큼이나 다양한 해석과 난해성을 자랑하는 이 작품은 사실 내게는 매우 벅찬 작품이었다. 읽어보고자 마음먹었었지만 쉽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알게 된 후 많은 시간이 흘러서야 책표지를 넘길 수 있었다. 소설은 형언하기 어려운 작품이었고, 아직 내 스스로가 대단치 않은 사람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쉽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 내게 눈길을 끌고, 그것을 넘어 어떤 열망까지 심어준 부분이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에이하브라는 인물에 심취하게 되었고, 아마 분명 결코 잊을 수 없는 인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소설은 너무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본인의 감상과 해석도 한가지로 잡히지 않았다. 다만 에이하브라는 인물에 대한 감상은 아직 명확하지 않고 분명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었기에, 에이하브 선장에 대해서만 짧게 언급하고 싶다.

에이하브는 어떤 인물인가? 에이하브는 포경선 피쿼드 호의 선장이다. 그는 약 40년 동안 포경생활을 한 사내이고, 몇 년 전 그의 운명적인 숙적 백경, 혹은 모비 딕과의 대결에서 한 쪽 다리를 잃은 사람이다. 잃어버린 다리는 해소할 수 없는 고통이 되었고, 그 고통은 증오를 키웠다. 그 증오는 모비 딕에게 향하고, 그 원동력의 대가는 자기 자신이었다. 모비 딕에게 이르기 위해 그는 스스로를 갉아먹고 불태웠다. 쌓아온 증오를 작살에 담아 그 거대한 심장에 찔러 넣기 전에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마 모비 딕의 숨통을 손에 거머쥔 뒤에는 고래 뼈로 만든 자신의 의족을 모비 딕의 뼈로 만들지 않을까? 그가 생존한다면 말이다.

에이하브는 스스로 그 자체를 복수에 투신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비롯한 모든 것들, 심지어 선원들까지 모조리 소진해내어 자신의 운명을 백경으로 이끌어간다. 에이하브를 여기까지 몰아넣는 그의 가장 결정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분명 집착일 것이다. 그의 모비 딕을 향한 집착이 그의 삶을 결정했다. 그는 지난번의 전쟁으로 전상자가 되었지만, 적을 향한 복수의 칼을 준비하는 것을 단념치 않는다. 많은 이들이 모비 딕에게 당했고, 그나마 살아남은 자들은 모비 딕의 그림자에 조차 가까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에이하브는 다르다. 모비 딕에게 다리를 잃었지만 그는 그 다리 때문이라도 더욱 질주하는 자이다. 폭풍우와 고장 난 마침판에도 그는 결코 멈칫거리지 않았다. 그것을 모두 이겨내고야 말았고, 결국 마지막 에이하브는 백경 앞에 스스로를 드러내고야 마는 사람이었다. 이렇게까지 그를 몰아넣는 것은 그의 복수심, 그의 집착이었다.

