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work] 자작 단편소설「사슬」2013.12.27 PM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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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단편 영화 시나리오로 제작했다가
영화 시나리오보다는 단편소설이 적합하다 싶어
다시 쓰게된 작품입니다.
단편 시나리오는 몇 개월전에 완성했지만
소설로 다시 개작하는 것은 얼마전에 끝났네요.
사실 이것도 다소 부족한 부분이 많고 퇴고할 여지가 있지만...
이만 끝내고 다른 작품을 시작하고 싶어서요.
처음으로 완성한 작품이고, 이제 첫 시작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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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었고, 취조실 안에는 놈이 있었다. 놈은 그저 한가로운 듯 의자에 편하게 앉아있었다. 손에 찬 수갑은 놈에게 아무것도 아닌 듯 자유를 영위하는 듯 했다. 문 열리는 소리에 놈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그저 묵묵히 나를 응시했다. 그러다 그 자식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바라보며 우습게도 그 웃음이 맑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 웃는 얼굴에 발자국을 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나는 그저 놈을 응시하며, 단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으며 놈의 맞은편의 자리에 앉았다. 의자를 앉은 후에도 그놈과 나는 서로를 그저 바라보았다. 침묵을 깬 쪽은 나였다.

“유명 인사네.”

내 말에 그 놈은 그저 히죽 웃었다.

“일주일전…… 7월 9일? 네 폭탄으로 세 명 죽고 삼십 명 중상이라더라.”
“나보다 잘 아시네. 아, 사람들 부르셨나?”

나는 저 자식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잡혔고, 도망칠 수 없다. 저 빌어먹을 같잖은 여유의 근원을 알 수가 없었다.

“아직. 너 그 전에 나랑 얘기 좀 하자.”
“음… 뭐 시간 좀 있네요.”

이놈 봐라? 기가 차서 나는 웃어버렸다. 그리고는 저놈이 말하기 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내 손목시계를 잠시 들여다본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시계에 눈이 갔다. 잘 보이지 않는 시간을 겨우 확인하면서, 놈의 시력에 놀랐다. 얼마 전부터 이 취조실의 등의 빛이 시들해지기 시작해, 이젠 이곳에서는 문서 확인은커녕 앞에 있는 사람 얼굴도 확인하기 어려워지던 차였다.

“눈이 좋네? 어두운데.”
“뭐 그렇죠.”

놈은 히죽 웃고는 옆의 유리를 향해서 꾸벅 인사했다.

“뭐하는 거지?”
“예의는 차려야죠.”
“아무도 없어.”
“왜요?”
“왜일 것 같아?”

놈은 턱을 손으로 묻었다. 생각을 한다는 듯. 놈의 몸짓은 조금 과장스러웠다. 그러다 바로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덮치려고요?”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놈을 응시했다. 저 자식의 입을 걷어차버리면 어떨까?

“탑이에요? 바텀?”
“계속 장난짓거리 할 때는 어떻게 되는지 알게 될 거야.”
“여흥은 그때 누리도록 하죠.”

장난을 즐길 기분이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놈의 배짱은 그럴듯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내 관심사는 아니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닥치고. 왜 날 공격했냐?”

답하는 대신 놈은 너스레를 떨었다.

“수갑 좀 풀어주시죠? 좀 아픈데.”

나는 답하지 않고 그저 노려보았다. 놈은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다 살짝 웃었다. 그리고는 눈을 돌리고 수갑에 묶인 손을 조금 흔들었다. 수갑의 사슬은 철렁거렸다. 그러다 다시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놈은 뜬금없는 듯한 말을 내뱉었다.

“죽은 사람이랑 당신은 뭐 다를 것 같습니까?”
“그 세 명과 스물한 명과 같은 이유로 공격했다는 거냐?”

놈은 고개를 흔들며 탁자에 조금 기댔다. 놈은 계속해서 여유를 부린다. 저 자식은 자기 처지를 모르나? 놈이 벌벌 떠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형사님은 특별히 모셔야지. 게다가 곁다리로 껴서 죽이진 않았잖아.”

나는 다소 불쾌한 사실을 알아챘다. 놈의 여유의 흔적을 조금 느낀 것 같았다. 감정을 누르며 말했다.

“너…… 일부러 잡혔냐?”
“얘기 좀 해볼까 해서.”

나는 다시 웃어버렸다.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다. 저 빌어먹을 대단한 개자식이 황송하게도 나와 얘기를 하고 싶었다는 건가? 놈을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호기심이 동했다. 무슨 말을? 그리고 왜 나와?

“흐흐. 새끼 존나 당돌하네. 이제 슬슬 모가지 날아갈 때 되니 이성을 잃었나봐?”
“나한테 그런 게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뭐, 본격적으로?”
“짖어봐. 짖을 수 있을 때 짖어야지.”
“고마우셔라. 당신을 선택한 이유는…… 당신은 내 옛 추억들과 관련 있기 때문이지.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최근대로 나열해볼까요? OOO, XXX, AAA, 그리고 또 누가 있었지?”
“뭐?”

내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나는 분명히 놀랐고, 그것은 내 얼굴에 드러났고, 놈을 즐겁게 했다. 놈은 재미있는 것을 본다는 듯, 혹은 자신의 농담이 누군가를 즐겁게 한 것처럼, 그러한 미소를 지었다.

“기억하시네요. 하긴 다 미제사건이지?”
“네가 지금 지껄이는 게 무슨 말인지 알아?”

내 말은 조금씩 떨리면서 나왔다. 두려움 탓은 절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두려움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 대상이 저놈일까? 놈은 목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내가 죽였어요. 폭탄테러로 알려지긴 했는데…… 사실 내 전공 분야는 그게 아니거든.”

나는 그저 놈을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그러다 입을 손에 묻고는 침묵했다. 저놈의 말이 진실이라면, 저 자식은 테러범일 뿐만 아니라 연쇄살인마라는 것이다. 저 말이 진실일까? 테러범이라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그놈이 연쇄살인마라고? 그렇다면 저 자식은 진짜 엄청난 놈이라는 거군? 그리고 그것보다…… 나는 분명히 저놈이 말한 사람들을 알고 있다. 전부 내가 담당한 사건의 희생자들이다. 나는 생각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증명해.”

놈은 환하게 웃었다. 과거를 회상하며 짓는 그의 미소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증명…… 어떻게 죽였는지 말할까요? OOO. 목의 동맥을 그었어요. 그 사람 사시미가 있던데. 하긴 가질만하게 생겼었지. 명줄이 끈질겨서 금방 안 죽더라고. 그래서 등에 몇 번 박았어요. XXX. 머리를 으깼죠. 오한마를 사용했죠. 옆에서 무릎을 치고 머리를 걷어찼어요. 시끄러워서 깔아뭉개고 입을 쳤고. 그러고 나서 다시 머리를 깠어. 그리고 한 번 더. 피가 많이 튀던데. 그 때 이후로는 깨버린 적은 없네요. 그 덕에 옷을 버렸지. AAA는... 그날 술을 먹었거든. 계획한 것도 아니라 솔직히 조잡했어. 계집애 예쁘더라. 보통 뒤에서 낚싯줄로 죽이는데… 잡히지도 않는 줄을 풀어내려고 버둥대는 것이 진짜 볼만하거든. 그 땐 앞에서 손을 사용했어. 표정이 오묘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군…….