그의 집착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그의 집착은 광기 그 자체인 것이다. 모비 딕에게 자신의 다리를 내어주고만 에이하브는 패배의 치욕과 상흔의 고통으로 점철되었다. 그는 죽음에 이를 지경이었지만, 그의 광기는 퀴케그가 자신의 의무를 잊지 못해 죽음에서 벗어난 것처럼, 그 역시 자신의 숙적, 복수의 대상을 남기고 그저 죽음에 이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는 바다에 다시 나설 때까지 자신의 의도를 숨겼고, 다시 피쿼드 호가 포경사업을 위해 바다로 나섰을 때 자신의 목적을 천명하면서 의식을 진행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숨겨진 광기를 드러낸다. 백경을 향한 광기는 항해를 나서기까지 그를 끊임없이 잠식해왔고 항해를 나서고 술을 돌리는 의식을 행한 뒤에는 그 광기는 에이하브 뿐만 아니라 선원들, 피쿼드 호 전체를 잠식해갔다. 모든 것을 지배하고야만 그 광기는 결국 피쿼드 호를 모비 딕 앞에 자신의 소유물을 내어놓고야 말았고, 결국 결과는 아는 바와 같다.
두 번째로는 그의 집착을 의지의 표상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한 번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준 상대에게 맞서기 위해 다시 바다에 몸을 맡기는 행위는 사실 그것이 강인한 의지의 발로로써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단 한 마리의 거대한 흰 고래에 도전을 한다는 것이 너무나 허무맹랑하고 정신 나간 짓이 아닌, 자신에게 내어진 숙명적인 상대 과의 결판내지 않은 승부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며, 동시에 모든 것을 내어주는 에이하브의 결단이란 가벼운 의지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40년 동안 겪어온 포경업에 매진한 에이하브에게 있어서 백경, 그 모비 딕이라는 존재란 포경업의 넘을 수 없는 수평선의 상징, 자신의 위업의 정점, 삶의 완전성을 이룩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에이하브에게 모비 딕이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상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결코 쉽지 않은 이 행동을 주저 없이 하는 에이하브야 말로 궁극적인 인간 의지의 표상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백경, 모비 딕은 무엇인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존재이다. 먼저, 모비 딕은 대자연을 상징하는 존재일 수 있다. 인간이 차마 이해할 수 없는, 너무나도 거대하고 위대하기에 인간이 근접할 수 없고, 끝내는 정복할 수 없는 자연적인 존재, 대자연의 경이인 것이다. 두 번째로는 모비 딕을 악의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에이하브는 백경을 태고부터 존재했던 악의 화신으로 인식한다. 흉포하고 파괴적인 모비 딕은 수많은 생명을 유린했으며, 그것의 결과는 사실 악의 업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세 번째로는 선을 상징할 수도 있다. 이 부분은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종에도 속할 수 없는 모비 딕은 신이 자연의 수호자로서 빚어낸, 인간의 악덕에 대한 경계자이자 선의 수호자로서 점지한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내재의지(Immanent will)적 존재라는 것이다. 토마스 하디(Thomas Hardy)의 문학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내재의지는 선도 아니며 악도 아닌, 무엇에도 치우지지 않은 우주 내재의 맹목적 의지로서 인간을 필연적으로 비극의 운명으로 몰아넣는 힘인 것이다. 한 마리 고래로서 다만 자신의 본능에 의해 행동하지만 수많은 이들을 절멸시키는 백경, 모비 딕은 이런 내재의지에 필적하는, 혹 그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에이하브와 백경의 관계, 혹은 대립은 수많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앞서 언급한 에이하브의 집착의 두 가지 측면에 따라서, 그리고 백경의 상징성에 따라서 서술하고자 한다.
에이하브의 집착이 광적인 어떤 것이라면, 먼저 백경이 자연을 상징한다면, 인간과 자연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의 대립은 자연을 정복하고자 하는 인간이 끝내 패배한다는 것의 상징이다. 두 번째로 백경이 악의 상징이라면, 자연스럽게 이분법적 구조로 나뉘어 에이하브는 선의 화신이다. 그러나 집착으로 인해 스스로 악이 되어버린, 그 선의 추구에 대한 과열된 집착에 견디지 못해 스스로 필연적으로 선에서 벗어나 악이 되어버린 에이하브는 결국 파멸하는 것이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라는 니체의 말처럼 말이다. 세 번째로는 백경을 선이라고 해석한다면, 이 부분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하나는 인간이 신과 동등하고자 하는 교만한 행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오만이 하늘을 찔러 이젠 신에게 닿고 신을 넘어서고자 할 때, 결국 신을 넘어서지 못하고 결국 패배하고 추락하는 인간을 에이하브가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구약성서 창세기 11장의 바벨탑에 대한 신의 응징을 받은 인간의 모습을 빗대듯이 말이다. 다른 하나는 선에 결코 안주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는 인간 깊숙이 내재된 악을 보여주는 것 일수도 있다. 어쩌면 모순적인 인간 본연의 선과 악 두 가지 전부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네 번째, 백경이 무의식적인 의지를 표상한다면, 그 힘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필연적인 파멸을 그린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자유의지라는 것은 결국은 허상일 뿐이고 다만 그 우주적 의지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필연적인 불운한 운명을 상징하는 것이다.
에이하브의 집착이 인간의 궁극적인 의지의 표상이라면, 자연으로써의 모비 딕과의 대립은 에이하브는 자연을 정복하고자 하는 인간을 상징하지만, 그러나 전자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온 세상에 인간만을 찬미하고 추종하는 인간의 신전을 세우고자하는 진취적인 인간의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한계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악으로써의 모비 딕과의 대립은 끝내 악으로 부터 자유롭지 않은 인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끝내 태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사라지지 않은 악에게서 해방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 악에 저항하고 절멸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상징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실패하고 좌절할지라도 그 신성한 목표를 위해 스스로를 담금질해내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세 번째로 선의 화신으로써의 모비 딕이라면, 선을 정복하고자 하는, 혹은 선에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이 신에게 도달하고자 하지만, 결국 닿지 못하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마지막 내재의지로서의 모비 딕이라면, 인간의 해방의지를 상징한다고 본다. 맹목적인 의지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파멸에 이르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한 인간은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음을 그리는 것이다.
사실 이 전부가 옳은 것이라 할 수 없고, 동시에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모든 상징과 관계짓지 않더라도, 에이하브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렇기에 피쿼드 호의 선원들을 현혹시켰으며, 독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에이하브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이고, 이 인물의 의의는 무엇인가 였다. 쉽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불분명하며, 사실 자신있게 언급할 수 있는 견해는 아니다.
다만 피력한다면, 에이하브는 숭고성을 지닌 인물이다. 아직 숭고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에도, 에이하브 선장이 숭고한 존재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의 과도한 집착, 불합리한 목적, 필연적인 결점, 그 모든 것을 고려하더라도 에이하브가 나에게는 그러한 인물일 수밖에 없었다. 에이하브는 자신의 숙원이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할 것임을 짐작한다. 그는 자신을 초자연적 의지가 자신을 가로막을지라도 그것에 괘념치 않았다. 그는 어린 아내, 생의 의지, 편안하고 안락한 삶 모든 것을 내버렸다(무책임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극과 극은 상충하되 서로 부합하는 것이다). 그는 일신뿐만 아니라 그가 미련가질 모든 것을 단 한 마리의 흰 고래를 향해 내던진 것이다. 자신의 목적 단 한 가지를 위해 모든 것을 뒤로하는 그 결단력과 추진력은 분명 감탄을 거둘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비극적 결말이 내재된 사투에서 그 비극성을 인식하면서도 아무런 주저함 없이 그 사투를 피하지 않는 그 결의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불꽃을 향해 날아드는 부나방이 미련하다는 사람도 있겠으나, 거대한 시련에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불사르는 이에게 그 숭고성이 부재하겠는가? 그가 광적인 인물이든, 진정한 의지의 표상이든 개의치 않는다. 다만 그는 삶의 숙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투신하는 사람인 것이다. 삭막하고 메마른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열망을 잃고 두려움만 가득하다. 피폐한 삶에서 끝내 단념하지 않고 한 번의 기회를 위해 주저함없이 죽음의 고통 속으로 뛰어드는 것. 이것이 그에게서 숭고성을 느낄 수 있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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