나는 입을 열 수 없었다. 놈은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웃어버렸다. 조소의 기미 없이 티 없이 그저 맑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놈의 어떤 것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찾았지요? 아, 반가우신가?”
“너…… 뭐하는 놈이냐.”
나는 눈을 부릅뜨고야 말았다. 순수하게만 보였던 놈의 미소는 이전과는 달랐다. 조금씩 꿈틀대고 있었던 그것은 놈의 변화와 함께 굴레를 벗어나 그 본색을 드러냈다. 놈의 어조는 조소가 섞였고, 눈빛은 치명적으로 날카로웠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주먹을 탁자에 내려치고야 말았다. 감정의 폭발은 그것이 다였다. 참아야한다. 단순히 죽여서는 안 된다. 침묵이 다시 자리 잡았다. 내 시선은 바닥을 향해 천천히 추락했고, 주먹은 탁자를 짓누르고 있었다. 분노를 억누르고 나니 이젠 허탈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이 허탈함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너였군… 너였어…….”

내뱉은 말이 흩어진 후 다시 잠시 침묵이 그 곳을 지배했다. 그리고 다시 나는 침묵을 깨뜨렸다.

“특히 여자애는 3개월을 수사했지. 종결하고도 시간 쪼개서 조사했고. 아직도 그 애 얼굴이 생생해.”
“걔 눈 뜨고 있었을걸요.”

그래, 정말 네놈이 맞군, 개새끼야……. 새삼스럽게 진실을 재확인하는 내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이성이 남아있는 내 자신에게 자랑스러워해야할지, 아니면 부끄러워해야할지 모를 노릇이었다.

“그래. 눈도 못 감고 죽었어. 그 어린 계집애가 눈도 못 감고 죽었다고.”

나는 고개를 들어 놈을 노려보았다. 나의 눈길만으로 놈의 심장을 후벼 파기를 바랬는가? 아무렇지도 않은, 놈의 태연한 모습에 질색하고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이런 자식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하는 내 자신에게 모멸감이 느껴졌다. 이 자식에게 교수대의 밧줄은 너무 사치스럽다. 육시를 하고 부관참시조차 놈의 죄에는 못 미칠 것이다. 놈은 죽어야했다. 그리고 단순한 방법으로는 결코 안 되는 것이었다. 그저 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버티기 힘들었기에 나오는 목소리에 힘이 조금 모자란 것 같았다.

“그걸 네가 했다고?”

놈은 미소 지었다. 놈의 미소에는 방금 전 그 소름끼쳤던 어떤 것이 드러나지 않은 채 다시 숨어버려 자취마저 없었다. 다시 한 번 짧게 놀랐지만, 격한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주먹을 쥔 손을 머리에 가져갔다. 눈을 감고 주먹으로 미간을 잠시 두드렸다. 두드리다 미간에 주먹을 댄 채로 그대로 멈추고, 다시 부들거리는 주먹을 내려 테이블에 두었다. 놈을 노려보았다. 정말 지칠 것 같았다. 이놈을 어떻게 하면 요리할 수 있나? 어쩔 수 없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어 불을 붙였다. 담배연기를 내뱉고는 다시 놈을 응시했다. 나는 입을 열었다.

“왜 죽였냐?”
“돈이지 뭐.”

다시 입을 닫게 되었다. 이 자식은 정말 내가 말을 못하게 하는군. 놈은 장난치듯 말했다.

“아, 놀라셨나 봐요? 오늘 참 운수 좋은 날이죠?”
“돈? 돈이라고?”
“나도 먹고 살려면 돈이 필요하잖아요.”
“그럼 여자애는 왜 죽인거지?”
“요즘 애들도 돈 좀 있어요. 푼돈이지만.”
“그래서 돈 몇 푼 때문에 사람을 그렇게 죽였다고?”
“그럼 여성들은 몸 함부로 굴리지 않고, 부유층을 각성시키기 위해서…… 라고 할까?”
“이런 시발 새끼가……!”
“당신도 몇 푼 안 하는 돈 때문에 형사질 하잖아.”
“그저 푼돈 버는 것이 수지맞을 것 같아?”
“역시 때리는 게 좋아요?”

나는 경고하듯 다시 한 번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놈은 그저 피식 웃어버렸다. 내가 왜 총을 안 가져왔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당길 시점이야.

“저도 그저 돈 때문은 아니지요. 뭐… 직업의식이 있고, 소질도 좀 있고. 무엇보다 이거 재미있어요. 이거 한 번 시작하면 딴 걸로는 재미 보기 힘들지. 이만큼 스릴 있는 일은 흔치 않거든. 그리고 이제까지 배운 게 이건데 배운 대로 먹고 살아야지.”

처음에는 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조금 흘러서야 겨우 놈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제야 물었다.

“배웠다?”

놈은 조용히 나를 응시했다. 여전히 놈의 입 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멎은 적이 없었던 그의 미소는 이제 자취가 사라졌다. 정말 독특하고 좆같은 놈이라고 생각할 때, 살인자는 입을 열었다.

“……그래요.”
“무슨 의미지? 배웠다고?”
“……처음부터 말할까요?”
“처음부터?”
“처음부터.”
“좋아.”

놈은 입가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입가에 머물렀던 손은 다시 올라가 눈을 잠시 가렸다. 손을 내리며 깊은 숨을 내뱉었다.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놈의 모습에 느낌이 이상했다. 그러고 나서야 놈은 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내가 일곱 살 때였어요. 어머니를 죽였지요.”

놈이 말하는 모든 것은 내게는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누군가는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놈은 웃었다. 하지만 그 미소에 약간 기운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감정은 없었어요.”
“그럼 무슨 이유로?”
“아버지께서 시켰거든요.”

나는 눈을 치켜떴다. 정말 미치겠군.

“뭐?”

놈은 그저 미소 지었다.

“계속해봐.”
“좋아요. 음…… 어머니는 의자에 묶여있었어요. 머리는 산발이고, 옷은 찢어지고…….”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놈의 손이 허공을 향해 올랐다. 놈의 손이 과거를 회상하는 듯 그 날을 재현하려는 것 같았다. 들어 올린 손은 무엇을 쥐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제게 칼을 쥐어주셨어요. 그리곤 어머니를 찌르라고 하셨지요. 배꼽을 찌르라고. 그리고 비틀고 당기라고.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다시 한 번 더.”

놈의 손이 쥐고 있는 것은 칼이었고, 무엇을 찌르고 비틀어 당겼다. 그리고 다시 찌르고 비틀어 당겼다. 놈의 손놀림은 부드럽고 자연스러웠다. 놈이 말하는 그 시절에도 저러했을까? 그럴 리 없을 텐데, 이 의심 자체에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그걸 했다고? 네 어머니를 상대로?”

“처음에는 거부했죠. 애원했는데…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으셨고……. 어머니를 그대로 몇 주를 뒀어요. 약간의 물과 역겨운 음식찌꺼기만 주시면서, 살려만 두셨죠. 음식을 거부하실 때는 억지로 우겨넣는 것을 보았죠. 어머니께서 살려달라는 말도 못했고……. 분변… 위생적인 방법은 아니었죠. 평소에는 어머니의 입과 눈을 가렸기에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선택을 해야 했지요. 결국 아버지의 말을 들었어요. 옳은 방법이었죠.”
“그게 옳았다고? 네 어머니를 죽이는 것이?”
“풀어줄 때는 아버지가 저를 죽인다고 했거든요. 어머니를 구해주고도 싶었지만… 죽고 싶진 않았어요. 스스로 타협한 끝에… 어머니를 해방시켜주었죠… 합리적이죠.”

역한 느낌에 결국 외치고야 말았다. “그게 합리적이라고?” 내 질문에 놈은 반문하듯 말했다.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 몇 개 없었거든요?”
“왜 네 아버지는 그걸… 시켰냐?”

놈은 숨을 깊게 내쉬었다.

“처음에는 안 알려주셨죠. 다만 앞으로 네가 배워야할 것이라고만 하셨어요. 그 이후 다시 물었을 땐... 언제나 폭력으로만 답하셨고. 그리고는 별 것 다 배웠네요. 칼 쓰는 법이랑… 지문이나 체모 처리 방법 등등…….”
“그래서 실수가 없었군.”

빌어먹을, 저 자식은 정말 말그대로 전문가, 아니 장인이라고 할 수 있겠군. 살인의 장인.
문득 생각나 물었다.

“폭탄제조도 네 아버지한테 배운 거냐?”
“아뇨. 그건 독학이죠. 사실 이전까지는 다 실험이었어요.”
“실험?”
“다 실패했지만. 어쨌든… 나중에 물었죠. 그날이… 당신께서 이제 할 바를 다 했다고 한 날이었어요.”

실패라고? 그게 실패라고? 도대체 폭탄의 진정한 결과는 어떤 결과를 낳게 된단 말인가?

“뭐라 하든?”
“아버지께서 주무실 때 목에 칼을 대었죠. 그 때는 알려주시더군요. 의외로 순순히 답하시던데요.”

놈은 말을 멈췄고, 나는 놈을 잠시 응시하다 결국 재촉했다.

“뭐라고?”
“……아버지께서도 할아버지께 그렇게 배우셨다 말씀하셨죠. 이제까지 그게 전해져왔다고 하셨어요. 아버지도 저와 같은 경험과 배움을 받으셨고… 이해가 되지 않아 젊은 날에는 방황하셨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셨다고. 하지만 당신께서도 확실한 이유는 모르시다고 하시더군요. 만족스러운 답변은 아니지만, 아버지는 말할 바를 다 말씀하셨죠. 칼을 거두려 할 때 아버지는 제 손을 잡았죠.”

놈은 살짝 미소 지었다. 미소에 나는 흠칫 놀라버렸다. 정말 잘 웃는 녀석이군. 어떻게 웃을 수 있는 거냐? 적어도 네놈은 그래선 안 되지 않나?

“말하지 않으셨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죠. 칼을 밀어 넣고 옆으로 그었어요. 그만큼 인상적인 살인은 없었죠. 부드러웠어요. 아버지는 저를 보다가…… 그냥 눈을 감으셨죠.”

놈은 다시 말을 멈추었다. 목을 꺾어 몸을 풀고는 팔꿈치를 탁자에 대고 손을 깍지 끼더니 눈가에 대었다.

“그때부터… 아버지 방식을 따르고 있었지만 사실 계속 회의로 가득했어요. 모르겠어요. 왜 아버지는 그렇게 하셨는지…… 이게 과연 옳은 것인지…… 어떻게 생각해요?”

눈가를 가리던 손은 어느새 내려가 있었고, 놈의 눈은 나를 향했다. 마치 총구가 향하는 표적이 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바로 답하지 못하고 뜸을 들였다.

“너의 행위…… 그건 정당화할 수 없어. 명분이 없어. 그저 돈과 쾌락 때문이지. 하물며 복수니 사회에 대한 불만이니 같은 싸구려 같은 이유도 아니야. 명분이 있다 해도 안 되지만. 위선 안 떨고 솔직해서 좋긴 한데 하지만 그게 사회에서 용인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사형은?”
“그것들은 사회에서 용인되는 것이지. 사회의 계약과 합의, 제도… 그것들에 따라 이루어지는 결정이지.”
“결국 다수에 의한 살인 아닌가?”
“이런 말 들어봤냐? 인과응보라고? 시발 지가 한 짓이 있으면 책임은 져야지. 죽기 싫음 하질 말든가.”
“아, 그건 맘에 드는데. 어쨌든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괜찮다는 건가요?”
“어떤 경우든 정당화될 수 없다는 거다.”
“그럴까요?”
“그래”
“……당신들은?”

놈의 얼굴에 다시 차가운 어떤 것이 드러났다. 다시 나타났군. 나는 눈을 찌푸렸다.

“뭐라고?”
“나와 다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음…… 실험하나 해볼까요?”

실험이라고? 내심 당황했지만 드러내지 않기를 바라며 말했다.

“수작 부리지마. 개좆같은 놈아.”

살인자는 셔츠의 윗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윗부분에 어떤 장치가 보였다.

“보여요?”
“그게 뭐지?”
“이건 제 심장박동을 감지하는 거예요.”

빌어먹을, 부주의했어. 무장여부만 확인했다니! 그런데 저건?

“그런데?”
“제가 실은 어느 곳에 폭탄을 설치했어요.”
“뭐?”

제기랄, 또 감정을 드러냈다. 내 얼굴에는 긴장과 당황이 역력할 것이다. 놈은 그것에 미소 지었다. 하지만 이제 이딴 알력이 중요할 수는 없었다.

“성공한다면 저번 기록은 손쉽게 돌파할 것 같은데. 기네스라도 노려봐도 될까요? 현재 기록은 모르겠지만.”

놈은 말을 끝내고 히죽 웃었고,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일어서면서 의자는 뒤로 넘어가 버렸다. 나는 떨림을 감출 수 없었다.

“너 이 새끼…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거냐?”
“멈추는 방법을 알려드리지. 나를 죽이면 됩니다.”
“뭐?”
“제 심박이 멈추지 않는다면 폭탄도 멈추지 않을 거예요.”
“뭐하는 짓이야?”

나는 탁자를 우회하여 놈에게 다가갔다. 걸어가면서 약간 비틀거렸는데 넘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놈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놈의 목소리가 신이 난 듯 조금 높아졌다.

“아, 행여 센서만 제거하면 된다고 생각하진 마세요. 이건 체온도 감지하거든. 심박이 멈춰도 체온이 없다면 역시…….”

놈은 주먹을 쥐었다 피었다. 무엇을 말하는지 명백했다. 나는 소리 질렀다.

“미친 자식아 당장 멈춰!”
“폭탄은 정확히 7시 45분에 터집니다.”

놈은 내 손목의 시계를 보고는 다시 말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네.”

내가 조금씩 부들부들 떨고 숨을 몰아쉬는 것을 알았다. 이 빌어먹을 자식은 계획적인 놈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모든 것이 의도된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놈의 계획대로 행동한 것이다. 처음은 물론이고, 그 이후조차도. 난 놈의 꼭두각시처럼 놈의 계획에 휘둘렸고, 이제 나의 선택마저 이 자식의 계획안에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멈춰 이 새끼야!”
“방법은 하나뿐이에요.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 그리고 멈출 수 있어도 지금은 무리지.”

말을 마치며 놈은 웃었다. 소름끼치는 웃음소리였다. 이제 놈의 그것은 완연히 드러났다. 나는 결국 살인자의 복부를 가격했다. 묵직한 주먹이 배에 꽂히면서 놈의 웃음이 멎는 동시에 급한 숨이 터져나왔다. 그렇게 놈을 작살내고 싶었건만 이젠 일체의 성취감도 해소감도 없었다.

“멈춰 이 새끼야.”
“선택은 둘 중 하나야.”
“멈춰!”

나는 다시 한 번 놈을 때렸고, 놈은 고통스러운 듯 몸을 비꼬았다. 신음소리를 냈지만, 표정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우욱…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어.”
“멈춰! 멈추라고!”

나는 놈의 흉부를 연달아 두세대 가격하고 다시 한 번 얼굴에 주먹을 내질렀다. 놈은 나가떨어졌다. 쓰러진 놈을 짓밟았다. 놈은 저항조차 없었고, 나는 미친 듯이 몸을 밟아댔다. 이대로 머리를 으깨버릴까? 나는 다시 놈을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불편한 자세로 우리는 서로를 노려보았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다른 방법이 있잖아. 있잖아! 이 새끼야! 말해!”

놈은 말하기 힘든 듯 했다.

“아니. 없어. 한가지 밖에. 날 죽이는 것.”

다시 한 번 놈의 얼굴에 주먹이 꽂았다. 살인자는 어지러운 듯 머리를 흔들고 눈가에 초점이 없었다.

“멈춰!”

놈은 아직 정신 차리지 못한 듯 눈은 나를 향하지 않았다.

“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명분을 준 것 같은데. 쉽잖아? 나 하나 죽여서 여럿을 살릴 수 있는데? 아니면 그 많은 사람들을 죽여 나를 살릴 건가?”

놈과 나는 숨이 매우 거친 와중에도 서로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살인자의 얼굴에는 흥분과 조롱감이 만연했다. 내 얼굴에는 어떤 것이 드러나고 있을까? 짐작할 수 있으나 분명 내 짐작 이상일 것이다. 놈은 눈짓으로 손목시계를 가리켰다. 놈은 웃으며 지껄였다.

“이젠 정말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텐데. 어쩔 거냐? 응? 어쩔 겁니까? 선택하…!”

결국 나는 양손으로 살인자의 목을 찍어 눌렀다. 놈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나는 분명 흥분하였고, 놈의 표정에 쾌감마저 느꼈다. 그러나 내 가슴속에 거북스러운 어떤 것이 있었다. 내가 짓누르는 것은 놈의 숨통인가 아니면 내 자신인가? 나는 결국 신음 섞인 비명을 질렀고, 놈은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지독하게 사악한 것이었다. 어느새 내 비명은 그치고 서로의 짧고 거친 신음소리만 그곳에 자리 잡았다. 나는 놈을 죽이고야 말 것이고, 놈은 기어코 죽고야 말 것이다. 놈이 죽기 직전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그 때 갑자기 밖에서 굉음이 연달아 울렸고, 취조실의 전등이 암전되었다.



사방은 어둠이 장악했다. 시간이 흐른 뒤. 누군지 모를 사람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형광등이 조금씩 명멸하기 시작했다. 불이 밝았을 때 형사의 지친 모습이 드러났다. 형사가 힘없이 벽에 손을 대고 일어섰다. 불이 꺼지고 다시 들어올 때 형사는 거의 일어서있었다. 불이 다시 꺼졌다. 이번 암전은 조금 길었다. 형사가 다시 보였다. 다시 암전. 이번에는 빠르게 다시 켜졌다. 그리고 다시 꺼졌다. 다시 켜지기 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어둠 속에 형사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형사의 숨소리뿐이었다. 그가 형사의 뒤에서 형사의 목을 수갑 줄로 걸어 당긴 것은 다시 불이 잠시 켜질 때였다. 그리고 다시 불이 꺼졌다.
암전은 길었다. 암전동안 형사의 숨 막혀 하는 소리와 몸이 부딪치는 소리, 바닥에 발을 긁는 삐익 대는 소리, 테이블과 의자가 밀리고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암전 간간히 불이 명멸했고, 그 때 마다 그의 숨겨진 것이 나타났다. 형사는 저항했다. 그와 형사는 같이 뒤로 넘어갔다. 숨넘어가는 소리는 너무 희미해 들리지 않았다. 조금씩 소음이 멎었다.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수갑 소리가 잠깐 들렸다. 그리고는 다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시 철컥 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무엇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것은 수갑이 떨어지는 소리임이 분명했다. 불이 다시 들어오면서 잠시 피로 적신 수갑이 드러났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흐느끼는 소리였다. 소리가 조금씩 커질 때 그것이 웃음소리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 웃음소리는 길었다.

“아버지…….”

다시 잠시 조용해지다가 히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갑 소리, 수갑이 채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걸어가는 소리.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면서 빛이 밝아졌다. 그 빛마저 불처럼 타올랐다. 문밖에는 아직 연기가 가득했다. 취조실은 탁자와 의자가 내팽개쳐져 있었다. 그는 밖을 슬쩍 둘러보았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핏자국이 있었다. 그는 휘파람을 불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밖으로 나갔다. 발자국소리가 조금씩 작아졌다. 취조실에 이제 숨 붙은 것은 없었다. 시체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진 채로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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